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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54화 (54/200)

54화 나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냐?

비무는 짧은 틈을 두고 계속 이어졌다.

다음은 사천당가와 제갈세가의 소가주 간의 비무.

이 비무는 두 사람이 모두 동시에 쓰러지면서 무승부로 끝이 났기에, 서문천호가 부전승으로 곧바로 결승으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어진 비무는 팽중호 대 위지철의 비무.

“제가 기권하겠습니다.”

본래 위지철이라면 팽중호와 비무를 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빠져 주는 것이 맞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미련 없이 곧바로 기권하였다.

그렇게 해서 빠르게 결승 무대가 결정되었다.

“마지막 결승을 진행하겠습니다. 서문세가의 서문천호 대 하북팽가의 팽중호입니다.”

비무가 진행된다고 하자 주변이 빠르게 고요해졌다.

사람들은 지금 이 비무에 말을 아껴 가며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먼저 비무대 위에 나타난 이는 바로 팽중호였다.

팽중호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듯 느긋한 발걸음으로 비무대 위에 올라섰다.

휘이익- 탓-

그리고 팽중호가 나타나자 그 반대편에 서문천호가 바람처럼 나타났다.

“서문세가의 서문천호다.”

“알아 임마.”

서문천호의 인사를 팽중호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받았다.

일순 조금 서문천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평상시처럼 돌아오더니,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정말 죽이고 싶게끔 만들어 주는구나.”

“아아. 나는 너를 죽이지는 않을게. 뭐,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말과 함께 시작된 팽팽한 기 싸움.

도저히 비무라고는 할 수 없을 만큼 살기가 가득한 기 싸움이었다.

스릉-

그렇게 기 싸움을 하다가 서문천호가 먼저 검을 꺼내 들었다.

그는 지금 한시라도 빠르게 팽중호를 베어 버리고 싶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서문천호의 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비무 참가자도 보여 주지 못한 엄청난 기운.

이 기운에 지켜보던 주변인들은 모두 깜짝 놀랐고, 서문세가 사람들은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특히나 서문정천은 서문천호를 보고 만족을 넘어선, 절대적인 신뢰의 눈빛과 미소를 보내었다.

‘정말로 잠혼천력공을 완벽히 터득했구나.’

잠혼천력공(蠶魂天力功).

서문세가에서 잠혼폭렬공을 개량하여 만들어 낸 무공이었다.

사실 잠혼폭렬공은 이 잠혼천력공을 만들어 내기 위한 실험작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이 잠혼천력공은 잠혼폭렬공의 부작용을 완벽히 상쇄하고 장점만 가져온 무공으로, 신공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수준의 무공이었다.

내공을 순간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는데, 부작용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서문천호는 이번 폐관에서 이 잠혼천력공을 완벽하게 터득한 것이었다.

‘초절정인 천호가 잠혼천력공까지 완벽히 익혔으니……. 두려울 것 없다.’

팽중호가 남궁선호와의 비무에서 보여 주었던 압도적인 모습에 조금 걱정이 들기도 하였지만, 지금 서문천호의 모습을 보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지금의 서문천호는 어쩌면 자신조차 쉬이 승리를 장담치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확실하게 죽여 주마.”

“야. 네가 내공만 뻥튀기시킨다고, 깨달음까지 뻥튀기시킨 게 아니잖아. 그런데 그거 가지고 무게 잡지 말아라 제발.”

“크큭. 이 정도 내공의 힘이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아니, 안 돼. 그걸 내가 지금 깨닫게 해 줄게. 대신 내기한 것이 있어서, 딱 일합밖에 못 보여 준다.”

파지직- 파지직- 파직- 파지짓-

팽중호의 몸에서 뇌기가 흐르고, 그의 눈동자 색마저 황금색으로 변하였다.

팽중호는 단 일합으로 끝내기 위해 혼원벽력신공을 상당히 끌어 올렸다.

“잘 봐라.”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팟- 철컥-

빠가각-

번쩍함과 동시에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팽중호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었고, 서문천호 또한 검을 들고 그대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아니, 한 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주르르륵- 뚝- 뚝-

서문천호의 정수리 부분이 움푹 팼고,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만, 아직 서문천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였는지, 의기양양한 표정 그대로 팽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휘익-

그리고 그때 갑자기 서문천호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움직였다.

마치 무엇인가를 피하려고 한 듯한 모습.

“그렇게 느려터져서 뭘 피하냐? 크크.”

지금 서문천호는 팽중호의 일도를 피하기 위해 고개를 튼 것이었는데, 이미 너무나 늦은 후였다.

물론, 서문천호는 자신이 정확히 보고 피했다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나는 이미 네 공격을 피했……. 쿠웨엑!”

자신의 상태도 모르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을 열던 서문천호가 갑자기 괴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머리가 박살이 났으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들- 부들- 부들- 부들-

바닥에 쓰러져서 애처롭게 몸을 부들부들 떠는 서문천호.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그의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이제 다시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금 팽중호의 일격에 한마디로 병신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런 실력으로 그렇게 설친 거야? 기가 차네.”

팽중호의 목소리가 고용한 비무장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 비무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벌린 채 멍한 눈으로 비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은 단 일합으로 결승이 끝이 났다.

직전에 그 엄청난 실력을 보였던 서문천호가 무엇을 해 보기도 전에 머리가 박살 나며 바닥에 쓰러진 것이다.

그에 반해 팽중호는 마치 마실이라도 다녀온 것처럼 여유만만한 상태였고 말이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

이것이 분명 같은 후기지수들 간의 비무가 맞단 말인가?

“이, 이게 무, 무슨!!”

아직까지 상황이 인지되지 않았던 서문정천이 상황을 깨닫고 급하게 비무대 위로 날아왔다.

