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무슨 일로 왔대?
맹호각(猛虎閣)은 하북팽가의 무력을 책임지는 곳이라 보면 되었다.
대외적으로 가장 많은 활동을 하게 되는 곳.
당연히 하북팽가의 앞날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맹호각의 각주는 도수!”
“와아아아!”
짝짝짝짝짝-
도수의 이름이 호명되자 무인들 사이에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수는 얼떨떨 하다는 표정이었지만, 다른 무인들은 도수가 실력도 뛰어나고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지 알았기에, 도수가 각주가 된 것에 조금의 불만도 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각주의 자리에 앉지 못했다면, 그것이 불만이었을 터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크크크, 그래.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자, 그럼 다음은……. 재경각입니다.”
재경각(財經閣)이란 말에 모두의 시선에 장춘오에게 모였다.
하북팽가의 모든 재물을 관리하는 곳에 지금 장춘오 말고 있을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재경각의 각주는 장춘오!”
“역시!”
짝짝짝짝짝-
모두의 예상대로 장춘오가 재경각 각주가 되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하북팽가에 장춘오 말고 누가 재경각을 맡는단 말인가?
“그럼 다음. 성무각(成武閣)입니다.”
성무각은 이번에 팽중호가 새롭게 만든 곳이었다.
무공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
팽중호가 하북팽가의 무공 몇 가지를 알고 있다지만, 사실 하나의 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것 가지곤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새롭게 무공을 다듬고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 냄과 동시에, 그것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는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만든 곳이 바로 성무각이다.
그러니까 성무각은 한마디로 무공 연구 교육기관인 것이다.
“성무각 각주는 곽채령!”
“꺄아!”
“축하합니다!”
곽채령은 자신이 각주가 되었다는 소리에 기쁨의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하북팽가의 각주의 자리를 자신에게 주었다는 것은, 팽중호가 완전히 자신을 하북팽가 사람으로 인정했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렇게 기뻐하는 곽채령을 팽중호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아주 복덩이야. 크크크.’
곽채령은 무공을 보는 눈은 물론, 그것을 곧바로 습득하고 펼쳐 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녀보다 성무각 각주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자. 그럼 다음은…….”
그렇게 몇몇 각주들이 더 발표되었다.
아직은 인원이 적었으니 많은 수의 각주를 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번 각주를 정하는 것으로 나름의 체계는 잡은 것이다.
이제는 이 체계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는 일이 필요할 터였다.
“각주로 뽑히신 분들은 모범을 보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크크크.”
“……?!”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말에 크게 대답했던 각주들은 팽중호의 웃음소리에 묘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각주분들은 앞으로 제가 특. 별. 히. 수련을 밀착 지도해 드리겠습니다.”
“으헉!”
“아악!”
각주로 뽑혔던 이들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 * *
“진법의 설치가 끝이 났소.”
하북팽가의 지어지고 있던 전각들이 모두 완성되었고, 그와 동시에 정한승이 설계한 진법도 완성이 되었다.
대환축기진(大幻築氣陳).
환영진과 축기진이 함께 결합된 진법이었다.
정문이 아니라 담을 넘어 하북팽가에 들어서는 이들은 그대로 환영진에 갇혀 버리게끔 만들고, 운기를 하는 이들은 조금 더 내공을 빠르게 쌓게끔 도와주는 진법.
완전히 다른 두 진법이 합쳐진 복합 진법이기에 정한승 정도 되는 이가 아니라면, 아예 시도조차 하기 힘든 매우 복잡한 진법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오. 아주 좋은 경험이었소.”
정한승이 지금까지 펼쳐 본 진법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진법이었다.
하나의 세가를 통째로 써서 진법을 펼친 것이니 말이다.
이것은 분명 정한승에게도 꽤 큰 경험이었다.
“그럼 그 축기가 가장 잘 되는 곳은 어디입니까?”
“연무장을 중심으로 했으니, 그곳이 가장 좋은 곳이오.”
축기진은 그 중심이 되는 곳에 가장 많은 기운이 모인다.
