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조만간 하북팽가가 오대세가 자리를 되찾으러 간다고.
팽조강은 팽중호의 살기에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살기였기에 그랬다.
“하북팽가는 하북팽가로 충분하다. 너 같은 놈들이 좀 먹었기에, 이 모양이 된 것일 뿐.”
“마, 망해 버린 하북팽가가 이나마 버틴 것은,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랄.”
하북팽가가 몰락하게 된 시작은 모두 저런 놈들 때문일 터였다.
하북팽가를 위한다면서, 하북팽가의 것들을 속에서부터 갉아먹는 놈들 말이다.
“위 소협.”
“예.”
“저 혼자 이 둘을 상대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위지철이 선뜻 뒤로 물러나 주었다.
팽중호의 표정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손으로 반드시 이들을 벌하고 싶다는.
“자, 너네 두 놈 모두 내가 상대해 줄게.”
“건방지군.”
“흑수련주. 나 혼자 저놈을 상대하겠소.”
팽조강이 팽중호의 살기를 이겨 내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는 지금 자신이 가진 힘이면, 지친 팽중호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살기는 좀 매섭지만, 싸움은 살기로 하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뭐, 좋은 거라도 먹었나 봐?”
“그래. 먹었다.”
쿠콰카카카카카칵-
갑자기 팽조강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는데, 매우 사나우면서도 불안정해 보이는 기운이었다.
마치 팽조강 스스로도 이 기운을 제대로 제어치 못하는 듯싶어 보였다.
“야. 너 그거 어디서 배웠냐?”
“크크큭. 서문세가에서 특별히 나에게 전해 준 것이다. 너를 이길 수 있도록 말이다.”
“병신. 어떤 건지도 모르고 익혔군.”
“뭐라!”
“됐다. 말해 봐야 뭐 하냐. 뒤질 건데.”
“두려우면 두렵다고 말하거라. 크크큭.”
팽중호는 지금 팽조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보고, 두 눈을 착 가라앉혔다.
전생에 팽중호는 저것을 본 적이 몇 차례 있었기에, 저 무공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기에 그랬다.
‘서문세가가 잠혼폭렬공을 다시 꺼내었군.’
잠혼폭렬공(蠶魂爆裂功).
서문세가에서 만들어 낸 무공.
몸 안의 내공을 폭발시키듯 터트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게 해 주는 무공이었다.
순식간에 몇 수 위의 상대를 이길 수도 있게 해 주는 엄청난 무공이지만, 그 이상의 부작용이 잠재되어 있는 무공이었다.
몇 번 이 잠혼폭렬공을 운용하면 단전이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리며, 강제적으로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무인에게는 치명적인 부작용.
따라서 무림맹에서 이 잠혼폭렬공의 사용을 금하게 하였었다.
팽중호는 과거 이 잠혼폭렬공을 익힌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몇 차례 싸워 보았기에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최후를 목격했기에, 지금 잠혼폭렬공을 익힌 팽조강을 보고 눈이 가라앉지 않을 수 없고 말이다.
‘무림이 진짜 약육강식의 장으로 변해 버리니, 이제는 다들 거릴 게 없나 보군.’
“그래도 너도 팽씨니까, 내가 고통을 줄여 주마.”
“흥. 이놈!”
파앙-
허공을 찢으며 쇄도하는 팽조강.
팽조강의 도에 도강으로 보이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물론 초절정이 도달하지 못한 팽조강이기에 완벽한 도강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잠혼폭렬공의 힘 덕분에 그와 비슷한 위력을 내고는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도에 다시금 뇌기가 서렸다.
조금 전 대화 하며 조금 내공을 회복했지만, 분명 아직은 턱없이 내공이 모자랐다.
마음껏 강기를 휘두를 만한 내공이 아니란 소리였다.
카캉- 캉- 카아앙- 캉- 카캉-!
두 사람은 딱 붙어서 엄청난 공방을 주고받았는데, 이 공방에서 터져 나온 기파에 의해 주변의 땅이 터져 나갈 정도였다.
“크하하하!!! 별거 아니구나!”
팽조강은 팽중호가 조금씩 뒤로 밀려나는 것을 보고는 통쾌함에 광소(狂笑)를 터트렸다.
‘그래! 이 무공은 최강이다!’
초절정이라고 알려진 팽중호를 지금 자신이 압도하고 있었다.
물론,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팽조강의 생각에 잠혼폭렬공은 최강의 무공이라 생각이 들었다.
