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희대의 영약이라는 공청석유입니다.
팽중호가 위지철에게서 놓친 것.
그것은 바로 그가 상상을 뛰어넘는 무공광이라는 사실이었다.
지금 위지철은 팽중호에게 얻어맞고 나서 오히려 팽중호의 실력에 반해 버렸고, 더욱더 팽중호와 무공을 논하고 싶다는 열의가 강해져 버렸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인데, 맞는 거 좋아하시는 건 아니지요?”
“예? 그건, 아닙니다.”
“휴. 다행입니다.”
팽중호는 간혹가다가 아주 특이한 취향을 가진 놈들이 있기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것이었다.
그런 특이한 취향이면 정말로 골치가 아파지니 말이다.
다행히 위지철은 그런 취향은 아닌 듯싶었다.
“대련은 저도 해 드리고 싶지만, 아시다시피 저도 좀 바빠서 말입니다. 크흠.”
팽중호는 은근히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조금 전 머리에 번뜩하고 위지철을 아주 잘 써먹을 방법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래서 위 소협께서 여기 있는 분들의 무공을 좀 봐 주시면, 가끔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크크크. 감사합니다.”
팽중호가 던진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위지철.
‘공짜로 고급 인력을 얻었구나.’
위지철은 초절정의 경지에 있는 무인이다.
그런 자를 대련 몇 번 해 주는 조건으로 무공 선생을 시켜 먹는 것이다.
이건 분명 꽤 괜찮은 이득이었다.
“그런데 위 소협께서는 계속 저를 따라다니실 겁니까?”
위지철이 하북팽가를 감시하는 감시관으로 왔지만, 솔직히 그가 어떻게 무슨 방법으로 감시할지가 의문이었다.
“딱히 어떻게 하란 말은 없었습니다. 그저 지켜보고 제때 보고하라는 명령만 내려왔을 뿐입니다.”
위지철도 사실 딱히 정확히 하달받은 사항은 없었다.
지금 이 감시관이라는 직책 자체가 급하게 급조된 자리였으니 당연했다.
위지철이 하달받은 내용은 하북팽가의 전반적인 상황을 지켜보고, 매일 밤에 전서구를 통해 보고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럼 저와 함께 다니시죠.”
“알겠습니다.”
위지철은 대번에 이 하북팽가의 중심이 팽중호라는 것을 알았기에, 함께 다니자는 팽중호의 제안을 수락했다.
‘같이 데리고 다니는 게 속 편하지.’
팽중호는 위지철이 제멋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보다, 오히려 자신의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고 생각했다.
뭐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위험한 법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곳저곳에 써먹을 생각이었다.
초절정의 무인은 정말 써먹을 곳이 많으니 말이다.
“그럼 대련도 끝이 났으니 같이 식사라도 하고, 저녁에는 어디 좀 같이 가시죠.”
“예. 그럼 잠시 옷만 갈아입고 다시 오겠습니다.”
“예.”
* * *
식사도 끝이 나고 늦은 저녁.
팽중호와 위지철 두 사람이 하북팽가를 벗어나 밖으로 나왔다.
주변 상가들도 문을 닫는 늦은 시간.
과연 어디를 가기 위해 이 시간에 나온 것일까?
“흑상이 정말로 있는 곳입니까?”
“물론입니다.”
팽중호가 위지철을 데리고 나온 것은 흑상(黑商)을 가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 팽중호가 태도상단에 의뢰한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이번에 흑상의 경매 물품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흑상에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위지철이 왔으니 데리고 가는 것이었다.
위지철이 아니면 곽채령이나 도수와 함께 가려 했는데, 더 쓸 만한 인재가 왔으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두 사람이 걸어서 도착한 곳은 구석에 있는 허름한 주루.
팽중호는 거침없이 그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위지철은 흑상에 간다더니 왜 이런 곳에 왔는지 의아했지만, 일단은 팽중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옵쇼. 자리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주루 안에 들어서자 점소이가 재빠르게 다가왔는데, 위지철은 곧바로 그 점소이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분명 무공을 익힌 움직임이었으니 말이다.
