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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68화 (68/200)

68화 뭘 싸우다 말고 중얼거리냐?

팽중호는 이세홍을 거칠게 잡아끌은 채로 일단 멀찍이 물러났다.

워낙에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기에 아무도 팽중호를 제지하지 못하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털썩-

팽중호는 그대로 뭐라 말하려는 이세홍의 수혈을 짚어서 쓰러트린 후, 자신의 뒤쪽으로 눕혀 두었다.

괜히 시끄럽게 굴거나, 움직이면 귀찮아지니 말이다.

“자, 이제 다시 시작해 볼까?”

다시 무적도를 드는 팽중호.

그 주변을 숭무문 무인들이 포위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려 하지는 않았다.

조금 전 보았던 팽중호의 압도적인 무력 탓이었다.

“뭐 하십니까? 죽이십시오.”

그때 조소린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그녀의 말에 주춤하던 숭무문의 남은 무인들이 일제히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파지지지직- 스윽-

그 모습을 지켜보던 팽중호의 무적도가 움직였다.

조금 전과는 달리 커다란 뇌룡이 나오지 않은, 너무나도 가벼운 일도였지만, 그 결과는 조금 전과 다르지 않았다.

서걱-

달려들던 무인들의 몸이 그대로 모두 허물어졌으니 말이다.

허망할 정도의 결과.

팽중호는 착 가라앉은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두려움을 품은 순간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지금 팽중호에게 달려든 이들의 눈과 몸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너무나도 또렷이 드러났다.

두려움이란 것에 휩싸인 순간 이미 저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팽중호가 큰 힘을 쓰지 않고도 이렇게 쉽사리 벨 수 있는 것이었고 말이다.

“누가 먼저 뒈질래?”

팽중호는 이제 둘만 남은 조소린과 복면인 쪽을 바라보았다.

둘은 지금 모든 숭무문의 무인이 죽었음에도, 조금의 감정의 동요도 없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나서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때 조소린이 자신의 뒤에 서 있던 복면인에게 허리를 숙이며 나서 달라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복면인이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스슷- 탓.

단 한걸음에 팽중호의 앞쪽에 도달한 복면인.

팽중호는 복면인의 얼굴에서 보이는 유일한 곳이 두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지난번에 온 게 너였군.”

지난번 팽중호가 이곳을 지켜본 후 돌아갔을 때, 밤에 습격해 왔던 복면인.

팽중호는 그때의 복면인이 조소린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니 조소린이 아니라 눈앞의 복면인인 듯싶었다.

‘흠. 그럼 내 공격을 피한 것도 이해가 가네.’

지금 보면 확실히 조소린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너무나도 미약했다.

저 정도라면, 그때 자신의 공격을 피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했을 터.

그렇다면 눈앞의 복면인이 그때의 그 습격자란 소리였다.

‘내가 좀 경솔했군.’

이세홍과 조소린에 집중하느라 주변의 경계를 조금 소홀히 한 모양이었다.

이런 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때 몰랐었으니 말이다.

“하북팽가 소가주. 뇌룡. 팽중호. 화경 초입.”

복면인의 입에서 팽중호에게 대한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다른 건 누구나 다 아는 것이라 해도, 화경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은 제대로 아는 이가 딱히 없을 터인데, 확신 가득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다.

“나에 대해 조사 좀 했나 봐?”

팽중호는 복면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복면인에게 느껴지는 굉장히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

보통의 마공을 익힌 이들에게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더러운 느낌이었다.

“너네 혈천궁이냐?”

“!!”

팽중호의 물음에 아주 잠깐이지만, 복면인의 두 눈이 흔들렸다.

“맞나 보네. 혈천궁.”

혈천궁(血天宮).

무림에 암약하며, 무림을 피로 물들이려고 하려는 곳.

마교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이 혈천궁은, 무림에 있는 모든 마공의 종주라고 해도 될 만큼 수없이 많은 마공과 마인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혈천궁에는 혈공(血功)이라는 것을 익힌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마공을 익힌 마인들 보다도 훨씬 더 위험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복면인이 바로 그 혈공을 익힌 자인 듯싶었다.

