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야방을 찾아가 볼까?
하북성 전체가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하북팽가와 금호상단의 전면전에서 하북팽가가 승리했다는 것.
그것도 단 하루 만에 압도적으로 금호상단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하북성을 들불처럼 불타오르게 하였다.
특히나 그 과정에서 팽중호가 혼자서 구도문과 절혼삼검을 베어 버렸다는 이야기는 거의 충격에 가까운 소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팽중호를 이제는 하북제일고수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물론 아직 ‘비룡문(飛龍門)’과 ‘비룡신창(飛龍神槍)’이 있으니 그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건 현재 하북팽가와 팽중호는 하북성에서 단번에 큰 존재감을 뽐내게 된 것이었다.
마치 예전의 하북팽가처럼 말이다.
* * *
“자자. 다들 모이세요.”
금호상단과의 일이 이제 막 끝난 시점.
팽중호가 하북팽가의 모든 인원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팽중호의 목소리에 빠르게 모이는 사람들.
특히나 상급, 하급 무사들은 그야말로 번개처럼 빠르게 집합하였다.
“이번 금호상단과의 일이 아주 잘(?) 마무리되었으니, 오늘은 먹고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오오!!!”
“우와아아!!!”
팽중호가 혹여나 다시금 지옥 같은 수련을 시작하자고 할까 긴장하고 있던 이들의 표정이 대번에 풀어지며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팽중호는 이번에 제대로 이들에게 포식을 시켜 줄 생각이었다.
이번에 자신이 없었을 때 금호상단 측의 공격을 단 한 명의 사망자 없이 막아 내었다.
자잘한 부상자는 있었지만 사망자가 없다는 것은 분명 아주 큰 성과였으니 말이다.
“들어오라고 해.”
구구구궁-
팽중호의 말에 대문이 열리고, 수 대의 마차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마차에서 쏟아져 나오는 음식과 술들.
텅 비었던 곳이 순식간에 잔칫상으로 가득 채워졌다.
“자, 가주님. 한 말씀 듣고 먹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팽자성이 한발 앞으로 나섰고, 모든 하북팽가 사람들의 시선이 팽자성에게 향했다.
이제는 확실히 한 세가를 이끄는 가주와 같은 위엄을 내뿜는 팽자성이었다.
“여기서 긴말을 했다가는 원망을 듣겠지.”
“하하하! 아닙니다!”
“다들 밝아 보여서 좋군. 자, 승리를 축하하세! 들게 나!”
“우오오오!”
그렇게 팽자성의 외침으로 하북팽가의 잔치가 시작되었다.
고단함을 날려 줄 음식과 술은 충분했으니, 서로 왁자지껄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팽중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이지만 나쁘지는 않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이 정도면 생각보다 빠르게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북팽가의 부흥이라는 길을 말이다.
“소가주님은 안 드십니까?”
“당연히 먹어야지 않겠습니까.”
“어서 오십쇼!”
“먹고 죽어 봅시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팽중호를 부르는 팽가의 무인들.
팽중호는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그들 틈으로 들어가 음식과 술을 실컷 먹고 마셨다.
이런 날에 같이 어울릴 줄 알아야 진짜 식구가 아니겠는가?
* * *
잔치가 끝난 다음 날.
팽중호는 곧장 도수, 장춘오, 곽채령을 불렀다.
“이번에 너희들이 수고가 많았다.”
“아닙니다!”
“헤헷.”
“예. 무진장 많았습니다.”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세 사람.
팽중호는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다가도, 또 그 점이 매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셋 다 똑같으면 재미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걸 너희한테 주려고.”
스윽- 딸칵-
팽중호가 내민 것은 작은 상자였는데, 상자를 열자 그 안에 단약 세 개가 들어 있었다.
진학 약 향을 풍기는 단약.
누가 봐도 몸에 좋아 보이는 물건이었다.
“천년삼으로 만든 거니까, 먹으면 내공 증진에 효과가 있을 거다.”
세 사람은 선뜻 움직이지 않고, 팽중호를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이것을 받아도 되냐는 표정을 지으며 말이다.
