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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58화 (58/200)

58화 죽일 거 아니면, 살살 해 주십쇼.

구석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무인.

전체적으로는 평범했지만, 얼굴을 가로지르는 큰 검상이 눈에 띄는 중년인이었다.

무림에 널리고 널린 무인 같아 보일 수 있었지만, 팽중호가 환생하고 만났던 모든 무인 중 가장 강한 자였다.

최소 화경 이상의 경지의 무인.

‘뭐지? 저런 자가 왜 여기에 있지?’

이 주변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저런 자가 있단 말인가?

물론 그저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팽중호의 감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해 주고 있었다.

‘분명 하북팽가를 찾아온 것일 터인데…….’

이 주변에 저런 무인이 찾아올 만한 곳은 하북팽가 말고는 없다.

그런데 왜 이 정도의 무인이 하북팽가를 찾아와서 이런 허름한 주루에서 술을 혼자 마시고 있단 말인가?

“여기 음식 나왔습니다!”

점소이가 팽중호의 앞에 음식과 술을 놓고는 사라졌다.

팽중호는 일단 무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음식과 술부터 먹기 시작했다.

‘음. 솜씨가 나쁘진 않네.’

허름하고 작은 주루인 것치고는 음식의 맛도 훌륭했고, 술도 물을 타지 않은 듯 맛이 괜찮았다.

드르륵-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중년 무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걸어서 팽중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중년 무인.

팽중호는 태연하게 음식을 먹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상황에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상대가 혹여 서문세가에서 자신을 죽이기 위해 보낸 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니 말이다.

“이보게. 혼자 마시기 적적해서 그런데, 같이 합석해도 되겠나?”

하지만 중년 무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팽중호의 예상과 달랐다.

약간의 미소를 머금으며 합석을 해도 되겠냐는 물음.

팽중호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하십쇼.”

“하하. 고맙네.”

드르륵-

의자를 빼고 팽중호의 앞에 앉는 중년 무인.

그는 점소이를 불러 팽중호와 같은 음식들을 시키고는, 팽중호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팽중호도 그의 눈길을 느끼고, 식사를 잠시 멈추고 마주 바라보았다.

“남자가 빤히 바라보는 걸 썩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하하. 미안하네. 그저 내가 무림 여행 중 본 자들 중에 손에 꼽을 만한 자라 그랬네.”

무림 여행?

아니, 뭐 무사 수행이라도 다닌단 말인가?

“자네가 그 팽중호라는 자가 맞지?”

“예. 맞습니다.”

자신을 정확히 알아본 중년 무인.

팽중호는 딱히 부인은 하지 않았다.

부인이나 거짓도 상대를 봐 가면서 하는 것.

지금 눈앞의 중년 무인에게 거짓을 말해 봐야 곧바로 들통날 터였다.

“무림의 소문이 훨씬 더 축소되었군. 정도 무림이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쯧쯧.”

“저도 뭐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응? 얼마든지 물어보게.”

“혹시……. 신강에서 오셨습니까?”

팽중호는 중년 무인의 말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정도 무림을 자신이 속한 곳이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중년 무인.

이 말에 팽중호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고, 곧바로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돌아가던 머리가 내린 결론.

‘마교의 사람이구나.’

마교(魔敎).

신강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세력.

단일 세력으로는 최고로 치는 곳이며, 무려 십만마도(十萬魔徒)가 있다고 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곳.

특히나 마교는 특정 때마다 무림을 향해 진격해 오고는 했는데, 그때마다 무림은 씻을 수 없을 큰 상처를 입었기에, 그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들도 많은 곳이었다.

“맞네.”

중년 무인의 대답에 팽중호의 몸이 살짝 떨렸다.

전생에 마교의 수장인 천마의 힘을 느껴 보았었고, 지금의 하북팽가가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마교라는 것이 떠올라 그랬다.

‘아니지. 솔직히 마교 때문이라고 하기는 뭐 하지.’

마교가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지금 하북팽가가 이렇게 된 것은 팽가 내부의 배신자들과 팽가를 노린 다른 세력들 때문이 컸다.

