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하북팽가에서 함께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별다른 장식이 없는 흑색 일색의 도갑.
이건 팽중호가 원한 모습이었다.
괜히 너무 튀는 것은 딱 질색이었으니 말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내용물이니까.
스릉- 사아악-
도를 도갑에서 살짝 빼내었는데, 순식간에 주변으로 날카로운 예기가 퍼져나간다.
팽중호는 단숨에 이 도에 마음을 빼앗겼다.
전생에 쓰던 도보다 훨씬 더 좋은 도였다.
손에 착 감기는 느낌이 그것을 반증해 주었다.
“그 도의 이름은 무적도(無敵刀)이네.”
한낱 도에 붙이기에 광오할 수 있는 이름이었지만, 팽중호는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크크.”
“기대하겠네.”
그렇게 장석팔은 모든 무기를 내려놓고 다시금 돌아갔고, 팽중호는 쉬고 있던 무인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엄청난 속도로 모이는 팽가의 무인들.
그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도들을 보고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거, 염조야방에서 만든 도입니다.”
“허억.”
“그 염조야방에서?!”
팽중호가 도를 가리키며 염조야방에서 만든 것이라 하자, 무인들 사이에서 놀라움 가득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그들도 무인이니 염조야방이 어떤 곳인지 잘 알았으니 말이다.
“자. 그럼 앞으로 나오셔서 하나씩 가져가십쇼.”
“예?!”
하나씩 가져가라는 팽중호의 말에 무인들이 일순 그게 무슨 소리냐는 반문을 하였다.
염조야방에서 만든 것이라면 그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이고, 그런 것을 자신들 같은 일반 무인들에게 줄 리가 없지 않은가?
“뭐, 필요 없으시면 다시 가져다가 팔고…….”
“가, 감사합니다!”
팽중호의 능청스러운 말에 무인들이 달려 나와 한 자루씩 도를 챙겼다.
모두 도를 슬쩍 뽑아 보고는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보기에도 지금 이 도가 얼마나 좋은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뒤지라 싸우라고 드리는 거니까, 너무 좋아하진 마십쇼.”
“그래도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인들은 자신들이 언제 이런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도를 써 보겠나 싶었다.
그래서 하북팽가에 남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이런 선물을 해 주는 팽중호가 그렇게 존경스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드릴 거 다 드렸으니까, 얼른 가서 수련들 하십시오.”
“예! 소가주님!”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찬 외침을 내뱉으며 자진해서 수련하러 사라지는 무인들.
팽중호는 그 뒷모습을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바라보았다.
지금과 같은 열정이면, 앞으로 큰 문제는 없을 듯싶었으니 말이다.
“자 그럼 우선 춘오 네 거부터.”
팽중호는 이제 남아 있는 장춘오, 도수, 곽채령에게 물건을 전해 주었다.
흑운철이 섞인 무기들.
분명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아주 귀한 것들이었다.
“감사합니다.”
평소라면 한숨부터 내쉬던 장춘오도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흑호조를 받아들었다.
찰칵- 찰칵-
장치가 되어 있어 손톱 날 부분을 얼마든지 숨길 수 있었기에, 평소에 손에 착용하고 있어도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 문제가 없었다.
강도는 물론이고 편의성까지 생각한 무기였다.
“다음은 채령이.”
“와아! 제 것도 있어요?!”
곽채령은 장법을 사용하는 자신에게도 줄 것이 있다는 말에 그게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해하는 표정을 하였다.
“그럼. 여기 수갑이다.”
“와! 잘 빠졌네요.”
곽채령의 말처럼 장석팔이 만든 비뢰수갑은 아주 잘빠진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손가락이 모두 드러난 반장갑의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마치 실로 꿰맨 것처럼 얇은 철사들로 아주 촘촘하게 엮어져 있었다.
그 단단한 흑운철을 이렇게 얇게 뽑아내는 것은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것일 터.
여기서 장석팔의 실력이 드러나고 있었다.
스윽- 착-
곽채령이 손에 비뢰수갑을 착용하자, 마치 원래 곽채령의 것이었다는 듯 아주 착 맞아떨어졌다.
