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대가리 깨고 오겠습니다.
하북팽가에 전해진 오대회합 초대.
팽중호는 곧바로 가주 팽자성을 만났다.
이 오대회합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참가할 것이냐?”
“물론입니다. 이거 때문에 제가 서문세가를 도발한 거니까요.”
“분명히 우리를 무시하고, 짓밟으려 할 것이다.”
“크크큭. 오히려 더 그래 줬으면 좋겠습니다.”
오대회합에 초대된 이는 가주인 팽자성이 아니라 소가주인 팽중호.
이번 오대회합은 오대세가를 이끌어 갈 각 세가의 소가주들 간의 오대회합이라고 하며, 팽중호를 초대한 것이다.
‘너무 속보이네, 거칠 게 없다는 거겠지.’
이번 회합에서 자신을 견제하겠다는, 너무 속 보이는 짓 아닌가?
아니, 어쩌면 견제가 아니라 완전히 불구로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다.
현 무림은 서문세가가 강자고, 하북팽가가 약자인 입장.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한다고 해도, 손쉽게 덮어 버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더 재밌을 거 같단 말이지.’
그들은 보란 듯이 힘을 과시하려 할 것이고, 그것은 오히려 팽중호가 바라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무림에 퍼지는 반향은 더욱더 커질 테니 말이다.
“저 없는 동안 남은 사람들 농땡이 피우지 않게 해 주십쇼.”
“하하하, 그래. 걱정 말거라.”
이제 팽자성의 실력은 팽중호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이 올라 있었다.
확실히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가 절세의 무공인 탓도 있겠지만, 팽자성 개인은 재능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하북팽가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이번 오대회합이 끝나면, 서문세가랑 전면전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정말 죽어라 수련해야 합니다.”
“그래. 명심하마.”
팽중호의 생각대로 오대회합이 흘러간다면, 서문세가는 분명 어떤 명분을 만들어서라도 하북팽가를 없애려 할 것이다.
그들은 절대로 지고는 못 사는 족속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때까지 정말 죽어라 수련해서 다들 실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서문세가와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이전에 싸웠던 비룡문 같은 곳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이들을 상대해야 하니 말이다.
최대한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이 고통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오대세가로 들어가는 첫걸음이니, 제가 최대한 멋지게 서문세가 놈들 대가리 깨고 오겠습니다.”
* * *
팽중호는 하북팽가의 무인들을 모두 소집했다.
“자. 이번에 저와 오대회합에 참여하실 분들을 뽑겠습니다.”
오대회합에 팽중호 혼자 덜렁 갈 수는 없는 노릇.
다른 세가들도 다들 그래도 수십 명의 무인을 대동할 테니, 하북팽가도 그에 맞추어 적어도 십여 명은 선출해 갈 필요가 있었다.
“자. 지금부터 명단 부르겠습니다. 선호춘, 장하섭…….”
팽중호의 말에 열 명의 무인이 앞으로 나섰고, 이들이 이번에 서문세가로 함께 갈 이들이었다.
팽중호가 보기에 팽가 무인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괜찮은 이들을 뽑은 것이었다.
“자, 그리고 도수까지. 이렇게 이번에 저랑 서문세가로 가실 겁니다.”
“예! 주군!”
“예!”
팽중호는 이번에는 발걸음을 위지철에게 옮겼다.
위지철은 무당파로부터 하북팽가의 식객으로 머물러도 된다는 확답을 받은 후, 하북팽가에 틀어박혀 무공 수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 소가주님 오셨습니까.”
팽중호가 나타나자 곧바로 인사를 해 오는 위지철.
팽중호는 그런 위지철에게 다가가 검을 하나 내밀었다.
“자, 여기. 약속드렸던 검입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대련에서 위지철의 검에 금을 가게 해, 새로운 검을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온 것이었다.
‘그때 그 비룡신창인지 뭔지 하는 사람 창을 챙겨 두길 잘했어.’
