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누구만 남기면 되냐?
“어디 보자…… 이놈이 제일 실하네.”
처소로 돌아온 팽중호는 적검문이 보낸 천년삼 중 가장 실한 한 뿌리를 꺼내어 들었다.
하나는 지금 자신이 먹기 위해 꺼낸 것이고, 남은 두 개는 도수와 춘오 그리고 채령에게 주기 위해 단약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흐음. 냄새 좋고.”
우걱- 우걱-
팽중호는 냄새를 한 번 맡은 후에 곧바로 입속으로 천년삼을 집어넣었다.
잔뿌리 하나까지 꼭꼭 씹어서 모두 뱃속으로 직행.
뱃속에 천년삼이 들어가자 갑자기 순간 뜨거운 기운이 몸을 휘도는 것이 느껴졌다.
“좋아.”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 팽중호.
지금 이 천년삼의 기운을 한 톨도 놓치지 않기 위해, 혼원벽력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후우우우우웅-
천년삼의 기운들이 팽중호의 내공을 따라서 몸을 함께 휘돌기 시작했고, 천념삼의 합세로 거대해진 내공의 흐름은 그렇게 수차례 몸을 휘돌고 난 후, 완전히 하나가 되어 다시금 팽중호의 단전으로 되돌아갔다.
확실히 전보다 깊어진 단전의 내공.
이 정도면 내공의 부족 문제를 조금은 해결한 것이었다.
“다음에는 소림사가서 대환단이라도 하나 뺏어 먹어야겠어.”
팽중호는 그대로 잠깐 몸을 풀고는 그대로 침상으로 향했다.
털썩-
가만히 침상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팽중호.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해 달라고 해도 안 했는데…… 참.”
전생의 자신에게 누군가 하북팽가를 위해 일을 해 달라고 하면 오히려 그 반대로 깽판을 쳐 놓고 자리를 벗어났었다.
그런데 그랬던 자신이 지금 이렇게 하북팽가의 부흥을 위해서 일을 하는 꼴이라니.
이게 전생의 업보라는 것일지 모른단 생각을 했다.
그래서 더욱더 열심히 움직이는 것이고 말이다.
“내일부터는 힘 좀 써야 하니까, 오늘은 이만 자 볼까.”
더 이상 상념에 빠져들면 하루를 꼬박 새울 것 같았기에, 팽중호는 이만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푹신한 이불이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어 가는 팽중호였다.
* * *
하북성이 다시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북팽가의 전면전 선언 때문이었다.
상대는 금호상단.
하북팽가가 내세운 전면전의 명분은 금호상단이 5공자와 3공자를 이용해 하북팽가의 물건들과 무공을 탈취하였고, 거기에 더해 야밤에 살수들을 보내 소가주를 암살하려 했다는 것.
그 증거로 하북팽가는 하북팔은랑의 시신을 내세웠고, 사람들은 금호상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생각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금호상단은 자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발뺌을 하며, 자신들을 모함한 하북팽가에게 철저한 응징을 가하겠다 선포했다.
그렇게 성사된 하북팽가와 금호상단의 전면전.
그래서 지금 하북성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과연 누가 이 전면전에서 이길 것이며, 어떻게 이 전면전이 흘러갈 것인가였다.
그때 이 둘의 싸움에 또 다른 장작이 하나 던져졌는데, 바로 태도상단이었다.
태도상단은 하북팽가와의 거래를 고려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상단주인 태철호가 직접 공표하였는데, 사람들은 이 말을 두고 하북팽가와 태도상단이 손을 잡고 금호상단을 꺾으려 한다고 추측을 하였다.
그렇게 갑자기 하북성에 오랜만에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고, 다들 이 결과가 어떻게 끝이 날지를 예측해 보며 하북팽가와 금호상단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소가주. 정말 괜찮겠소?”
지금 하북팽가의 회의실에 2장로였던 팽조운와 가주인 팽자성, 그리고 팽중호 딱 셋이 모여 있었다.