“마지막은 도수. 네 거다.”
“감사합니다! 주군!”
무슨 왕에게 하사품이라도 받는 듯이 무릎까지 꿇고 두 손으로 경건하게 맹호도를 받아드는 도수.
그 모습에 장춘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 팽중호와 곽채령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과한 모습도 가끔은 괜찮지 않은가?
“한번 뽑아 봐.”
“예!”
스릉-
아주 깔끔하게 도갑에서 뽑혀 나오는 맹호도.
다른 도보다 크기가 컸지만, 그래도 덩치가 있는 도수가 들자 아주 크기가 딱 맞아 보였다.
휘이익- 휘익-
도수가 가볍게 도를 움직여 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하였다.
뭔가 자신에게 아주 딱 맞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랬다.
“다들 아주 잘 어울리네.”
이들의 무기는 팽중호가 특별히 장석팔에게 부탁해 만든 것.
당연히 이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게끔 맞춘 것이었다.
“줄 건 다 줬으니까, 너희도 얼른 가서 수련해. 춘오도 대충 일 끝나면 합류하고.”
“예…….”
“예! 주군!”
“네에!”
팽중호는 이제 마지막 벽력도의 주인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주님. 접니다.”
“들어오거라.”
가주전에 들어선 팽중호.
팽자성은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집무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무림세가의 가주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가주가 직접 집무를 봐야 하는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무슨 일로 왔느냐.”
“선물 하나 드리려고 왔습니다.”
터억-
팽중호는 곧바로 팽자성의 앞에 벽력도를 올려놓았다.
이게 도대체 뭐냐는 표정으로 팽중호를 바라보는 팽자성.
“가주님이 쓰실 도입니다.”
“으음?”
“대 하북팽가의 가주님인데, 적어도 이 정도는 들고 계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지금 팽자성이 가지고 있는 도는 과거 오대세가였던 하북팽가의 가주가 들고 있는 도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한 도였다.
본디 가주라는 자리는 보이는 것도 중요한 법.
그래서 팽중호는 팽자성의 도까지 특별히 만든 것이었다.
“최근 너 때문에 정말 다른 삶을 사는 것 같구나.”
팽자성은 팽중호가 갑자기 달라지고 난 후부터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듯하였다.
너무나 많은 변화에 적응이 쉽지 않을 정도.
팽자성은 그래서 팽중호가 선조들이 하북팽가를 살리기 위해 보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팽중호 덕분에 망해 가던 하북팽가가 위로 올라서기 위한 도약을 준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나태해질 수는 없지.’
지금까지 솔직히 순전히 팽중호의 힘만으로 이 정도의 상황이 되었다.
이때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걸림돌이 될 수는 없으니, 나태해질 틈은 조금도 없었다.
팽자성은 그동안 외척의 힘에 눌려 살았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는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저 열심히 살았으니까 복이 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그래. 알았다.”
팽자성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렸고, 팽중호는 그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 안심을 하였다.
확실히 팽중호가 보는 팽자성은 그래도 가주라는 자리에 나름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비룡문과 전면전을 한다고 하였지?”
“예. 하북제일이란 이름을 걸고 한판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룡문은 구도문이나 금호상단과는 격이 다른 곳이다. 괜찮겠느냐?”
“딱 한 명만 있으면, 분명 별문제 없을 겁니다.”
“한 명?”
“예. 하북팽가에 진법 하나 기깔나게 깔아 줄 놈만 있으면 됩니다.”
* * *
진법(陳法).
무림에서 진법으로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아마 다들 첫 손에 제갈세가를 꼽을 터였다.
사실 제갈세가는 단순히 머리만 좋아서 오대세가에 든 것이 아니라, 이 진법의 힘을 바탕으로 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진법의 종류에는 환영을 보여 주어 착란을 일으키는 환영진(幻影陳)부터, 진법에 들어서는 순간 목숨을 위협하는 살상진(殺傷陳)까지 정말 다양했다.