정한승은 연무장을 중심으로 축기진을 구성했으니, 연무장이 가장 많은 기운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럼 오늘 그 좋은 곳에서 단약을 나눠 주면 딱 맞겠습니다.”
팽중호는 얼마 전 도착한 단약이 들어 있는 상자를 들고 곧장 연무장으로 향했다.
쿵-
단약의 양이 많은 만큼 단약 상자가 거대했기에, 상자를 내려놓는 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그러자 팽중호에게 집중되는 팽가 무인들의 시선.
“제가 며칠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오늘 단약을 나눠 드리겠습니다.”
팽중호는 미리, 조만간 단약을 나눠 줄 것이라 공표해 놓았는데, 이는 먼저 몸을 충분히 단약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들게끔 해 놓기 위해서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이 아니라면, 이런 영약이나 단약을 먹기 전에 단단히 준비한 후에 섭취하는 것이 맞았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기운의 손실을 막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 다들 하나씩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팽중호는 차례대로 팽가의 모든 무인에게 단약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비장한 표정으로 팽중호에게 단약을 받아들고는, 모두들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대기하고 있었다.
팽중호의 말이 떨어지기를 말이다.
“그럼. 시작하십시오.”
“예!”
꿀꺽-
팽중호의 말에 우렁찬 대답과 함께, 모든 이들이 동시에 단약을 입에 집어넣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동시에 많은 인원이 단약을 먹고 운기를 하니, 주변에서 기운이 요동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정한승의 축기진까지 몫을 더하자, 기운이 바람처럼 이 주변 일대를 휘돌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거지!”
팽중호는 지금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느끼고 절로 소리를 내었다.
원래라면 지금 이들 몸에서 흡수되지 못하고 나온 기운들이 허공에 흩어졌어야 했다.
하지만 축기진 덕분에 기운들은 흩어지지 않고 이 주변을 휘돌았고, 이 휘돌던 기운은 다시금 팽가의 무인들에게로 돌아들어 갔다.
“이러면 단약의 기운을 거의 다 흡수할 수 있겠어.”
보통 수준이 낮은 무인들은 좋은 영약이나 단약을 먹어도 제대로 모든 기운을 흡수하지 못한다.
내공 심법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니 당연했다.
그런데 지금 축기진 덕분에 기운들이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금 돌아들어 가니, 흡수하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재흡수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좋아. 점점 확률이 올라가고 있어.”
처음에는 희박했던 하북팽가의 완전 부흥의 확률이 점점 더 올라가고 있었다.
“소가주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엉? 손님?”
팽중호가 한창 흐뭇한 표정으로 운기하는 무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장춘오가 손님이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손님이 왔다고 하니, 팽중호는 일단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디서 왔는데?”
“신조상단이랍니다.”
“신조상단? 거, 들어 본 것 같은데.”
“지금 태도상단과 함께 하북성에서 가장 큰 상단입니다.”
“아! 맞다.”
신조(神鳥)상단.
전에는 금호상단, 태도상단과 함께 하북성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곳이었으나, 금호상단이 사라지고 이제는 태도상단과 하북성 이대상단으로 불리고 있었다.
물론 최근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며 하북성을 점령한 태도상단에 비해 하북성에서의 힘은 조금 떨어졌지만, 신조상단은 하북성뿐 아니라 산서성과 산동성에서도 꽤 힘을 쓰는 상단이기에 규모만 놓고 보자면 태도상단보다 더 큰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왔대? 우리가 태도상단이랑 거래한다는 걸 잘 알 텐데?”
“상인들이 그런 걸 따지겠습니까? 저희가 돈이 될 거 같으면 태도상단이랑 피로 맺어진 사이라고 해도 올 겁니다.”
그렇게 장춘오와 대화를 하는 사이 도착한 응접실.
사실 팽중호도 새롭게 지어진 이 응접실은 처음 와 보는 것이었는데, 확실히 이제는 부유한 티가 좀 나 보이게 바뀌어 있었다.
응접실 내부로 들어서자,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는 한 명의 여인이 보였다.
‘호오?’
외모를 크게 보지 않는 팽중호마저도 눈을 확 잡아끌게끔 하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인.
