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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북팽가의 개망나니-21화 (21/200)

21화 저 없을 때 쉬니까 꿀맛이죠?

태철호는 금호상단을 없애 버리고 싶지 않냐는 팽중호의 말에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감인가…… 과신인가…….’

팽중호가 대단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가 하북팽가 장로들의 팔을 잘라 버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분명 지금의 팽중호는 하북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일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금호상단의 힘이었다.

그들은 최근 하북팽가의 3공자였던 팽도경의 세력인 구도문(究刀門)과도 손을 잡으며 더욱 세력을 키우는 중이었다.

팽중호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혼자서의 힘으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소리였다.

“하하하. 저희야 경쟁하는 곳이 사라진다면 좋겠지만, 굳이 모험할 생각은 없습니다.”

태철호도 당연히 금호상단을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하지만 하북팽가와 손을 잡게 되면 그들과 크게 부딪칠 수밖에 없을 터이고, 그 상황에서 잃게 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팽중호 한 명을 보고 무언가 거래를 진행하기에는 너무 큰 모험이었다.

“그쪽은 모험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험은 저희가 할 테니까요.”

“예?”

“태 상단주께서는 그저 한마디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저희 하북팽가와 거래를 고려해 보겠다는.”

“무엇을 노리시는 겁니까?”

“그놈들이 먼저 저희에게 칼을 들이미는 걸 노립니다.”

“?!”

먼저 칼을 들이밀게 한다니?

그럼 스스로 죽겠다는 것 아닌가?

“상단주께서 저희와 거래를 고려해 보겠다고 말씀만 해 주시면, 그놈들이 먼저 하북팽가에 칼을 들이밀러 올 겁니다. 만만한 게 저희니까요.”

태도상단이 하북팽가와 거래를 고려해 보겠다는 말 한마디면, 분명 금호상단 쪽에서 아주 예민하게 반응할 터였다.

그들은 분명 이 거래를 막기 위해 수작을 부릴 것이고, 그 목표는 아마 하북팽가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다.

태도상단은 금호상단이 무턱대고 건드리기 껄끄러운 곳, 하지만 하북팽가는 충분히 가능한 곳이지 않은가?

게다가 원한 관계도 있을뿐더러, 애초에 그들이 원하던 곳이었으니 더욱더 하북팽가를 노릴 확률이 높았다.

물론 지금 서문세가와 알게 모르게 대립 중이니 대놓고 움직이지는 못하겠지만, 분명히 은밀하게 움직일 터였다.

“상황이 태도상단에 불리하게 돌아가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고 하시면 되니, 해 볼 만한 거래가 아닙니까?”

“……흠.”

확실히 태도상단으로서는 잃을 것이 크게는 없는 거래였다.

말이야 언제든 바꾸면 그만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금호상단이 예상대로 팽가를 공격하면, 소가주님께서 얻는 것은 무엇이십니까?”

“태 상단주님의 신뢰와 금호상단의 재물, 그리고 제 마음의 통쾌함을 얻겠지요.”

“좋습니다. 소가주님이 떠나시면 곧바로 말씀하신 대로 거래를 고려하겠다고 공표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다만, 금호상단은 소가주님의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예. 걱정 감사합니다.”

팽중호와 곽채령은 곧바로 태도상단을 벗어나 다시 하북팽가로 향했다.

“그런데 한 달 안에 자금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거 아니었어요?”

곽채령은 팽중호가 태도상단을 찾은 이유가 자금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런데 지금 태도상단의 상단주와 이야기한 내용은 들었을 때, 자금 문제 해결과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었다.

“한 달 안으로 금호상단을 무너트리고 확실히 돈 한가득 가져올 거니까 걱정 마.”

“금호상단이 한 달 안에 움직일까요?”

“움직이게 만들어야지.”

팽중호는 금호상단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게끔 확실한 빌미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금세 도착한 하북팽가.

“춘오야. 잠깐 내 말 좀 들어 봐라.”

팽중호는 팽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장춘오를 불렀다.

그리고 장춘오에게 몇 가지 일을 지시했고, 장춘오는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을 하고서도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장춘오에게 모든 지시를 끝낸 팽중호.

“자. 내일부터 일은 시작이고…… 일단 다들 잘하고 있나 보고, 그다음에 채령이 너랑 대련해 줄게.”

“네네!”

팽중호는 말과 함께 느긋한 걸음으로 상급 무사들이 수련하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오시려면 멀었겠지?”

“그렇다니까…… 분명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표정이었어.”

“하아…… 이렇게 쉬니까 살 것 같다.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는 상급 무사들.

멀리서 열심히 수련을 하는 하급 무사들과는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캬. 저 없을 때 쉬니까 꿀맛이죠?”

“예. 물론이죠. 그 악귀 같은…… 억?!”

팽중호의 질문에 대답하던 이가 팽중호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쉬고 있던 상급 무사들 전부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제가 농땡이 부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을 텐데…… 크크크…….”

뚜둑- 뚜두둑-

께름칙한 웃음과 함께 몸을 푸는 팽중호.