보통 사람이 본다면 전혀 모르겠지만, 위지철 정도 되는 실력자라면 알아볼 수 있었다.
“달빛도 들지 않는 곳으로 줘.”
“알겠습니다. 이리 모시겠습니다.”
팽중호가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자, 점소이의 표정이 살짝 바뀌더니, 팽중호와 위지철을 어디론가로 인도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주루에 있는 방 중 하나.
“자 일단 이것을 쓰십시오.”
점소이가 건넨 것은 얼굴을 가리는 가면.
흑상의 경매는 철저히 신분을 가린 채 이루어지니 가면은 필수였다.
팽중호와 위지철은 그 가면을 곧바로 착용했다.
“자. 그럼.”
툭- 툭- 툭- 투욱-
드르르르르르륵-
점소이가 이곳저곳 현란하게 손을 움직이자, 기관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바닥에 하나의 문이 열렸다.
그 문 사이로 보이는 기다란 계단.
“안으로 가시지요.”
그렇게 팽중호와 위지철은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르르르르르륵- 쿵-
화륵- 화륵- 화륵-
문이 다시금 닫히자, 곧바로 사방에서 횃불이 밝혀졌다.
도대체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편리해 보이는 기능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와 위지철은 계단을 따라 쭉 내려간 후에, 이리저리 마구 휘어진 길을 걷고 걸었다.
아무래도 위치를 알 수 없도록 일부러 길을 어지럽게 내놓은 듯싶었다.
그렇게 꽤 걷자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 보이는 빛.
화아악-
“빨리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돈은 얼마나 있냐?”
“오늘 그건 반드시 우리가 사야 한다.”
빛을 통과하자 넓은 공동에 수많은 이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다들 가면을 쓰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아주 바쁜 모습이었다.
“저쪽으로 가죠.”
“아, 예…….”
팽중호는 한쪽에 빈자리로 향했고, 위지철은 이런 광경을 처음 보기에 연신 주변을 둘러보느라 바빴다.
지금까지 평생을 거의 무공 수련과 함께했으니, 이런 경험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잠깐 앉아 있는 사이에 공동의 제일 앞쪽의 단상에 검은 가면에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나타났고,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순간 시끄럽던 주변이 고요해지고, 모든 시선이 단상으로 향했다.
“첫 물건은 바로 화탄입니다.”
드르르르륵-
작은 수레 위에 올려져서 나타난 화탄.
팽중호에게 익숙한 화탄이었다.
‘그때 그 살수 놈이 갖고 있던 거랑 같은 거네.’
지난번 하북팔은랑이라는 살수들이 팽중호를 죽이려고 왔을 때 들고 있던 화탄과 같은 것이었다.
팽중호는 아직까지 그 화탄을 잘 보관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대충 어느 정도 가격일지 알 수 있을 듯싶었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은자 한 냥.”
“은자 두 냥.”
“은자 다섯 냥.”
쭉쭉 계속해서 치고 올라가는 가격.
그렇게 치솟던 가격은 무려 은자 칠십 냥에 멈춰 낙찰되었다.
“이야 화탄 하나에 은자 칠십 냥? 이거 가져다가 팔아야 하나.”
은자 칠십 냥이면 평범한 가족이 몇 년은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런 돈을 지금 겨우 화탄 한 개에 쓰는 것이다.
“자. 다음 물건입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흑상의 경매.
정말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왔는데, 무기, 무공서, 사람 등…….
정말로 가리는 물건이 없었다.
“이런 곳이 있다니. 당장이라도 없애야 하는 것 아닙니까?”
위지철은 정말 바른길만 걸어온 사람이다 보니, 이런 흑상이 좋게 보일 리 없었다.
