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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63화 (63/200)

63화 네 놈들이 웬 놈이지.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팽중호는 지금 이세경과 함께, 그녀의 마차를 타고 신조상단 본진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세경이 타고 온 마차는 상당히 크고 넓었는데, 뭔가 보통의 마차보다 훨씬 편한 느낌이 들었다.

“흠…… 뭔가 되게 편하네.”

“편하십니까?”

“응. 특수하게 만든 마차인가 봐?”

“예. 안에서도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흔들림을 최소화한 마차입니다.”

확실히 그러고 보니 지금 이세경의 마차는 다른 마차들에 비해 떨림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이 정도라면 이 안에서 간단한 서류 작업 정도는 문제없을 듯싶었다.

‘내 마차도 이렇게 만들어 볼까?’

이러면 이동 중에 잠을 자도, 아주 숙면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길이 좀 남았으니, 가시는 동안 주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그래도 될까?”

“호홋. 물론입니다. 저도 잠깐 눈을 붙이고 싶으니까요.”

팽중호는 그대로 가만히 마차에 기대 눈을 감았다.

마차에 난 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간질이는, 잠들기 딱 좋은 상태였다.

스윽-

그때 팽중호의 옆으로 누군가 앉는 느낌이 들었고, 팽중호는 눈을 슬쩍 뜨고 옆을 바라보았다.

옆에 다소곳하게 앉은 이세경.

“자리를 바꿀까?”

팽중호는 이세경이 이쪽 자리가 좋아서 왔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이 자리는 바람이 딱 시원하게 들어오는 자리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으셔서야……. 그저 가가 옆에 같이 앉고 싶어서 온 것입니다.”

“아, 아 그래? 불편하지 않을까?”

“제가 불편하십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하아. 알았어. 옆에 있어.”

“호홋. 감사합니다.”

그렇게 팽중호의 옆자리에 앉아 눈을 붙이는 이세경.

팽중호는 아무렇지 않게 눈을 감고 있었지만, 사실 옆의 이세경이 꽤 신경이 쓰였다.

‘전생에도 여인을 만나 봐야 싸우기만 했지, 이런 건 모르겠단 말이야.’

망나니짓하고 다녔어도 뭐 어디 기루 같은데는 체질상 다니지도 않았고, 오히려 여고수들을 찾아가서 대판 싸우기만 하였다.

그래서 팽중호는 이렇게 여인과 함께 하는 것이 영 어색하기만 했다.

솨아아아-

숲길을 지나자 시원한 바람이 마차 안으로 크게 불어왔다.

절로 머리가 시원해지는 바람.

팽중호는 그 바람을 느끼며 조금씩 잠에 빠져들어 갔다.

* * *

‘흐음.’

조금 잠이 들었던 팽중호가 깨어났다.

주변에서 느껴지는 살기 때문이었다.

‘산속에서의 살기라…….’

지금 이 마차는 신조상단의 깃발을 걸고 있는 마차.

충분히 상행에서 산적을 만날 만했다.

물론, 이런 거대 상단을 건드리는 간 큰 산적은 거의 없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거나, 그만큼 자신이 있는 놈들이거나.’

슬쩍 옆을 바라보니, 이세경은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밖에 있는 호위들도 아직은 눈치를 못 챈 듯싶었고 말이다.

‘오랫동안 앉아 있었으니, 잠깐 몸을 풀어 주는 것도 좋지.’

스슥-

팽중호는 창을 조금 더 열고 그 사이로 몸을 날렸다.

팽중호가 사라진 것을 눈치챈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아주 빠르고 은밀하게 몸을 움직인 팽중호.

그렇게 밖을 나선 팽중호는 살기가 느껴지는 진원지로 곧바로 달려갔다.

“이번에 저기 저 이세경만 제거하면, 공자가 상단을 차지하는 건 문제도 아니다.”

“저희가 일을 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겁니다.”

팽중호가 근처에 다가온 줄도 모르고, 자신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무리.

팽중호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무슨 상황인지를 이해했다.

