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화 떼로 싸워 보자?
태극공(太極功),
무당파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내공 심법으로, 무당파에 처음 입관하는 자들이 배우는 무공이었다.
무림에 널리고 널린 삼류 내공 심법보다는 당연히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대단한 내공 심법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것.
“알겠습니다.”
태극공 정도라면 위지철이 독단적으로 정해, 팽중호에게 가르쳐 주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무공이었다.
그렇게 곧바로 팽중호에게 태극공의 구결을 알려 주는 위지철.
팽중호는 그 구결을 한 번에 암기하고는, 위지철에게 인사를 한 뒤 곧바로 자리를 옮겼다.
구결을 다 듣는 순간 조화를 이루어 낼 방법이 생각났으니 말이다.
“역시 조화에는 무당파만 한 곳이 없단 말이야.”
무당파는 무림에 존재하는 문파 중 가장 조화를 중요시하는 문파일 것이다.
그중 태극공은 그 조화에 가장 중점을 둔 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조화로운 내공 심법.
그래서 팽중호가 태극공을 선택한 것이었다.
“자. 다시 해 보자.”
팽중호는 다시 무공들을 만지기 시작했다.
태극공을 바탕으로 그 안에 벽력공과 청혼회원신공을 넣었다.
그러자 예상대로 두 내공 심법이 태극공 안에서 조화롭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태극공 하나만으로도 술술 진행되는 무공 창안.
팽중호는 직접 내공 심법을 운용해 보며, 조금씩 다듬고 다듬으며 내공 심법을 완성해 나갔다.
“이건 나한테도 좋군.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혼원벽력신공이 있기에 딱히 다른 내공 심법이 필요치는 않았지만, 그대로 다다익선이라고 확실히 팽중호에게도 무언가 깨달음을 주었다.
탁-
팽중호는 완성된 내공 심법을 곧바로 서책에 모두 옮겨 적었다.
그리고 완성된 서책의 겉면에 이 내공 심법의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태극벽력신공(太極霹靂神功)’
태극공과 벽력공, 그리고 청혼회원신공이 합쳐진 내공 심법.
팽중호는 서책을 들고는 곧바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장 먼저 팽구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자. 어디 볼까?’
팽중호는 슬쩍 들어가서 팽구준이 어느 정도나 자신이 가르쳐 준 것을 따라 하고 있을지를 바라보았다.
휘이익- 휘이이익- 휘익-
팽구준은 팽중호가 전해 준 도를 들고 허공에 어지럽게 환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꽤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수의 환영을 펼쳐 내고 있었다.
‘이놈 봐라?’
팽중호의 생각 이상의 재능을 보여 주고 있는 팽구준.
이 정도라면 곽채령과 비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을 재능일 듯싶었다.
팽씨의 이름을 가진 이 중에 이런 재능이 있다는 것은 분명 호재일 터였다.
“잠깐 멈춰 봐.”
“앗! 옙.”
팽중호의 부름에 급하게 도를 거두는 팽구준.
팽중호는 그런 팽구준에게 조금 전 썼던 태극벽력신공을 건네었다.
이게 무엇이냐는 표정으로 팽중호를 바라보는 팽구준.
“네가 익힐 내공 심법.”
“헉!”
팽구준은 입을 떠억 벌린 채로 눈앞의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어떤 내공 심법인지는 몰라도 팽중호가 준 것이라면 분명 범상치 않은 것일 터.
자신이 이런 과분한 것을 받아도 되는가 싶었다.
“받고 빨리 익혀 둬. 그게 도와주는 거니까.”
“알겠습니닷!”
팽구준은 서책을 공손하게 받아들고는, 그대로 품 안에 소중하게 챙겼다.
“자. 그리고 이거.”
환영천무도법까지 전해 주는 팽중호.
그렇게 전해 줄 것을 전부 전해 준 팽중호는 팽구진에게 금방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한 뒤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태극벽력신공을 전해 줄 사람이 남아 있었으니 말이다.
“도수야.”
“예! 주군!”
팽중호의 부름에 부리나케 달려오는 도수.
