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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49화 (49/200)

49화 한 잔 드려야겠죠.

“아, 예.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팽중호입니다.”

팽중호는 남궁선호와 마주 인사를 하며 그를 슬쩍 훑어보았다.

‘확실히 남궁세가는 남궁세가이기는 하네.’

느껴지는 기운이 지금까지 만나 보았던 다른 이들과 달랐다.

정협룡이라 불리는 위지철보다도 훨씬 더 정돈되고, 잘 다듬어진 기운.

지금의 위지철보다도 한두 수는 위에 있었다.

팽중호의 전생에도 남궁세가는 언제나 걸출한 고수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지금도 그건 크게 변하지 않은 듯싶었다.

‘제일 드잡이하기 재밌는 곳이었는데 말이야.’

팽중호가 전생에 가장 많이 찾아가서 시비를 걸었던 곳이 남궁세가였다.

남궁세가와 하북팽가는 애증의 관계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서로 검과 도에 대한 자부심이 무림에서 제일인 곳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만나 뵐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예. 뭐.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이번에는 남궁선호의 눈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을 보고 하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네. 아니, 자만심이라고 해야 하나?’

남궁세가의 핏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 같은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자신들이 무림에서 최고라는 자신감이자 자만심이었다.

물론 크게 틀린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남궁세가는 그럴 만한 자만심은 가져도 될 힘을 가진 곳이긴 했으니 말이다.

“제가 술을 한 잔 따라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때 갑자기 남궁선호가 팽중호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주겠다고 하였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술을 한 잔 따라 준다?

그냥 순수하게 술을 따라 주고 싶어서 일 리가 만무했다.

‘내공 싸움을 해 보자는 거군.’

지금 상황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간단하게 실력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내공 싸움이었다.

술을 따라 준다는 것은 분명 이 내공 싸움을 한번 해 보자는 뜻일 터였다.

'그럼 또 한 번 어울려 줘야지. 크크크.'

“그러시죠.”

“하핫!”

쪼르르륵- 휘익-

남궁선호가 잔에 술을 따르더니, 그것을 팽중호에게로 던졌다.

빠르지도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게 팽중호를 향해 날아오는 술잔.

지금 남궁선호는 이 술잔에 내공을 가득 담아 팽중호에게 던진 것이다.

‘뇌룡의 힘 좀 어디 볼까?’

팽중호의 내공이 부족하다면 그대로 술잔이 깨지거나, 아니면 내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남궁선호는 팽중호가 얼마나 이 술잔을 잘 잡아 낼지를 지켜보기로 했다.

내공을 가득 담았으니, 분명 쉽게 잡지는 못할 터였으니 말이다.

스윽-

“!!”

하지만 남궁선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팽중호는 아주 가볍게 술잔을 잡아 냈었다.

마치 조금의 내공도 담기지 않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 모습에 남궁선호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상당한 내공을 담은 것이었는데, 저렇게 쉽게 잡아 내다니?

꿀꺽-

잔을 잡은 팽중호는 곧바로 잔을 깨끗이 비웠다.

그리고는 뜻을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남궁선호를 바라보았다.

“자. 제가 받았으니, 한 잔 드려야겠죠.”

쪼르르르륵-

팽중호는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받은 것이 있으니, 돌려줘야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벌써부터 즐거워 죽겠군. 크크크.’

팽중호가 전생에 남궁세가와 가장 많은 드잡이를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저 남궁세가의 자만심 넘치는 두 눈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게 너무 즐거워서였다.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지 않겠는가?

휘이익-

팽중호가 가볍게 남궁선호에게 잔을 던졌다.

남궁선호는 이 잔을 팽중호와 똑같이 가볍게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팽중호처럼 가볍게 잡아 내지 못하였다.

터어억-

‘허업! 큭!’

남궁선호는 잔에서 전해지는 막대한 내공에 지금 정신이 없어졌다.

잔을 잡기 위해 혼신에 노력을 다하는 남궁선호.

그는 지금 내공을 있는 대로 급하게 끌어 올려, 잔에서 밀려오는 팽중호의 내공을 감내해 나갔다.