우선은 급하게 서문천호의 상태를 확인하였는데, 분명 목숨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다만…….

“헤헤헤…….”

완전히 정신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몸이 다친 것은 어떻게 치료하면 된다지만, 정신이 나가 버린 것은 치료조차 불가능했다.

휙-

서문정천의 고개가 팽중호를 향해 돌아갔다.

그의 두 눈에 담겨 있는 분노, 절망, 살의 등…….

당장이라도 팽중호를 죽이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긴 눈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예? 그게 무슨 소리이신지요? 조금 전에 본인이 하셨던 말을 잊으신 겁니까?”

“!!!”

서문정천은 조금 전 공손세가에게 자신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고,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였다.

‘이, 이……! 당했구나!’

지금 자신의 꾀에 자신이 당해 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자신이 팽중호에게 검을 휘두르거나, 다른 소리를 내뱉으면 조금 전 자신이 공손세가에 했던 말을 전부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무림에 서문세가와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좋지 않게 퍼져 버릴 것이고, 그것은 곧 서문세가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것이 될 터였다.

“제 일도를 피하지도 못한 서문세가 소가주의 실력을 탓하십시오. 아니면 설마 고상한 비무를 생각하신 것은 아니시겠지요? 크큭.”

팽중호의 명백한 비아냥에도 서문정천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지금 팽중호가 한 말은 전부 자신이 공손세가에 했던 말이었으니 말이다.

‘반드시, 반드시 복수해 주마.’

서문정천은 지금 가슴이 찢어졌지만, 일단은 참아내기로 하였다.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너무나도 많았으니 말이다.

여기서 더 이상의 추태를 보이는 것은 한 세가를 이끌어 나가는 가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부상을 가져오라!”

서문정천의 말에 서문세가의 무인이 두 개의 목갑을 들고 나타났다.

이번 비무회의 우승 상품인 소환단과 청혼회원신공이 든 목갑이었다.

“가져가라. 우승 부상이니. 단, 조심하길 바란다.”

“어이쿠. 감사합니다.”

서문정천의 서슬 퍼런 말에도 팽중호는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과장된 모습으로 목갑을 받아들었다.

“오대회합은 끝이 났습니다! 다들 이만 돌아가시기를 바라오!”

서문정천은 직접 서문천호를 들고 자리를 옮겼고, 그렇게 오대회합은 졸속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 * *

“이래저래 얻은 게 많은 회합이었네.”

팽중호는 비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모든 하북팽가 식구들을 이끌고 다시 세가로 출발했다.

더 이상 서문세가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서문세가로 올 때와 같이, 같은 마차에 타고 있는 팽중호와 이세경.

“마지막에 서문천호의 머리를 도신으로 치신 겁니까?”

“응. 맞아. 그래도 비무인데 죽일 수는 없잖아?”

팽중호는 서문정천에게 혼뢰단세의 초식을 펼칠 때 일부러 넓적한 도신으로 가격했다.

그래도 나름 비무회인데 죽일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지금 상태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절대로 서문세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이세경의 말처럼 서문세가가 절대로 오늘의 일을 넘길 자들이 아니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팽중호를 죽이려고 할 터였다.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고, 내가 더 도발한 거야.”

오대회합에서 하북팽가의 힘을 다른 오대세가들에게 보이고, 서문세가를 도발하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서문세가가 이 도발에 걸려들어 팽중호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

이것이 이번 서문세가에서 팽중호가 원하던 것들이었다.

“물론 가가께서 계시니 괜찮겠지만, 서문세가는 보유하고 있는 무인들이 꽤…….”

콱-

이세경이 서문세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괴음.

마차에 무언가가 틀어박히는 소리였다.

“생각보다 더 빨리 왔네. 어지간히도 분했나 봐. 세경이 너는 마차 안에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어.”

“예.”

팽중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차 밖으로 나섰다.

지금 마차가 가고 있던 길은 주변에 인적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숲길.

그런데 주변에 아주 진한 살기가 넘실거리며 하북팽가 일행의 마차를 포위하고 있었다.

“돈도 많으면서, 화살 좀 좋은 거 쓰지 그래?”

팽중호는 마차의 지붕에 박혀 있는 화살을 뽑아내며 주변에 외쳤다.

그리고 어느새 팽가 무인들과 위지철이 나타나 싸울 태세를 하고 있었다.

스스스스스스- 스스스스스스-

풀숲이 이리저리 흔들리더니, 검은 복면을 한 이들 수십이 나타났다.

하나같이 평범치 않은 기세를 흘리는 복면인들.

팽중호는 그들을 바라보며 조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서문세가에서 아직도 나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냐?”

분명 자신의 실력을 보았을 텐데, 겨우 이런 자들만 보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 옆에는 위지철과 도수도 있다는 것을 알 텐데 말이다.

“흘흘. 걱정 말거라. 너를 잡겠다고 우리가 나왔으니 말이다.”

그때 풀숲에서 또 다른 인영 셋이 나타났다.

그들은 복면을 쓰지 않았는데, 셋 모두 백발 백미가 인상적인 초로의 노인들이었다.

“자기가 오긴 무섭고, 그래서 뒷방에 계시는 영감님들을 보냈나 보네.”

“흘흘흘. 그래. 오랜만에 마실 좀 다녀와 달라고 하더구나.”

“그거 속은 겁니다. 여기가 당신들 묏자리니 말입니다.”

“어린놈이 입심이 좋구나.”

“뭐, 입심만 좋은 건 아닙니다만.”

“그래.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꾸나.”

화아아아아악-

세 노인의 몸에서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 보았던 후기지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운.

팽중호는 이 기운을 느끼고,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어디, 싸울 맛 좀 나나 봅시다. 영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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