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64화 (64/200)

64화 보통이 아닌데?

신조상단의 상단주 신금상(信金商) 이선중.

돈을 받으면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킨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가 바로 신금상이었다.

이선중은 거래만큼은 아주 철저한 상인으로 정평이 나 있는 상인으로, 거기에 더해 인품도 훌륭해 그를 좋게 보는 사람들이 이 주변에 많은 호인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이선중은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팽중호를 향해 정중한 인사를 건네었다.

그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예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아마 팽중호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였어도 지금처럼 정중히 인사를 했을 사람이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라고 합니다.”

“하하. 팽 소가주님의 위명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핫. 과찬이십니다. 그저 허명일 뿐입니다.”

“자, 일단 앉아서 차부터 드시지요.”

인사를 나눈 후에 이선중과 이세경 그리고 팽중호는 다과와 차가 마련된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훤히 열린 문으로 이세홍이 등장하였다.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아주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이세홍.

물론 이세경과 팽중호는 이세홍을 보고도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오면서, 티를 내지 않고 일단은 조용히 넘어가는 척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잘 왔다. 여기 팽 소가주님에게 인사를 드리거라.”

이선중이 이세홍을 부른 이유는 그저 팽중호와 안면을 트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하북팽가는 분명 이제 신조상단의 아주 중요한 거래처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세경과 혼처 이야기까지 오가니, 당연히 인사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조상단의 부상단주인 이세홍이라 합니다.”

“하핫.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이세홍의 인사를 팽중호는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받았다.

이것만 봐서는 이세홍의 사람들이 그들을 습격하려 했다는 것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크큭.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이세홍은 팽중호와 이세경이 자신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짓인 줄 알았다면, 이렇게 인사를 받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더욱 뻔뻔히 있어도 될 터였다.

“일단 식사를 같이하고, 그 뒤에 쉬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 예. 좋습니다.”

그렇게 이선중의 주도하에 간단한 식사가 시작되었다.

막상 식사가 시작되자 다소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워낙에 갑자기 만났으니, 딱히 할 말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때 이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이선중이었다.

“팽 소가주님. 음식 맛은 어떠십니까?”

“훌륭합니다.”

이선중의 질문에 팽중호는 솔직히 대답했다.

지금 앞에 있는 음식들의 맛은 아주 훌륭했다.

준비를 제대로 했다는 것이 티가 났다.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 고민하였는데, 입에 맞으시니 다행입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제 딸 아이의 부군이 되실 분인데 이 정도는 당연하지요.”

“하하…….”

아무래도 이선중은 팽중호와 이세경이 진짜로 혼인한다고 생각하는 듯싶었다.

팽중호가 슬쩍 이세경을 바라보았는데, 이세경은 입가에 알 듯 말 듯 한 미소만 지으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쓰읍. 당한 건가?’

그저 혼처를 연기하는 것뿐인데, 아무래도 신조상단은 연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듯싶었다.

‘뭐, 이건 차차 해결해 나가면 되고, 지금은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

팽중호는 이번에는 이세홍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음식을 먹고 있는 이세홍.

‘눈빛이 좀 이상한데?’

보통 사람들은 모를 수 있지만, 팽중호는 식사하는 이세홍의 눈빛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언뜻언뜻 그의 눈빛에 나타나는 흐릿한 탁기(濁氣).

보통 평범한 사람에게 이런 탁기가 나타나지는 않으니 말이다.

‘알아볼 게 좀 있겠군.’

* * *

식사를 마치고 팽중호는 귀빈들을 위해 머무는 전각으로 안내받았다.

‘흐음. 역시 돈이 많긴 많나 봐.’

팽중호는 안내받은 곳을 한 번 쓱 둘러보았는데, 귀빈들을 위한 곳이라 그런지 주변에 있는 장식품부터 가구는 물론, 작은 찻잔 하나까지 하나같이 모두 최고급이었다.

신조상단의 재력을 아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방에 있는 줄을 당기시면 됩니다.”

“예. 감사합니다.”

안내해 준 시종이 떠나고, 홀로 남게 된 팽중호.

팽중호는 일단 잠깐 자리에 누워서 지금의 안락함을 만끽했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최고급 이불들은 그저 눕는 것만으로도 몸을 노곤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이불 좀 돌아갈 때 챙겨 달라고 할까.”

그렇게 팽중호가 한창 이불에 누워서 비비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똑-

“이세경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아, 예. 금방 간다고 해 주십시오.”

밖에서 시종이 이세경이 찾아왔음을 알렸고, 팽중호는 이불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왔어?”

“예. 쉬시는데 방해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쉬는 거야 이따가 또 쉬면 되니까 괜찮아.”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야기 좀 들어 볼까?”

팽중호의 부탁으로 이세홍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 이곳에 온 이세경이었다.

일단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팽중호와 이세경은 서로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오라버니는 예전에는 저런 분은 아니셨습니다. 어릴 때는 그 누구보다 저를 아껴 주셨으니까요…… 다만, 혼처가 들어온 후부터 변하셨습니다.”

이세홍이 어릴 때는 그 누구보다 이세경을 아껴 주는 좋은 오라비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세홍은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가 이세홍에게 혼처가 들어온 그때부터였다.

“그 혼처가 어딘데?”

“숭무문이라는 곳입니다.”

“숭무문?”

팽중호는 분명 처음 듣는 곳이었다.

하북성에 있는 웬만한 문파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아마 산서성에 있는 곳일 공산이 컸다.

