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이것부터 좀 살펴볼까?
지금 팽중호의 앞에 나타난 세 노인의 정체는 서문세가의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서문정천의 명령에 서문세가의 무인들을 이끌고, 지금 하북팽가를 습격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각각 칠 장로, 팔 장로, 구 장로.
그들 모두 서문세가에서 가장 강한 고수들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돌아가는 하북팽가의 행렬을 습격하기에 결코 부족한 실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었다.
“싹 죽이거라.”
“예!”
장로의 명령에 복면인들이 저마다 검을 꺼내 들고는 달려들 태세를 하였다.
“자. 우리도 준비합시다.”
“예!”
하북팽가의 무인들도 저마다 도를 꺼내 들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탓-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동시에 달려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치열한 싸움이 시작되었다.
챙- 챙- 채챙- 챙-
어지럽게 주변을 수놓는 날카로운 소음.
물론 그 가운데에도 서문세가의 장로들과 팽중호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악!”
“크윽!”
그때 주변에서 고통에 찬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는데, 하북팽가 무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이었다.
분명 실력을 많이 끌어올렸다고 해도, 이번에 팽중호와 동행한 이들은 모두 젊은 무인들.
서문세가의 정예 무인들을 상대로 당연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도수랑 위 소협은 무인들을 도와주십시오.”
“예! 주군!”
“알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두 사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두 사람이 없으면 지금 팽중호 혼자 셋을 상대해야 하지만, 두 사람은 팽중호를 전적으로 믿었다.
팽중호가 혼자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자신들을 다른 곳으로 보낸 것일 테니 말이다.
“네 놈 혼자서 우리 셋을 상대하겠단 것이냐?”
“물론.”
팽중호의 말이 짧아졌다.
서로 칼까지 겨눈 마당에 예의가 뭐가 필요하겠는가?
“흘흘. 요즘 어린 것들은 너무 자만심이 넘치는 것이 문제지.”
세 장로 중, 구 장로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우리 소가주를 못 쓰게 만들었다고 들었다. 네 놈은 살아 있는 것을 후회하게끔 해 주마.”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파직- 파지지직- 파짓-
팽중호는 지금 이 싸움이 길어져 봐야 좋을 것 없다는 것을 알기에, 빠르게 끝낼 생각이었다.
뇌신지체가 된 팽중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파직-
“자, 일단 한 놈.”
번쩍함과 동시에 그대로 구 장로를 지나쳐 팔 장로와 칠 장로에게 쇄도하는 팽중호.
두 장로는 구 장로의 신변을 확인하기도 전에 순식간에 덮쳐 오는 팽중호를 막기 위해 서둘러 검을 움직였다.
선명한 청록색의 강기가 피어오르는 두 장로의 검.
“이번에는 두 놈 한 번에.”
팽중호는 두 장로의 강기를 보고도 그대로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 팽중호의 손에 들린 무적도에서 어마어마한 뇌강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뇌룡진천(雷龍振天).
그리고 뇌강이 마치 용처럼 거대한 형태로 변하며, 사방을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가각-
두 장로는 강기로 팽중호의 뇌강을 막아 나갔는데, 그들은 검을 타고 전해지는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지금 속으로 경악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물론 그들의 경악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파카앙- 서걱- 서걱-
서걱-
그들의 검과 강기가 그대로 터져 나가며, 그들의 목이 떨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바로 가만히 서 있던 구 장로의 목도 떨어졌다.
팽중호는 지금 딱 두 번 도를 움직여서 서문세가의 장로 셋을 베어 버린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을 엄청난 무위.
“후읍.”
물론 팽중호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속에서 기혈이 조금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저들이 무언가 합공을 하기 전에 끝내기 위해, 과하게 힘을 쓴 탓이었다.
콰가가각-
“컥!”
그때 마지막 도수의 일격에 마지막 복면인이 쓰러졌고, 하북팽가를 습격했던 서문세가의 정예 무인들이 모조리 정리되었다.
