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대련은 계속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지철은 팽중호에 대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당장이라도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무공과 새로운 고수를 기다려왔는데, 그 와중에 반쯤 잊혀져 있던 하북팽가에서 불세출의 기재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어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위지철은 무림맹에 자신을 하북팽가의 감시관으로 보내 달라 청하였다.
물론 사문인 무당파의 반대가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막을 수는 없었다.
‘대신, 감시관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라.’
결국 위지철은 감시관으로 임명받을 수 있었고, 곧바로 가장 빠르게 달려서 하북팽가로 향하였다.
“안녕하십니까. 무당의 위지철이라 합니다.”
그렇게 하북팽가의 문 앞에 도착해, 문지기에게 인사를 하고 잠시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쿠구구구궁-
하북팽가의 정문이 활짝 열리며, 그 안으로 사람의 신형이 보였다.
그리고 위지철의 시선은 그중 허리에 도를 차고 있는 이에게 딱 고정이 되었다.
‘저분이…….’
위지철은 그가 팽중호임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느껴지는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하북팽가의 소가주인 팽중호라 합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가 팽중호였다.
위지철은 팽중호의 인사에 곧바로 정중한 태도로 마주 인사를 하였다.
한 세가의 소가주에게 결례를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무당의 위지철이라 합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예.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감사합니다.”
위지철은 그렇게 팽중호를 따라 하북팽가의 안으로 들어섰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지어지고 있는 전각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일견 보기에 규모가 꽤 커 보였다.
‘하북팽가가 새롭게 부활했다더니, 그것이 사실이구나.’
그리고 좀 더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연무장과 함께, 그곳에서 수련하는 무인들이 보였다.
“합!”
“하압!”
하나같이 절도 있고, 힘이 넘치는 모습.
위지철은 하북팽가의 무인들의 수준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저들의 수준이라면, 무당파의 이대제자들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조만간 무림에 하북팽가의 이름이 크게 퍼지겠구나.’
위지철이 감탄을 하는 사이, 발걸음이 한 전각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준비라도 해 두었는지, 곧바로 차와 다과가 준비되었다.
“저희를 감시하러 오신 거 맞으십니까?”
“아, 예. 맞습니다. 감시관의 자격으로 왔습니다.”
“며칠이나 계십니까?”
“하북팽가가 사도의 길을 걷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입니다.”
* * *
“하아.”
탁-
팽중호는 위지철의 대답에 짧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확신이 들 때까지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확신이 들지 않으면 안 가겠다는 소리 아닌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소리나 마찬가지.
한마디로 위지철이 언제 떠날지는 위지철 마음이란 소리였다.
“그럼 그 판단은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일단은 제가 한 달 정도 머물며 지켜볼 생각입니다.”
한 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지금 딱히 남은 전각이 없어, 제가 머무는 곳에 같이 머무셔야 합니다.”
“예. 저는 상관없으니,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위지철과의 동거가 시작되었고, 팽중호는 직접 위지철이 머물 방을 안내해 주었다.
“여기를 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위지철이 가져온 짐이라고는 옷 몇 가지가 들어있는 작은 봇짐이 전부였기에, 금방 정리가 끝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위지철은 팽중호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작은 봇짐을 무슨 보물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풀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옷을 하나하나 아주 정성스럽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딱 알겠다.’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위지철이 어떤 인물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원리원칙에 굉장히 충실하고, 지나친 완벽을 추구하는 무공광.
팽중호의 전생에도 종종 보이던 성격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딱 생김새도 전생의 그들과 완벽히 일치했다.
질끈 묶어 맨 영웅건과 먼지 한 톨, 조금의 구겨짐 하나 없이 티 없이 깨끗한 무복.
두 눈은 현기와 총명함으로 반짝이고, 피부 또한 여인들처럼 아주 곱다.
얼굴도 유려하게 잘생겼으며, 목소리 또한 듣기 좋은 울림을 준다.
‘어떻게 저런 애들은 항상 있으며, 항상 똑같을까?’
위지철은 귀묘자 정한승과 비교해도 조금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미남이었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공자님의 모습.
어떻게 항상 저런 자가 꼭 한 명 이상은 무림에 존재해 오는지 그것이 신기한 팽중호였다.
팽중호가 위지철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얼추 위지철의 짐 정리가 끝을 보이고 있었다.
“짐 정리 끝나면, 대련 한 번 하시겠습니까?”
“예?!”
팽중호의 입에서 대련하자는 소리가 나오자, 대번에 위지철의 고개가 휙 돌았다.
두 눈이 아주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가 얼마나 대련을 원하는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짐 정리. 끝났습니다.”
대련을 위해 아직 조금 남은 짐 정리를 포기하는 위지철.
팽중호는 그 모습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참 알기 쉬운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뭐, 있는 동안 별문제 없겠군.’
팽중호는 위지철이 하북팽가에 머무는 동안 별 탈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 연무장으로 가시죠.”
“예.”
그렇게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팽중호와 위지철.
위지철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팽중호는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듯한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자. 다들 잠깐 수련 좀 멈추십쇼.”
연무장에 도착한 팽중호는 수련하고 있던 무인들에게 잠시만 수련을 멈추라 하였다.
자신과 위지철 간의 대련을 보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특히나 도수와 곽채령은 꼭 지켜보게 할 생각이었다.
무당파의 검을 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것도 수준 있는 무당의 검을 말이다.
