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34화 (34/200)

34화 어딜 그냥 쓱 도망치려고?

“기세는 좋구나.”

막주환은 팽중호의 기운을 흘려 내며, 최대한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앞으로 나섰다.

물론 속에서는 뭔가 예감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말이다.

“채령아. 돌아가 있어.”

“아아. 넷!”

팽중호는 아직 뒤에서 멀뚱히 있는 곽채령을 자리로 돌아가라 한 뒤, 한 발짝 앞으로 나서 막주환을 맞이했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선 팽중호와 막주환.

팽중호는 막주환을 위아래로 쓰윽 훑어보았다.

‘뭐, 확실히 지금까지 만난 놈 중에 제일 낫긴 하네.’

초절정이라는 이야기가 거짓은 아닌 듯, 막주환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팽중호가 지금까지 만났던 이들 중 제일 강했다.

“그 도를 보아하니, 장석팔 그자가 만들어 준거군.”

팽중호의 무적도를 보고 곧바로 장석팔의 작품이란 것을 알아본 막주환.

막주환이 들고 있는 창 또한 장석팔의 작품이었기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네 창도 장 야방주님이 만든 거냐? 분에 넘치는 걸 들고 있네.”

“하하. 누가 분에 넘치는 걸 들고 있는지는, 이 싸움의 결과가 알려 주겠지.”

“혹시 모르니까, 그 창은 내가 챙길게.”

막주환의 창을 탐내는 팽중호.

팽중호는 저 창을 챙겨 두면 후에 쓸 일이 생길 것이라 생각했다.

장석팔이 만든 것이니, 챙겨 둘 가치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할 수 있다면 해 보거라!”

슈우우우욱-

막주환의 창이 순식간에 팽중호를 찔러 나갔다.

준비 동작도 없이 찔러 온 공격은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빨랐다.

카캉-

하지만 팽중호는 가볍게 무적도로 공격을 쳐 내었다.

그렇게 시작된 팽중호와 막주환의 싸움.

보통 무인들은 눈으로 좇기도 힘든 엄청난 공방이 시작되었다.

캉- 카캉- 카카카카캉- 캉-

다만 공방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표정이 조금씩 달라졌는데, 팽중호는 매우 여유롭게 미소까지 짓고 있는 반면, 막주환은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카아앙-!

“흡!”

강렬하게 부딪친 후에, 잠깐 거리를 벌리고 떨어진 막주환.

막주환은 지금 자신의 양손을 아주 잠깐 바라보았다.

덜덜덜-

미세하지만 조금 떨려 오는 두 손.

팽중호의 도와 부딪칠 때마다 누적된 피로 때문이었다.

가벼운 부딪침 같았지만, 조금도 가볍지 않았다.

“역시 썩어도 하북팽가라는 건가.”

“아, 뭐 좀 썩기는 했었지.”

“…….”

막주환은 더 이상의 말 없이 다시금 창을 고쳐 잡았다.

팽중호와의 싸움을 길게 하면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초절정인 나와…….’

팽중호의 나이는 아직 한참 젊다.

저 나이에 초절정의 벽을 넘은 자는 온 무림을 뒤져도 손에 꼽을 만큼 적다.

남궁세가나 무당파 정도 되는 초거대 문파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런데 이 망해 가는 하북팽가에서 저런 고수가 나오다니?

꽈아아악-

어떻게 초절정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상대는 아직 어린 애송이.

싸움의 경험은 물론 초절정에 올라선 시간도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

막주환은 창을 더 강하게 쥐며, 다시금 싸움을 준비했다.

팡-

공기를 찢으며 엄청난 속도로 팽중호에게 쇄도하는 막주환.

막주환의 창에는 조금 전의 창기보다도 훨씬 빛이 나는 기운이 서려 있었는데, 바로 창강(槍罡)이었다.

막주환은 강기를 써서라도 빠르게 이 싸움을 끝낼 생각을 하고 있었다.

- 비룡낙월창(飛龍落月槍). 비룡탐월(飛龍貪月).

막주환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들어 준 비룡낙월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동생인 막종우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과 변화를 보여 주며 쇄도해 오는 막주환의 비룡낙월창.

거대한 용이 달을 집어삼키려는 듯 아가리를 벌리고 날아오는 듯한 형태의 창강의 쇄도.

분명 아무리 팽중호라도 가볍게 막을 만한 위력의 초식은 아니었다.

파짓- 파지직- 파팟-

팽중호의 무적도에도 도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막주환이 속결로 끝내려는 것 같았으니, 그에 맞춰 줄 생각이었다.

상대의 도전을 힘으로 박살 내는 것.

그것이 하북팽가가 가져야 하는 덕목 아니겠는가?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쌍뢰파봉(雙雷破峰).