팽중호가 일으킨 금호상단과의 전면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는데, 팽조운은 조금 걱정이 되는 듯한 말투로 팽중호에게 괜찮겠냐 물었다.
팽중호가 분명 상상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 알았지만, 금호상단은 그 혼자서 어떻게 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한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걱정 마십쇼. 그놈들이 움직이기 전에 머리부터 없애면 되니까요.”
“금호상단의 본진으로 간단 말이오?”
“네.”
“허허…… 지금 금호상단의 본진에는 구도문의 수뇌들까지 모여 있네. 아무리 소가주가 강하다고 한들 불가능할 걸세.”
이제는 대장로가 된 팽조운은 아무리 팽중호가 강해도 구도문까지 합세한 금호상단의 본진을 뚫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구도문은 현재 하북성에서 이인자로 불릴 만큼 힘이 강대한 문파다.
특히나 그들이 자랑하는 하북삼도객(河北三刀客)은 분명 꽤 대단한 고수들로, 그들의 명성은 하북성 넘어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금호상단에 식객으로 머무는 고수들까지 다수 포진해있는 금호상단 본진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구도문이 이 하북성에서 제일도문이라면서 나댄다면서요?”
“음? 그건 갑자기 왜……?”
“이번 기회에 어디가 제일인지 무림에 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히 하북팽가가 있는데 지네가 제일이라니.”
팽조운은 팽중호가 분명 생각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팽중호를 선택한 자신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일 터고, 하북팽가의 앞날은 더 어두워지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도울 건 없느냐?”
침묵하고 있던 팽자성이 입을 열었다.
최근 팽중호가 전해 준 혼원벽력신공과 혼원벽력도를 익히고 눈에 띄게 몸이 좋아진 팽자성이었다.
물론 그것뿐 아니라 그를 옭아매던 외척들이 사라졌기에 좋아진 것도 이유였다.
어찌 되었건 지금의 팽자성은 점점 가주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세가만 잘 지켜 주시면 됩니다.”
“그래. 알았다.”
세세한 이야기들을 더 나누고는 자리를 파했다.
팽중호는 그대로 처소로 돌아와 곧바로 장춘오를 불렀다.
“오늘 바로 움직일 거니까 준비해.”
“후우…… 알겠습니다.”
이미 금호상단과의 전면전 때에 각자가 할 역할을 나누었다.
도수와 곽채령은 팽가에 남아서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로 하였고, 장춘오는 팽중호와 함께 금호상단의 본진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금호상단에 대해서는 조사 좀 했어?”
“예. 뭐, 대충은 했습니다.”
팽중호가 장춘오를 데리고 금호상단으로 가는 이유는, 금호상단을 정말 제대로 털어먹기 위해서였다.
팽중호가 금호상단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 장춘오가 나서서 그들을 뼛속까지 털어 낼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파악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태도상단과 다시 협상할 것이었다.
“그럼. 바로 가자.”
“밥도 안 먹고 갑니까?”
“밥? 그건 거기 가서 먹음 되지.”
“하아…….”
팽중호는 장춘오를 데리고 그 길로 바로 하북팽가를 떠났다.
* * *
금호상단 본진.
그곳에는 지금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금호상단 측과 구도문 측의 수뇌들이 모인 탓이었다.
“하북팽가가 미친 거 아니오?”
“이빨 빠진 호랑이가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꼴이지. 크하하.”
그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란 것이 전혀 없었는데, 어쩌면 당연했다.
그들은 지금 하북팽가의 전력에 대해 이미 정보 수집이 끝난 상황이었다.
이미 수많은 이들이 빠져나간 하북팽가의 전력은 허접하기 이룰 때 없는 수준.
그나마 팽중호가 조금 위험요인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가 규격 외의 초강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대비는 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들이 무언가 숨겨 둔 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말입니다.”
물론 당연히 신중론을 이야기하는 자들도 있었다.
