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어때? 할 수 있겠어?
끼이이익- 쿠웅-
하북팽가의 정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열렸다.
그리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서문세가로 향했던 하북팽가의 마차들.
하북팽가에 남아 있던 모든 이들이 나와서 마차를 맞이했다.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다.”
“예. 잘 다녀왔습니다.”
가주 팽자성은 마차에서 내린 팽중호를 환한 얼굴로 맞이해 주었다.
팽중호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마차에 탄 모두가 내려 인사를 나누고, 서로 떨어져 있는 동안 있던 일에 대해 잠시간 이야기를 나누고는 곧바로 다들 각자의 할 일을 위해 흩어졌다.
조만간 서문세가가 움직일 것이니, 시간을 아껴서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야 했으니 말이다.
“가가. 저도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아, 그래. 다음에 다시 보자고.”
“후훗. 예.”
이세경도 인사를 남기고는 마차를 타고 떠났다.
그녀는 신조상단의 부상단주이니 바쁜 몸이었다.
이번에 서문세가를 방문한 것도 사실 그녀의 입장에서 꽤 무리해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것이었다.
“춘오야. 아직 서문세가에서 뭐 움직이는 거 없지?”
“예. 아직은 없습니다.”
팽중호는 곧바로 장춘오에게 서문세가의 움직임을 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서문세가의 동향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해법을 달리 내야 하니 말이다.
“그럼. 도수와 채령이 빼고, 무인들을 싹 다 연무장에 모이라고 해 줘.”
“또 뭘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어. 하북팽가의 수호신을 하나 만들려고.”
“후. 알겠습니다. 모이라고 전하겠습니다.”
장춘오가 팽중호의 말을 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팽중호는 먼저 자신의 처소로 발걸음을 향했다.
“어디 보자…….”
팽중호는 처소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어딘가로 향했다.
그렇게 한쪽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이내 찾아내었는지 번쩍 꺼내어 들었다.
팽중호의 손에 들린 아주 매끈하게 잘 빠진 도 한 자루.
스릉-
가볍게 뽑자 안에서 범상치 않은 예기를 내뿜는 도신이 나타났다.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팽가의 무인들이 쓰는 도보다, 훨씬 얇은 도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역시 잘 만든단 말이야.”
지금 팽중호가 들고 있는 도는, 지난번 위지철의 검을 만들 때 같이 장석팔에게 부탁해 미리 만들어 놓은 도였다.
팽중호는 도를 챙겨 들고,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춘오가 이야기를 잘해 놓았는지, 팽가 무인들이 모두 쪼르륵 모여 있었다.
팽중호는 그들의 앞에 섰다.
“자. 오늘은 여러분 중에 한 분을 뽑아서, 여기 이 도를 드릴 겁니다.”
“예?!”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팽중호의 손에 들린 도로 향했다.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모습.
그들도 무인이니 당연히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도를 얻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명씩 지금 제가 보여 드리는 동작을 제게 똑같이 따라 해 주시면 됩니다.”
“예!”
무인들의 대답을 들은 팽중호가 무적도를 꺼내 들고 자세를 취했다.
“자아. 잘 보십시오.”
팽중호의 말에 무인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팽중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휘이익- 휙- 휘이익- 휘익-
팽중호의 도가 허공에서 수많은 환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그 어지러운 환영에 지켜보던 무인들은 눈이 핑 돌 지경이었다.
착-
팽중호는 도를 멈추고 무인들을 바라보았는데, 대부분이 지금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자. 한 시진 정도 연습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자신 있는 분은 저를 찾아오셔서 보여 주시면 됩니다.”
팽중호의 말에 무인들은 일단 다들 저마다 흩어져, 팽중호가 보여 준 도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물론 당연히 제대로 펼치는 이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팽가의 도법과는 다르게 환(幻)의 묘리를 담고 있으니,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어어억!”
“흐억!”
우당탕- 채챙-
무인들은 도법을 펼치다가 넘어지거나, 도를 손에서 놓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 시진의 시간이 지나고, 팽중호의 앞에 평가를 받기 위해 나타난 무인은 겨우 셋이었다.