‘산적으로 위장한 상단 내부의 적들이군.’

신조상단 같은 거대한 상단이라면 분명 내부 암투도 비일비재할 것이다.

정확한 내부 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뭐 어찌 되었건 이세경의 적이라는 것이란 건 확실한 것 아닌가?

그럼 싸울 이유는 충분했다.

하북팽가에 호의적인 이세경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니 말이다.

“지금 저기 저 마차 습격하려는 거 맞냐?”

“웬 놈이냐!”

팽중호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며 칼을 들이미는 무리.

그들은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드러난 두 눈에서 당황의 감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하긴, 갑자기 팽중호가 스윽 나타났으니 당연히 그럴 만했다.

분명 주변을 꽤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웬 놈은 네 놈들이 웬 놈이지.”

“죽여.”

팽중호가 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 죽이는 수밖에.

습격 무리들이 곧바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사사삭- 사사삭-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지, 민첩하게 움직이며 팽중호를 향해 다가왔다.

물론 어디까지나 ‘나름대로’일 뿐.

팽중호가 보기에는 허접하기 그지없는 움직임이었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달려드는 거 보니까 너희가 신조상단을 먹기는 글렀다.”

탓-

서걱- 서걱- 서걱-

팽중호의 일도가 움직일 때마다 복면인이 하나씩 쓰러져 나갔다.

딱히 뇌기를 뿜지 않아도, 감히 팽중호의 일도를 막아 내는 자가 없었다.

속절없이 쓰러져 나가는 복면인들.

순식간에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네, 네놈은 뭐냐!”

“미리 너희가 조사하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세경이 어디를 갔다가, 누구를 태우고 돌아온다는 정보 정도는 알고 습격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도 모르고 다짜고짜 습격할 생각을 한다니?

“왜 너네가 이렇게 습격이나 하는지 알 만하다. 쯧쯧.”

서걱-

순식간에 정리가 된 복면 무리.

팽중호는 마지막 복면인을 베고는, 갑자기 인상을 썼다.

“아, 한 놈은 남겼어야 하는 건데.”

확실하게 뒷배를 알아내려면 하나는 남겼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

“응?”

그때 팽중호는 복면인 중 가장 우두머리 격으로 보이는 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무언가를 발견했다.

신조라는 글씨가 쓰인 은색 패였는데, 팽중호가 가진 옥패와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팽중호는 혹시 이게 무슨 단서가 될까 싶어, 일단 품에 챙겼다.

탓탓-

팽중호는 몸에 뱄을 피 냄새를 털어내고, 다시금 마차로 몸을 움직였다.

그래도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지 않아서 멀지 않은 곳에 마차가 있었고, 팽중호는 나갔을 때처럼 소리소문없이 마차로 다시금 들어갔다.

“어디에 다녀오십니까.”

“어? 깼어?”

“예. 옆에 안 계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이세경은 조금 전에 잠에서 깼는데, 옆자리에 있던 팽중호가 갑자기 사라진 상태여서 조금 놀랐었다.

다만, 팽중호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사라질 사람은 아니기에, 가만히 앉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좀 불청객들이 있더라고.”

“예?”

이세경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불청객이라니?

갑자기 무슨 불청객이란 말인가?

“이거.”

팽중호는 챙겨왔던 은패를 이세경에게 건네주었다.

은패를 건네받자 이세경의 표정이 대번에 변하였다.

“이걸 어디서 나셨습니까?”

“산속에 살기를 내뿜으면서 숨어 있던데? 그래서 모두 슥삭했지.”

이세경은 팽중호의 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곧바로 알아채었다.

팽중호가 습격을 하려던 적을 모두 미리 정리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가가.”

“그래서 이게 뭐야? 네가 준 거랑은 생김새가 달라서 말이야.”

“이건 제 오라비의 사람들이 쓰는 패입니다.”

지금 이세경의 손에 들린 은패는 그녀의 오라비인, 이세홍의 사람들이 쓰는 신조패였다.

