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스릉-
팽중호가 무적도를 뽑아 들었다.
파지직- 파직- 파지직-
그러자 무적도가 아니라, 팽중호의 몸에서 뇌기가 번쩍이기 시작했다.
뇌기와 함께 가볍게 남궁선호의 기운을 밀어내는 팽중호의 기운.
지금 팽중호의 모습은 그야말로 뇌신(雷神)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뇌신지체(雷神之體)’
혼원벽력신공으로 화경의 경지를 넘어섰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 강력한 뇌기가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물론 혼원벽력신공으로 화경의 경지를 넘은 무인이 오랫동안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으니, 여기에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것이 무엇인지 모를 테지만 말이다.
“자. 시작해 봅시다.”
“하하. 허세가 가득하십니다.”
남궁선호는 지금 팽중호가 몸 밖으로 뇌기를 뿜는 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해서 허세를 가득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최대한 강해 보이기 위한 허세.
‘저러면 금방 내공이 바닥날 터. 이 비무는 내가 이겼다.’
내공을 몸 밖으로 유형화시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막대한 내공이 소모된다.
유연하게 싸움을 이끌어 가면, 어렵지 않게 비무의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아, 머리 굴리지 마시고, 비무에 집중하십쇼. 일합에 끝나기 싫으시면.”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 보십시오.”
팽중호의 도발에 남궁선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팽중호를 역으로 다시 도발하였다.
지난 내공 싸움에서는 어이없게 지고 말았지만, 비무에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비무란 단순히 내공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끝내 드려야지 뭐.”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혼뢰단세(混雷斷世).
파직- 철컥-
“자. 끝났습니다.”
미련 없이 몸을 돌려 비무대를 벗어나려는 팽중호.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뭔가 번쩍한 것 같기는 한데, 갑자기 끝났다고 몸을 돌리다니?
“하! 겁이 나신 겁니…….?”
서걱-
남궁선호가 무엇이라 입을 더 열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무언가 잘려 나가는 소리.
채- 챙챙- 챙그랑-
사사사사사삭-
남궁선호가 들고 있던 검이 반으로 잘리고, 그가 입고 있던 옷까지 잘려 나갔다.
순간적으로 나체가 되어 버린 남궁선호.
하지만 그는 지금 황급히 몸을 가릴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팽중호의 뒷모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 하북팽가의 팽중호 승…….”
지금 남궁선호뿐만 아니라, 장내에 있는 모든 이들이 눈을 끔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 지금 팽중호의 일도를 제대로 본 사람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고요해진 비무장에 울려 퍼지는 여유로운 팽중호의 걸음 소리.
너무나도 압도적인 강함.
사람들은 지금 그것에 압도되어 입조차 벙끗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힘 조절해서 베는 것도 은근히 힘들단 말이야.”
비무대 위를 벗어난 팽중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
팽중호는 지금 일부러 힘을 조절해서 남궁선호를 벤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가 그대로 양단되어 죽어 버렸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벌써 남궁세가를 적으로 돌리면 힘드니까.’
지금의 하북팽가로는 서문세가 하나 상대하기도 매우 벅차다.
그런데 여기서 남궁선호를 비무회에서 베어 버린다면, 그대로 남궁세가와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으아아아아아아!!!!”
그때 비무대에서 커다란 절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절규의 주인공은 바로 남궁선호.
“흐음. 소가주가 바뀌려나?”
남궁세가는 소가주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하더라도, 자격이 미달된다 싶으면 언제든 새로운 소가주를 앉히는 곳이었다.
남궁선호가 이번 오대회합에서 아주 개망신을 당했으니, 아마 소가주의 자리가 바뀔지도 몰랐다.
“대단하십니다! 주군!”
“이번에 팽가로 돌아가면 꼭 대련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가. 제 걱정이 쓸데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겠습니다.”
팽중호가 하북팽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자, 도수, 위지철, 이세경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해 왔다.
도수와 이세경은 완전히 놀란 눈이었고, 그나마 팽중호의 실력을 조금 엿본 위지철은 놀란 눈은 아니었지만, 두 눈에 호승심을 활활 태우고 있었다.
“하하. 일단 느긋하게 앉아서 다음 대련이나 구경합시다.”
팽중호는 그들에게 시원하게 웃어 준 후에 다시 본인의 자리에 앉았다.
아직 비무회가 남아 있었다.
자신은 몰라도 주변에 있는 다른 하북팽가의 무인들에게는 지금 비무회는 분명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될 터이니, 자리를 떠날 생각은 없었다.
“다, 다음은……. 서문세가의 서문천호 대 공손세가의 공손후.”
아직까지 팽중호가 보여 준 실력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채로 시작된 다음 비무.
이번에는 드디어 서문세가의 서문천호의 차례였다.
그리고 그의 상대는 이번에 하객들로 초대된 다른 세가의 소가주들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공손세가의 소가주 공손후였다.
사실 공손후는 본래 이 비무회에 낄 수 없었지만, 위지철을 비무에 초대하기 위해 급하게 이 비무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 공손세가의 이름을 알린다.’
갑자기 참여하게 되었지만, 공손후는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이 비무에 임했다.
지금 비무회에서 단 한 번이라도 승리하게 되면, 공손세가와 공손후라는 이름이 무림에 널리 퍼질 터이니 말이다.
“서문세가의 서문천호다.”
“공손세가의 공손후입니다.”
서로 인사와 함께 공손후는 자신의 애병인 쌍검을 손에 쥐었다.
예로부터 공손세가는 쌍검술의 대가인 곳.
공손후는 지금 공손세가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쌍검술의 고수인 만큼, 꽤 자신감이 넘치는 상태였다.
