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50화 (50/200)

50화 벌써 근질거려 죽겠는데.

“이, 이게…….”

“이런 결과가 나오다니?”

삼대 제자들의 비무회가 끝이 났다.

그리고 나온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하북팽가 무인 두 사람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것도 두 사람은 압도적인 강함으로 다른 오대세가의 제자들을 찍어 누르며 오르기까지 하였다.

“잘하셨습니다.”

팽중호는 훌륭하게 비무회를 끝내고 온 선호춘과 장하섭에게 잘했다고 해 주었다.

팽중호의 생각보다도 훨씬 더 잘해 준 두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 기세 계속 이어 가 봅시다.”

아직 비무회는 많이 남아 있다.

오늘은 삼대 제자들의 비무가 끝이 난 것이고, 내일부터 이대 제자, 그다음은 일대 제자…… 이렇게 계속해서 수준이 올라가며 비무회가 계속되었다.

팽중호는 지금 이 기세를 이어서 앞으로 있을 모든 비무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바랐다.

“자, 이만 돌아가죠.”

비무회가 끝이 났으니, 더 이상 여기에 머물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북팽가 일행이 숙소로 돌아가려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휘리릭- 타탓-

갑자기 그 앞을 누군가가 나타나 막아섰다.

짙은 청록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훤칠한 모습의 청년.

“네가 팽중호인가?”

제일 앞서 있던 팽중호를 가리키며 입을 여는 청년.

팽중호가 그래도 한 세가의 소가주인데, 청년의 말투는 너무나 예의가 없었다.

“그래. 내가 팽중호다. 넌 뭐냐?”

눈에는 눈으로 답하는 법 아니겠는가?

팽중호는 청년의 정체가 뭐든 간에 예의를 차려 줄 생각이 없었다.

“서문천호다.”

“서문세가의 소가주!”

“사검룡!”

서문세가 소가주 사검룡(死劍龍) 서문천호.

퍌룡삼봉 중 한 명으로, 그가 한 번 검을 움직이면 반드시 하나의 목숨이 사라지기에 붙은 별호가 바로 사검룡이었다.

한동안 무림에 나타나지 않아 그가 폐관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갑자기 팽중호의 앞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로 찾아왔냐?”

“검룡을 급습해서 운 좋게 이겼다더군.”

“내가 급습해서 운 좋게 이겼다고? 다들 눈알이 삐꾸였나 보네.”

남궁선호는 팽중호에게 내공 싸움에서 진 것이 수치스러웠는지, 자신은 내공을 조금 담아서 건네었는데, 팽중호가 그것에 분개해 갑자기 내공을 가득 담은 술잔을 건네었다고 하였다.

그 바람에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던 자신은, 순수하게 술잔을 받아들려다 내상을 입은 것이라며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물론 가까이서 그 모습을 지켜본 고수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남궁세가의 일이니 다들 쉬쉬했고, 남궁선호의 말이 진실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쫌팽이들이야 하여간.’

뭐, 팽중호는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다.

아마, 모두가 보는 앞에서 완벽히 박살을 내 놓지 않는 한 믿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날 찾아온 게, 검룡인지 뭐시긴지를 내가 운 좋게 이겼다고 말하고 싶어서 온 거냐?”

“비무회에서 널 죽이고, 네 옆에 있는 이세경을 내가 다시 데려가겠다. 그 말을 전하러 왔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비무회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말하는 서문천호.

통상 비무회에서의 살인은 당연히 금기시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비무회의 이야기.

지금 이 비무회는 서문세가의 안방에서 열리는 비무회이니, 서문천호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어느 선까지는 분명 묵인이 될 터였다.

특히나 아직까지 힘이 없는 하북팽가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서문천호가 비무회에서 팽중호를 죽인다 하여도, 아마 단순한 사고쯤으로 일이 마무리될 것이다.

“아, 그래? 그럴 일 없을 테니까, 너나 조심해라. 내가 아직 수양이 부족해서 가끔 실수로 죽일 수도 있거든.”

“건방진 놈을 죽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그건 나랑 똑같네.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휘리릭- 탓-

서문천호는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몸을 돌려 사라졌다.

자기 할 말만 해 놓고 떠나는 싸가지.

당연히 팽중호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아니, 최악에 가까운 인상을 남겼다.

“너랑 혼처가 오갔던 놈이 저놈 맞지?”

“예. 맞습니다. 가가.”

“여기로 시집왔으면 꽤 고생했겠다.”

“저를 걱정해 주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지금은 누가 뭐래도 내 연인이잖아? 크크크.”

팽중호의 갑작스러운 고백 아닌 고백에 순간 이세경의 두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평소 그녀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 진짜 감정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물론 팽중호는 그렇게 얘기해 놓고 정작 별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팽중호의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비무회에서 다른 오대세가 놈들을 박살 내 놓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아아. 이거 내가 비무를 할 때까지 어떻게 참지? 벌써 근질거려 죽겠는데.”

* * *

서문세가의 심처.

그곳에는 지금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가주 서문정천과 소가주 서문천호.

“그래. 폐관에서 얻은 것이 있느냐?”

“물론입니다. 이제 검룡이든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습니다.”

“허허, 그걸 완벽히 터득한 모양이구나.”

“예.”

서문정천은 자신에 아들인 서문천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확실히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과는 온몸의 기도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훨씬 더 정제되고 잘 벼려진 기운.

‘돈을 들인 보람이 있구나.’

서문세가는 지금 서문천호에게 정말 막대한 양의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서문천호를 통해 오대세가의 수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서문세가는 하북팽가를 밀어내고 오대세가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당연히 다른 오대세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기 일쑤였다.

‘이번 오대회합을 통해 그 모든 평가를 뒤집는다.’