“다들 지켜봐도 괜찮으시죠?”
“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그럼…….”
스릉-
팽중호가 무적도를 꺼내어 들었다.
태양빛을 받아 번들거리는 무적도는 확실히 그 자체로도 상대에게 두려움을 심어 줄 만한 자태를 뽐내었다.
스르릉-
그리고 마주 검을 뽑는 위지철.
무당파에서 위지철을 위해 특별히 하사한 명검.
확실히 무적도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자태의 검이었다.
“먼저 가겠습니다.”
“예. 마음대로 하십쇼.”
먼저 움직이는 쪽은 위지철이었다.
타앗-
가볍게 발을 구르며 움직이는 위지철.
그 움직임이 매우 표홀하면서도 유려하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과 함께 팽중호를 압박해 오는 위지철의 검은, 장중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카캉- 캉- 카카캉-
무당의 검은 그 어떤 검보다 부드럽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부드러움 안에 담긴 장중한 힘은 마치 거대한 파도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카캉- 카아아앙-
팽중호와 호각으로 싸우는 위지철.
확실히 그는 정협룡이라는 별호에 걸맞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금 더 진심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예예. 물론입니다.”
슈와아아아아악-
위지철의 검에서 푸르른 검기가 피어올랐다.
시리도록 푸른 그 검기와 함께 위지철의 검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무당파의 검법 중에서도 최고의 절기인 태극혜검(太極慧劍)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파지지지지지직-
팽중호도 그에 맞추어 혼원벽력도를 펼치며 맞서 나갔다.
카카캉- 카캉- 카카카캉-
‘참. 이 무당파 놈들의 검법은 신기하단 말이야.’
전생에도 느낀 거지만, 무당파의 사람과 검을 섞으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 내면서,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역으로 공격해 들어온다.
자신의 힘에 역으로 당하는 기분은 언제 당해도 참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팽중호도 전생에는 무당파 사람과 드잡이하는 건 썩 좋아하지 않았다.
이겨도 이긴 기분이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뭐 그건 수준이 같았을 때고.’
분명 위지철의 태극혜검은 젊은 나이에 비해 매우 뛰어났지만, 아직 팽중호를 누르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게다가 팽중호는 이미 전생에 수차례 태극혜검을 경험해 보았기에, 어떻게 이 검법을 파훼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힘으로 깨부순다.’
부드러움으로 받아넘기지 못할 만큼의 압도적인 힘을 준다면, 아주 손쉽게(?) 태극혜검을 파훼할 수 있었다.
파지지지지지직-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낙뢰단봉(落雷斷峰).
팽중호의 도에 뇌기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그대로 위지철에게로 향했다.
위지철도 가만히 있지 않고, 검을 움직여 팽중호의 뇌기를 막기 위한 준비를 하였다.
- 태극혜검(太極慧劍). 회무(回無).
위지철의 검기가 팽중호의 뇌기를 감싸 안았다.
이대로 뇌기를 흘려 내려는 위지철.
카카칵- 카칵- 캉-!
“헛!”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팽중호의 뇌기는 그대로 검기를 뚫고 들어왔고, 위지철은 급하게 몸을 틀어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찌직-
어깨 부분의 옷이 살짝 찢어지는 정도로 피해 낸 위지철.
그렇게 위지철이 내심 한숨 돌리고 있을 때였다.
“거, 안심하실 때가 아닙니다? 아직 대련은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옛?!”
퍼어억-
“허업!”
아주 잠깐 방심하고 있는 위지철의 옆구리로 팽중호의 발이 그대로 작렬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헛바람을 크게 삼키는 위지철.
그리고 그런 위지철을 팽중호는 입가에 아주 진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자자. 대련은 계속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잠시만. 제가 졌…… 컥!”
위지철이 대련의 패배를 선언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팽중호의 주먹이 반대쪽 옆구리에 작렬했다.
그대로 허리가 접히는 위지철.
이 모습을 지켜보던 팽가의 무인들은 속으로 위지철이 부디 멀쩡하기를 빌어 주었다.
지금 팽중호가 보여 주는 모습은 자신들에게 보여 준 수련을 빙자한 일방적인 폭력과 같았으니 말이다.
“앞으로 원하시면 언제든 대련해 드리겠습니다. 크크크.”
팽중호는 이번에 위지철을 아주 확실하게 밟아 줄 생각이었다.
그래야 후에, 대련을 하자고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퍼억- 퍽- 퍼어억-
정말 보는 사람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의 일방적인 구타.
그래도 한 가지 대단한 것이라면, 위지철이 그렇게 맞고서도 아직 두 발로 서 있다는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지금쯤이면 네발로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확실히 괜히 팔룡삼봉 중 한 명이 아니었다.
툭- 툭-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고, 팽중호가 끝을 알리듯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었다.
그리고 그 앞에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 간신히 서 있는 거지꼴의 위지철.
단정했던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먼지 한 톨 없던 무복은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소가주님.”
“저도 오랜만에 제대로 몸을 풀었습니다.”
손까지 부들부들 떨면서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는 위지철.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정신력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뭐지? 왜 눈이 불타고 있는 거지?’
위지철의 두 눈이 원래라면 썩은 생선 눈깔처럼 변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위지철의 두 눈은 무언가 아주 굳은 의지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내일도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
“?!”
팽중호를 비롯한 하북팽가 무인들 모두가 다시금 대련을 부탁드린다는 위지철에게 시선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