도수는 맹호각의 각주가 된 후로, 맹호각에 머물며 맹호각 소속 무인들과 매일매일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자. 이거 네가 익힐 내공 심법.”
“감사합니다!”
도수는 곧바로 팽중호가 전해 준 서책을 받아들었다.
팽중호가 주거나 시키는 것이라면 군말 없이 모두 받아들이는 도수였다.
“일단 빨리 익혀 알았지?”
“예!”
“좋은 자세야.”
툭툭-
팽중호는 듬직한 도수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이번에는 성무각으로 향했다.
성무각에서는 곽채령과 무인들이 머리를 싸매 몸을 움직이며 무공을 창안해 내고, 그것을 무인들에게 실험하거나 알려 주고 있었다.
하북팽가에 있는 곳들 중 가장 바쁜 곳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무각이었다.
“아. 오셨어요.”
조금은 얼굴이 초췌해 보이는 곽채령이 팽중호를 맞이했다.
그녀는 지금 밤새 새로운 무공을 다듬는 중이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재밌는걸요.”
곽채령은 진심으로 지금 성무각에서 하는 일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무공광인 그녀가 마음껏 무공을 만들고 배우고 가르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자. 이거 네가 익힐 내공 심법이야.”
“예……?”
곽채령은 팽중호가 건넨 태극벽력신공을 받아들고 곧바로 읽어 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모두 읽은 곽채령은 살짝 멍한 눈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굳이 성무각이 필요한가요? 소가주님이 다 하시면 될 것 같은데…….”
곽채령이 보기에 팽중호 혼자서 성무각이 하는 일 이상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본 것만으로도 지금 팽중호가 전해 준 태극벽력신공이 얼마나 대단한 내공 심법인지를 알아보았으니 말이다.
“성무각은 내가 보지 못한 곳까지 봐 줄 수 있는 곳이잖아. 당연히 필요하지.”
팽중호의 말처럼 팽중호가 모든 무공을 다 자세하게 볼 수는 없다.
게다가 하루 종일 무공을 볼 시간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성무각은 하북팽가에 꼭 필요한 곳이었다.
“잘 익혀 둬. 알았지?”
“예. 알겠어요.”
그렇게 곽채령에게까지 태극벽력신공을 모두 전해 준 팽중호.
이제는 자신의 실력 증진을 위해 힘을 쓸 때였다.
서문세가 장로 셋을 베었으니, 다음에는 분명 그보다 더 강한 패를 들고 올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더 실력을 빨리 키워 올려야만 했다.
“나도 깨달음을 정리해 볼까?”
* * *
서문세가의 선포.
서문세가가 하북팽가를 향해 전면전을 선포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하북팽가가 서문세가에 진법을 설치해 두고 갔고, 그 진법 때문에 서문세가 무인들이 다수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만 실제로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머물던 곳에서 진법이 발견된 데다가, 서문세가 무인들이 여럿 죽었다는 정황도 밝혀졌기에, 당연히 서문세가의 주장을 믿는 이들도 꽤 되었다.
‘무림패를 걸고 전면전을 요구한다.’
그렇게 무림패를 내건 전면전을 선포한 서문세가.
이 소식은 온 무림에 퍼질 수밖에 없었고, 사람들의 이목은 이제 하북팽가로 쏠렸다.
과연 그들이 이 싸움을 받아들인 것인가였다.
그리고 곧바로 하북팽가에서도 입장이 나왔다.
‘서문세가의 전면전을 받아들이겠다.’
하북팽가는 결백을 주장하면서, 무림패를 건 서문세가의 전면전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무림 역사에 남을 만한 전면전이 성사되었다.
현(現)오대세가와 구(舊)오대세가 간의 전면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연히 서문세가의 우위를 점쳤다.
하북팽가가 하북성을 제패했다고 하지만, 아직 힘이 오대세가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 중론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전면전은 젊은 무인들끼리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전력이 싸우는 것.
수많은 고수를 보유한 서문세가가 당연히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물론 하북팽가의 우위를 점치는 자들도 있었다.