다른 무인들은 다들 포기한 것이다.
“그럼 한번 볼까요?”
팽중호는 자신의 앞에 선, 세 사람이 펼치는 동작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환영천무도법이 절대 쉬운 도법이 아니지.’
환영천무도법(幻影天舞刀法).
하북팽가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환(幻)의 묘리를 담은 도법이었다.
하북팽가가 무식하게 힘만 쓸 줄 안다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기 위해 만들어진 도법.
‘이걸 써먹을 줄은 몰랐는데.’
팽중호는 전생에 이 도법을 반항심에 차올라서 밤새 죽어라 익힌 적이 있었다.
물론 성격에 맞지 않아서 금방 때려치웠지만, 다행히도 모든 초식들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이걸 보고 한 번에 펼쳐 낸다면, 분명 재능이 있는 거지.’
환영천무도법을 한 번 보고 비슷하게 펼쳐 낸다면, 무공에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소리가 될 것이고, 그것은 곧 팽중호가 키워 볼 만한 재목이라는 소리였다.
휙- 휘이익- 콰당-
첫 번째로 나선 무인은 얼추 따라 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두 번째로 나선 무인은 처음부터 손이 꼬이면서 그대로 도를 놓쳐서 탈락.
이제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팽중호 앞에서 말을 심하게 더듬으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아주 젊은 무인.
“패, 패, 팽구준입니다.”
팽구준은 대장로인 팽조운의 손자로, 지금 하북팽가에 있는 무인들 중 가장 젊은 무인이었다.
“긴장하지 말고, 해 보십시오.”
팽중호는 저렇게 긴장해서 잘할까 싶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 지켜보기로 했다.
“후웁.”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도를 움직이기 시작하는 팽구준.
휘이이이익- 휙이익- 휘이이이익- 휘이이익-
팽중호가 펼쳤을 때보다는 느렸지만, 그래도 팽구준의 도는 환영을 만들어 내며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턱없이 적은 환영의 수였지만, 앞선 누구보다 완벽하게 팽중호를 따라 하고 있었다.
‘보석이 여기에 있었군.’
팽중호는 팽구준이 보석임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그저 얼추 움직임만 비슷해도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환영까지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노호도랑은 맞지 않았나 보네.’
팽구준은 노호도와 철갑공을 배웠는데, 그의 성취는 팽조운의 손자라는 것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팽구준도 팽조운도 고민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팽구준은 체질상 극강을 지향하는 노호도와는 맞지 않는 듯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이고 말이다.
‘좀 더 빨리해 볼 걸 그랬네.’
좀 더 빠르게 환영천무도법으로 시험해 봤다면, 팽구준을 더 빠르게 발견해 키워 냈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물론, 그동안 너무 바쁘게 움직인데다가, 팽중호도 이렇게 세가를 이끄는 것이 처음이었으니 당연히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지금이라도 팽구준을 발견한 것을 다행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끄, 끝났습니다.”
“좋아. 이 도는 오늘부터 네 거다.”
팽중호는 씨익 웃으며 팽구준에게 도를 건네어 주었고, 팽구준은 금방이라도 감격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마치 한 마리의 강아지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팽구준.
“그리고 이제부터 넌 나랑 특훈이야.”
팽중호가 팽구준에게 말을 놓았다는 것.
그것은 그를 특별하게 키우겠다는 소리였다.
“다른 분들은 계속 수련하십시오. 너는 날 따라오고.”
“아, 예, 옛!”
팽중호가 발걸음을 옮기자 쫄래쫄래 뒤를 따르는 팽구준.
그렇게 팽중호는 팽구준을 데리고 자신의 처소 옆에 있는 개인 연무장으로 향했다.
“내가 준 도를 꺼내 봐.”
“넵.”
스르릉-
“와아…….”
그래도 뭔가 마음이 진정이 조금 되었는지, 이제는 말을 떨지는 않는 팽구준.
