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정리 좀 하고 움직여 볼까.
이 장로는 자신의 코앞에 갑자기 나타난 팽중호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검을 내뻗었다.
분명 집중하고 있었는데, 움직임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쾅-
“헙!”
팽중호의 무적도와 부딪친 이 장로의 검.
이 장로는 검을 타고 전해지는 엄청난 충격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이 장로도 오랜 시간 무림에 몸을 담았던 무인.
금방 정신을 차리고 검을 고쳐 쥐었다.
사아아아아아악-
이 장로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청록색의 강기.
그리고 그 강기가 곧바로 팽중호의 사방을 덮치며 날아왔다.
서문세가의 독문 검법인 ‘낙룡추살검(落龍追殺劍)’이 펼쳐진 것이었다.
오로지 상대를 죽이는 것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는 검법.
팽중호의 숨통을 끊기 위해 쇄도하는 청록색의 강기는 확실히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콰가가가가강- 콰캉-
팽중호의 뇌강이 이 장로의 청록색의 강기들을 부숴 버리고도 힘이 남아, 그대로 이 장로를 향해 쇄도했다.
이 장로의 목을 향해 날아가던 뇌강.
카카카카캉-
하지만 이 장로의 목을 베지는 못하고 중간에서 막혀 버렸다.
“전력을 다하게. 이 장로.”
서문제호가 나타나 팽중호의 뇌강을 막아선 것이다.
잠시 뒤에서 관망하던 서문제호는 이 장로가 위험해지자 곧바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저릿- 저릿-
팽중호의 공격을 막은 후 짐짓 태연하게 서 있는 듯한 서문제호였지만, 그는 지금 저릿한 자신의 손을 보고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겨우 여력을 처리한 것일 뿐인데 이 정도라니.’
이 장로의 강기를 부수고 난 후의 여력을 막은 것뿐인데, 손이 저리고 속이 울렁거려 왔다.
‘전력을 모두 쏟아부어야겠구나.’
콰아아아아아아-
내공을 모두 끌어 올리는 서문제호
절대로 어리다고 생각해, 힘을 아끼며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서문제호는 팽중호를 전력을 다해야만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라는 것을 인정했다.
“거, 멍때리지 마십쇼.”
파지짓-
어느새 다시금 이 장로와 세문제호 앞에 당도한 팽중호.
팽중호의 두 눈에서 밝은 대낮임에도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금 움직이는 팽중호의 무적도.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분명 조금 전과 같은 초식.
하지만 그 위용이 사뭇 달랐다.
주변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박과 함께 뻗어 나오는 뇌강은, 그야말로 한 마리의 뇌룡과도 같았다.
서문제호와 이 장로를 잡아먹기 위해 움직이는 뇌룡.
사아아아아아악-
사아아아아아악-
서문제호와 이 장로의 검에서 청록색의 강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대로 뇌룡을 갈라 버리기 위해 뻗어 나왔다.
팽중호의 공격은 극강의 공격.
이런 공격은 제일 약한 결을 공격하면 쉽게 깨지는 법이었다.
서문제호와 이 장로는 이러한 사실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봐 왔기에, 이번에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놈. 역시 경험은 일천하구나.’
팽중호가 어떻게 뛰어난 실력을 쌓았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경험까지 나이를 초월해 쌓지는 못했을 터다.
그 경험의 차이가 지금 드러나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문제호와 이 장로의 검이 뇌룡에게 작렬하기 직전.
꿈틀-
갑자기 팽중호의 뇌룡이 꿈틀하며 움직임을 틀어 버렸다.
휘이이익-
휘이익-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서문제호와 이 장로의 검이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이런!”
“이, 이게!”
강기가 갑자기 도중에 스스로 꿈틀하며 움직이다니?
이건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걱-
촤아아아악-
“큭.”
물론 서문제호가 이 의문을 채 해소하기도 전에 일이 일어났다.
이 장로의 목이 바닥에 떨어졌고, 서문제호의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어떻게 한 것이냐?”