하북팽가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전면전을 걸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크게 힘을 얻지는 못했다.
지금 금호상단이 여러 정보망을 통해서 하북팽가에 숨겨진 조력자나 수법을 조사하고 있었는데, 단 하나도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 말인즉슨 지금 하북팽가에는 개뿔도 없는 것이란 소리였다.
“어떻게 바로 찾아가서 한번 뒤집어 놓을까요?”
“하하하. 천천히 숨통을 조여서 그들이 먼저 숙이게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오오. 좋은 생각입니다. 이번 기회에 하북성에 저희 힘을 한번 보여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은 이미 하북팽가는 정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북팽가를 상대로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고, 그다음은 이제 하북성의 다른 곳들을 노릴 생각이었다.
아마 그 첫 번째 대상은 태도상단이 될 터였다.
“태도상단부터 정리를 시작해서…….”
그렇게 한창 금호상단과 구도문이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후다다다닥-
밖에서 누군가 빠르고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그리고 거칠게 열리는 문.
그와 동시에 아주 다급한 표정의 무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지금 이 회의장에서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 중 한 명인 구도문의 문주 참도객(斬刀客) 구웅악이 한창 회의 중에 불쑥 찾아온 무인에게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웬만한 일로는 들어오지 말라 일렀는데 말이다.
“그, 그것이…….”
“천천히 말씀해 보십시오. 하하하.”
구웅악의 옆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인물인 금호상단의 상단주 금문종이 긴장했는지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는 무인에게 호탕하게 웃으며 천천히 말하라 해 주었다.
물론 이건 그저 겉으로 보여 주는 친절일 뿐이었지만, 무인은 이 말에 조금 숨을 고르며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차분히 말하기 시작했다.
“하북팽가의 소가주가 지금 정문을 통과해서 이리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뭐?!”
“뭐라?!”
회의장에 있는 이들 모두가 지금 이게 무슨 소리냐는 물음을 던졌다.
하북팽가의 소가주라면 파수도 팽중호를 말하는 것.
그런데 그 팽중호가 지금 정문을 통과해서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것은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너희는 그자를 막지 않고 뭣 하였느냐!”
구웅악이 무인에게 크게 소리를 쳤다.
지금 이 금호상단의 경비는 구도문에서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팽중호가 정문으로 들어오는데 막지 않았다니?
이건 구도문의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그것이 저희가 막아섰지만, 모조리 그자의 손에 쓰러졌습니다.”
“그럼 지금 혼자서 무력으로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단 말이냐?”
“혼자는 아니고, 둘이서 앞을 가로막는 이는 모조리 베어 내면서…….”
쾅-!
그때 밖에서 회의장까지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에 회의장에 있던 이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크아아악!”
“컥!”
“크악!”
밖으로 나간 그들의 눈에 보이는 광경.
두 명의 인영이 천천히 앞으로 오고 있었는데, 그 앞을 가로막는 무인들을 모두 일수에 베어 버리고 있었다.
수십 명의 무인이 그들을 포위하고 달려들었지만, 그들의 단 한 걸음조차 막아서지를 못하였다.
“이게 무슨 짓이냐!”
구웅악이 사자후를 내질렀고, 그제야 두 인영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그중 도를 휘둘러 무인들을 베어 내던 이가 소리를 지른 구웅악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대가리들이 나오네. 춘오야 쟤네들이 대가리 맞지?”
“예. 옷을 보니까 맞는 것 같습니다.”
도를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이가 바로 팽중호였고,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이는 장춘오였다.
지금 단 두 사람이 금호상단 본진을 정문에서부터 뚫고, 심부까지 도달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말이다.
“누구만 남기면 되냐?”
“상단주만 있으면 됩니다.”
“금호상단 상단주만 나와 봐. 나머지는 뒤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고.”
“미친놈!!!”
“크크크. 그래,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았다 새끼들아.”
파지지지직-
“가만히 있을 걸 하는 후회는 저승 가서들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