“잠혼폭렬공을 쓰고도 이 정도면, 너도 어지간히 재능이 없었구나.”
“이 와중에도 허세를 부리느냐!”
팽조강은 팽중호의 말이 자신을 도발해 틈을 만들려는 허세라고 생각했다.
누가 보더라도 지금 자신이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아닌가?
“서문세가의 검과 합쳐진, 완벽한 혼원벽력도를 보여 주마!”
콰아아아아아-
팽조강의 도에 청록색(靑綠色)의 기운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서문세가의 내공 심법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청록기(靑綠氣).
그리고 이 청록기가 둘러진 팽조강의 도가 그대로 팽중호를 덮쳐 왔다.
“흐아아아압! 낙! 뢰! 단! 봉!”
팽조강이 펼친 낙뢰단봉의 초식.
거대한 청록기가 팽중호를 그대로 양단해 버릴 듯이 뻗어 나왔다.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청록기.
철컥-
그런데 팽중호가 갑자기 무적도를 다시 도갑에 집어넣었다.
일견 보기에는 저항을 포기하고 그냥 죽으려는 듯한 모습.
하지만 팽중호의 두 눈은 전혀 포기한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하북팽가가 왜 하북팽가라는 것으로 충분한지 보여 줄게.”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낙뢰단봉(落雷斷峰).
파직- 철컥-
무언가 번쩍하는가 싶더니, 팽중호의 도갑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팽중호의 도갑에 그대로 꽂혀 있는 무적도.
여전히 팽조강의 청록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팽중호의 목전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그 청록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뭐…….”
서걱-
그리고 이게 무슨 일이냐고 말하려고 하던 팽조강의 몸도 반으로 갈라졌다.
채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말이다.
“이게 하북팽가다 임마.”
* * *
위지철은 지금 팽중호의 일도를 보고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번쩍하는 순간 팽중호는 이미 팽조강을 베고 도를 다시 도갑에 집어넣은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위지철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말이다.
극한의 쾌도.
위지철은 쾌도로 유명한 이들을 몇 알고 있는데, 지금 팽중호보다 빠른 이를 본 적 없었다.
‘하북팽가의 도가 쾌도는 아니라 알고 있었건만.’
분명 무림에 하북팽가의 도법은 극강, 패도의 도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팽중호가 보여 준 것은 극쾌의 도법이 아닌가?
‘역시 무림은 넓구나.’
위지철은 다시 한번 더 무림이 얼마나 넓은 곳인지 새삼 느꼈다.
정협룡이라는 알량한 별호에 조금은 취해 있었을지 모를 자신을 반성했다.
그리고 하북팽가에 더 오래 머물러, 팽중호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가주님께 더욱더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
그렇게 팽중호가 알면 기겁할 생각을 하는 위지철이었다.
* * *
“후우.”
팽중호는 숨을 고르며, 반으로 갈라져 있는 팽조강을 바라보았다.
제대로 된 낙뢰단봉을 펼친 결과물이었다.
본래 낙뢰단봉은 발도술이 기본이 되는 초식.
발도술로 펼치는 낙뢰단봉의 위력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자. 너만 남았군.”
“크하하하! 서문세가가 터무니없는 괴물을 적으로 돌렸군 그래!”
무창성은 서문세가의 개로 지낸 지 벌써 수년이나 되었다.
처음은 그들의 힘이 필요해 그들의 개를 자처했지만, 그들의 요구는 점점 도를 넘어서 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일만 끝난다면, 그들과의 연을 끊고 홀로 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도 결국 이룰 수 없고 여기서 끝이라는 것을 알았다.
눈앞의 팽중호는 자신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으니 말이다.
“나는 너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냥 죽어 주게?”
“그럴 수는 없지. 발악이라도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어차피 날 살려 줄 생각은 없을 테니.”
“잘 아네. 자, 그럼 바로 끝을 내자고.”
파앗-
순식간에 거릴 좁혀 들어오는 무창성.
무창성의 양손에 흑색의 기운이 뭉글뭉글 흘러나왔다.
그를 잔혈흑수라고 불리게끔 해 준 흑마수(黑魔手)였다.
콰가각- 콰각-
팽중호가 그런 무창성을 향해 도를 휘둘렀는데, 무창성의 손이 도를 쳐 낼 때마다 무적도에 흑마수의 흑색 기운이 들러붙었다.
조금씩 팽중호의 뇌기를 좀먹기 시작하는 흑색 기운.