“무슨 일로 무림에 나오신 겁니까?”

“아까 말했듯 여행을 좀 하러 왔네, 그리고 정도에서 잘나간다는 무인들도 좀 만나 보고 싶었고 말이야.”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도 무림의 실력을 확인해 보기 위해 나왔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여기에는 절 만나 보기 위해 오신 겁니까?”

“정확하네. 요즘 자네의 이름이 정도 무림에서 가장 많이 들려서 말이야.”

팽중호는 자신을 찾아왔다는 중년 무인의 말에 입맛이 떨어졌다.

그냥 순수하게 자신을 만나기만 하러 오지 않았을 터 아닌가?

“어디 공터로 가시겠습니까?”

“음? 하하. 빨라서 좋긴 하군. 하지만 음식이 나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먹고 가세.”

중년 무인이 시킨 음식들이 마침 도착했다.

팽중호는 어쩔 수 없이 앉아서 중년 무인과 식사를 끝까지 함께했다.

‘이거…… 오늘 뒤지지 않게 조심해야겠네.’

* * *

휘이이이잉-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오는 한적한 공터.

그 공터에 지금 팽중호와 중년 무인이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뭐, 차라리 밖에서 만난 게 다행인가?’

저자가 하북팽가 안으로 들어왔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 말이다.

“달빛이 아주 좋군 그래. 하하하.”

“예예. 저 그런데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이런. 내가 내 이름도 알려 주지 않았군. 미안하네.”

중년 무인은 시종일관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였는데, 저것이 바로 강자의 여유라고 생각했다.

“우리 쪽에서는 나를 ‘검마(劍魔)’라고 부르네.”

“……! 쓰벌. 뭐 됐네.”

팽중호의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팽중호는 마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교에서 별호의 뒤에 마(魔)로 끝낼 수 있는 자들은 마교의 최상위권 실력자들밖에 없었다.

“혹시 서열 몇 위 십니까?”

“오? 그것도 아는가? 나는 마교 서열 삼 위일세.”

“진짜 인생…….”

마교는 그들의 강함을 순위로 매긴다.

마교 서열 일 위는 당연히 천마이고, 그 밑으로 이제 이 위부터 백 위까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서열 삼 위라면 그야말로 괴물 중의 괴물이라는 뜻.

전생의 자신이 와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자다.

그런 자를 지금 상대해야 하니, 어찌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무 걱정은 말게. 오늘은 죽이러 온 것이 아니니 말일세.”

“거,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반쯤은 죽여 놓을 생각 아닙니까?”

“하하. 아니네. 자네 같은 자를 지금 그렇게 만들면 아깝지 않은가?”

지금 검마의 말은 진심이었다.

검마는 지금은 그저 팽중호의 실력만 볼 생각이었다.

“후우. 좋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해 보죠.”

“좋네.”

스릉-

스릉-

팽중호의 무적도와 검마의 검이 동시에 뽑혀 나왔다.

콰아아아아아아아-

파직- 파지짓- 파팟- 파짓-

검마의 몸에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고, 팽중호는 곧바로 뇌신지체로 들어섰다.

넓은 공터를 꽉 채우는 두 사람의 어마어마한 기운.

두 사람 모두 이미 평범한 인간의 경지는 벗어난 자들이었다.

“역시 화경의 경지를 넘어섰군. 그 나이에 대단하네!”

검마는 순수하게 지금 팽중호에게 감탄했다.

팽중호의 나이는 아무리 봐도 이제 막 약관을 넘은 나이.

그런데 벌써 화경의 경지를 넘어섰다니?

이건 분명 마교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정말 죽일 거 아니면, 살살 해 주십쇼.”

“물론이네.”

팟-

팽중호의 신형이 움직였다.

먼저 선공을 취하는 팽중호.

분명 지금까지 없었던, 흔치 않은 일이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파직-

팽중호의 무적도가 혼뢰단세를 펼쳐 내며 엄청난 속도로 검마에게 향했다.

이 공격에 검마도 마주 검을 움직였다.

화아아아악-

검마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강기.

그리고 강기들이 순식간에 벽을 만들어 내어 팽중호의 혼뢰단세를 막았다.