주르륵-

그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지만, 지금 남궁선호의 입가에서 작은 핏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내상을 입은 것이다.

“크윽, 큭!”

퍼석- 촤라락-

결국 남궁선호는 팽중호가 던진 잔에 담긴 내공의 힘을 이기지 못하였고, 순간 잔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안에 들어 있던 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그러진 얼굴로 바닥에 흩뿌려진 술잔과 술을 바라보는 남궁선호.

‘이럴 수가.’

남궁선호는 자신이 지금 참패를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공만큼은 팔룡삼봉 중 누가 와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 팽중호에게 내공으로 완전히 압도를 당해 버렸으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나이 차이가 나지도 않는데 말이다.

“이런, 제가 힘을 너무 줬나 봅니다.”

능청스럽게 입을 떼는 팽중호.

남궁선호는 그런 팽중호를 한 번 쏘아보고는, 말도 없이 몸을 돌려 자리를 벗어났다.

지금 그의 고고한 자존심이 이 상황을 허락지 않는 것이었다.

‘크크크. 아 저 얼굴은 언제 봐도 질리지가 않아.’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나기 전의 남궁선호의 모습을 놓치지 않은 팽중호였다.

수치, 분도, 놀람, 당황 등의 감정이 담겨 있는 표정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았다.

“자자. 밥이나 마저 먹읍시다.”

* * *

오대회합의 첫날 식사 자리가 끝이 난 저녁.

하북팽가 일행은 서문세가에서 마련해 놓았다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문세가 안에 있는 한 전각.

하지만 그곳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인상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분명 도를 넘은 겁니다 소가주님!”

“이, 이 개자식들이……!”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숙소의 상태를 보고, 불같이 화를 토로했다.

그만큼 지금 눈앞의 숙소의 상태가 너무 열악했으니 당연했다.

그극- 끼이이이익-

얼마나 기름칠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는지 힘을 가득 실어야 간신히 열리는 문.

거칠다 못해 소름 끼치는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

저벅- 저벅- 끼이익- 끼익-

안으로 들어서자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먼지들이 주변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버려진 전각이군요.”

이세경의 말처럼 지금 이 전각은 이렇게 버려진 지 꽤 오래된 듯했다.

주변에는 거미줄도 상당히 많았고, 먼지 또한 뽀얗게 내려앉아 있었으니 말이다.

“이건 너무 노골적입니다.”

위지철마저 인상을 쓰며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를 그들이 무시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해도 너무했으니 말이다.

같은 정도의 길을 걷는 문파인데, 이런 노골적인 푸대접이라니?

“아아. 이렇게 대접해 주니 더 좋지 않습니까?”

“예?”

“??”

그때 대접해 주니 좋다는 팽중호의 말에, 다들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이런 푸대접을 받는 데 좋다니?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저희를 싫어하는 놈들의 대가리를 깰 때의 기쁨을 아십니까? 크크크.”

팽중호는 지금 속으로 차곡차곡 서문세가의 행동들을 쌓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이렇게 쌓인 것들을 쏟아 내며, 그들의 표정이 일그러질 때의 기쁨을 상상하면, 이런 일들은 다 웃어넘길 수 있었다.

“일단 다들 창문을 싹 다 열어 두십시오.”

팽중호의 말에 팽가의 무인들은 재빨리 움직여 전각의 창문들을 모두 개방했다.

“다 열었습니다.”

“그럼 다들 나가서 조금 멀리 떨어져 계십쇼.”

“예.”

팽중호가 뭐를 하려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팽중호의 말대로 다시금 전각 밖으로 벗어났다.

먼지 쌓인 전각 안에 홀로 남은 팽중호.

“후우.”

짧게 숨을 내쉰 팽중호는 혼원벽력신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파직- 파지직- 파짓-

팽중호의 몸에 튀어 오르는 뇌기.

그리고 그와 함께 팽중호의 주변으로 기의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번쩍-

일정 이상 내공을 끌어 올리자 팽중호의 두 눈이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잉-

점점 더 거세게 몰아치는 기의 바람.

