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59화 (59/200)

59화 준비는 끝났어?

검마는 이번에 무림 유람을 떠나왔다.

목적은 정도 무림의 수준 확인이었다.

조만간 있을 무림 침공을 위해서 말이다.

‘조금 실망스럽군.’

검마가 모든 정도 무인을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검마의 눈에 들어갈 만한 무인은 보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팽중호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이렇게 발걸음을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실제로 만난 팽중호는 검마의 기대 이상을 보여 주었다.

‘그래. 이런 자가 있어야, 후에 있을 싸움이 더 재미있어지는 것이지.’

마교가 무림에 나오는 이유.

그것은 정말 무림 정복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응축된 힘을 분출시키기 위함이었다.

오랜 시간 마교 내부에 쌓인 힘을 정기적으로 밖으로 분출시켜 주지 않으면, 내부에서 그대로 터져 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곧 폭발할 정도로 힘이 쌓였으니…….’

현재 마교의 힘은 다시금 최전성기에 다다랐다.

그래서 조만간 이 힘을 분출시켜 주어야만 하였는데, 그 상대는 역시 정도 무림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도 무림의 힘이 너무 약하다면, 싸움으로 인한 힘의 분출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을 것 아닌가?

그래서 검마는 미리 정도 무림인들과 싸우며 그들에게 경각심을 줌과 동시에, 그들을 더 강하게끔 하는 것이었다.

훗날에 있을 정마대전을 더욱 재밌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자가 잘하면 우리의 기대를 충족해 줄 수 있겠어.’

검마는 지금 눈앞의 팽중호를 좀 더 키울 생각이었다.

자신들의 기대를 충족해 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가장 최근에 얻은 깨달음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가 이것에서 무엇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스윽-

검을 들고 자세를 잡는 검마.

“잘 보게나.”

말과 함께 검마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팽중호는 지금 눈앞의 검마를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바라보았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춤을 추듯 움직이는 검마의 검.

이 움직임에서 팽중호는 지금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검의 모든 것이 저기에 들어 있다.’

검과 도는 다르지만, 동시에 같은 것이기도 하였다.

지금 검마가 보여 주는 움직임에서 팽중호는 순간적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잘 보았나?”

검마가 검을 멈추고 팽중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까지 조금은 멍한 눈빛의 팽중호.

하지만 이내 금방 다시 본래의 눈빛을 되찾으며 입을 뗐다.

“왜 이걸 저에게 보여 주시는 겁니까?”

“말하지 않았나. 선물이라고.”

팽중호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검마를 바라보았다.

지금 검마의 두 눈은 정말로 한 점의 사심 없이 빛나고 있었다.

‘마교는 미친놈들이 모여 있는 곳이 확실하다.’

적이 될지도 모를 사람에게 이런 깨달음을 전해 주는 것을 보면 확실했다.

미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짓이니 말이다.

“자. 그럼 다음에 보는 걸로 하고, 난 이만 가겠네.”

“다음에는 안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걱정 말게 내가 반드시 자네를 찾아올 테니.”

“못 찾기를 바랍니다.”

스슥-

검마가 손을 흔들더니 그대로 팽중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가공할 움직임.

팽중호조차 지금 검마가 움직이는 것을 간신히 쫓을 정도였다.

“이거 원. 산 넘어 산이네.”

아직 서문세가라는 산도 넘지 못했는데, 벌써 저 멀리 마교라는 말도 안 되게 높은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숨이 턱 막힐 정도인 마교라는 산.

“뭐, 어쩌겠어. 하나씩 넘어 봐야지.”

지금으로서는 눈앞에 있는 산부터 하나씩 넘는 수밖에 없다.

마교라는 산에는 최대한 눈을 돌리고, 눈앞의 서문세가라는 산부터 넘어서야 했다.

그렇게 하나씩 넘다 보면, 마교라는 산도 넘을 수 있지 않겠는가?

“돌아가자.”

팽중호는 공터를 잠시 바라보다가 하북팽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은 꽤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검마가 보여 준 검에서 깨달은 것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 말이다.