피가 흘러나오는 오른팔을 지혈하지도 않은 채, 팽중호를 바라보며 입을 떼는 서문제호.
서문제호는 어차피 자신에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검객이 검을 쥔 팔을 잘렸으니, 이미 싸움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죽기 직전에 궁금증이라고 해결하고 싶었다.
“무공에 한계라는 것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만 알고 가십쇼.”
“한계는 없다라……. 그렇군.”
서문제호는 지금 팽중호의 말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평생을 고민했던 것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그것이 마지막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게 조금 애석했지만 말이다.
서걱-
서문제호의 목이 떨어졌다.
“후우.”
순식간에 서문세가의 최고 전력 둘을 베어 낸 팽중호.
그럼에도 이전과 다르게 기혈이 들끓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힘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검마를 만난 게 정말 뜻하지 않은 기연이군.”
검마가 마지막에 보여 준 검에서 깨달은 것들로 지금 몇 단계나 한 번에 실력이 뛰어오른 팽중호였다.
무공에 한계가 없다는 것은 검마의 검에서 본 깨달음 중 하나였다.
내뿜어진 강기를 움직일 수 없다?
아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지 못했을 뿐이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감상은 여기까지 하고, 얼른 움직이자.”
깨달음을 이용해 이긴 것에 대한 감상은 나중으로 미루고, 팽중호는 일단 몸을 다시 움직였다.
아직 서문세가와의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파지짓-
* * *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철갑구궁진을 죽어라 익힌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분명 실력에서 우위에 있는 서문세가의 무인들임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압!”
콱-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검으로 공격해 오면, 팽가의 무인들은 손목의 방패로 막아 내고, 그와 동시에 다른 무인이 도를 뻗어 그들을 공격했다.
조금의 틈도 없이 짜임새 있게 움직이는 하북팽가 무인들의 철갑구궁진은 이런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 하수가 고수를 상대하기 최적의 합격진이었다.
“좀 더 버텨!”
“버텨!”
물론 그럼에도 가장 약한 부분은 있는 법.
서문세가 무인들은 그곳을 찾아내 공략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철갑구궁진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푹-
“크윽!”
그때 결국 팽가 무인 한 명의 어깨에 칼이 틀어박혔고, 순간적으로 철갑구궁진이 깨져 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는 서문세가의 무인들.
재빨리 그 틈을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다시 막아!”
팽가 무인들이 급하게 다시 자리를 막았지만, 이미 벌어진 틈은 쉬이 메울 수 없었다.
그렇게 서문세가의 무인들에게 노출되어 버린 팽가의 무인들.
합격진이 없다면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상대하기에는 아직 버거웠다.
“크큭. 이제 끝이다 이놈들!”
“죽여 버려!”
자신들을 괴롭히던 합격진이 깨지자마자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드는 서문세가의 무인들.
그들의 검이 거침없이 팽가의 무인들에게 날아올 때였다.
“너네나 죽어 이 새끼들아.”
서거거거걱-
가장 앞에서 달려들던 서문세가 무인들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하나의 인영.
“소가주님!”
바로 팽중호였다.
팽중호는 서문제호와 이 장로를 벤 후에 곧바로 가장 급한 곳으로 먼저 달려온 것이었다.
“부상자는 안으로 들어가고, 전열을 정비하십쇼!”
“예!”
팽중호의 외침에 팽가 무인들이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상처를 입은 이는 철갑구궁진의 중앙에 배치해 보호하고, 다른 이들이 다시 그 틈을 메워 나갔다.
“그럼. 정리 좀 하고 움직여 볼까.”
파지직-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지고, 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날 때마다 서너 명의 서문세가 무인들의 목이 달아났다.
그렇게 전장을 휘몰아치던 팽중호의 발걸음이 이번에는 서문세가의 장로를 상대하고 있는 팽구진에게 향했다.
지금 팽구진의 목이 달아나기 직전이었으니 말이다.
