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개같은 상도덕이 너네 흑수련의 상도덕이냐?
흑상에 오기 전 태도상단.
팽중호는 태철호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약을 좀 하나 구했으면 해서요.”
“어느 정도의 영약이 필요하십니까?”
영약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다.
아주 미약한 영기를 가진 영약부터, 정말 하늘이 내린 영기를 가진 듯한 영약까지.
이 종류에 따라 가격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차이가 벌어지고, 구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진다.
“공청석유 정도 되는 걸로 필요합니다.”
“허허…….”
공청석유는 영약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영약.
아무리 태철호라고 해도 당연히 구하기 아주 힘든 것이었다.
“아니면, 그 아래로도…….”
“이번에 하북성 흑상에 공청석유가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잘됐군요.”
“하지만…….”
태철호에게 이번 하북성 흑상에 공청석유가 물건으로 나온다는 정보가 전해졌다.
태철호는 그 공청석유를 구매할까 많이 고민하였는데, 그곳이 참여한다는 소리에 포기를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흑수련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흑수련?”
흑수련(黑手聯).
흑수련은 하북성 사도 문파들의 연합으로, 일종의 무림맹과 비슷한 곳이라 보면 되었다.
그들은 이 하북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흑수련이라는 하나의 집합체를 만든 것이었는데, 아무것도 아닌 사도 문파들이 연합을 하자 상상 이상의 힘을 발휘했고, 분명 이 하북성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평소에는 하북성 정도 문파들과 최대한 마찰을 일으키려 하지 않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 실상은 알게 모르게 그들과 이권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이었다.
다만, 서로가 서로를 건드려 봐야 좋을 것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전면전으로 번지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흑수련은 굉장히 집요한 자들이라, 공청석유를 경매에 낙찰받는다 해도 아마 그들은 어떻게든 추적해서 그것을 빼앗으려 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도 포기한 것입니다.”
흑수련은 원하는 것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
공청석유를 다시금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살인쯤은 서슴지 않을 자들이었다.
“하북성에 그런 놈들이 있었다니. 크크큭.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팽중호는 오히려 흑수련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흘렸다.
‘이거, 영약에 큰돈 들어갈까 걱정했는데, 고민하나 덜었군.’
팽중호는 앞으로를 위해서 제대로 된 영약을 하나 섭취할 생각이었다.
내공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상대해야 하는 이들은 하북성에서나 이름을 날리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세력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팽중호도 그런 영약들의 값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사실 조금 조심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 영약 값이면 금호상단에서 털었던 것을 대부분 써먹어야 할 테니 말이다.
물론 팽중호가 벌어 온 것이니, 팽중호가 쓴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갑자기 큰돈이 비어 버리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지금 태철호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을 듯싶었다.
“이번에도 크게 하나 물어다 드릴 테니, 영약들 좀 미리 구해 놔 주십쇼.”
* * *
공청석유를 품에 챙긴 팽중호는 위지철과 함께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방에 뚫려있는 통로 중에 왔던 곳으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여기서 나가면 제가 활약할 것이라 하셨는데, 그것이 대체 무슨 소리이신지 궁금합니다.”
위지철은 팽중호가 좀 전에 했던 말의 뜻이 궁금했다.
도대체 물건을 사고 나가는 것인데, 갑자기 무슨 활약을 한단 말인가?
“이거, 분명 뺏으러 올 겁니다.”
“아까 그런 건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흑상 안에서는 안 되지만, 밖에서는 그들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흑상은 철저히 흑상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만 관여를 할 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금도 상관치 않는다.
서로 죽이든 뺏든 말이다.
“그렇지만 가면까지 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저희를 알 수 있습니까?”
“아, 그건 제가 그들에게 제 무적도를 보여 주었으니 알아채었을 겁니다.”
팽중호는 일부러 조금 전에 무적도를 아주 잘 보이게끔 해서 상대에게 보여 주었다.