“나 한 삼 일만 찾지 말아라.”

팽가로 돌아온 팽중호가 장춘오에게 전한 말이었다.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해서 삼 일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었다.

스윽-

개인 연공실에 도착한 팽중호는 곧바로 무적도를 꺼내어 들었다.

아직까지 머릿속을 떠다니는 검마의 검로.

그것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스으으으윽- 휘이익- 휘이이이이익-

천천히 움직이는 팽중호의 무적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의 궤적.

마치 춤을 추는 듯 너울거리는 무적도의 움직임은 황홀하게 보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후우.”

한참 도를 움직이던 팽중호가 무적도를 들고 제자리에 가만히 섰다.

검마를 따라 움직였는데, 솔직히 아직 감이 완전히 오지는 않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느낌이 남아 있었다.

“남이 평생을 거쳐 얻은 깨달음인데, 한 번에 내가 다 깨닫는 건 욕심이겠지.”

물론 말은 이렇게 해도 지금 최대한 이것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것을 제대로 깨닫는다면 서문세가와의 일전에서 큰 힘이 될 테니 말이다.

“일단 계속해 보자.”

* * *

이른 아침.

염조야방에 부탁했던 방패들이 하북팽가에 도착했다.

손목에 착용하게끔 되어 있는 작은 크기의 방패들.

“자자. 하나씩 착용하십쇼.”

팽중호는 이번에 서문세가와의 결전에 나설 이들에게 방패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왜 갑자기 방패를 나누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팽중호의 말이니 다들 군말 없이 방패를 손목에 착용했다.

손목에 달라붙어 크게 움직임을 방해하지는 않는 방패.

“다수 대 다수의 떼싸움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무공 실력입니다!”

“고수의 숫자 보유 여부입니다!”

팽중호의 질문에 이곳저곳에서 대답들이 나왔다.

“맞습니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무인들끼리 떼싸움이라면 합격진이 가장 중요합니다.”

잘 짜인 합격진이 보여 주는 힘은 생각보다 엄청나다.

어느 정도의 실력 차는 가볍게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솔직히 서문세가의 정예 무인들 보다, 현재 하북팽가의 무인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 실력 차를 빠르게 메울 수 있는 것은 합격진밖에 없었다.

“여러분께 드린 방패는 지금부터 배울 합격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팽중호는 이번에 새롭게 합격진을 정한승과 함께 만들어 내었다.

여러 진법을 공부한 정한승은 당연히 합격진 등에도 매우 조예가 깊었기에 팽중호가 원하는 합격진을 뚝딱 짜 주었다.

‘철갑구궁진(鐵甲九宮陣)’

철갑을 두른 것처럼 단단히 서로를 지키며 공격해 나가는 합격진.

방패를 이용한 이 합격진은 서문세가의 날카로운 검격을 훌륭하게 막아 낼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지금부터 한번 배워 보도록 하죠.”

팽중호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맞춰 보는 합격진.

당연히 처음 배우는 합격진에 팽가의 무인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걸 못 익히면 제 손에 뒤지든, 아니면 서문세가 손에 뒤지든 무조건 뒤집니다?”

흉악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하는 팽중호의 말에 팽가 무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정말로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서문세가의 손이 아니라, 팽중호의 손에 말이다.

“제대로들 합시다. 아시겠죠?”

“예!”

우렁찬 하북팽가 무인들의 대답.

그들의 눈에 독기라는 것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팽중호는 그것을 아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이들은 이제 자유롭게 수련하도록 놔두고, 다른 애들을 보러 가야겠어.’

팽가의 무인들에게 합격진 연습을 하라고 한 뒤, 팽중호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문세가와의 일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았으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직접 몸을 움직여 도수, 곽채령, 팽구진을 한곳으로 부른 팽중호.

세 사람이 이렇게 한곳에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은 삼 대 일로 대련하려고 불렀다.”

팽중호 혼자 대 도수, 곽채령, 팽구진의 대련.