“내가 이거 다 먹고, 너네 보호해 줄까? 그게 낫겠어?”
“아, 아닙니다!”
“그치? 내가 항상 너희를 다 보호해 줄 수 없잖아. 너희가 빨리 강해져야 내가 더 편해지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거니까.”
팽중호의 말에 세 사람이 조심스럽게 단약을 하나씩 품에 챙겼다.
“자자, 어서 가서 먹어. 그리고 완전히 흡수시키기 전까지 나올 생각은 말고.”
“예! 주군!”
“감사해요!”
“하아…… 할 일도 많은데.”
그렇게 세 사람이 각자 단약을 들고 사라지고, 혼자 남은 팽중호.
팽중호는 한쪽에 장춘오가 미리 주고 간 족자를 집어 들었다.
“하북팽가가 일단 하북제일이 되려면, 여기 비룡문을 넘어야 한다는 거지?”
족자에 적힌 것은 하북팽가가 하북제일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라고 볼 수 있는 비룡문에 대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비룡문(飛龍門)은 하북제일고수이자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인 비룡신창(飛龍神槍) 막주환이 세운 문파로, 현재 하북성에 있는 무림인 아무나 붙잡고 하북제일세가 어디냐 물으면 열에 열 전부 다 비룡문을 이야기할 정도의 문파였다.
게다가 비룡문은 예전 하북팽가 2공자인 팽성운의 외가이기에, 하북팽가와도 연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하북팽가가 하북제일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관문인 것이다.
“흐음…… 확실히 혼자 뛰어들어서 다 뒤집어엎어 버리다가는, 괜히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단 말이지.”
금호상단이나 구도문과는 그 급을 달리하는 곳이니, 아무리 팽중호라도 대놓고 쳐들어가서 마음대로 날뛸 수는 없었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하북팽가가 빈집 털이를 당해 버릴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럼 아예 여기서 싸우면 되겠네. 크크큭.”
빈집 털이가 걱정이라면, 빈집을 만들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팽중호는 아예 비룡문을 하북팽가로 오게끔 할 생각을 하였다.
족자에 적힌 대로면 비룡신창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하고,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자라고 하였으니, 적당히 살살 긁어 주면 알아서 싸우러 올 터였다.
“여기서 대판 싸우고 난 다음에, 싹 새로 갈면 딱이겠어.”
팽중호는 금호상단을 털어 돈도 생기고, 태도상단과의 거래로 확실한 자금줄까지 쥐었으니 하북팽가를 다시금 새롭게 단장할 생각이었다.
낡고 오래된 전각을 새롭게 짓고, 연무장도 새롭고 넓게 싹 갈아엎을 예정.
그러니 아예 여기서 비룡문이랑 한판 하면, 철거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자. 그럼 얘들이 나오기 전에 야방을 찾아가 볼까?”
도수, 장춘오, 곽채령이 단약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하려면 분명 며칠 정도 시간이 걸릴 터.
팽중호는 그 시간 동안 싸움을 위한 준비를 할 생각이었다.
무인에게 싸움을 위한 준비라면, 역시나 좋은 무기를 준비하는 것일 터.
좋은 무기는 분명 조금 부족한 실력을 메워 주기도 하고, 무공의 위력을 배가시켜 주기도 하니 말이다.
“명필은 붓을 안 가린다지만, 명필이 좋은 붓을 쓰면 더 잘 쓰는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지금 팽중호는 실력 있는 야장이 있는 대장간을 알고 있지는 않은데다가, 좋은 무기를 만들어낼 좋은 재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팽중호는 일단 우선 태도상단을 찾아가기로 하였다.
거대 상단이라면 분명 그런 것에도 빠삭할 테니 말이다.
* * *
태도상단 본진.
팽중호가 나타나자 태도상단의 상단주인 무상 태철호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분명 지난번과는 완전히 다른 접객 태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팽중호 덕분에 태도상단이 얻은 이득이 눈이 돌아갈 만큼 엄청났다.