도수와 위지철이 활약을 한 덕택에 빨리 정리가 된 것이다.
“부상자가 얼마나 나왔습니까?”
“중상은 없고, 경상만 넷입니다.”
“일단 조금 더 가면 마을이니, 거기서 치료하고 갑시다.”
“예!”
* * *
습격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
하북팽가 일행은 일단 그곳에 잠시 짐을 풀었다.
부상자들은 곧바로 의원으로 보냈고, 남은 인원들은 일단 객잔으로 향했다.
“일단 다들 음식 좀 시켜서 드시고 계십쇼. 저는 잠깐 방에 좀 다녀올 테니.”
팽중호는 일행들을 두고 홀로 먼저 객잔의 방으로 향했다.
드르륵- 탁-
“우웩!”
그렇게 방문을 닫자마자 팽중호는 품에서 꺼낸 천에, 시커멓게 죽은 피를 왈칵 뱉어 내었다.
서문세가 장로 셋을 베고 난 후에 입은 내상을 참고 참다가 지금에야 내뱉는 것이었다.
“후우. 살겠다.”
죽은 피를 뱉어 내자 속이 후련해졌다.
아무리 팽중호가 화경의 경지에 들었다고 하지만, 동시에 초절정을 넘어선 무인 셋을 베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그들이 방심하고 있었기에 이 정도로 끝이 난 것이지, 그들이 애초에 동시에 합격을 가해 왔다면, 아무리 팽중호라도 이렇게 쉽게 이기지는 못하였을 터였다.
“역시 혼자서 하늘을 가리기는 힘들단 말이지.”
그나마 위지철이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식객이다.
하북팽가의 무인 중에도 위지철 정도 되는 무인이 더 나와야만 하였다.
“도수랑 채령이 밖에 없지 지금은.”
지금 하북팽가에서 위지철만큼의 실력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사람은 역시 도수와 곽채령뿐이었다.
팽중호는 일단 세가로 돌아가는 대로 둘부터 키워야겠다 생각하였다.
똑똑-
그때 누군가 팽중호가 있는 방은 문을 두드렸다.
팽중호는 얼른 피가 묻은 천을 숨겨 두고, 방문을 열었다.
드르륵-
“괜찮으십니까? 가가.”
방문을 두드린 주인공은 이세경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 가득했는데, 팽중호가 내상 입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가장 가까이서 마차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모를 수가 있겠는가?
“아아. 괜찮아.”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아니, 지금은 내가 무리해야만 해. 그래야 하북팽가가 사니까.”
팽중호는 지금은 어차피 자신이 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지금 하북팽가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르고 있다고 하지만, 어차피 팽중호 자신이 혼자 끌고 올라오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태였다.
이들이 제구실을 해서 스스로 수면 위로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고, 그 시간 동안은 자신이 무리를 해서라도 끌고 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더 자신의 몸을 챙기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마. 좋은 건 내가 다 먹고 있으니까.”
“돌아가면, 몸에 좋은 걸로 몇 개 보내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팽중호는 이세경과 함께 다시 객잔 아래로 내려왔다.
그때 의원을 들렀던 팽가 무인들도 모두 돌아와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음식을 시켜 놓고 팽중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먹지 그러셨습니까?”
“소가주님이 안 계시는데 어떻게 저희끼리 먹겠습니까!”
“그럼 제가 왔으니 이제 먹어 봅시다.”
“예!”
하북팽가의 식구들 모두 식사를 함께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뒤 식사가 끝나고, 오늘은 이곳에서 하루 쉬고 가기로 결정한 뒤 다들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팽중호도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다시금 돌아와 침상에 벌렁 누웠다.
“일단 지금까지는 생각대로이긴 한데…….”
이번 서문세가의 습격까지는 팽중호가 예상한 대로의 일이었다.
물론 생각보다 좀 더 빠르긴 했지만 말이다.
문제는 이제 이다음부터였다.
