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확실하게 개조시켜 놓으면 문제없겠지.
신기진법총서(神技陳法叢書).
무림에 있는 수많은 진법들을 총망라한 서책이었는데, 사실상 구하기가 아주 힘든 물건이었다.
신기자(神機子)가 쓴 것으로, 몇 개의 필사본이 무림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꿍쳐 두고 풀지를 않으니 당연히 구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
팽중호는 이 신기진법총서를 하북팽가의 아주 은밀한 곳에서 찾아내었다.
아니, 사실은 전생에 팽중호가 제갈세가에서 뺏어와 구석에 처박아 둔 것을 꺼내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터였다.
팽중호는 귀묘자가 진법에 아주 관심이 많은 자라는 것을 듣고 이렇게 준비해 온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구하셨소?”
“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보다 어쩌시겠습니까?”
“…….”
귀묘자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분명 신기진법총서는 그가 꼭 한 번은 보고 싶었던 서책이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 속세인 하북팽가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진법 공부하기는 힘들 터.
귀묘자는 지금 그 두 가지를 놓고 저울질을 하는 중이었다.
“저희한테 오시면, 지금보다 더 진법 공부도 편하게 할 수 있고, 거기에 더해서 실험도 해 보실 수 있습니다.”
“흐음…… 알겠소. 따라가리다.”
귀묘자는 팽중호가 자신이 안 간다고 해도 쉽게 포기할 인물이 아님을 알았다.
분명 계속해서 자신을 귀찮게 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느니 차라리 신기진법총서도 읽고, 이래저래 세상 경험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따라갈 결심을 한 것이었다.
사실 귀묘자도 이 작은 오두막에서 평생을 지낼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에게도 세상에 나가서 진법으로 이름을 떨치고 싶은 욕망이란 것이 있었다.
“저는 하북팽가의 팽중호라고 합니다.”
“나는 정한승이라 하오.”
귀묘자 정한승은 팽중호와 제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오두막으로 들어가 자신의 물건을 챙기는 정한승.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보따리 하나를 챙겨 나타났다.
“다 챙겼소.”
“그럼. 갑시다.”
그렇게 팽중호와 함께 하북팽가로 들어온 정한승.
정한승은 이런 무림세가에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자자. 우리 귀묘…… 음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하려나?”
“정 선생 정도로 해 주시오.”
“아. 좋습니다. 우리 정 선생은 저쪽에 짐을 푸시면 됩니다.”
팽중호는 곧바로 일하는 하인을 불러 정한승이 머물 곳을 안내해 주었고, 그곳에 짐을 푼 정한승에게 팽중호가 곧바로 신기진법총서를 건네었다.
“여기 있습니다.”
“오오. 감사하오.”
소중하게 신기진법총서를 받아드는 정한승.
지금 정한승의 두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꿈에 그리던 것을 읽을 수 있는 순간이니 당연했다.
“그리고 이 서책을 읽으시고, 간단하게(?) 일 좀 해 주셔야 합니다.”
“아. 물론이오. 아까 들은 대로 해 드리겠소.”
“크크.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따 저녁때에는 다른 식구들과 인사도 해야 하니, 목욕도 하시고 옷도 저기 새 옷으로 입고 있으시면 됩니다.”
“알겠소. 그렇게 하리다.”
그렇게 귀묘자 정한승이 하북팽가의 식구가 되었고, 비룡문을 상대하기 위한 팽중호의 패가 모두 모인 날이 되었다.
* * *
비룡문.
자타공인 현 하북제일세로 불리는 곳이었다.
하북성에서 감히 그들을 건드리는 곳이 없었기에 언제나 조용한 비룡문이었는데, 오늘은 그런 비룡문이 오랜만에 모든 수뇌를 불러 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북팽가를 어찌할지 의견들 내보시오.”
가장 상석에서 회의를 이끌어 나가는 이는 비룡문의 문주이자, 무림에서 비룡신창(飛龍神槍)이라 불리는 막주환이었다.