팽중호의 무적도가 움직이자, 막주환에게로 쏘아져 나가는 뇌기를 머금은 두 개의 도강.

그리고는 막주환의 용과 그대로 맞부딪쳤다.

콰카가가가가가각-

엄청난 격돌.

주변의 땅이 뒤집히고, 지켜보던 무인들이 발걸음을 뒤로 무를 수밖에 없었다.

콰아앙-!

그리고 굉음과 함께 이 격돌이 끝이 났다.

촤아아아아악- 쾅-

하나의 신형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날아가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쿠왁! 쿨럭! 쿨럭!”

벽에 처박힌 신형이 피를 분수처럼 쏟아 내더니,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연신 기침해 대며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신형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부리나케 그곳으로 달려가는 비룡문의 무인들.

“문주님!”

지금 벽에 처박혀 피를 토해 내고, 바닥으로 쓰러진 이는 바로 막주환이었다.

비룡문의 무인들은 지금 자신들의 문주인 막주환이 졌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그를 상대했던 팽중호가 너무나 멀쩡한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팽중호는 막주환과는 다르게 그저 뒤로 조금 신형이 밀려 있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극명하게 갈려 버린 두 사람의 상황.

“쓰읍. 퉤!”

팽중호가 살짝 인상을 쓰며 침을 뱉었는데, 침에는 붉은 피가 조금 섞여 있었다.

조금이지만 방금의 부딪침으로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하지만 막주환은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에 비한다면, 이건 내상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경미한 것이기는 하였다.

“자. 내가 이겼지? 무림패는 이리 내놓고, 이만 돌아가라.”

무림패를 걸고 한 대결에서 승리했다는 증표인 비룡문의 무림패만 내놓으면, 딱히 더는 건드리지 않을 생각인 팽중호였다.

물론 팽중호는 비룡문이 이 말대로 무림패를 내놓고 순순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 십 할 장담했지만 말이다.

“다 죽여.”

“예!”

삐이이이익-

아니나 다를까.

이번 생사결을 따라온 독심호 방홍성이 곧바로 무인에게 죽이라는 신호를 보냈고, 무인은 품에서 호각을 꺼내어 강하게 불기 시작했다.

하북팽가 주변까지 울려 퍼지는 뾰족한 호각 소리.

사사사사삭- 사사사사삭-

그와 동시에 하북팽가의 사방에서 비룡문의 무인들이 벽을 넘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룡문에 포위된 형국이 되어 버린 하북팽가.

“확실히 무공 실력은 대단하다만, 너무 순진하구나.”

방홍성이 입가에 조소를 띄우며 팽중호를 향해 이죽거렸다.

사실 방홍성도 막주환이 이렇게 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이 꼭 나쁘다고 생각지만은 않았다.

‘막주환이 여기서 죽으면, 비룡문은 내 것이나 다름없게 되겠지.’

현 비룡문의 실질적인 이인자는 바로 자신이었다.

이 상황에서 이대로 막주환이 죽거나 불구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비룡문은 자신에게 넘어오게 될 터.

여기서 깔끔하게 하북팽가에 있는 이들만 모조리 죽여 버리면, 무림패에 관한 일도 무마시켜 버릴 수 있었다.

하북팽가에 남은 이가 없는데, 누가 무림맹에 하소연하겠는가?

“아니! 이럴 수가! 이건 예상 못 했네! 키야!”

짐짓 놀라는 척을 하며 과장되게 말을 하는 팽중호.

방홍성은 그 모습에 살짝 인상을 썼다.

아무래도 저 팽중호가 지금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으니 말이다.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냐? 너희는 여기서 모두 죽는다. 봐라,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비룡문의 무인들을.”

하나같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비룡문의 무인들.

그들은 이제 최후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방홍성이 신호를 보내는 순간 그들은 거침없이 하북팽가의 무인들을 도륙할 터였다.

“너야말로 상황이 이해가 안 가나 봐? 너가 지금 있는 곳이 적진이라는 걸 모르는 거냐? 듣기로 네가 비룡문의 머리라더니, 이렇게 멍청해서야. 쯧쯧.”

“뭐, 뭣?”

“정 선생. 시작하죠!”

“알겠소.”

팽중호의 외침에 가주전이 있는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대답한 이는 귀묘자 정한승.

정한승이 가주전에 있는 곳에서 돌기둥 몇 가지를 이리저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불을 질렀는데, 불이 길을 따라 움직이며,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화르르르르르륵-

그리고 시작된 불지옥.

“모두 달아나라!”

“끄아아아악!!!”

“도망쳐!!”

조금 전에 벽을 넘어온 비룡문 무인들이 있는 곳이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비룡문 무인들은 재빨리 불길을 피해 달아나려 하였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다들 소리만 지를 뿐 제자리에서 허우적대고만 있었다.