“갑니다!”
타앗-
공손후가 먼저 벼락같이 서문천호에게 쇄도했다.
선수필승(先手必勝).
공손후는 먼저 움직여 이 비무를 유리하게 이끌어 갈 생각이었다.
“느리군.”
“헛?”
호기롭게 서문천호에게 달려들던 공손후의 신형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 이유는 바로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문천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앞에 있던 서문천호가 어느새 뒤로 돌아갔단 말인가?
서걱- 촤아악-
“크아아악!!”
그리고 공손후가 뒤로 몸을 돌려 채 대비를 하기도 전에 일이 벌어졌다.
공손후의 왼팔이 그대로 잘려 나간 것이다.
비명을 내지르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공손후.
“이, 이게 무슨! 후야!”
“소가주님!!”
공손세가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부리나케 달려 나와 공손후를 데리고 곧바로 의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남은 공손세가의 다른 인물들은 곧바로 서문세가의 가주인 서문정천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 서문천호가 보여 준 손속은 분명 비무회에서 보이기에는 너무나 과한 것이니 말이다.
“서문 가주님!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보시지 않았습니까! 팔을 베다니요! 이건 도를 넘은 것 아닙니까!”
“지금과 같은 시기에 옛날처럼 고상한 척하는 비무를 생각하시다니……. 그러니 공손세가가 크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이!! 서문 가주!!!”
공손세가의 사람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지금 서문정천은 노골적으로 공손세가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탓을 하려면 저희가 아니라, 겨우 그런 실력밖에 안 되는 공손세가의 소가주를 탓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챙-
거칠게 공손세가 사람의 쌍검이 뽑혀 나왔다.
이대로 가만히 듣고 있지는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
하지만 서문정천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의 무림은 약육강식의 세계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당신이 저에게 칼을 움직인다면, 공손세가는 분명 아주 큰 후환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
공손세가의 사람은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다시금 쌍검을 집어넣었다.
지금 여기서 자신이 정말로 쌍검을 서문정천에게 휘두르는 순간, 공손세가 전체가 커다란 후환에 휩싸일 것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치료는 우리 서문세가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휙-
공손세가의 사람은 대답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다른 오대세가는 물론 초대되었던 다른 자들도 모두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그들이 저울질하기에 서문세가는 분명 강자였고, 공손세가는 약자였으니, 얽히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힘이 있는 자가 곧 법이자 규칙인 세상이 바로 지금의 무림이었다.
“자. 비무회를 계속하도록 하지요.”
* * *
팽중호는 비무대 아래에서 지금 일련의 사태를 모두 지켜보았다.
‘철저한 약육강식을 또 목격하는군.’
팽중호의 몸으로 환생한 이후로, 예전의 무림과는 조금 다른 철저한 약육강식의 무림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에게는 이런 약육강식의 무림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니 조금 뒷맛이 씁쓸하기는 하였다.
그래도 의와 협이 있던 무림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서문정천의 말 때문에 내 마음대로 날뛰어도 문제없겠어.’
다만 지금 팽중호에게 좋은 일이라면, 조금 전 서문정천의 말 덕분에 서문천호를 상대할 때 마음껏 날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입으로 방금 그런 소리를 지껄였으니, 혹여 서문천호가 어떻게 되더라도 말을 꺼내지는 못할 터였다.
휘익-
그때 비무를 끝낸 서문천호가 팽중호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잘 보았겠지? 너는 저기서 손이 아니라 머리가 잘릴 것이다.”
그는 입가에 아주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니 조금 전 공손후의 팔을 자른 것이 팽중호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이란 걸 이 미소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아아, 잘 봤지. 이거 어쩌냐 나는 네 미래를 보여 주지 못했는데……. 대신 미리 말은 좀 해 줄게. 넌 앞으로 평생 병신으로 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할게.”
“크큭. 실력에 자신이 넘치는 것 같은데, 금방 네 실력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
“실력을 제대로 가늠 못 하는 거 보니까, 그냥 이번에 내 손에 박살 나는 게 낫겠다. 괜히 나가서 끔살당하느니 말이야.”
휘익-
서문천호는 이번에도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이게 가정교육이 얼마나 잘못되었으면, 저런 놈이 소가주라고 앉아 있을까?”
“그래도 실력만큼은 진짜인 것 같습니다.”
팽중호의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말에, 위지철이 조금은 심각한 표정으로 팽중호에게 한마디를 하였다.
위지철은 조금 전 공손후의 뒤로 돌아가는 서문천호의 움직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서문천호의 실력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고, 서문천호가 입만 산 무인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위 소협. 저랑 내기 하나 하시겠습니까?”
“예?”
이 상황에서 갑자기 내기라니?
“제가 딱 일합으로 놈의 머리를 깨면 제 승리. 아니면 위 소협이 승리하는 것으로 해서 내기를 하나 하죠. 제가 이기면 위 소협이 저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무당파 무공 하나만 알려 주십쇼. 제가 지면 위 소협에게 혼원벽력신공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어떠십니까?”
“……! 그만큼 자신 있으시단 겁니까?”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내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위지철로서는 사실 조금도 잃을 것 없는 내기였다.
무당파에 있는 수많은 기본 무공 중 하나를 팽중호에게 가르치는 것쯤은 사문에서도 뭐라 하지 않을 터였다.
이미 무림에 퍼진 것들도 꽤 많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것 대신 혼원벽력신공을 배울 수 있다면, 분명 어마어마하게 남는 장사가 아니겠는가?
“지금부터 무당파 무공을 뭘 가르쳐 줄지 생각하고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