막주환이 이번에 이렇게 모든 수뇌를 부른 것은, 바로 이번에 비룡문에게 화살을 돌린 하북팽가 때문이었다.
하북팽가가 언젠가는 자신들에게 화살을 돌릴 줄은 알았는데, 이처럼 이른 시일에 돌릴 줄은 몰랐기에 대비한 것이 없어 급하게 회의를 소집한 것이었다.
“그들이 여우를 잡더니, 아주 기세가 등등해진 모양인 듯싶으니, 저희가 친히 호랑이의 무서움을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여기서 하북팽가와 싸움을 회피한다면, 세간에서 저희를 겁쟁이라 비웃을 것입니다.”
확실히 하북팽가의 도전을 받아들여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하북팽가의 도전을 거절한다면, 하북성에서 자신들을 겁쟁이라고 비웃을 것이 당연했으니 말이다.
하북제일세가 거의 망해 가던 하북팽가가 무서워 피한다?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막주환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에 마지막으로 자신의 옆에 있는 문사 차림의 중년인에게 물었다.
독심호(讀心狐) 방홍성.
방홍성은 막주환의 머리로서 지금의 비룡문을 만든,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뛰어난 계책들로 하북성의 수많은 문파를 제치고 비룡문을 제일세가로 올려놓았다.
때문에 막주환은 언제나 무슨 일을 진행할 때 방홍성의 의견을 가장 중하게 생각했기에, 이렇듯 가장 마지막에 그에게 의견을 물어본 것이었다.
“음……. 아무래도 그들의 도전은 받아들이는 것이 맞을 겁니다. 확실히 주변에 얕보일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그랬다가는 너도나도 저희를 얕보고 달려들 테니까요.”
방홍성의 말대로 아마 비룡문이 하북팽가의 도전을 거절하는 순간, 호시탐탐 비룡문을 노리고 있던 문파들이 너도나도 이때다 싶어 칼을 들이밀 터였다.
“다만, 그들의 수작질에 완전히 놀아날 수는 없으니 저희도 준비해야 할 테고, 또 이번 기회에 주변에 보란 듯이 하북팽가를 완전히 불능으로 만들어 놔야 할 겁니다.”
하북팽가가 이번에 도전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비룡문을 불러들였다.
아마도 그들은 그곳에 함정을 치고 기다리고 있을 속셈인 것이 뻔하였으니, 그들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겠는가?
비룡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당당하게 그들의 아가리로 들어가되, 역으로 그들의 아가리를 찢어 버릴 계책을 세워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을 응징할 때 앞으로 감히 다른 문파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끔 완벽한 압살이 필요했다.
“그럼 도전을 받아 주는 것으로 하지. 자세한 것은 자네가 맡아 주게.”
“예. 문주님.”
그렇게 비룡문은 하북팽가의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이 났고, 곧바로 하북성에 이 소식이 전해졌다.
‘비룡문이 하북팽가의 도전을 받아들였다. 무림패를 걸고 하는 정식 삼 대 삼 생사결을 하는 것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무림패를 걸고 하는 생사결이란 말에 너도나도 놀랐다.
무림패(武林牌)는 무림맹에 속해 있는 문파 중 규모가 있는 문파들에게 전해 준 것으로, 그들 간의 싸움이 생겼을 때 이 무림패를 이용해 싸움을 해결하라고 준 것이었다.
무림패를 걸고 싸운다는 것은 싸움의 승패에 승복하지 않을 때는 무림맹과 척지겠다는 말과 같은 뜻이었기에 함부로 걸고 싸움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무림패로 정해지는 싸움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는데, 이번에 비룡문이 선택한 것은 바로 생사결(生死結)이었다.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비무.
솔직히 보통 무림패로 하는 대결 중에 그리 많이 선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말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 버리는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어찌 되었건 비룡문은 무림패를 걸고 생사결을 요청하였고, 이제 남은 것은 하북팽가의 답만 남았을 뿐이었다.