“저, 저게 무슨……?”

“멸화환영진이라고 했던가? 맞죠? 정 선생.”

“맞소.”

멸화환영진(滅火幻影陳)은 팽중호가 정한승에게 특별히 부탁해 새롭게 만들어 낸 진법이었다.

기본적인 환영진에 불길을 가두고 더욱더 거세게 타오르게끔 하는 화공진을 더한 진법.

멸화환영진에 갇힌 이들은 환영진에 의해 도망치지 못한 채, 그대로 불길에 휩싸여 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우리를 이기려고 팽가를 버리는 것이냐?”

지금 멸화환영진의 불길에 의해 비룡문 무인들 뿐 아니라, 팽가의 전각들도 모조리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하북팽가에 남아 있는 전각은 몇 없을 터.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무림 문파라면 절대로 생각지도 않을 방법이었다.

“아까 말했잖아. 팽가가 썩기는 했었다고, 최근에 썩은 부분을 도려냈으니까, 불로 지져서 깔끔하게 소독도 하려고 말이야.”

새 술은 새 부대에 부으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역사와 전통도 좋지만, 지금의 하북팽가에게는 그런 것보다 새로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팽중호는 이번 기회에 오래된 전각들을 싹 다 없애 버리고, 새롭게 전각들을 세울 생각이었다.

물론 그래도 몇몇 하북팽가를 상징하는 전각들은 남기겠지만 말이다.

화르르르르르르르- 쉬이이이이이이익-

멸화환영진의 불길은 순식간에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태워 버렸고, 그렇게 모든 것을 태우자 그대로 사그라들며 사라져 버렸다.

정한승이 쳐 놓은 진법 밖으로는 조금의 불길도 나오지 않고, 딱 진법 안에서만 타오른 불길.

정한승의 진법 실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였다.

“자. 그럼 이제 너네만 남았네?”

하북팽가를 포위하고 있던 비룡문의 무인들이 한 줌의 재가 되어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방홍성을 비롯한 몇몇 비룡문의 무인들 뿐.

반면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모두가 멀쩡한 상태였다.

완전히 뒤바뀐 전세.

“무, 무림패를 주겠다.”

휘익-

방홍성은 이곳에 일단 멀쩡히 살아나가기 위해 재빨리 무림패를 팽중호에게로 던졌다.

이 무림패를 받으면 팽중호가 더 이상의 손은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탁-

무림패를 잡아든 팽중호.

팽중호는 그것을 던져서 조금 뒤에 서 있던 장춘오에게로 전해 주었다.

“춘오야 그거 맞냐?”

“흠……. 예. 진품 맞는 것 같습니다.”

장춘오는 이것이 무림맹에서 전해 주는 무림패가 맞는지 확인하였고, 결과는 진품이었다.

“그, 그럼 우리는 이만.”

무림패를 전해 주고는 급하게 돌아갈 생각을 하는 방홍성과 비룡문.

“누가 돌아가라고 했어?”

“무림패를 주면 돌아가라고…….”

“그 기회는 너희가 방금 뒤통수치려다 날려 먹었잖아? 어딜 그냥 쓱 도망치려고?”

탓-

순식간에 방홍성의 면전에 당도한 팽중호.

그리고 그대로 팽중호의 도가 움직였다.

서걱- 촤아아악-

방홍성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말했지. 뒤통수치는 새끼 싫어한다고.”

그렇게 방홍성의 목이 순식간에 달아나자 남은 비룡문의 무인들은 그대로 무기를 버리고 납작하게 엎드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제, 제발 살려 주십시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중호는 그들 사이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막주환에게로 다가갔다.

스윽-

그리고는 막주환의 옆에 놓여 있는 그의 창을 집어 들었다.

푸욱-

그리고 그 창으로 막주환의 단전을 찔러 부숴 버렸다.

막주환은 다시는 무공을 펼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만 살려 줄게. 대신 다음에 내 눈에 띄면 다 죽는 거야.”

“아, 아, 알겠습니다!”

남은 비룡문의 무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도망쳐 달아났다.

그렇게 남은 비룡문 무인들까지 모두 도망치고 사라지자, 순간 하북팽가가 고요해졌다.

타닥- 탁-

아직 조금은 남은 불씨가 남은 나무를 태우고 있었고, 매캐한 연기와 타는 냄새가 주변에 진동하고 있었다.

이 모습만 봐서는 하북팽가가 참패를 당한 듯싶을 정도.

하지만 하북팽가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은 자신들이 승리했음을 나타내 주듯 아주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 이겨서 좋기는 한데……. 너무 많이 태워 먹었나? 식당이랑 잠잘 곳이 없네.”

“하하하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