아니, 이제는 폭풍이라고 해도 될 만큼 강력한 바람이 주변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자, 청소를 시작해 볼까.”

스윽-

팽중호가 손을 앞으로 슬쩍 내뻗었다.

그러자 기의 폭풍이 손을 따라서 앞으로 뻗어 나가며, 전각에 내려앉아 있던 먼지들을 날려 버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팽중호가 천천히 걸으며 손을 움직일 때마다 전각에 쌓였던 먼지들이 창을 통해 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청소하는데 내공을 이렇게 쓰는 놈이 몇이나 있을까?’

이 무림에 고작 청소를 하는데 이렇게 내공을 쓰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가 갑자기 궁금한 팽중호였다.

그렇게 팽중호가 전각을 모두 휘젓고 난 후, 다시금 처음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자. 다들 들어오십시오.”

우르르르르-

“허…….”

“허억!”

먼지 한 톨 남아 있지 않고 깨끗하게 변해 있는 전각의 내부.

팽가의 무인들 모두가 놀라서 전각과 팽중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자. 청소 끝났으니까, 다들 잘 준비합시다.”

“예, 예.”

팽가의 무인들은 아직까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일단 잠을 잘 준비를 시작하였다.

“내공으로 청소하신 겁니까?”

“예. 그게 빠르지 않습니까?”

위지철이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내공으로 기의 바람을 일으켜 먼지를 날린다?

일견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나 이렇게 건물 전체를 휩쓸 수 있을 만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유지한다니?

지금의 위지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저는 가가와 한방을 쓰면 되는 것입니까?”

“위 소협이랑 도수가 나랑 같은 방을 쓰고, 세경은 방을 따로 줄 거야.”

“지금 여기는 공적인 곳이 아닙니까?”

“절대로 아니지. 여긴 우리밖에 없잖아?”

팽중호는 아주 완강히 거절했다.

합방까지 하면 그대로 코가 꿰이는 것인데,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흐음. 알겠습니다. 가가, 첫날밤은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호홋.”

“자, 위 소협 가시죠. 가자 도수야.”

“예! 주군!”

* * *

오대회합의 둘째 날.

아직 제대로 된 오대회합은 시작도 하지 않았건만, 벌써 오대회합의 열기는 뜨거워져 있었다.

바로 어제 있었던 검룡 남궁선호와 뇌룡 팽중호의 내공 대결 때문이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이자, 팔룡삼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검룡 남궁선호가 압도적으로 패배해 버렸으니, 사람들의 열기가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부터 회합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비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으레 무림인들이 단체로 모인다면, 당연히 비무가 빠질 수가 없는 법.

이 오대회합도 사실 말이 회합이지, 서로 모여서 어느 세가가 잘났나 경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먼저 삼대 제자들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오대회합의 비무회는 배분으로 나누어 따로따로 비무가 진행되었는데, 역시나 처음은 가장 낮은 배분부터였다.

물론 배분만 낮다 뿐이지, 그 배분의 최고수가 나오는 비무이기에 당연히 비무의 수준은 상당했다.

“저희는 선호춘, 장하섭 이 두 분이 나가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하북팽가도 당연히 비무에 참가했다.

이때만큼 하북팽가의 실력을 보여 주기에 좋은 기회가 없으니 말이다.

팽중호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선호춘과 장하섭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봐주지 말고, 아주 제대로 날뛰고 오십쇼.”

“예!”

“예! 물론입니다!”

“그리고 부담 갖지 말라고 드리는 말씀인데, 혹시나 너무 빨리 떨어지시면…… 세가로 돌아가서 아주 재미있어지실 겁니다.”

“며, 명심하겠습니다!”

부담을 갖지 말라는 팽중호의 말과 다르게, 지금 선호춘과 장하섭은 엄청난 부담을 팍팍 느꼈다.

아마 이 비무에서 힘도 못 써 보고 금방 탈락한다면, 팽가로 돌아가서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가 될 것이란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크크크.”

그리고 그런 둘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웃고 있는 팽중호.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얼굴에서 마귀와도 같은 사악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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