지금 이 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고수와의 싸움 경험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무공을 알고 합을 맞춰 보는 것도 중요했고 말이다.

팽중호는 이것을 한 번에 해결하기 위해 삼 대 일의 대련을 하려는 것이었다.

“일단 너희 셋이 한번 서로 합을 좀 맞춰 봐.”

“예! 주군!”

“넵.”

“알겠어요.”

팽중호의 말에 대답하고는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이야기를 나누는 셋.

그들은 서로의 무공을 이야기하며 합을 짜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역시나 곽채령이 있었다.

“그럼. 도수 님과 구진 님이 소가주님을 흔드는 틈에 제가 일장을 찔러 들어갈게요.”

“예!”

“넵.”

여기서 구체적인 작전을 짤 시간은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구색은 맞추었다.

그렇게 다시금 팽중호의 앞에 선 세 사람.

“준비는 끝났어?”

끄덕-

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순식간에 주변에 감도는 팽팽한 긴장감.

스릉-

팽중호가 무적도를 꺼내 드는 것으로 이 긴장감은 더해 갔다.

스릉-

스르릉-

도수와 팽구진도 도를 꺼내어 들었고, 곽채령도 손에 내공을 집중시키며 언제든 출수할 준비를 마쳤다.

“덤벼.”

“하아압!”

“합!”

“하앗!”

각자 기합성을 내지르며 팽중호를 포위하듯 감싸며 달려드는 세 사람.

가장 먼저 다가온 이는 도수였다.

도수의 도가 엄청난 기세로 팽중호를 덮쳐 왔는데,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쾅-

‘수련을 제대로 했군.’

팽중호는 태극벽력신공의 성취가 꽤 높아졌음을 대번에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팽중호가 이런 감탄을 채 끝내기도 전에 이번에는 팽구진의 도가 팽중호를 덮쳐 왔다.

어느 것이 진짜 도영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환영들이 팽중호의 눈앞을 어지럽혔다.

‘벌써 이렇게까지 펼쳐 내?’

지금 눈앞의 환영들은 팽중호가 보더라도 완성도가 높았다.

팽구진이 팽중호에게 무공을 교육받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런 수준이라는 것은, 그가 얼마나 재능이 넘치는지를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카캉-

물론 아직 팽중호의 눈을 속이기에는 한참 부족했다.

가볍게 팽구진의 환영 중 진짜를 찾아내 쳐 낸 팽중호.

하지만 팽구진의 도를 쳐 내는 그 짧은 틈에 팽중호의 품으로 하나의 손이 벼락처럼 날아 들어왔다.

“하앗!”

팽중호가 인정한 원조 재능 괴물 곽채령.

그녀는 지금 도수와 팽구진이 만들어 낸 아주 작은 틈을 놓치지 않았다.

일부러 도수와 팽구진의 도를 시간 차이를 두고 공격하게끔 해 팽중호의 틈을 벌리고, 팽중호가 곧바로 반응하지 못하는 사각으로 일장을 밀어 넣은 것이었다.

“아주 좋았다 채령아.”

그때 곽채령의 등 뒤에서 팽중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면 안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근데 왜 내가 가만히 서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헙!”

곽채령이 헛바람을 삼키며, 재빨리 이어질 팽중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다.

따악-

쿠당탕탕-

“꺄악!”

아주 경쾌한 타격 소리와 함께 곽채령이 머리를 움켜잡으며 그대로 바닥을 굴렀다.

“너 지금 한 번 죽었다. 그리고 너희들도.”

따악- 따악-

“컥!”

“으악!”

곽채령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멍하니 서 있던 도수와 팽구진도 팽중호의 손길에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공격이 실패했으면 바로 다음 수를 꺼내야지, 멍하니 있으면 되냐? 나를 죽일 생각으로 해. 어차피 너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옷자락 하나 안 상하니까.”

팽중호의 말에 세 사람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신을 반성하고,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팽중호의 말처럼 전심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좋아. 좋은 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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