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내 맘대로 조져 놔도 뒤탈이 없거든.
팽중호는 어둑해진 저녁이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 문을 열고 염조야방 안으로 들어섰다.
깡- 깡- 깡- 깡-
화르르르륵- 화르르르륵-
안으로 들어서자 경쾌한 망치질 소리와 화구에서 불이 타오르는 소리가 가장 먼저 팽중호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더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열기와 함께,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는 사내들이 보였다.
팽중호가 나타났는데도 쳐다보지도 않는 사내들.
사내들은 오로지 철을 두드리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 보였다.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그때 그나마 멀끔해 보이는 복장의 사내가 팽중호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이 염조야방에서 잡무를 보는 자인 듯싶었다.
“장석팔이란 분을 뵈러 왔습니다만.”
“야방주(冶坊主)를 뵈시려면 미리 기별을 주고 오셔야 합니다.”
“흑운철이 있으니까, 한번 봐 주기나 해 달라고 전달해 주십쇼.”
“흑운철이요?!”
팽중호가 흑운철을 가져왔다고 하자 순간적으로 팽중호를 맞이하던 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그 시끄럽던 야방에 정적이 찾아왔다.
모든 시선이 팽중호를 향해 있었다.
“이, 일단 야방주께 말씀을 드려 보겠습니다.”
“예. 부탁드립니다.”
흑운철은 야장이라면 한 번쯤은 꼭 다루어 보고 싶은 광물.
수많은 야장들의 눈에서 흑운철을 자신이 다뤄 보고 싶다는 열망이 이글거렸지만, 이내 체념하고 눈을 거두었다.
자신들이 아직 잘 다룰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흑운철은 이 염조야방에서도 장석팔만이 다룰 수 있는 특별한 것이었다.
“잠깐 올라오시랍니다.”
“예. 가죠.”
그렇게 안내자를 따라 야방의 가장 심처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살이 익는 살인적인 열기가 몰아쳐 오는 곳.
그곳의 중심에서 열심히 쇠를 두드리고 있는 한 중늙은이가 보였다.
그가 바로 이 염조야방의 주인이자 하북제일의 야장인 장석팔이었다.
깡- 깡- 깡- 깡- 깡-
망치로 쇠를 내려칠 때마다 꿈틀거리는 그의 근육과 땀들.
일견 보기에도 그가 범상치 않은 자라는 것을 절로 느끼게끔 해 주었다.
“손님을 모셔 왔습니다.”
안내자가 크지 않은 소리로 말을 하였는데도, 곧바로 망치질을 멈추고 팽중호 쪽을 바라보는 장석팔.
“흑운철을 가져왔다고?”
별다른 인사도 없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장석팔.
팽중호는 장석팔의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귀찮게 인사치레나 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팽중호는 곧바로 품에서 흑운철을 꺼내었다.
꽤 묵직한 크기의 흑운철.
“호? 꽤 크군 그래.”
지금 팽중호가 꺼낸 흑운철의 양은 장석팔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큰 크기였다.
확실히 장석팔의 구미를 당길 만 하였다.
“하북팽가의 사람 같은데, 도를 만들어 달라는 거겠지?”
“예. 도 말고도 몇 개 더 만들어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 정도 양이면 만들 수 있긴 하겠군.”
보통 흑운철을 통짜로 써서 무기를 만들지 않는다.
그만한 양을 얻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적당량만 섞어도 충분히 훌륭한 무기가 되니 낭비를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지금 팽중호가 가져온 양의 흑운철이면 충분히 몇 가지의 무기는 더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럼 만들어 주시는 겁니까?”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왜죠?”
“아무 손에 보물이 들리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
“뭐, 곧바로 칼부림이 나겠죠.”
“맞네. 그래서 나는 아무에게나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네. 거기다가 흑운철로 만든 무기라면, 더욱더 큰 칼부림이 날 터이니, 만들어 줄 수 없네.”
힘없는 자에게 보물이 들리는 순간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된다.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그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힘 있는 자들은 들개같이 달려든다.
장석팔은 자신이 건넨 무기 때문에 불행해진 이들을 수없이 많이 봐 왔고, 그래서 그는 이내 스스로에게 한 가지 규칙을 정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자에게는 절대로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겠노라고 말이다.