“숭무문은 산서성에서 서문세가 다음가는 곳입니다.”

숭무문(崇武門).

산서성에 터를 잡은 무림 문파로, 그 규모가 서문세가 다음갈 정도로 큰 곳.

숭무문은 나름 정도 문파로 분류되는 곳이었지만, 그렇다고 무림맹에 가입한 곳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사 중간에 있는 문파였다.

그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였고, 거침없이 살인도 저질렀으니 말이다.

이것만 보면 사파로 분류되겠지만, 숭무문의 문주 덕분에 정사 중간의 문파라는 소리를 듣는 곳이었다.

“오라버니는 숭무문에 다녀온 후부터 변하기 시작하시더니,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 흠…….”

팽중호는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는 것에서 뭔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동생을 끔찍이 사랑하던 이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바뀐다?

물론 아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그것도 어느 기점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더욱 묘한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 더해서 아까 보았던 이세홍의 눈빛에 흐르던 탁기.

팽중호는 무언가 조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식을 올린 후에는 숭무문의 사람들이 이곳에 머물기 시작했는데, 그 후로 오라버니의 움직임이 더욱 거칠어지셨습니다.”

이세홍은 숭무문의 여식과 최근 식을 올리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고, 그날 이후로 숭무문의 사람들이 이곳 신조상단 본진에 머물기 시작했다.

그들이 머물기 전에는 그저 질투와 견제로만 끝나던 것이 그들이 머물기 시작하면서 점점 직접적인 부딪침으로 변하더니, 이내 목숨을 노린 습격까지로 번져 버린 것이다.

“대충 답 나왔네. 세경이 너는 혹시 모르니까 일단 여기서 같이 머물자.”

“어머나. 아직 식도 올리지 않았는데 너무 빠르십니다.”

“응?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호홋.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일단 이곳으로 옮겨 오겠습니다.”

이세경은 당황하는 팽중호를 향해 웃어 보이고는 짐을 옮기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리고 다시 혼자 남은 팽중호는 슬쩍 밖으로 몸을 움직였다.

신조상단을 확인함과 동시에 이세홍에 대해서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스슥-

신조상단 내부를 은밀한 움직임으로 휘젓고 다니는 팽중호.

그가 움직이는 길목마다 신조상단을 지키는 경비 무사들이 깔려 있었지만, 아무도 팽중호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채는 이가 없었다.

여유롭게 주변을 모두 둘러본 팽중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이세홍과 숭무문의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어디, 좀 볼까?’

팽중호는 더욱더 은밀한 움직임으로 안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스윽-

안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삼엄해지는 경비.

‘이놈들 봐라. 보통이 아닌데?’

주변을 지키고 서 있는 경비들의 수준이 꽤 대단했다.

이 정도라면,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숭무문이 산서성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더니, 그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건 좀 생각 이상인데?’

주변을 지키는 것은 좋은데, 이건 지금 너무 과할 정도였다.

한 전각을 중심으로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지나가지 못하게끔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정도면 전각 안에 황제 폐하가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구린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군.’

팽중호는 저 전각 안에서 무언가 구린 냄새를 맡았다.

저 안에 분명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후우우우웁.’

팽중호는 호흡을 길게 들이마신 후에, 완벽하게 자신의 기척을 지웠다.

그리고는 앞에 철통같은 경비들을 넘어서 전각의 지붕 위로 몸을 날렸다.

스으으윽-

바람이 지나는 소리보다도 작은 소리와 함께 전각의 지붕에 올라선 팽중호.

팽중호는 지붕을 타고 움직이며, 전각의 꼭대기에 열려 있는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사아아아아아악-

전각에 들어서자마자 팽중호의 몸을 자극해 오는 묘한 느낌의 기운.

‘흐음. 이거 어디서 느껴 본 건데? 아 소혼기구나.’

소혼기(消魂氣).

사람의 정신을 잃게 하거나, 의지를 흐리게 하는 특이한 기운.

보통 아무나 익히고 쓰는 것은 아니고, 마공 등 조금 특수한 무공을 익힌 이들만이 쓸 수 있는 기운이었다.

특이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보기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소혼기가 지금 이 신조상단 내부 이세홍이 머무는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볼까?’

팽중호는 이 소혼기가 가장 강하게 퍼져 나오는 진원지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금방 이 소혼기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전각에서 가장 큰 방.

그곳에서 아주 지독할 정도의 소혼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소린. 내가 그대가 말한 것은 모두 들어드리겠소.”

“이세경을 죽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아아……. 내가 꼭 성공할 터이니, 나를 미워하지 말아 주시오.”

“호호호. 오늘만 특별히 넘어가 드릴 터이니, 반드시 이세경을 죽이고 신조상단을 제게 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오.”

큰 방 안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목소리.

남자의 목소리는 이세홍이었고, 여인의 목소리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다만, 그 목소리를 듣자 팽중호는 갑자기 머리가 조금 울렁거림을 느꼈다.

‘이 정도 소혼기면, 무림 공적으로 찍혀도 문제없겠는데?’

여인의 목소리에는 소혼기가 아주 진하게 담겨 있었는데, 그저 목소리만으로 팽중호의 머리를 울리게 할 정도라면, 성취가 대단한 수준에 다다랐다는 뜻이었다.

이 정도의 성취라면 당장 무림 공적으로 낙인찍혀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수준이었다.

‘이제 뭐 다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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