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알아서 일을 쉽게 해 주네.
숭무문 문주 단죄검(斷罪劍) 조걸학.
그리고 조걸학의 여식이 바로, 지금 신조상단에 머물고 있는 조소린이었다.
조소린은 산서성에서도 손에 꼽히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 그녀에게 온 수많은 혼처 중에서 선택한 혼처가 바로 신조상단의 이세홍이었다.
‘신조상단을 네가 모조리 집어삼키거라.’
조소린은 신조상단을 통째로 집어삼키라는 조걸학의 명령을 따라서 전략적으로 이세홍을 택한 것이었다.
소혼흡정마공이 있다면,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세홍을 주무르는 것은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세홍은 금방 소혼흡정마공의 포로가 되었고, 조소린은 뜻대로 이세홍을 주무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소혼흡정마공을 사용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아주 천천히 진행해 시간은 꽤 걸렸지만 말이다.
‘이제 수확만 하면 되거늘…….’
이제 이세홍을 완전히 꼭두각시로 만들었으니, 그를 이용해 이세경을 죽인 후 신조상단을 집어삼키기만 하면 되었는데, 갑작스레 팽중호라는 장애물이 나타나 그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잘되었다. 차라리 이 기회에 죽여야 한다.’
조소린은 아예 이번 기회에 하북팽가를 홀로 벗어나 이곳에 온 팽중호를 죽일 생각을 하였다.
팽중호를 없애게 되면 신조상단을 집어삼키는 것의 장애물이 사라짐과 동시에, 하북팽가의 핵심 전력인 팽중호를 없애 버렸으니, 숭무문이 동시에 산서성과 하북성의 패자로 올라설 수 있을 터였다.
서문세가가 봉문을 당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혈살문을 이용하자.’
조소린은 팽중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직접 나서 봐야 오히려 큰 출혈만 날 터가 분명했다.
그래서 조소린은 이세홍을 이용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 이 주변 최대 살문인 혈살문에 팽중호 암살을 의뢰한 것이었다.
들인 돈이 돈이니만큼 확실하게 팽중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돈이면 웬만한 중소 문파 하나는 싹 쓸어 버릴 수 있는 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팽중호는 살아 돌아왔다.
‘이럴 수가!’
팽중호가 살아 돌아온 후, 다시금 그를 죽이기 위해 직접 움직이려 하였지만, 갑자기 삼엄해진 주변 경계 때문에 움직일 수 없었다.
‘살려 둘 수는 없다.’
조소린은 팽중호가 자신이 이세홍에게 소혼흡정마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봤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절대로 살려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증이 없기에 그가 함부로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심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큰 문제였으니 말이다.
팽중호를 살려 두는 것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짓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아직 기회는 충분할 것이다.’
아직은 팽중호가 이곳 신조상단에 머물고 있으니,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 준비된 패가 있었으니 아직은 괜찮았다.
‘그분이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 * *
팽중호는 자신의 단전에 자리 잡은 내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독기를 완벽하게 흡수한 뒤 자리를 잡은 내공.
천살귀처럼 독기를 내뿜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 웬만한 독에는 전부 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변하였다.
‘이 정도면 만족이지.’
지금 이 상태라면, 지난번 그 소혼향을 맡아도 아무렇지도 않을 터였다.
이건 예상치 못한 뜻밖의 수확이니 이 정도면 매우 만족이라 생각하는 팽중호였다.
똑똑똑-
“공자님. 상단주님과 부상단주님이 오셨습니다.”
팽중호가 운기에 들어간 후 꽤 시간이 지났고, 그사이에 오늘 병문안을 오기로 하였던 이선중과 이세경이 도착하였다.
“아, 예. 제가 금방 나간다고 해 주십시오.”
“예.”
시종에게 말을 전한 팽중호는 나름 몸을 멀끔하게 정리하였다.
이선중에게 아무렇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행세라지만, 그의 딸인 이세경과 연인인데 말이다.
빠르게 매무새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가자 보이는 이선중과 이세경.
“몸은 좀 어떠십니까?”
“걱정해 주신 덕분에 더 좋아졌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선중은 팽중호를 보자마자 몸이 괜찮은지를 물어왔다.
지금 신조상단에 귀빈으로 온 팽중호인데, 그가 크게 다쳤다는 것은 신조상단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임과 동시에, 팽중호에게 큰 결례를 범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했다.
“제 딸 아이를 지켜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구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물론 극구 사양하는 것과 다르게 팽중호는 속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신조상단에 아주 제대로 빚을 하나 만들어 뒀으니 말이다.
물론 예상과는 다르게 만든 빚이었지만 말이다.
“저…… 팽 소가주님. 정말로 죄송하지만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듣겠습니다.”
갑자기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더니, 부탁이 있다며 말을 꺼내는 이선중.
“정말 염치없지만, 제 아들놈을 구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이선중의 말에 팽중호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고 있었겠지.’
이세홍이 이상하다는 것을 팽중호도 알고, 이세경도 알고 있는데, 아버지인 이선중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신조상단이라는 거대한 상단의 상단주가 그런 것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이선중이 그렇게 정보력이 약하고 눈치가 없다면, 애초에 신조상단이 이렇게 크지도 못했을 테니 말이다.