흑상에서 파는 물건들의 대다수는 무림에서 금기시하는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완전히 없애기도 불가능할뿐더러, 여기서 검을 잘못 뽑으면 저나 위 소협이라도 절대 곱게 못 죽습니다.”
흑상의 규모나 힘을 정확히 알고 있는 곳은 아마 무림에 없을 것이다.
그 유명한 개방도 흑상은 온전히 파악할 수 없으니 말이다.
흑상의 경매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데, 칼부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이 흑상에서 지켜야 할 규칙 때문이었다.
규칙을 어기고 흑상에서 행패를 부렸다가는 그대로 흑상에 공적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흑상의 낙인.’
이 낙인이 유명해진 계기가 하나 있었는데, 전에 호남성에서 난다긴다하던 문파가 흑상의 물건을 탐내 흑상을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행패를 부린 다음 날, 그 문파에 있는 모든 이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서 나타났다.
이 사건 이후 흑상을 건드리려는 간 큰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일단 여기서 나가면 위 소협이 활약할 기회가 올 겁니다. 그때까지는 그냥 가만히 계셔 주십쇼.”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위지철은 의협심만 가득 찬 멍청이가 아니었다.
곧바로 이 상황을 수긍하고, 가만히 자리에 앉았다.
“자. 모두 집중해 주십시오! 오늘 여러분들 중 대부분이 아마 이 물건을 사러 오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진행자의 말에 갑자기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팽중호는 여기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지금 나오는 물건을 사기 위해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드르르르륵-
천천히 등장하는 물건.
물건을 따라 사람들의 고개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자. 이것이 바로 그 희대의 영약이라는 공청석유입니다.”
“오오.”
“저것이……!”
수레 위에 아주 고급스러운 병이 하나 있었는데, 저 병 안에 들어있는 것은 바로 공청석유(空靑石油)였다.
단 한 방울만 섭취해도 수십 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다는 귀하디귀한 희대의 영약.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지금 하북성의 흑상에 나타난 것이다.
‘아주 치열하겠어.’
다들 이 공청석유를 사려고 온 것이니 당연히 경매가 치열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자. 그럼 금화 열 냥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시작 금액부터 금화 열 냥이다.
정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
하지만 사람들의 열기는 엄청났다.
“열한 냥!”
“스무 냥!”
“스물두 냥!”
계속해서 쉬지 않고 올라가는 공청석유의 가격.
팽중호도 이 공청석유를 노리고 왔지만, 일단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였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많은 이들이 떨어져 나가고, 두세 사람만이 경합하고 있었다.
“자 금화 이백 냥! 더 없으십니까?”
어느새 이백 냥까지 오른 공청석유.
이백 냥을 부른 자는 더 이상 자신과 경쟁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보고 공청석유는 이제 자신의 것임을 확신했다.
그렇게 그가 공청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삼백 냥.”
“!!”
“!!”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팽중호가 금화 삼백 냥을 불렀다.
일순 시선이 팽중호에게로 쏠렸다.
도대체 누구냐는 듯한 시선들.
물론 가면을 쓰고 있으니, 누구인지는 알 수 없을 테지만 말이다.
“금화 삼백 냥! 더 없으십니까?”
“…….”
“…….”
진행자의 외침에도 주변이 고요했다.
더 이상의 입찰자는 없다는 뜻의 침묵.
“그럼. 저분에게 낙찰하겠습니다!”
낙찰이 완료되고 공청석유를 받아들기 위해 앞으로 나서는 팽중호.
돈은 그 자리에서 현물거래가 원칙이기에, 팽중호는 품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내었다.
금화 삼백 냥치고는 작아 보이는 크기.
“여기 금원보 3갭니다.”
금원보 하나는 금화 백 냥과 같은 가치.
팽중호는 금원보로 가격을 치르고 공청석유를 품에 챙겼다.
그리고 그렇게 공청석유를 챙겨 내려오는 팽중호를 아주 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조금 전 이백 냥을 불렀던 인물.
가면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그래. 아주 좋은 눈빛이다.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