* * *
“춘오야.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걸 받아들여서 우리가 이기면, 저것들이 승복할까?”
팽중호는 비룡문이 보낸 생사결에 대해 장춘오에게 의견을 물었다.
“당연히 승복 안 할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림 문파란 놈들이 그렇게 정정당당하지 않거든.”
팽중호는 비룡문이 무림패로 건 생사결에서 하북팽가에 패배해도 순순히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정정당당? 그것은 싸움에서 이기고 나서 찾아도 문제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정 선생님을 불러서 진법을 설치하는 겁니까?”
“맞아. 우리가 인원에서 밀리니, 당연히 그 인원을 채워야 하니까.”
정한승은 지금 하북팽가의 세 방위에 모두 팽중호가 부탁한 진법을 설치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비룡문이 다른 마음을 먹었을 때 아주 큰 역할을 해 줄 터였다.
“그러니까 정 선생이 진법 설치를 끝내는 대로 비룡문한테 무림패를 걸고 생사결을 받아 주겠다고 전해.”
“흠. 그런데 소가주님.”
“왜?”
“왜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시는 겁니까?”
장춘오는 최근 들었던 생각을 팽중호에게 물었다.
팽중호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하북성에서의 일들을 진행 시키고 있었기에 드는 생각이었다.
조금 천천히 움직이면 더욱더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여기서 뭉그적거리면, 곧바로 다른 세가 놈들이 수작질할 거다.”
“아……!”
서문세가를 비롯한 다른 오대세가들.
그들은 다시금 하북팽가가 부흥하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을 터다.
완벽히 배제했던 하북팽가가 다시금 힘을 얻어서 나타나면, 자신들의 밥그릇이 위협받을지도 모를 일이니 당연했다.
그래서 그들이 끼어들어 수작을 부릴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하북성을 접수해야만 하였다.
“빨리 하북성을 먹어서 놈들이 끼어들 여지를 막아 두고, 그다음에 내실을 다지면서 조금 천천히 가면 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나가면서 도수랑 채령이 좀 내 개인 연무장으로 오라고 해. 생사결이 있기 전에 뒤지지 않게끔 만들어 줘야 하니까.”
팽중호는 다시금 일하러 밖으로 나가는 장춘오에게 도수와 곽채령을 개인 연무장으로 불러 달라 말했다.
장춘오는 그 말에 속으로 도수와 곽채령의 명복을 조용히 빌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밖으로 향했다.
팽중호의 말뜻은 분명 두 사람을 정말 죽기 직전까지 몰아갈 것이란 뜻일 테니 말이다.
“삼 대 삼이면 도수랑 채령이 그리고 나 이렇게 나가면 딱 맞으니까.”
비룡문이 제안한 삼 대 삼 생사결에 나갈 사람을 이미 정한 팽중호였다.
보통이라면 가주인 팽자성과 대장로인 팽조운이 나서는 것이 맞을 터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하북팽가에서 가장 고수 셋은 팽중호와 도수, 그리고 곽채령이었다.
세가의 명운과 각자의 목숨을 걸고 하는 대결이니만큼, 당연히 최고수가 나가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비룡신창인가는 내가 상대하면 되는데, 나머지 상대가 누구일지 모르는 게 문제란 말이지.”
비룡문의 최고수인 비룡신창은 아마 반드시 나올 것이니, 그자는 팽중호 자신이 맡으면 되었다.
하지만 남은 두 명이 누가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물론 당연히 그쪽에서도 비룡신창 다음가는 고수가 나오겠지만, 비룡문의 고수들은 비룡신창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크게 없었기에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누가 나와도 이길 수 있게끔 확실하게 개조시켜 놓으면 문제없겠지. 크크크.”
그래서 팽중호는 그 어떤 상대가 나와도 이길 수 있도록 확실하고 친절하게(?) 두 사람을 교육해 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의 현재 실력에 자신의 손길만 더해지면 짧은 시간 안에 충분히 개조가 가능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