“이 하북성에서 내가 무기를 만들어 줄 만한 자는 비룡신창 그자 정도밖에 없네.”
“아아. 그러니까 힘을 보여 주면 만들어 주신다는 거지요?”
“맞네.”
“크큭. 그럼 쉽죠.”
팽중호는 곧바로 도를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할 준비를 할 때였다.
쾅- 우당탕- 탕-
갑자기 염조야방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석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 다시 오게.”
서둘러 팽중호를 내보내려 하는 장석팔.
그 말을 듣고 팽중호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상황이 아주 딱 맞게 돌아가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죠. 제가 저놈들 싹 다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무기를 만들어 주십쇼.”
“자네의 명성은 들었다만, 저자는…….”
“하실 겁니까? 마실 겁니까? 딱 그거만 말씀해 주십쇼.”
“……자네의 시체를 치우는 일만 없게 해 주게. 그럼 무기를 만들어 주겠네.”
“좋습니다. 계약 성립입니다.”
딱 팽중호와 장석팔의 계약이 성립될 때, 누군가가 이곳에 나타났다.
나름 키가 작지 않은 팽중호였지만, 그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큰 듯한 덩치의 중년인.
온몸에는 흉터가 가득했고, 몸에서는 아주 진득한 살기를 거침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이봐. 이 광혈마도 님의 도를 오늘까지 만들어 놓지 않으면, 싹 다 죽인다고 했지? 어서 내놔.”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광혈마도(狂血魔刀)라고 불리는 마두(魔頭)였다.
광혈마도는 하북은 물론 이 근방에서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이는 걸로 악명이 자자했다.
몇 차례 정도 문파들이 그를 소탕하기 위해 무인들을 보냈었으나, 그의 무공이 워낙 고강해 번번이 실패한 뒤로는 그를 막으려 나서려는 곳이 사라졌다.
때문에 광혈마도는 더욱더 날뛰기 시작했고 그는 이 근방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던 광혈마도는 자신의 악명에 걸맞은 도를 새롭게 장만하기 위해 장석팔을 찾아왔고, 자신이 쓸 도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염조야방의 모든 이를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리고 광혈마도가 말한 기일이 바로 오늘이었고 말이다.
“자, 빨리 안 내놓으면, 정말로 싹 다 죽여 버리겠다.”
광혈마도는 살기 넘치는 미소로 장석팔을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어서 내놓으라는 손짓.
그 손짓을 보고 움직인 것은 장석팔이 아니라 팽중호였다.
“내가 참 마두를 좋아하거든? 왜인 줄 알아?”
“뭐냐 네놈은?”
“마두 새끼들은 내 맘대로 조져 놔도 뒤탈이 없거든.”
“크흐흐. 장석팔 네놈이 고용한 놈이냐? 겨우 이딴 애송이를 세워 두고 버티려는 건 아니겠지?”
광혈마도가 같잖다는 표정으로 팽중호를 바라보며 살기 짓은 웃음을 흘렸다.
지금 광혈마도가 보기에 팽중호는 아직 젊은 애송이에 불과해 보였으니 당연했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애송이.
“빨리 도를 내놔 안 그러면…… 헙!”
팽중호를 완전히 무시하며 장석팔을 향해 도를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던 광혈마도가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재빨리 손을 거두어들였다.
쉭-
조금 전까지 광혈마도의 손이 있던 곳을 빠르게 자르고 지나가는 한 자루의 도.
“날 앞에 두고 뭐 하고 있는 거냐? 이거 열받게 하네.”
팽중호는 어느새 도를 뽑아 들고 어깨에 척 걸치고 있었다.
조금 전 광혈마도의 손을 향한 공격은 애초에 피할 수 있는 수준으로 휘두른 것이었다.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경고의 의미로 말이다.
“아주 애송이는 아닌가 보군. 크흐흐흐, 좋다. 나를 자극했으니 그에 걸맞게 아주 잘게 조각내 주마.”
스릉-
광혈마도가 도를 뽑아 들었다.
그의 도에 피어오르는 검붉은 색의 기운.