콰아앙-!

도와 검이 부딪친 것인데, 주변 일대가 마치 화탄이라도 터진 것 같이 터져 나갔다.

가공할 기와 기의 부딪침.

“좋군. 그래!”

팽중호의 일도를 받은 검마의 눈이 커지며, 입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가볍게 받아 낸 것 같지만, 지금 검마는 손이 저릿함을 느꼈다.

도대체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이 얼마 만이란 말인가?

“쓰읍.”

물론 팽중호는 지금 상황이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름 힘을 좀 썼는데, 상대를 뒤로 물러나게 하지도 못했다.

‘진짜 마교는 도대체 뭐 하는 곳일까?’

천마는 말할 것도 없고, 검마와 같은 고수들이 줄지어 있는 곳.

도대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자자. 계속 와 보게.”

“하아. 알겠습니다.”

카카캉- 카앙-! 카카카캉-!! 카아앙-!!!

부딪칠 때마다 주변이 떨어 울리는 엄청난 공방전.

스치는 것만으로도 살이 갈라지고, 뼈가 부서질 듯한 공방이 계속되었다.

물론 정작 그 공방을 하는 두 사람의 표정은 여유로웠지만 말이다.

“이게 끝인가?”

“밑천까지 다 보시려고 그럽니까?”

“하하. 다 보여 주면 좋겠는데.”

“후우. 알겠습니다.”

파지직-

팽중호의 눈이 뇌기로 번쩍였다.

그러자 일순 팽중호 주변의 기운이 바뀌기 시작했다.

모든 뇌기가 무적도로 빨려 들어가듯 흡수되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원뢰멸혼(元雷滅魂).

팽중호의 도가 가볍게 휘둘러지며 그대로 검마에게 향했다.

검마는 이 평범해 보이는 일도가 절대 평범하지 않음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건, 위험하군.’

화아아아아아아악-

검마의 검에 강기가 미친 듯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팽중호의 이번 공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기에 검마도 제대로 힘을 내는 것이었다.

캉-

처음 두 사람의 도와 검이 맞부딪쳤을 때는 그리 큰 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두 사람의 공방을 생각했을 때는 너무나 작은 소리.

하지만 이 작은 소리가 이루어 낸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파사사사사사삭-

검마와 팽중호의 주변에 있던 것들이 갑자기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마의 소매도 가루가 되며 사라졌다.

“이것 참……. 정도 무림에 이런 무인이 있을 줄이야.”

“그쪽이 더 놀라우니, 암말도 하지 마십쇼.”

검마는 지금 진실로 팽중호의 실력에 놀랐다.

조금 전의 일격은 정말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옷자락처럼 자신이 가루가 되어 죽었을지 몰랐다.

그리고 지금 팽중호도 검마를 보고 놀랐다.

조금 전 일격은 정말 죽어도 모른다는 일념으로 내지른 것이었다.

그런데 겨우 옷자락 조금 날려 먹은 것 말고는 성과가 없었다.

“조금만 더 정진하면 아주 좋은 상대가 되겠군 그래.”

“별로 좋은 상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하하! 걱정 말게 조만간 우리는 분명 다시 만나서 싸우게 될 터이니 말일세. 그때까지 계속해서 정진하게나.”

“…….”

팽중호는 검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조만간 다시금 마교가 무림을 침공하겠다는 소리.

‘이건 일이 좀 커지겠는데.’

하북팽가의 부흥뿐 아니라, 마교의 침공까지 생각해야 했다.

물론 검마의 말을 들어 보면 지금 당장은 아닐 것 같았지만 말이다.

‘뭐, 어쩌겠어. 일단 하북팽가부터 다시 세워 놓고 나서 준비해야지.’

팽중호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검마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해 주었으니, 선물 하나 주겠네.”

“선물이요?”

아니, 갑자기 선물은 무슨 선물이란 말인가?

마교와 정도 무림은 서로 적이 아니던가?

그런데 적에게 선물을 준다니?

“자, 한 번만 보여 줄 테니 잘 보게. 나도 이제야 얻은 깨달음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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