팽구준은 팽중호가 전해 준 도를 조심스럽게 뽑아 들었는데, 그는 그 도를 뽑자마자 작게 탄성을 흘렸다.
마치 원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처럼 손에 착 맞아서 떨어지는 것이 기분이 묘하게 좋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부터 앞으로 네가 익힐 무공의 전반부 초식을 보여 줄 거야. 너는 이걸 보고,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혼자 수련해 봐. 알았지?”
“넵!”
대답을 씩씩하게 하는 팽구준.
팽중호는 그런 팽구준에게 한 번 웃어 준 후에, 곧바로 무적도를 꺼내 들고 환영천무도법의 전반부를 펼치기 시작했다.
팽구준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기에 조금 천천히 펼쳐 내었는데, 그럼에도 수없이 어지러운 환영이 허공을 수놓고 있었다.
조금 전에 보여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환영.
“자. 어때? 할 수 있겠어?”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좋은 자세야. 내가 몇 번 더 보여 줄 테니까, 잘 봐.”
“넵.”
팽중호는 그렇게 몇 차례 더 팽구준에게 시범을 보여 주었고, 그대로 팽구준을 홀로 수련하게 놓아두고 자리를 옮겼다.
‘어디 얼마나 재능이 있는지 한번 보자고.’
* * *
팽구준을 놓아두고 홀로 자리를 옮긴 팽중호.
팽중호가 다시금 자리를 옮긴 곳은 바로 개인 연공실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무공을 만들거나, 써 내려갈 때 들르는 곳.
이번에는 청혼회원신공을 만지기 위해 이곳에 들른 것이었다.
“자, 이제 이걸 어디 잘 써먹어 볼까?”
팽중호는 청혼회원신공을 이용해서 새로운 내공 심법을 만들 생각이었다.
철혈갑공과 벽력공이 충분히 뛰어난 내공 심법이지만, 그래도 분명 혼원벽력신공이나 청혼회원신공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도수와 곽채령, 그리고 팽구준이 초절정이라는 경지에 빠르게 도달하려면, 분명 절세의 신공이 필요했다.
‘청혼회원신공이 들어온 것은 정말 천운이다.’
정말로 소환단보다 이 청혼회원신공이 더 좋은 부상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혼원벽력신공을 유출하지 않고도, 그와 같은 수준의 내공 심법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자, 어디 보자.’
팽중호는 그렇게 무섭게 내공 심법의 창안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화경에 경지에 완벽히 발을 디딘 만큼, 거침없이 내공 심법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는 팽중호.
하지만 잘 나아가던 창안이 어느 순간 턱하고 막혀 버렸다.
‘조화가 안 된다.’
지금 팽중호는 벽력공과 청혼회원신공을 합치고 있었는데, 두 내공 심법이 자꾸만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제각각 따로 놀았다.
아무래도 완전히 성격이 다른 두 내공 심법이다 보니, 조화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조화라…… 조화……. 아!’
그렇게 한참 조화에 대해 생각하던 팽중호의 머릿속에 무언가 생각이 하나 번뜩였고, 팽중호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공실 밖으로 벗어났다.
팽중호의 발걸음이 향한 목적지는 바로 위지철이 머무는 곳.
“위 소협. 접니다.”
“아! 예. 들어오십시오.”
팽중호를 반갑게 맞이하는 위지철.
위지철은 갑자기 팽중호가 찾아온 것을 보고 무슨 일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 시간에 이렇게 갑자기 잘 찾아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일전에 내기한 것 기억하십니까?”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혹시 그 내기에서 이겨서 받게 될 무공을 제가 직접 선택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아는 선이라면 얼마든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서문세가의 비무회에서 팽중호와 위지철이 했던 내기.
서문천호의 머리를 단 일합으로 깨느냐 마느냐.
그때 팽중호가 서문천호의 머리를 단 일합에 깨었으니, 내기의 승자는 팽중호였다.
그래서 팽중호는 위지철에게 무당파의 무공 중 하나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을 지금 얻으려는 것이었다.
“그럼. 태극공을 좀 가르쳐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