아주 흉측하고 살벌한 느낌을 주는 기운이었다.
“뭐 그럭저럭 괜찮은 마공 하나 주워서 배웠나 보네.”
이런 기분 나쁜 기운을 내는 무공이라면, 역시나 마공(魔功)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 마공이었는데, 확실히 보통의 무공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내고는 하였다.
다만, 심마(心魔)에 빠지기 일쑤인 데다가, 익히는 방법들이 워낙 반인륜적인 것들이 많아 마공을 익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무림에서 공적으로 낙인을 찍히게 되는 것이 마공이었다.
광혈마도가 익힌 마공은 마혈선살도(魔血仙殺刀)라는 것으로 피를 머금을수록 더욱더 강해지는 마공이었다.
지금까지 광혈마도의 손에 죽어 나간 이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았으니, 광혈마도의 힘은 지금 분명 초절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눈앞의 새파란 애송이 하나쯤은 가볍게 죽여 버릴 수 있는 실력이라는 것이었다.
“뜬 눈으로 네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말. 내가 그대로 네 놈한테 돌려줄게.”
파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도에 뇌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보자 광혈마도의 눈이 순간 빛이 났다.
“크흐흐. 그래. 네가 그 팽중호인가 하는 놈이구나.”
“오. 마두 새끼도 알 정도로 내가 유명한가 봐?”
“절혼삼검 같은 허영만 가득한 놈들을 이겼다고 아주 기고만장하군 그래.”
“아아, 그 약해 빠진 세 놈? 확실히 그딴 놈들 좀 이겼다고 기고만장할 수는 없지.”
“네 놈을 찢어 죽이려고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찾아와 주니 고맙다.”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오늘부로 네 놈의 업(業)을 끝내 줄 분인데.”
“주둥이가 아주 살아 있구나!”
순식간에 광혈마도가 팽중호를 향해 쇄도했다.
부지불식간에 쇄도한 터라 미처 팽중호가 대비를 하지 못한 듯 보이는 상태.
이대로라면 광혈마도의 도에 팽중호가 그대로 찢겨 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 약하면 선빵이라도 쳐야지.”
파지지지지지직- 카아앙-!
팽중호의 도가 어느새 광혈마도의 도를 막아섰고, 그대로 두 개의 도가 충돌하였다.
이 주변 전체를 떨리게 만드는 강렬한 충돌음.
촤아아아아악- 쿵-
이 충돌로 인해 광혈마도의 신형이 뒤로 쭈욱 밀려 나가다가 간신히 벽에 부딪혀서 멈추었다.
그에 반면 팽중호는 여전히 그 자리에 딱 버티고 서 있었다.
“마공은 역시 뒷심이 부족하다니까?”
광혈마도는 방금 힘에서 밀려났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조금 전의 부딪침은 가볍게 팽중호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본 힘의 삼 할도 쓰지 않은 것이었으니 그랬다.
본 힘을 모두 쓰면 팽중호쯤은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나왔다.
‘정파 애송이들은 이 수에 아주 잘 걸려들지.’
광혈마도는 이렇게 상대의 방심을 유도한 후에 본 힘을 모두 쏟아 내어 상대를 격살시키는 수법을 자주 써먹었다.
그저 무공만 강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만은 아닌 것이다.
“야 마두면 마두답게 힘 좀 내 봐.”
타앗-
광혈마도가 재차 팽중호에게 달려들었다.
조금 전과 다름이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 광혈마도의 도에는 본 힘의 팔 할 이상의 힘이 담겨 있었다.
조금 전과 똑같이 팽중호가 막는다면 아마 그대로 도와 함께 팔까지 잘라 낼 수 있을 터였다.
파지지지지직-
광혈마도는 팽중호의 도가 조금 전과 똑같이 자신의 도를 막아 내기 위해 오는 것을 보고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 팔까지 잘라 내 주마.’
카아아아앙-
조금 전 부딪침보다도 더욱 엄청난 굉음이 사방을 펼쳐 울렸다.
엄청난 기와 기의 부딪침에 사방으로 기파가 날뛰었고, 무거운 망치와 쇳조각이 기파에 밀려날 정도.
그리고 이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걱-
“크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