하북팽가가 이번에 오대회합에서 보여 준 저력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특히나 무림에 서문세가가 오대회합이 끝나고 돌아가던 하북팽가를 급습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습격한 서문세가 무인들 모두가 당했다는 소식이 은밀히 돌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어디가 이기든 무림에 큰바람이 불 것이다.’
서문세가가 이기든, 하북팽가가 이기든, 분명 무림에 큰바람이 불 수밖에 없을 것이란 건 모든 무림인들이 동의하는 것이었다.
서문세가가 이긴다면 하북성까지 접수하며 오대세가 중에서도 우뚝 설 터였고, 하북팽가가 이긴다면 오대세가가 새롭게 개편될 테니 말이다.
* * *
“춘오야. 그래서 그쪽이 어떻게 싸우자고 하던?”
팽중호는 장춘오에게 서문세가가 전해 온 전면전 방식에 대해 물었다.
“오십 대 오십 싸움을 제안해 왔습니다.”
“떼로 싸워 보자?”
“예. 아무래도 고수 중 고수들만 골라서 올 생각인 모양입니다.”
일 대 일로 한 명씩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에 정말 전쟁하듯 싸우는 방식.
서문세가 입장에서는 이렇게 많은 수의 고수를 동원해 싸워, 이번에 확실하게 하북팽가의 무인들을 죽여 놓겠다는 생각일 터였다.
“거절하고 다시 협상해 볼까요?”
“아니, 받아 줘. 오히려 그게 우리한테 나을 수도 있으니까.”
팽중호는 일 대 일 싸움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떼싸움이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 대 일 싸움에는 팽중호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런데 상대는 분명 장로급들의 고수를 대동하고 나올 터.
아직까지 도수나 곽채령, 팽구진이 그들을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전쟁처럼 이리저리 뒤섞여 싸우는 방식이 훨씬 나았다.
“춘오 너는 염조야방에 연락해서 방패를 만들어 달라고 해.”
“방패요?”
“그래.”
보통 무인들은 방패를 들지 않는다.
방패가 오히려 움직임을 방해하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팽중호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실력이 부족한 다른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이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패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게 만들어서 손목에 찰 수 있는 형태로 주문해.”
“흐음. 예. 알겠습니다.”
팽중호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팽중호와 장춘오는 서문세가와의 전쟁에 대비해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고, 해가 질 때쯤에나 이야기를 마칠 수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이야기를 끝내고 팽중호는 혼자 하북팽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팽중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팽가 밖에 있는 포목점.
“단체복을 좀 맞출까 합니다.”
“단체복을요? 예. 알겠습니다. 원하시는 모습이 있으십니까?”
“음. 예. 일단 색은…….”
태도상단이나 신조상단에 단체복을 해 달라고 하면 분명 그들이 알아서 최고급으로 맞춰서 줄 터다.
하지만 팽중호는 색부터 원단까지 직접 선택해서 옷을 맞추고 싶었다.
이 옷이 앞으로 하북팽가의 상징이 될 옷이었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맞추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원하던 대로 원단부터 무늬까지 모든 것을 직접 선택하고, 포목점을 빠져 나왔다.
이제는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둠이 깔린 거리.
가게들이 내건 등불들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나왔는데, 술이나 한잔하고 들어갈까?”
늦은 밤에 등불이 걸린 거리를 보니 술이 확 땡기는 팽중호였다.
팽중호는 너무 큰 주루보다는 길거리에 있는 작은 주루로 발걸음을 향했다.
보통 이렇게 작은 주루가 은근히 맛이 뛰어난 집인 경우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곳을 찾는 것이 이 각박한 무림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재미 중 하나 아니겠는가?
“어서옵쇼!”
팽중호가 주루 안으로 들어서자 어린 점소이가 밝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대충 둘러보아도 몇 없는 손님.
팽중호는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주루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뭘 드릴까요?”
“만두랑 소면, 그리고 술.”
“옙!”
주문을 듣고 쪼르르 사라지는 점소이.
팽중호는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기 시작했다.
봇짐을 진 장사꾼 넷, 피곤해 보이는 일반인 셋, 그리고 허리에 검을 차고 있는 무인 하나.
팽중호의 시선이 검을 차고 있는 무인에게서 딱 멈추었다.
‘고수다. 그것도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