특히나 이 진법은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 그 진가를 발휘했는데, 그래서 사실 무림에 유명한 세가라면 다들 이 진법에 의거하여 건물을 지어 적습에 대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런 대규모 진법을 오차 없이 진행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진법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조금이라도 오차가 발생하면 진법이 제 효력을 못 낸다던가, 아니면 이상하게 바뀌어 버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 * *
“그러니까 저기가 그 귀묘자(鬼妙者)라는 사람이 있는 곳이란 거지?”
팽중호는 태도상단의 정보력을 이용해서 지금 하북성에서 손꼽히는 진법가라는 귀묘자가 머무르는 곳을 찾아온 길이었다.
산골짜기에 위치해 있다는 귀묘자의 거처.
팽중호는 그 귀묘자의 거처 근처에 도달하자 주변의 공기가 바뀌는 것을 딱 느꼈다.
‘호오? 이것 봐라?’
단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딛자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조금 전까지는 그저 평범한 산골짜기였는데, 갑자기 앞길이 천 길 낭떠러지로 바뀐 것이다.
정말 귀신이 봐도 놀랄 듯한 변화였다.
“그럼 오랜만에 한번 진법 깨부수기 좀 해 볼까.”
스릉-
파지지지지지지직-
팽중호가 무적도를 뽑아 들었고, 그 무적도에서 어마어마한 크기의 뇌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팽중호가 가진 내공을 상당수 때려 박은 뇌기.
-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낙뢰단봉(落雷斷峰).
콰가가가가가가가각-
그대로 눈앞의 낭떠러지를 향해 나아가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갈라 버리는 뇌기.
그런 뇌기가 갑자기 낭떠러지의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팽중호의 주변 풍경이 달라졌다.
처음 보았던 그 산골짜기의 풍경으로 돌아온 것이다.
“역시 이 방법이 제일 좋다니까?”
팽중호는 지금 힘으로 진법을 아예 못 쓰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전생에 제갈세가에서 기겁하며 무식하다고 학을 떼었던 방법.
물론 이게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었기에, 팽중호는 거침없이 이 방법을 쓴 것이었다.
“이, 이……!! 무식하게 그렇게 들어오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때 저쪽에 덜렁 세워져 있던 오두막에서 한 사내가 나오며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이런 산골짜기에 혼자 있는 사람이라기에는 지나치게 깔끔하고, 지나치게 잘생긴 청년이었다.
팽중호가 전생과 현생을 합쳐서도 본 적이 없을 만큼의 절세의 미남이었다.
“귀묘자?”
“그렇소! 내가 귀묘자요!”
팽중호는 자신이 맞게 찾아왔음에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귀묘자가 이렇게 미남이라는 것은 몰라서 살짝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이거 진법을 펼치는 게 아니라, 얼굴로 진법을 쓰는 건 아닐까?’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기는 하였다.
어쨌건 팽중호는 제대로 찾아왔으니, 곧바로 온 목적을 말해 주었다.
시간을 질질 끌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북팽가에서 함께 일할 생각은 없습니까?”
“하아?! 지금 남의 집 앞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귀묘자의 말처럼 지금 귀묘자가 머무르는 오두막 앞은 조금 전 팽중호의 뇌기 때문에 아주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귀묘자가 열심히 기르고 있던 밭의 작물들도 모두 명을 달리해 버렸고 말이다.
당연히 귀묘자의 심기가 사나울 수밖에 없었다.
“험험…… 그건 죄송합니다만, 집 앞에 누가 진법을 깔아 놓으랍니까?”
“진법을 깔아 놓았으면 그냥 돌아가라는 뜻 아니오! 누가 그걸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파훼해 놓는단 말이오!”
귀묘자가 자신이 머무는 거처 앞에 진법을 깔아 놓은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 때문이었다.
귀묘자는 그저 조용히 진법을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들을 돌아가게끔 하기 위해 진법을 깔아 놓은 것이었다.
“앞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하북팽가로 같이 가서…….”
“절대로 싫소!”
단호하게 으름장을 놓는 귀묘자.
물론 팽중호는 귀묘자가 손쉽게 하북팽가로 오지 않을 것임은 예상했다.
그래서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다.
“이거, 신기진법총서(神技陳法叢書)인데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