다만, 아들인 이세홍의 안위 때문에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선중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섣불리 손을 쓰기에 이미 늦었을 때였으니 말이다.
“정말 못난 놈이지만, 제게는 소중한 아들놈이라 그렇습니다.”
“가가. 저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세경까지 가세해 팽중호에게 부탁을 해 왔다.
그녀 또한 예전의 이세홍을 기억하기에 어떻게든 구해 주고 싶었기에 그랬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팽중호는 흔쾌하게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였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기도 하였고,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득이 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팽 소가주님!”
“가가!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진실한 표정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이선중과 이세경.
팽중호는 그 모습에 속으로 계산하던 자신이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대신 제가 아드님은 구해 드릴 수 있지만, 숭무문과는 아마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실 겁니다.”
“아아, 괜찮습니다. 그것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요. 그러지 마시고, 그냥 저희 하북팽가에 지원을 좀 해 주십시오. 그럼 저희가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팽중호는 어차피 숭무문과 부딪치게 될 거란 걸 잘 알았다.
지금 이세홍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신조상단에 있는 숭무문의 사람들과 칼부림은 물론이거니와 가장 중요한 조소린을 베어 내야만 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하북팽가 또한 숭무문의 원수가 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아예 신조상단의 지원을 하북팽가가 받고, 그 지원을 바탕으로 숭무문과 싸우는 것이 이득일 터였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희 상단이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약속하신 겁니다.”
“예.”
스윽-
팽중호는 약속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곧바로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 늦어지면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르니, 바로 움직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몸이 아직…….”
“전보다 더 좋아졌으니 제 몸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런데 전각들이 좀 부서질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죠?”
“아, 예. 괜찮습니다.”
팽중호가 전각을 벗어나자, 그 뒤를 이세경이 빠르게 따라왔다.
“가가.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이 가득한 이세경의 표정과 목소리.
지금 팽중호가 가려는 곳에는 숭무문의 무인들이 쫙 깔려 있는 상황.
그곳에 혼자 간다니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이지. 세경이 너는 상단주님이랑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정리하고 올 테니까.”
와락-
그때 갑자기 이세경이 팽중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팽중호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가볍게 이세경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걱정하지 마.”
“정말 죄송합니다.”
“하하. 죄송하면, 나 돌아왔을 때 맛있는 거나 준비해 달라고.”
“예!”
팽중호는 이세경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참……. 그저 연인 행세를 하는 거였는데, 좀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네.’
분명 이세경과의 계약은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연인 행세였다.
그런데 지금을 보면 정말 연인과 다를 것 없어졌다.
하긴, 그렇게나 붙어 다니고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겪었는데, 정이 생기지 않는 게 이상하긴 한 것일 터다.
‘뭐,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싫지는 않네.’
절대로 혼인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에서 조금 생각이 바뀐 팽중호였다.
물론, 그렇다고 당장 혼인하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뚜두둑- 뚜둑- 뚜두두둑-
“일단은 지금 일에나 집중하자.”
팽중호는 몸을 거하게 풀며, 숭무문 사람들과 이세홍이 머무는 곳으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멈춰라.”
신조상단 내에 있는 숭무문의 무인들과 이세홍이 머무는 곳인 ‘비조각(飛鳥閣)’.
지금 그곳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숭무문 무인들은 갑자기 비조각 앞에 떡하니 나타난 팽중호를 보고 소리쳤다.
그들은 이 비조각 안으로 개미 한 마리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말이다.
“죽기 싫으면 비켜.”
“멈추라고 하였다!”
“두 번은 말 안 해.”
파지지지직-
서걱- 서걱-
팽중호의 무적도가 거침없이 문 앞을 지키던 숭무문 무인의 목을 베었다.
적이 될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그의 머릿속에는 없는 일이었다.
“막아라!”
“죽여!”
소란을 느낀 숭무문의 무인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고,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알아서 일을 쉽게 해 주네.’
한 번에 모여 있어야, 따로따로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지 않겠는가?
“자. 나는 분명 뒤지기 싫으면 비키라고 말했다?”
쐐애애애액- 쐐애액-
팽중호의 경고에도 숭무문의 무인들은 멈추지 않았다.
기세를 멈추지 않고 달려드는 그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달려드는 그들을 향해 팽중호의 무적도에서 거대한 뇌룡이 뿜어져 나왔다.
콰가가가가가가각-
그리고 그 뇌룡은 달려들던 숭무문 무인들을 모조리 집어삼켜 버리며, 그들의 목숨을 거두어 갔다.
이 일도에 숭무문 무인 반절이 목숨을 잃었다.
“어엇…….”
“헙.”
압도적인 팽중호의 강함에 거침없이 달려들던 숭무문 무인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님을 인지한 것이었다.
“손님으로 온 주제에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그때 이세홍이 거친 목소리와 함께 나타났고, 그 옆으로 조소린이 같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또 그 뒤로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흑의인이 한 명 서 있었다.
“아. 나타났네. 그럼…….”
파지짓-
말고 동시에 팽중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곳은 이세홍의 바로 앞.
“일단 인질은 구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