* * *
“흐흐흐. 끝이구나 꼬마야.”
음침한 웃음과 함께 팽구진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검.
팽구진은 온 힘을 짜내어 몸을 틀었지만, 검은 집요하게 팽구진의 목을 따라왔다.
절체절명의 순간.
“잘 버텼다.”
파직-
차캉- 서걱-
팽중호가 나타남과 동시에 팽구진을 향해 공격하던 장로의 검과 목이 동시에 잘렸다.
“감사합니다.”
팽구진이 금방 자세를 다잡고 팽중호를 향해 감사를 전했다.
팽중호는 그런 팽구진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가르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서문세가의 장로를 상대로 이 정도나 버텼다는 것은 대단하다.’
팽구진이 팽중호에게 무공을 배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서문세가의 장로를 상대로 팽중호가 나타나 도와줄 때까지 버틸 실력을 키웠다는 것이 놀라웠다.
“너는 가서 무인들을 도와.”
“넵!”
팽구진은 씩씩하게 대답하며 철갑구궁진을 짜고 있는 팽가의 무인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고, 팽중호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콰캉- 카아앙- 쾅-
도수는 지금 서문세가의 장로와 거의 대등해 보이게끔 싸우고 있었다.
물론, 이미 몸 군데군데 얕은 상처가 생겨 있었지만 말이다.
“하북팽가에도 나름대로 강단 있는 놈이 있구나.”
“하압!”
도수는 장로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기합을 내지르며 장로에게 크게 도를 휘둘렀다.
팽중호가 전해 준 노호진산도와 태극벽력신공이 합쳐진 도수의 일도는 일견 보기에도 그 위력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콰앙-
장로가 검으로 도수의 공격을 막아 냈는데, 강렬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난 장로.
지금 장로는 팔을 가늘게 떨고 입가에 핏줄기를 하나 흘리고 있었는데, 그만큼 지금 도수의 공격이 위력적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쿨럭. 하아. 하아.”
다만, 도수는 입에서 검은 피를 울컥 쏟아 내며 숨을 헐떡였다.
조금 전 공격을 내뻗으면서 많은 내공을 소모한데다, 반탄력에 의해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대단했다. 하지만 오늘은 운이 다했구나.”
장로는 얼른 도수의 숨을 끊을 생각이었다.
지금 주변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탓-
도수에게 달려드는 장로.
하지만 장로는 이내 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슈와아아아아악-
“헛!”
방금 장로가 달려 나가던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엄청난 뇌격.
한 발만 더 내디뎠으면 그대로 몸이 양단되었을 터였다.
“오? 감이 좋네?”
“누구냐?”
“하북팽가의 소가주다.”
“!!”
장로는 갑자기 나타난 팽중호를 두 눈이 찢어져라. 크게 뜨며 바라보았다.
지금 팽중호가 절대로 여기에 나타나면 안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팽가의 소가주가 여기에 멀쩡히 있다는 것은…….’
팽중호가 여기에 저렇게 멀쩡히 있다는 것은, 팽중호를 상대하러 간 대 장로와 이 장로가 당했다는 뜻.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두 사람은 모두 화경에 근접할 정도의 고수들이다.
그런 두 사람을 빨리 죽이고 여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팽중호가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무인이란 소리란 말인가?
아무리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지만, 이건 솔직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주군! 죄송합니다!”
“아니. 잘했어. 시간이 좀만 더 있었으면, 네가 이겼어.”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린 장로를 뒤로하고 잠깐 대화를 나누는 팽중호와 도수.
팽중호는 정말로 도수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장로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린 졌군 그래.”
그때 장로가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었다.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나니, 자신들이 패배했음을 직감한 것이다.
“그래도 그냥 죽을 수는 없지. 무인으로서 끝까지 검을 휘두르다 죽는 것이 맞을 테니.”
콰아아아아아아아-
장로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왔다.
잠혼폭렬공에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모은 것이었다.
팽중호에게 다만 일검이라도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서문세가에 무인다운 사람은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