상대가 자신을 잘 찾아올 수 있게끔 말이다.
“일부로 보여 주신 겁니까?”
“예. 선량한 사람들의 피고름을 짜 먹는 사파는 벌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들을 유인하려고 일부러 보여 준 겁니다.”
“아아. 그렇군요.”
팽중호가 사파를 벌하기 위해 이런 일을 했다는 거짓말을 순순히 믿는 위지철.
물론 팽중호는 그저 그들을 유인해 빌미와 명분을 만든 뒤, 시원하게 털어먹을 생각이었지만, 굳이 그걸 밝힐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어찌 보면 사파를 벌한다는 것이 거짓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드르르르르르륵-
다시금 길의 끝에 다다르자 저절로 문이 열렸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팽중호와 위지철.
두 사람은 가면을 다시금 돌려주고는 허름한 주루 밖으로 빠져나왔다.
“자. 그럼 밤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니, 조용한 곳을 산책이나 하시죠.”
* * *
흑수련의 간부 중 하나인 잔살조(殘殺爪)는 오늘 꼭 저 공청석유를 손에 넣어야만 하였다.
그래서 사실 일을 쉽게 하려고 금화 이백 냥이라는 큰돈을 흑수련으로부터 받아 왔는데, 보기 좋게 삼백 냥이라는 거금을 쓴 이 때문에 실패해 버렸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공청석유를 빼앗아 오는 것뿐.
‘하북팽가의 팽중호란 놈이구나!’
잔살조는 삼백냥을 주고 공청석유를 산 자의 정체가 팽중호라는 것을 그의 허리춤에 달린 도를 보고 알아채었다.
그리고는 곧바로 그를 추적할 무인들을 소집했다.
“놈이 흑상를 완전히 벗어나면 곧바로 덮친다. 알겠지?”
“예!”
지금 잔살조와 함께 온 이들은 흑수련의 무인들은 모두 정예들이다.
이들과 자신이 함께라면, 팽중호라도 필히 죽일 수 있었다.
팽중호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하더라도, 그 혼자서 이들과 자신 모두를 막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가자.”
그렇게 잔살조와 흑수련의 정예들은 곧바로 팽중호의 뒤를 밟았다.
그리고 그가 흑상이 있는 곳을 벗어나,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곳에 다다랐을 때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진 걸 내놓으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잔살조는 일단 좋게 말로 위협을 가했다.
지금 팽중호와 그의 옆에 서 있는 자를 완전히 포위하고 있는 흑수련의 정예들.
이 정도라면 그도 위협을 느낄 테고, 어쩌면 손쉽게 일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거, 언제 나타나나 한참 기다렸네. 빨리빨리 좀 다닙시다. 예?”
그런데 팽중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금 잔살조가 예상하던 말들과는 전혀 달랐다.
적어도 ‘웬 놈이냐!’라는 말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마치 자신들이 따라올 것을 알았다는 말투가 아닌가?
“다시 한번 더 말하지. 지금 네가 가진 것을…….”
“싫다면 어쩔 건데?”
“여기서 죽이는 수밖에.”
“위 소협 보셨습니까? 이제는 사파놈들이 하북팽가의 소가주를 죽이겠다고 나섭니다. 이것 참. 어쩌다 무림이 이 지경이 되었는지…… 쯧쯧.”
팽중호의 말에 잔살조는 조용히 흑수련의 정예들에 신호를 보내었다.
싸울 준비를 하라는 신호를 말이다.
“정말 내놓지 않을 건가?”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지.”
스윽-
잔살조의 신호와 함께 흑수련의 정예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확실히 어중이떠중이는 아닌 듯 아주 쾌속무비하게 달려드는 흑수련의 정예들.
하지만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흑수련이라고 했던가? 너넨 이제 다 뒤질 준비하고 있어.”
* * *
“자. 위 소협이 활약하실 시간입니다. 사파놈들이니까, 봐주지 말고 베십쇼.”
“물론 그럴 생각입니다.”