하북성을 주름잡던 상단 중 하나인 금호상단의 거래처를 싸악 흡수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소가주님 오셨습니까.”
“예. 뭐 좀 여쭐 게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 예.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상단주가 머무는 곳에 자리하자 곧바로 최고급 차와 다과들이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태철호가 팽중호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나오는 모습이었다.
“편히 드시면서 말씀하시지요.”
“예. 그럼.”
팽중호도 딱히 이런 호의를 거절치 않고 차와 다과를 두루 맛을 보았다.
사실 이럴 때 아니면, 딱히 찾아서 먹지를 않으니 이럴 때 먹어 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혹시 나중에 어디 가서 ‘나 이런 것도 먹어 봤소.’하고 말이라도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것저것 다 맛을 본 후에야 팽중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솜씨 좋은 야장 중에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야장이요? 흠…….”
태철호는 팽중호의 질문에 잠깐 고민을 했다.
분명 그가 알고 있는 야장은 꽤 많았다.
하지만 아무 야장이나 팽중호에게 소개시켜 줄 수는 없었고,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추려 내기 위한 고민이었다.
“하북성에서 가장 솜씨 좋은 야장이라면 염조야방(炎調冶坊)의 장석팔이라는 자일 겁니다.”
염조야방은 하북성이 아니라 무림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좋은 품질의 무기를 만드는 야방이었다.
이 염조야방에서 일하는 야장 중에서도 단연 장석팔이라는 야장이 유명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만든 무기가 그 어떤 절세의 보도와 비교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만큼 예리하고 튼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장석팔은 아무한테나 무기를 만들어 주지는 않는지라…….”
태철호가 사실 잠깐 고민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장석팔은 절대로 아무에게나 무기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에게 무기를 구하러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간 무인들이 부지기수였고, 행패를 부리다가 골로 간 무인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왜 무인들이 골로 갔냐고 생각하겠지만, 장석팔은 훌륭한 야장임과 동시에, 아주 뛰어난 고수였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장석팔과의 대련에서 이긴 자만이 무기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돌 정도였다.
“그 사람 대량으로도 만듭니까?”
“장석팔은 그러지는 않고, 염조야방은 대량으로 무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럼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아, 그리고 혹시 태도상단 물품 중에 ‘흑운철’이 있습니까?”
“조금 있습니다. 그것으로 무기를 만드시려는 겁니까?”
“예.”
“그럼 확실히 장석팔 정도 되는 야장이 필요하기는 하겠군요.”
흑운철(黑隕鐵).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서 나오는 운철들 중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희귀한 광물.
이 흑운철을 제련해 무기를 만들면, 신병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아주 대단한 물건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 흑운철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흑운철을 제련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열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다루기도 쉽지 않아 뛰어난 솜씨의 야장이 아니라면 아예 손도 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북성에서 이 흑운철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장석팔 정도밖에 없을 터였다.
“그럼 그 흑운철을 좀 사고 싶은데…… 험험.”
“흑운철은 저희와 하북팽가가 손을 잡은 기념으로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태철호는 아주 흔쾌히 흑운철을 팽중호에게 선물하겠다고 말하였다.
솔직히 흑운철의 가격은 범인들은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아주 비싼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팽중호가 물어다 준 금호상단에서 가져올 수익에 비하면 그리 크다고 할 수도 없었고, 게다가 이것을 선물함으로 앞으로 팽중호와 인연을 공고히 한다면 분명 훨씬 남는 장사라 판단했기에 흔쾌히 선물한 것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더 감사하지요.”
그렇게 팽중호는 태철호에게 흑운철을 받아 챙기고는, 그가 알려 준 염조야방으로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순식간에 허공을 격해서 움직이는 팽중호의 모습은 마치 축지법을 쓰고 있는 것만큼이나 빨라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달려 주변에 더 이상 다른 건물들이 보이지 않을 때쯤, 저 멀리에 있는 거대한 장원 하나가 팽중호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저 거대한 장원이 바로 태철호가 일러 준 염조야방이었다.
“후우…… 도착은 했는데, 이거 날이 늦어서 괜찮으려나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