“이제 슬슬 다시 활동하려고 하나 봐?”

이들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가 무림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나타나 무림에 상처를 내고는 하였다.

혈천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

그것은 지금 무림이 혼란스럽다는 증거일 터였다.

‘흠. 그러고 보니 이놈들이 움직이고 난 후에 마교가 움직였는데.’

전생에 혈천궁이 활동을 시작해 온 무림이 그들을 막기 위해 하나로 뭉쳐서 혈천궁을 와해시키고 나자, 마교가 무림을 향해 진격해 오기 시작했다.

팽중호는 갑자기 이 시기가 참으로 공교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것은 아직까지는 그저 혼자만의 추측일 뿐이지만 말이다.

‘일단 이 문제는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닥친 문제부터 처리하자.’

팽중호는 일단은 생각은 잠깐 뒤로 밀어 두고, 눈앞의 복면인 처리부터 시작하기로 하였다.

혈천궁이 나타난 것은 큰 골치였지만, 당장 급한 일은 눈앞의 복면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소혼흡정마공은 네가 가르쳤구나? 날 찾아온 걸 보니까.”

복면인이 조소린에게 소혼흡정마공을 가르친 듯싶었다.

혈천궁은 이렇게 뒤에서 정체를 숨기며 다른 이들을 조종하여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조소린과 숭무문을 방패로 뒤로 숨어서 움직였던 듯싶었다.

그들은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직접 앞서는 것을 꺼렸으니 말이다.

“뭐, 대화하기 싫은 것 같으니까, 이제 끝내자고.”

파지지지지직- 파지지지지직-

팽중호는 뇌신지체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복면인을 벨 준비를 하였다.

스멀스멀 스멀스멀-

그러자 복면인의 몸에서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주변을 잠식하는 기운.

저 기운이 바로 혈천궁의 혈공을 익힌 자들에게서 나오는 기운이었다.

파직-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순식간에 복면인을 향해 뻗어 나가는 엄청난 뇌강.

카아아아아아- 서걱- 촤아악-

복면인은 손으로 팽중호의 뇌강을 막으려 하였는데, 결국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였고 한쪽 팔이 날아가고 말았다.

물론, 목이 달아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서문세가의 장로들마저도 제대로 막지 못한 공격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저 혈공이란 게 참 놀라워.’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익히는 혈공은, 그 위력이 일반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한다.

마공조차도 혈공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혈공은 괴랄한 무공이었다.

“……수정이 있어야 하겠어.”

복면인은 잘려 나간 자기 팔을 바라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팽중호가 화경 초입의 경지라면, 이렇게 쉽게 팔이 잘리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의 일도에 너무나도 허망할 정도로 쉽게 팔이 잘려 버렸다.

그렇다면 이것은 팽중호가 화경 초입을 넘어섰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정보는 분명 수정이 필요했다.

“뭘 싸우다 말고 중얼거리냐?”

콰각- 쾅-!

복면인에게 다가온 팽중호의 무적도가 무자비하게 휘둘러졌다.

남은 한쪽 팔로 힘겹게 팽중호의 공격을 막아 나가는 복면인.

사실 팔 하나가 잘린 시점에서 이미 이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삭-

그때.

팽중호의 기감에 조용히 몸을 움직이는 기운이 하나 잡혔다.

팽중호의 뒤쪽으로 움직이는 기운.

바로 조소린이었다.

조소린은 지금 혈천궁의 인물이 팽중호에게 밀리자, 팽중호의 뒤에 있는 이세홍을 빼내어 다시금 그를 인질로 이용할 생각이었다.

“어딜!”

퍼어억- 쾅-

팽중호는 복면인에게 무적도를 휘두르다가, 곧바로 몸을 살짝 움직여 발로 강하게 조소린을 걷어찼다.

오로지 이세홍을 빼낼 생각만 하던 조소린은 갑작스러운 공격에 그대로 날아가 벽에 몸을 처박고 기절해 버렸다.