‘지금쯤이면 그들이 보냈던 이들이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겠지.’
지금 시간이면 그들이 보냈던 무인들과 장로들이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일 것인데, 그것이 아마 하북팽가의 앞날에 가장 중요한 분수령 중 하나가 될 터였다.
“흐음.”
여기까지 고민한 팽중호는 더 이상의 고민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였다.
어차피 그들이 내놓을 답은 몇 가지 정해져 있었고, 그들이 답을 내었을 때 그때 그 답에 맞는 해법을 실행하면 될 테니 말이다.
“일단 시간이 아까우니, 이것부터 좀 살펴볼까?”
팽중호는 침상에서 일어나 서문세가에 부상으로 받았던 두 개 중에 하나의 상자를 열었다.
딸칵- 끼이익-
상자의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하나의 서책.
서책의 위에는 청혼회원신공(靑魂回元神功)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우선 진짜인지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겠지.”
만약 이것이 가짜 내공 심법이라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은 필수였다.
가짜 내공 심법을 잘못 익혔다가는 그대로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사락- 사락- 사락- 사락-
팽중호는 천천히 청혼회원신공의 구결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진짜군. 이걸 되찾으려고 아주 안달이 나겠어.’
지금 팽중호의 손에 들린 청혼회원신공은 틀림없는 진짜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곳 이상한 곳이 없었고, 혼원벽력신공과 비교해도 분명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의 심법이었다.
이런 것을 지금 외부에 유출시켰으니, 반드시 되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터였다.
‘소환단이랑 내공 심법이라……. 아주 딱 적절하네.’
팽중호는 지금 이 두 가지가 자신에게 딱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수와 곽채령을 초절정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최적의 물건들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는데…….”
팽중호는 도수와 곽채령 말고도 한 명 정도 더 초절정의 고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무슨 일로 하북팽가를 벗어나도, 하북팽가에 머물며 하북팽가를 든든히 지켜 줄 고수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건 일단 세가로 돌아가서 보고 난 후에 정해야겠다.”
* * *
서문세가.
지금 서문세가는 모든 수뇌를 모아 긴급회의를 열었다.
“구 장로, 팔 장로, 칠 장로가 모두 당했단 말입니까?”
“거기다 무인들도 모두 죽었다고 합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팽중호가 그럼 화경을 넘어선 고수란 말입니까?”
지금 수뇌들 사이에서 뜨겁게 언쟁이 오가고 있었는데, 가주인 서문정천은 일단 말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흘흘…… 자자. 다들 잠시 흥분들을 가라앉히시게.”
그때 서문정천의 바로 앞에 앉아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고, 뜨겁던 회의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우리가 이렇게 떠든다고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하북팽가가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마, 맞습니다. 대장로님.”
서문정천 옆에 앉아 입을 연 노인의 정체는 서문세가의 대장로.
그는 지금 서문세가에서 가주인 서문정천보다도 더 입지가 강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내 가주에게 하나 묻겠네.”
“예. 말씀하십시오.”
“하북팽가가 가져간 게 무엇이라 하였지?”
“소환단과 청혼회원신공입니다.”
“흘흘. 소환단은 그렇다고 해도, 청혼회원신공을 가져갔단 말인가?”
“면목 없습니다.”
서문정천은 대장로에게 고개를 숙였다.
세가의 비전 신공인 청혼회원신공을, 가장 껄끄러운 경쟁 상대인 하북팽가에 쥐여 준 꼴이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가주를 탓하는 것이 아니네.”
자애롭게 말을 하는 대장로였지만, 실상 그는 이 서문세가 내에서도 손속이 잔혹하기로 유명한 무인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다른 서문세가의 수뇌들은 지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입을 잘못 놀렸다가는 큰 흉을 당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의 것을 빼앗겼으니, 되찾아 오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맞습니다.”
“장로 셋으로 안 된다면, 장로 여섯을 보내면 되지 않겠나. 내가 직접 가서 되찾아 오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