“이건 조금 재밌네.”
팽중호도 무창성의 무공과 같은 무공을 본 적은 없었다.
보통의 무공과 궤를 조금 달리하는 무공.
“마공인가 보지?”
그렇다면 역시나 마공밖에 없었다.
지난번 만났던 광혈마도보다는 훨씬 더 수준이 높아 보였다.
“그래.”
사아아아아아악-
무창성의 기운이 더 강해지며, 그의 흑색 기운도 더욱 색이 진해졌다.
흑색 기운이 강기로 변한 것이다.
“자, 조금 전 그것을 다시 보여 봐라!”
“원한다면 얼마든지.”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낙뢰단봉(落雷斷峰).
파직- 철컥-
팽조강을 베어 버린 낙뢰단봉이 다시금 팽중호의 손에서 펼쳐졌다.
카캉- 서걱-
“크큭, 나에게 과분한 죽음이군. 네 손에 서문세가가 망하는 걸 못 보는 게 아쉽구나…….”
털썩-
무창성은 순간적으로 흑마수로 팽중호의 낙뢰단봉을 막아 보았지만, 결국에는 베여 버렸다.
물론 덕분에 팽조강처럼 몸이 반으로 갈라지는 것은 면했지만, 죽음까지 면할 수는 없었다.
하북성에서 사파 연합을 이끌던 흑수련 련주 무창성이 그렇게 명을 다했다.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팽중호와 위지철뿐.
“서문세가에 전해라. 조만간 하북팽가가 오대세가 자리를 되찾으러 간다고. 그동안 맡아 줘서 고맙다고 말이야. 그리고 찾으러 갔을 때 조용히 안 물러나면 뒤질 줄 알라고도 전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흑수련에서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팽중호.
팽중호는 아까 전부터 자신들을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눈이 서문세가의 눈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경고하는 것이었다.
조만간 자리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이다.
“자, 그럼 위 소협. 전리품을 챙기러 가 보죠.”
“아, 예.”
팽중호는 아직까지 조금 멍때리고 있는 위지철과 함께, 흑수련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싸움에서 이겼으면 응당 전리품을 챙겨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뚝.
그렇게 흑수련주가 머물던 전각 내부로 들어간 두 사람.
전각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팽중호의 발걸음이 딱 멈추었다.
그리고.
“우웨엑.”
한쪽 벽을 붙잡고, 피를 한 움큼 왈칵 뱉어 내었다.
시커멓게 죽은 피.
조금 전 팽조강, 무창성과의 싸움에서 내상을 꽤 크게 입은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후아, 예. 이제 좀 괜찮습니다.”
내공이 거의 바닥 났을 때, 초절정의 무인 둘을 연속으로 상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당연히 내상을 크게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기 위해 과하게 내공을 끌어 올린 탓도 있고 말이다.
팽중호는 밖에서 피를 토한다면 서문세가의 눈에 약한 모습을 보여 주는 꼴이니, 최대한 참고 참아 이렇게 보이지 않을 때 토해 낸 것이다.
가슴에 꽉 막혀 있던 피를 토해 내자, 그제야 한결 속이 편해진 팽중호였다.
“자자. 속도 괜찮아졌으니, 이제 뭐가 있나 한번 제대로 털어 보죠.”
“알겠습니다.”
위지철은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만, 일단 지금은 묻어 두기로 했다.
물어볼 기회는 하북팽가로 돌아가서도 얼마든지 있을 테니 말이다.
뒤적- 뒤적- 뒤적- 뒤적-
능숙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흑수련주실을 뒤지는 팽중호.
흑수련에 오기 전에 이미 장춘오에게 어떤 것들을 챙겨 와야 하는지 들었기에 거침없이 챙겨 나갈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챙길 건 거의 다 챙긴 팽중호는 이제 마지막 하나를 찾고 있었다.
온몸의 기감을 활성화해 주변을 샅샅이 확인하는 팽중호,
그렇게 사방을 확인하던 팽중호의 시선이 한쪽 벽에서 딱 멈추었다.
“저기구나.”
슈욱- 콰드득-
후드드드득-
거침없이 무적도를 휘둘러 벽을 부숴 버리는 팽중호.
그러자 그 부서진 벽 뒤로 하나의 작은 공간이 보였다.
“그렇지. 사파 놈들이면 이렇게 꿍쳐 둘 줄 알았다. 생각보다도 더 많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