비룡문을 박살 낸 날, 팽중호는 비룡신창의 창을 챙겨 두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번 기회에 창고에 박혀 있던 그 창을 챙겨 들고, 장석팔을 찾아간 팽중호였다.
장석팔에게 그 창을 주고 검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팽중호가 직접 위지철의 검법을 보고 그에 맞는 형태로 뽑아낸 검이었다.
“자. 한번 뽑아 보십쇼.”
스릉-
위지철은 곧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검갑 자체는 평범하고 수수한 형태였는데, 검을 뽑자 그런 수수함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아아아아아-
그저 들고 있는 것뿐인데도, 검의 예기가 피부를 서늘하게 할 정도의 검.
보통의 검보다 검신 자체가 조금 얇았으며, 또한 검신의 길이도 좀 더 길었다.
“위 소협의 태극혜검에 가장 잘 어울릴 거로 생각해서 만든 검이니 한번 휘둘러 보십쇼.”
“예.”
위지철은 검에 조금 홀린 듯이 검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천천히 검을 들고 태극혜검의 초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사악- 사아악- 삭-
이전의 검과 다르게, 마치 바람을 자르는 듯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홀린 듯 검을 움직이던 위지철의 검이 딱 멈추었다.
“소가주님. 혹시 무당에 살검(殺劍)이 나타났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릴까 두렵습니다.”
“크크크. 검을 쓰시는 분이 마두가 아닌데, 왜 살검입니까.”
위지철의 태극혜검은 상대의 힘을 흘려 낸 후에 그 힘을 이용해 공격해 들어간다.
그럴 때 넓은 검신은 오히려 방해될 뿐이기에, 과감하게 검신을 얇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힘을 이용한 역공은 역시나 좀 더 빠른 공격이 핵심이니, 검신을 조금 길게 한 것이고 말이다.
그러니 지금 팽중호가 건네준 검은 여러모로 상대를 죽이기에 최적화된 형태의 검이라는 소리였다.
“이 검. 정말로 감사히 받겠습니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하하.”
위지철은 허리까지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팽중호는 만족스러운 미소와는 반대로 아닌 척하며 손사래를 쳤다.
뇌물을 하나 먹였는데, 그게 아주 제대로 통한 듯싶었다.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무엇입니까?”
팽중호는 은근히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운을 띄웠다.
지금 위지철의 눈을 보니, 웬만한 것이라면 다 들어줄 것 같았다.
“이번에 서문세가에서 열리는 오대회합에 같이 가 주셨으면 합니다.”
“예? 제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위지철이 놀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오대회합은 오대세가만의 축제다.
그런 곳에 구파 중 하나인 무당파인 자신이 가도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식객이시니 문제없을 겁니다. 혹,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다 떠안겠습니다.”
“그럼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을 이번 오대회합에 꼭 데리고 가고 싶었다.
현재 하북팽가가 그들에게 보여 줄 것은 솔직히 자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정협룡이라 불리는 위지철이 동행한다면, 그들도 분명 하북팽가를 조금은 다르게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여차하면 써먹기도 좋고 말이야.’
혹시나 힘을 써야 하는 상황이 나왔을 때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패였다.
그것 때문에 이렇게 검도 새롭게 장만해 주고, 대련도 성심성의껏(?) 해 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럼 가시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예.”
위지철까지 합류를 시켰으니 이제 남은 이는 한 명.
팽중호는 위지철이 머무는 곳을 빠져나와 마지막 한 명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똑똑-
“정 선생. 계십니까?”
“예. 들어오시오.”
팽중호가 마지막으로 서문세가에 데리고 갈 이는 바로 정한승이었다.
정한승은 팽중호가 전해 준 신기진법총서를 벌써 수십 번째 정독하는 중이었는데, 읽어도 읽어도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서 멈출 수가 없었다.
“무슨 일로 오셨소?”