지금까지 팽중호가 보았었던 여인 중 단연 손에 꼽을 만큼의 미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조상단의 부상단주 이세경이라 합니다.”
팽중호가 응접실로 들어서자 곧바로 일어나 인사를 하는 여인.
그녀의 정체는 바로 신조상단의 부상단주 이세경이였다.
신조상단 상단주의 딸로서, 지금의 신조상단이 이루어진 것은 그녀의 조언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여인이었다.
물론 거기에 하북제일미라는 별호까지 더해서 가지고 있었고 말이다.
“아, 예. 하북팽가의 소가주 팽중호입니다.”
인사를 나눈 후 아주 잠깐의 어색한 침묵.
그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이세경이었다.
“우선 소가주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흠모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누가 들어도 입에 발린 칭찬일 수 있는 칭찬.
하지만 저런 미인이 해 주는 칭찬이라면, 아무리 뻔해도 싫어할 자가 있겠는가?
팽중호도 너무나 뻔한 칭찬이지만, 그리 싫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번에 제가 방문한 것은, 하북팽가와 거래하고 싶어서입니다.”
뻔한 칭찬과 함께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이세경.
팽중호는 그녀의 그런 모습에 살짝 눈을 빛내었다.
‘내 성격을 알고 왔군.’
자신이 이리저리 돌려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드는 것일 터였다.
“일단, 들어 보겠습니다.”
“호홋. 감사합니다.”
팽중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벼운 미소를 짓는 이세경.
팽중호는 그녀의 미소를 보고는, 몰래 살짝 허벅지를 꼬집었다.
‘야. 이거 정신 안 차리면 큰일 나겠는데?’
정말 반칙이다 싶을 정도의 미인계였다.
잠깐 정신 놓치는 순간 아무 생각 없이 거래에 서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현재 하북팽가에서는 모든 거래를 태도상단과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태도상단은 이 하북성 내에서만 장사할 뿐, 하북성 밖으로는 나가지 않습니다. 소가주님께서는 오대세가의 자리를 노리신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하북성 밖으로도 영향이 있는 곳과의 거래도 필요하시지 않겠습니까?”
“흐음.”
분명 지금 이세경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도상단은 확실히 하북성 밖으로까지의 영향력은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하북팽가의 규모가 아직은 작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겠지만, 이제 하북팽가의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이것은 문제가 될 터였다.
한 곳에만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니 말이다.
“지금 당장 저희와 모든 거래를 하시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하북성 밖의 거래가 있을 때만 저희 상단과 거래를 해 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이세경은 처음부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여기서 만약 모든 거래를 신조상단과 하자고 하였으면, 팽중호는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태도상단이 할 수 없는 범위의 거래부터 이야기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춘오야.”
“예.”
“어떻게 생각하냐?”
대충 이세경의 이야기를 들은 팽중호는 옆에서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장춘오를 불렀다.
이런 건 장춘오 네가 전문이니 나서라는 뜻으로 말이다.
“조건만 나쁘지 않다면, 거래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저희가 가져온 물건 중에는 산동이나 산서에서 더 비싸게 팔리는 것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장춘오의 말처럼 지금 하북팽가가 금호상단과 비룡문, 그리고 흑수련을 연파하면서 얻은 재물 중에는 다른 지역에서 팔면 더욱 비싼 값을 받을 물건들이 꽤 있었다.
그것을 태도상단이 아닌, 신조상단에게 맡기면 훨씬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본래 거래할 때는 여러 곳과 거래하는 것이 나은 법이고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무림에 있는 거대 세력 중, 거래를 단 한 곳과 하는 곳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 곳과 거래를 하는 것은 분명 여러 위험을 불러오니 말이다.
하북팽가도 행여나 갑자기 태도상단이 고꾸라진다거나, 사라져 버린다면 휘청해 버릴 터다.
이번 기회에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신조상단과 새로운 거래를 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두 상단이 적당한 선에서 경쟁하는 구도가 된다면, 분명 하북팽가에게도 득으로 돌아올 것이고 말이다.
“이것은 저희가 제시해 드리는 거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