서문세가는 그래서 이번에 서문세가에서 열리는 오대회합에서 그 평가들을 완전히 뒤집을 생각이었다.

서문천호의 힘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데 아까 팽중호를 만났다고 하던데. 어떻더냐?”

“분명 강하다는 건 느꼈지만, 어차피 검룡이 진심으로 했다면 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그래도 하북팽가는 오랫동안 남궁세가와 함께 오대세가의 수좌를 다투었던 곳이다. 방심은 없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하북팽가보다 모용세가 쪽이 더 문제일 겁니다.”

서문정천의 당부에도 서문천호는 팽중호를 크게 생각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만났던 팽중호는 분명 무언가 숨겨진 힘이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팽중호의 알려진 실력은 초절정.

하지만 초절정에도 하늘과 땅이 있는 법이다.

‘초절정의 초입을 막 지난 실력으로는 나에게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오히려 이번에 이를 갈고 나온 검룡이나, 모용세가의 소가주가 훨씬 더 위협적이었다.

그들도 자신처럼 세가의 지원을 원 없이 받으며 실력을 키웠을 테고, 그렇다면 분명 초절정의 중간은 지났을 테니 말이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그리고 그 신조상단의 여식은 어떻게 할 생각이더냐?”

서문정천은 이번에는 신조상단의 이세경에 관해서 물었다.

본래 서문천호의 혼처로 점찍었던 여인이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서문세가를 거절하고 하북팽가에 붙었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어차피 이번에 제 이름이 무림에 퍼진다면, 더 좋은 혼처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본래 제 것이었으니 일단 다시 뺏어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문천호는 어차피 이세경에 대한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에게 이세경은 그저 무림으로 진출할 때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본래 자신의 것이었던 것을 빼앗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되찾아 오는 것이 인지상정일 터.

되찾은 이후는 그때 가서 정하면 되었다.

“네가 서문세가의 희망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서문세가를 무림 제일로 올려놓겠습니다.”

* * *

다 낡은 하북팽가의 숙소 안.

팽중호가 정한승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 선생. 그래서 뭐 좀 많이 보셨습니까?”

“음 확실히 도움이 되었소.”

정한승은 이곳 서문세가에 들어와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서문세가에 펼쳐진 진법들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보통의 곳은 아니라 그런지, 겹겹으로 다양한 진법들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기에, 정한승은 꽤 많이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이 근처에 어떤 진법이 있는지는 파악하셨습니까?”

“산기진(散氣陳)이 펼쳐져 있었소.”

“어쩐지.”

팽중호는 이 전각에서 팽가 무인들의 운기를 금지시켰다.

그가 어제 먼지를 날릴 때, 무언가 조금 이상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정한승에게 혹시나 진법 같은 것이 쳐져 있나 조사를 부탁했는데, 역시나였다.

기운이 잘 모이지 못하도록 하는 산기진이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파훼는 가능하십니까?”

“벌써 파훼는 해 두었소.”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부탁드리겠습니다. 전각에 환영진 하나만 쳐 주십시오. 그냥 저희는 여기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말입니다.”

“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오.”

팽중호는 주변에 환영진까지 부탁했다.

이 주변에서 전각을 감시하는 눈길들이 몇몇 있었다.

팽중호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수련하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정한승에게 환영진을 부탁한 것이었다.

스윽- 탁- 탁- 탁-

자리에서 일어난 정한승은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이나 나무 조각들을 놓아두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각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제 자리로 돌아온 정한승.

“가장 간단한 환영진이니, 그리 오래 가지는 못 갈 것이오.”

“괜찮습니다. 뭐, 어차피 비무회가 끝나면 바로 떠날 것이니까요.”

환영진의 설치가 끝나자마자 팽중호는 팽가 무인들을 전각의 가장 넓은 곳으로 불러 모았다.

“이제부터는 운기를 하셔도 됩니다. 다만 당부드릴 것은 웬만하면 이 전각 밖으로 나가시지는 말고, 전각 안에서만 하시라는 겁니다.”

“예!”

“그럼 오늘은 제가 운기를 봐 드릴 테니, 다들 여기서 운기를 하십시오.”

팽중호의 말에 곧바로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하는 무인들.

팽중호는 그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그들의 운기를 도왔다.

“자. 도수는 잠깐 따로 좀 보자.”

“예! 주군!”

한창 모두의 운기를 돕고 난 팽중호는 이번에 도수를 따로 불렀다.

내일의 비무회에 출전하는 이가 도수였기 때문이었다.

“노호진산도는 완전히 익혔지?”

“예! 주군!”

“좋아. 그럼 내가 지금 노호진산도랑 함께 쓸 수 있는 간단한 장법을 하나 알려 줄게.”

“예?! 제가 가능하겠습니까?!”

내일이 비무회인데 오늘 장법을 알려 준다니?

아무리 도수가 재능이 있다고 해도 하루 만에 비무에 써먹을 만큼의 성취를 얻기는 불가능할 터였다.

“딱 1초식이 전부인, 아주 간단한 거니까 바로 써먹을 수 있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도수는 팽중호의 말에 더 이상의 의문은 갖지 않았다.

팽중호가 할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노호진산도를 상대가 피하거나 흘려 내고, 너에게 결정타를 날리러 올 때 쓰면 되는 거야.”

지금 팽중호가 가르치려는 장법은 사실 노호진산도에 포함된 하나의 초식이라고 봐도 무방한 장법이었다.

그만큼 노호진산도의 약점을 완전하게 보완해 주는 장법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노호진산도의 성취가 완벽하지 못하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이제야 전수해 주는 것이었다.

“일단 먼저 보는 게 빠르겠지. 자, 나를 공격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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