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별호부터 벌써 피곤하다.
비룡문의 멸문.
이 소식은 하북성뿐 아니라, 전 무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비룡문은 나름 무림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와 함께 하북팽가의 이름도 전 무림에 전해졌다.
‘하북팽가가 다시금 부활했다.’
과거 오대세가 중에서도 남궁세가와 함께 수좌를 다투던 곳이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니, 당연히 무림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정마대전 이후 조용하던 무림이 조금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은 저마다 하북팽가에 대해 떠들기 바빴다.
그중에 특히나 가장 중심이 된 이야기는 바로 팽중호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북팽가의 소가주가 초절정 고수인 비룡신창을 압도적으로 이겼다.’
팽중호의 나이가 아직 한창 젊은데, 벌써 초절정을 넘어선 고수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후기지수 중에 초절정의 벽을 넘은 이는 온 무림을 뒤져도 분명 많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무림에 이름이 퍼진 팽중호에게 또 새로운 별호가 하나 붙기 시작했다.
‘뇌룡(雷龍).’
현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칠룡삼봉(七龍三鳳)이라 불렀는데, 사람들이 이번에 팽중호를 그곳에 포함해 팔룡삼봉(八龍三鳳)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 * *
“이번에 저희의 방식에 대해 말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춘오는 무림에 퍼진 이야기들을 추려서 팽중호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하북팽가를 향한 이야기 중에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특히나 이번 비룡문과의 생사결에서 비룡문이 먼저 선수를 쳤다고는 해도 너무나 손속이 과하지 않았냐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나왔다.
하북팽가가 예전처럼 정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사도 문파와 같이 변해 버린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예상 못 한 건 아니잖아?”
“뭐, 그렇긴 합니다.”
팽중호가 이번에 비룡문을 거의 몰살 직전까지 몰아간 이유는 하북성에 있는 다른 문파들에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압도적이고 잔혹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그들이 헛짓거리할 생각을 안 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런 비난이 들려올 것을 알고서도 비룡문을 멸문까지 몰아간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뭔데? 무림맹이 우릴 사파로 낙인찍겠대?”
“당장 그건 아닌데, 감시관을 파견하겠답니다.”
“감시관?”
“예. 저희가 사파인지 아닌지 감시할 사람을 보내겠답니다.”
사실상 무림패를 건 생사결로 깔끔하게 끝이 났으면 무림맹도 간섭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룡문의 멸문을 빌미로, 다른 힘 있는 문파들이 무림맹을 압박해 하북팽가에 감시관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바로 옆에 사람을 두고, 하북팽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뜻이었다.
“별 지랄을 다 하네. 그래서 누가 온대?”
“무당파 사람이라고 합니다.”
“무당파?”
무당파(武當派).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구파일방 중에서도 단연 첫손에 꼽을 만큼의 세력을 가진 곳으로, 무림에서 검을 논할 때 남궁세가와 함께 항상 제일 먼저 거론되는 곳이었다.
“예. 무당파에서도 손에 꼽는 후기지수가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 놈이 감시관으로 왜 온대?”
“정확히 어떤 이가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소가주님을 직접 보고 싶어서 자원해서 나섰답니다.”
“하아. 귀찮은 게 하나 늘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어쩔 수 없지.”
팽중호는 뭐 온다는 감시관을 막았다가는 무림맹에서 옳다구나 하면서 날뛸 것이 뻔하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하북팽가가 하북성은 접수했지만, 아직 무림 전체로 놓고 보면 턱없이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태도상단에서 혹시 저희 무인들을 보내 줄 수 있냐고 물어 왔습니다.”
보통 상단과 무림 세력 간의 계약은 상단에서 자금을 대는 만큼, 무림 세력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무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북팽가의 무인들도 팽중호의 수련 덕택(?)에 일정 수준 이상 올라왔기에, 충분히 무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당연히 보내야지. 이제 다들 경험도 필요하니까.”
팽중호는 오히려 태도상단에 팽가 무인들을 좀 데리고 다니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제는 직접 나가서 경험을 얻는 것도 필요했으니 말이다.
“아, 그리고 오늘 가주전 공사가 끝이 났습니다.”
“그래? 가 보자.”
지금 하북팽가는 전례 없는 대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멸화환영진에 의해서 타 버린 전각들의 자리에 새로운 전각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냥 막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한승이 짠 진법의 방위에 맞게 지어지고 있었다.
그날 불에 타지 않은 가주전을 중심으로 진법이 구성되어 졌는데, 아무래도 중심의 역할을 하는 곳이자, 하북팽가의 가주가 머무르는 곳이다 보니, 더욱 크고 웅장하고 새롭게 재건축을 하였다.
뚝딱- 뚝딱- 탕- 탕- 탕-
아직 전각들이 한창 지어지는 중이기에 주변에서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팽중호와 장춘오는 한번 쭈욱 둘러본 후에 가주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 오셨소?”
가주전에 도착하자 그 앞에서 바쁘게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는 정한승이 보였다.
정한승은 지금, 더 완벽한 진법의 완성을 위해 이리저리 진법의 주축이 될 것들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잘 되고 있습니까?”
“장인들이 솜씨가 좋아 잘 되고 있소.”
태도상단에서 보낸 장인들의 솜씨가 상당히 좋았기에, 정한승이 설계한 대로 정확하게 전각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오. 확실히 솜씨가 좋긴 좋은 모양인데?”
정한승의 말을 들은 후 바라본 가주전의 모습은 확실히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전의 모습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크고 웅장하게 변해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천천히 가주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주전 앞을 지키던 이는 팽중호가 나타나자 곧바로 안으로 기별을 넣었고, 곧바로 가주전의 문이 열렸다.