평소에 정한승을 자주 찾는 팽중호가 아니었기에, 정한승은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았는지 물었다.
“이번에 서문세가로 발걸음을 하는데, 함께하셨으면 합니다.”
“음? 알겠소. 준비하겠소.”
정한승은 팽중호의 생각과 다르게 흔쾌히 서문세가행을 수락했다.
평소 어디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는데 말이다.
“서문세가에 가서 그곳에 펼쳐져 있는 진법도 보고 싶고, 또 그곳에 제갈세가 사람들도 온다고 들었소. 그 사람들을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러오.”
멀뚱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팽중호에게 자신이 왜 흔쾌히 수락했는지를 알려 주는 정한승.
정한승은 가끔 밖으로 나가 새로운 진법들을 직접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과는 분명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번 서문세가에 가는 이유가 오대회합 때문이라는 소식을 이미 들은 정한승은 그곳에 참여하는 곳인 제갈세가의 사람들을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진법으로 천하를 논하는 곳 중의 한 곳이니 말이다.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좋은 마차를 준비해 놓겠습니다.”
“뭐, 꼭 좋은 마차는 필요 없소.”
그렇게 팽중호는 서문세가로 갈 인원을 모두 꾸렸다.
팽중호까지 해서 총 열네 명.
사실 오대회합에 참가하는 인원치고는 매우 단출한 인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물까지 단출하지는 않았다.
‘이 구성이면, 서문세가에서 한 번 크게 사고를 칠 수 있지.’
* * *
하북팽가가 이른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특히나 하북팽가의 정문 쪽에는 마차들이 네 대가 들어서 있었고, 팽가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잘 다녀오거라.”
“예. 물론이지요.”
오늘은 서문세가로 출발하는 날.
그렇기에 다들 이렇게 나와서 배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산서성까지 아주 먼 길은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이 멀리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다들 수련 게을리하지 말고 계십쇼. 아셨죠?”
“예!”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돌아와서 뵙겠습니다.”
그렇게 팽중호는 자신이 탈 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준비한 네 대의 마차 중 가장 크고 고풍스러운 마차.
아무래도 하북성 이외의 곳에 처음으로 보이는 하북팽가의 모습이자, 그곳의 소가주가 타고 있는 마차이니 당연히 소홀하게 준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니 말이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그렇게 막 팽중호가 마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였다.
어디선가 또 다른 한 대의 마차가 나타났다.
마차 위에는 커다란 새가 하나 그려진 깃발이 펄럭였는데, 바로 신조상단을 뜻하는 깃발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차가 멈추더니 그 안에서 한 명의 여인이 내리기 시작했다.
신조상단 부상단주 이세경.
바로 그녀였다.
“으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팽중호는 왜 이세경이 이곳에 온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분명 자신은 그녀를 초대한 기억이 없었으니 말이다.
“저도 이번 오대회합에 초대를 받았는데, 소가주님과 함께 가고 싶어 왔습니다.”
“흠.”
이세경의 말에 팽중호는 곧바로 이세경과 함께하는 것에 대해 고민했다.
‘분명 함께 가면 몇 배로 도발을 할 수 있기는 한데…….’
서문세가에 자신과 이세경이 같이 들어간다면, 분명 서문세가 입장에서 몇 배는 열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팽중호에게 좋게 작용할 심산이 컸다.
하지만 문제도 있었다.
‘함께 그런 곳에 간다는 건, 혼처를 받아들인다는 소리가 된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그런 큰 행사에 혼처가 오가는 여인과 함께한다는 것.
그것은 곧, 혼처를 받아들였다는 소리나 다름없는 것이 된다.
“저를 안고 가시면,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호오? 이 사람 보게?’
팽중호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자신을 바라보며 당당히 이야기하는 이세경을 보고 조금 흥미를 느꼈다.
그녀에게서 마치 자신과 같은 자신감과 배짱을 느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