신조상단 상단주 이선중의 아들이자, 신조상단의 또 다른 부상단주인 이세홍.

그는 사실 능력보다는 그저 상단주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상단주의 자리에 앉은 인물로, 언제나 자신보다 월등히 앞서 나가는 이세경을 질투하는 자였다.

그래도 이세경은 나름 가족이기에 이세홍이 손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늘 그 생각을 뒤집고 칼을 들이민 것이다.

“제 오라비가 결국…….”

이세경도 결국은 이렇게 될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다만, 하필 중요한 손님을 모셔 가는 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 씁쓸할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이번에 가서 해결해 줄게.”

“예? 아닙니다. 제 일이니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왜 이래? 우리 사이에? 네 일이 내 일이지.”

“……!!”

팽중호는 그저 거래하는 사이이기에 이런 말을 내뱉은 것이지만, 이세경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혼인을 약속한 특별한(?) 사이라고 들렸으니 말이다.

“가, 감사합니다. 가가.”

“뭘. 이런 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 칼을 쓰는 놈은, 칼을 쓰는 놈한테 맡겨.”

* * *

“그래. 일은 잘 처리했겠지?”

“흐흐. 물론입니다. 가장 실력 좋다는 놈들을 보냈으니, 분명 성공할 겁니다.”

이세홍은 자신의 앞에서 간사하게 웃는 부하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마주 지었다.

이번에 자기 동생인 이세경을 죽이기 위해 많은 돈은 물론, 자신이 아끼는 이들까지 투자해 습격대를 보내었다.

일만 잘 성공한다면 신조상단은 완전히 자신의 손에 떨어질 터였다.

“그런데 왜 하북팽가에 갔는지는 알아내었나?”

“상단주님과 두 분만 이야기를 나눈 것이라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뭐, 어차피 하북팽가에 뇌물이나 먹이러 갔겠지.”

이세홍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지금 하북팽가는 서문세가를 이기면서 이 일대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이세경은 그런 하북팽가와 미리 거래를 텄으니, 하북팽가에 더 잘 보이기 위해서 뇌물을 주기 위해서 떠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니 이렇게 조용히 움직인 것이고 말이다.

“이번에 그년이 제거되고 나면, 재빨리 움직여서 상단을 우리가 접수해야 한다.”

“물론입니다.”

이미 이세경이 제거된 것으로 기정사실로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긴히 나누고 있을 때였다.

후다다다다다-

밖에서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르르륵- 쿵-

그리고 거칠게 열리는 문.

그 문으로 아주 다급한 표정의 부하 하나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꿀꺽.”

“어서 말을 해 보거라.”

얼마나 다급했는지 제대로 말도 못 꺼내는 부하.

부하는 침을 삼키고, 잠깐 숨을 고른 후에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세경 부상단주의 마차가 돌아왔습니다!”

“뭐라?!”

“뭣?!”

습격에 당해서 사라졌어야 할 이세경의 마차가 다시 돌아오다니?

그것은 즉 일이 실패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 아닌가?

“마차는 어떻더냐?”

“너무나 멀쩡하고, 심지어 다친 이도 하나 없었습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돼!”

일을 지시한 이세홍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일을 실행시킨 부하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미 이세경의 호위들의 실력을 다 파악해서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이들을 보냈는데, 어떻게 멀쩡하게 돌아올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번에 하북팽가의 소가주 뇌룡과 같이 왔습니다!”

“!!”

“이런!”

이세홍과 부하 모두 자신들의 작전이 왜 실패했는지 알 수 있었다.

뇌룡이 함께 있었다면, 자신들이 보낸 무인들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상단주님께서 공자님을 찾으셨습니다.”

“나를?”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는 이세홍.

혹여나 자신이 이세경을 습격해 죽이려고 했다는 것을 들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알았다. 바로 간다고 전해라.”

“예.”

이세홍은 미리 부하를 보낸 뒤, 혹여나 자신을 추궁했을 때 어떻게 변명할지를 생각해 둔 후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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