그렇게 조소린을 처리한 팽중호는 이제 복면인을 처리하기 위해 더욱 기운을 끌어 올렸다.

파팟-

팽중호의 두 눈에서 뇌전이 터져 나왔다.

파직- 철컥-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팽중호의 무적도가 다시금 도갑으로 돌아갔다.

싸움의 끝을 알린 것이었다.

서걱-

공간이 갈라진 듯 반으로 쪼개진 세상.

복면인의 몸도 그와 함께 반으로 쪼개졌다.

“흠. 역시 난 힘으로 해결하는 게 성미에 맞다니까.”

팽중호는 한쪽에는 이세홍을 다른 한쪽에는 기절한 조소린을 끼고 자리를 벗어났다.

* * *

“으윽…… 음.”

이세홍은 터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꾸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하나도 없는 머릿속.

“거, 일어났습니까?”

“누구……?”

이세홍은 옆에서 자신을 향해 말을 거는 이를 바라보며 누구냐 물었다.

분명 기억이 있는 것 같은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다 생각날 겁니다.”

“예?”

“세홍아!”

“오라버니!”

그때 이세홍이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선중과 이세경이 함께 나타났다.

걱정과 안도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그들의 얼굴.

이세홍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세경아……. 윽!”

이세홍은 갑자기 흐르는 눈물과 함께,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괜찮으냐?”

“이제 슬슬 기억들이 떠올라서 그러는 겁니다. 곧 괜찮아질 겁니다.”

한참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던 이세홍이 갑자기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한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그곳에 걸려 있던 장식용 검을 꺼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몸을 찌르려는 이세홍.

이세홍은 지금 자신이 소혼흡정마공에 혹해서 행했던 악행들이 모조리 떠오른 것이었다.

그래서 자결로 그 죗값을 치르려는 생각이었다.

턱-

하지만 이세홍의 자결은 어느새 나타난 팽중호의 손에 의해 막혔다.

맨손으로 검을 잡고 있는 팽중호.

“자결로 손쉽게 죗값 치르려고 하지 마십쇼.”

“하, 하지만…….”

“오래 살아서, 오랫동안 죗값을 갚으며 사는 게, 제대로 값을 치르는 겁니다.”

챙그랑-

장식용 검을 스스로 바닥에 버리는 이세홍.

그러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팽중호에게 절을 하기 시작했다.

“은공께 인사를 드립니다.”

이세홍은 팽중호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절까지 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다.

“저도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이선중과 이세경까지 팽중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며 절을 해 왔다.

“아, 이러지들 마시고 다들 일어나십시오.”

이 정도로 과하게 인사를 받을 일은 아니었기에, 팽중호는 낯간지러웠다.

이런 건 정말로 익숙해지지 않는 팽중호였다.

“이제 막 제거했으니, 한동안은 좋은 거 드시면서 누워 계십쇼.”

“정말,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은공.”

이세홍은 거듭 팽중호에게 감사를 건네었는데, 그런 이세홍을 팽중호는 억지로 다시금 자리에 눕혔다.

팽중호가 뇌기를 이용해 소혼흡정마공의 소혼기는 제거했지만, 그동안 마공이 이세홍의 몸과 마음을 좀먹었었으니, 한동안은 누워서 좋은 것들을 먹으며 편히 쉬는 것이 필요했다.

“자. 그러면 여기서 해후를 나누고 계십시오. 저는 잠깐 조소린을 보고 오겠습니다.”

팽중호는 세 사람을 남겨 두고, 조소린을 가둬 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어볼 것들이 있기에 일부러 살려 둔 조소린이었다.

“깨워 볼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가만히 쓰러져 있는 조소린.

팽중호는 조소린에게 다가가 몇 번 그녀를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갑자기 조소린이 몸을 흠칫 떨더니 눈을 떴다.

“안녕?”

조소린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팽중호.

물론 조소린에게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인사였다.

아니, 그녀가 보기에는 저승의 악귀가 인사를 해 오는 것 같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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