“들어가십시오.”
“수고하고.”
가주전 내부도 완전히 바뀌어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예전 하북팽가의 가주전과 같은 느낌이 났다.
그리고 그 가주전의 가장 상석.
그곳에 팽자성이 앉아 있었다.
“어떠십니까? 마음에 드십니까?”
“그래. 조금 과한 것 같지만, 마음에 드는구나.”
팽자성은 이 넓어진 가주전이 조금 어색했지만, 그래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주전의 크기는 그 세가의 힘을 나타내는 것.
전적으로 팽중호의 힘 때문에 이렇게 변한 것이지만 말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냐?”
“뭐, 일단은 내실을 다질 생각입니다. 비룡문을 없앴다고 해도 아직 완전히 하북성을 장악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비룡문이 사라지고 하북팽가가 지금 하북성의 정점에 섰다지만, 아직 하북성에는 수많은 위험 요인이 존재했다.
팽중호가 잔인할 정도의 손속으로 경고해서 쉽게 경거망동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시기를 노리려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비룡문보다는 하북팽가가 손쉬운 상대라 생각할 테니 말이다.
때문에 팽중호는 일단은 내실부터 공고하게 다질 생각이었다.
그래야 후에 자리를 비우는 일이 있어도 문제가 안 생길 테니까.
“그래. 나도 더 힘을 쓰마.”
팽자성은 이제 거의 다 하북팽가의 가주다운 모습을 찾았다.
세가의 전반적인 일은 이제 가주인 팽자성과 대장로 팽조운, 그리고 장춘오가 맡아서 일을 진행 시키니, 팽중호는 그저 하북팽가가 더 앞으로 뻗어 나갈 일만 궁리하면 되었다.
“그럼 가주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하하. 그래.”
팽중호는 그렇게 팽자성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주전을 벗어났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연무장.
팽중호는 연무장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무림 세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무인의 강함이 결국 모든 것인 이 바닥에서 그 무인들이 피땀 흘려 수련하는 연무장은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합!”
“하압!”
팽중호가 나타났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수련하는 팽가의 무인들.
그들의 몸은 갑옷을 입은 듯 탄탄하게 단련되어 있었고, 휘두르는 도에서는 전에 없던 힘이 넘치고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모두 날카로운 기도를 내뿜고 있는 그들은 소수 정예라는 말이 딱 떠오를 듯한 모습이었다.
“휘유.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마음에 들어.”
이제는 팽중호가 직접 나서서 수련시키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죽어라 수련을 한다.
체계가 잡혀가는 것이었다.
“춘오야.”
“예. 말씀하십쇼.”
“이제 슬슬 자리 정하기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하북팽가에 있던 장로들과 각주들이 빠져나가면서 현재 하북팽가에는 텅 비어 있는 자리가 많았다.
앞으로 하북팽가가 더 커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슬슬 새로운 간부들을 뽑아야 할 때였다.
“그러실 줄 알고, 대충 명단은 뽑아 놨습니다.”
“크크. 잘했다.”
장춘오는 이미 이럴 줄 알고 각 자리에 적합할 만한 인물들을 추려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팽중호와 장춘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연무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하북팽가의 정문을 지키는 무인이 헐레벌떡 팽중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그 무림맹의 감시관이라는 자가 찾아왔습니다.”
“거, 빨리도 왔네.”
보고를 받은 게 조금 전인데, 벌써 도착하다니?
“그, 그런데 그 감시관이…….”
“감시관이 뭐 해코지라도 했습니까?”
“그게 아니라, 감시관으로 온 자가 무당파의 정협룡(正俠龍) 위지철입니다.”
“정협룡?!”
“??”
정협룡이란 말에 장춘오는 짐짓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고, 팽중호는 뭐냐는 표정을 지었다.
“정협룡 위지철은 소가주님이랑 같은 팔룡삼봉 중 한 명입니다.”
“아. 그래? 그런 놈이 우리를 감시하겠다고 왔다고? 무당파는 그걸 보내 주고?”
팽중호는 이해가 안 간다는 말투로 물었다.
팽중호도 팔룡삼봉에 대해서는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무림에서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을 일컫는 말.
그렇다면 정협룡은 무당파에서 아주 공들여 키우고 있는 제자라는 것인데, 고작 자신들을 감시하는 감시관으로 무당파에서 아끼는 제자를 보낸단 말인가?
아무리 가고 싶다고 자원을 했더라도 말이다.
무당파가 제정신이 나간 게 아니고서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정협룡이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의 다른 별호가 광무룡이니까요.”
“별호부터 벌써 피곤하다. 하아.”
의협심이 뛰어나 정협룡이라 불리는 위지철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은 바로 광무룡(狂武龍)이었다.
평소에는 조용하고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듯한 모습을 보여 주는 위지철이지만, 새로운 무공이나 새로운 강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이 바뀌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무공에 대한 광적인 집착.
사실 무당파도 그의 이런 무공에 대한 집착을 막아 보려 하였으나,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고, 이제는 위지철이 무공을 보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는 실정에 다다랐다.
이번 위지철의 하북팽가 행도 무당파에서는 반대하였지만, 위지철의 완고한 고집을 꺾지 못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팽중호는 위지철의 광무룡이란 별호를 듣자마자 곧바로 그가 무공광이란 사실을 깨닫고, 그가 감시관으로 있는 동안 계속해서 대련해 달라고 할 것을 직감했기에, 벌써 피곤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쯧. 뭐 이미 왔으니 별수 없으니까, 최대한 이리저리 잘 써먹어 볼 생각이나 해 봐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