위지철은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이 얼마나 쓴 독으로 돌아오는지 잘 알았다.
그는 마두나 사파의 무인들을 벨 때는 절대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지직-
슈와아아아아악-
팽중호의 도에서는 뇌기가, 위지철의 검에서는 푸른 검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시에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흑수련의 정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캉- 서걱-
카가가강- 서걱-
초절정을 넘어선 무인 두 사람의 힘은 굉장했다.
흑수련의 정예들이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갔으니 말이다.
호기롭게 달려들던 흑수련의 정예들과 잔살조가 일순 신형을 멈칫했다.
팽중호만 있는 줄 알았더니, 옆에 있는 이도 엄청난 고수였다.
이건 분명 계산 착오였다.
“자,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시고.”
“죽여.”
잔살조의 명령에 다시금 달려드는 흑수련의 정예들.
그리고 그들이 달려든 틈에 잔살조는 슬쩍 몸을 뒤로 빼었다.
어차피 지금 자신이 달려들어 봐야 저들 손에 개죽음당한다는 것을 알아채었다.
개죽음을 당하느니, 일단은 여기서 벗어난 후에 흑수련에 사실을 알리고 다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맞았다.
타타탓-
재빠르게 발걸음을 돌려 달아나는 잔살조.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얼마 못 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잔살조의 앞을 딱 가로막고 서 있는 팽중호.
잔살조가 슬쩍 뒤를 돌아보자, 남은 흑수련의 정예들은 위지철의 손에 모두 세상을 하직하고 있었다.
“너네 흑수련 맞지?”
“그래. 그러니, 더 이상 우리를 건들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잔살조는 어차피 도망이 불가능해진 이상 흑수련의 이름으로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 생각이었다.
“네가 공청석유만 넘겨준다면, 지금 있었던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해 주지.”
“하하하! 이것 봐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먼저 칼을 들이밀어 넣고 없었던 일로 해 줘?”
사아아아아악-
팽중호의 몸에서 나오는 지독한 살기.
꿀꺽-
잔살조는 이 살기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개같은 상도덕이 너네 흑수련의 상도덕이냐?”
“부, 분명 후회할 거다!”
“크큭. 그거 아냐? 지금까지 나한테 후회할 거라고 한 놈들이 제일 후회하며 살고 있다는 거?”
서걱- 촤아악-
“크아아아악!”
순식간에 잔살조의 오른팔이 잘렸다.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는 잔살조.
팽중호는 그런 잔살조에 천천히 다가갔다.
“넌 살려 줄 테니까 잘 들어. 감히 하북팽가의 소가주와 무당파의 정협룡을 건드린 대가는 아주 크게 치러야 할 거라고 흑수련에 가서 전해.”
“!!!!”
잔살조는 팽중호의 말에 고통도 잊고 눈을 치뜨며 위지철을 바라보았다.
무공이 고강해서 누구인가 싶었는데, 정협룡 위지철이라니!
그는 무당파가 가장 아끼는 제자이다.
그런 자를 지금 건드렸으니,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아. 그리고 대가만 후하게 치르면, 없던 일로 해 줄 수도 있다는 것도 전하고 말이야. 크크크.”
팽중호는 지금 위지철을 이용해서 흑수련을 협박하는 것이었다.
무당파와 하북팽가를 동시에 척지고 싶지 않다면, 알아서 대가를 준비해 납작 엎드려 있으라고 말이다.
‘데리고 오길 아주 잘했어.’
위지철을 흑상 경매에 동행시킨 덕분에 일이 훨씬 쉽게 돌아갈 듯 보였다.
하북팽가만 들먹였다면 흑수련이 한판 해 보자고 할 수 있었지만, 무당파까지 껴 버리면 절대 그런 생각은 하지도 못할 것이다.
이 무림에서 영원히 지워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자, 어서 가 봐. 그리고 삼 일 뒤에 내가 찾아갈 거라는 것도 전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