상급 무사들은 그 모습에 이제는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자신들에게 다가올 상황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 살고 싶으시면 죽어라 발악하십쇼.”

팟-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다.

상급 무사들은 저마다 도를 꺼내 들고 사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표정들이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들처럼 비장했다.

파지지지지직-

퍼어억-

“끄아아악!”

상급 무사 중 한 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 옆에서 뇌기가 둘러진 주먹을 꽉 쥐고 서 있는 팽중호.

그리고 비명을 지른 상급 무사는 눈이 반쯤 뒤집힌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주먹.

여기 있는 이들 모두 팽중호의 저 주먹에 맞아 보았기에 위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단 일격에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느껴지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주먹.

그런데 너무나도 신기한 것은 딱 반 시진이 지나면 몸이 멀쩡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멍때리실 여유가 없으실 텐데?”

팟-

퍼어억- 퍼억- 퍽- 퍽-

“끄아아아악!!”

“끄악!!!”

연무장에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비명.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상급 무사 모두가 차디찬 바닥에 몸을 뉘었다.

탁탁-

“아주 딱 좋게 준비 운동이 됐습니다.”

“끄으으윽…….”

“다들 아픈 척해서 쉬실 생각 말고 어서 일어나십쇼.”

“예에에…….”

아픈 척이란 말에 발끈해서 아니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더 큰 고통이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들 죽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몸을 일으켰다.

“제가 지금 저기 채령이랑 대련을 할 거니까, 다들 이리로 모이십쇼.”

“그, 그럼 체력 단련은…….”

“일단 쉬겠습니다.”

“하아…….”

상급 무사들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몸 상태로 체력 단련을 했다가는 아마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상급 무사들은 물론 도수와 하급 무사들까지 모두 팽중호와 곽채령을 중심으로 주변에 삥 둘러앉았다.

“뭐, 대련을 지켜보는 것도 공부가 되니까 다들 잘 지켜보시길 바랍니다.”

“예!”

우렁찬 목소리로 마치 군인들처럼 대답하는 하북팽가의 무인들.

팽중호는 그 모습이 꽤 흡족했다.

“그럼 채령아 시작할까?”

“좋아요.”

스윽-

팽중호의 말에 곧바로 준비 자세를 취하는 곽채령.

지금 그녀의 두 눈은 아주 활활 불타고 있었는데, 얼마나 이 대련에 진심인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파지지지지직-

“채령이 너도 이제 하북팽가의 사람이니, 봐주는 것 없이 똑같이 간다.”

“원하던 바예요!”

“크크크. 그래.”

팽중호의 손에 뇌기가 뿜어져 나왔다.

도를 뽑지 않고, 혼원벽력장으로 곽채령과 대련을 할 생각이었다.

슈우우우우-

곽채령의 손에도 푸른 기운, 즉 청화기(靑花氣)가 피어올랐다.

가벼운 대련이라기에는 서로 너무나 진심인 상황.

“와.”

타탓-

팽중호의 말과 동시에 곽채령이 가볍고 표홀한 발걸음으로 쇄도했다.

휘익- 팡-! 파팡-! 팡-!!

곽채령의 장법을 팽중은호는 가만히 서서 보법만으로 피해 내었는데, 공격을 피해 낼 때마다 허공이 터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소리만으로도 지금 곽채령이 펼치는 장법의 위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저거에 스치면 골로 간다.’

지금 이 대련을 구경하는 상급, 하급 무사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사실 그들은 곽채령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그들보다 한참 위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지.’

그들은 곽채령에게 함부로 까불지 않을 것이라 맹세하며, 다시금 대련에 집중했다.

“낙뢰붕산(落雷崩山).”

곽채령의 손바닥에 강렬한 기운이 머물더니 그대로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건 확실히 가볍게 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흠. 확실히 위력은 딸리네.”

스윽- 파지지지직- 쾅-!

“아앗!”

팽중호가 정확히 곽채령의 기운에 맞부딪쳐 손바닥에서 기운을 내뿜었다.

팽중호와 곽채령의 기운이 부딪치자, 그대로 곽채령의 신형이 뒤로 쭉 밀려 나갔다.

반면 팽중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말이다.

“이번엔 내가 가 볼게.”

탓-

가볍게 발을 찼는데, 어느새 곽채령의 면전에 도착한 팽중호.

그리고 시작된 팽중호의 파상공세.

지켜보고 있던 무사들은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빠른 공세였는데, 곽채령은 그것을 모조리 눈으로 좇아서 피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이에서도 틈을 계속해서 찾고 있었다.

‘틈!’

아주 작은 틈이었지만 분명 곽채령의 눈에 틈이 보였다.

그 틈을 빠르게 파고드는 곽채령의 손바닥.

그런데 팽중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이런 낚시에 걸리면 안 되지.”

“앗?”

탁- 퍼억-

가볍게 곽채령의 손을 툭 쳐서 방향을 틀어 버리고, 그대로 곽채령의 어깨에 일장을 먹이는 팽중호.

정말로 봐주지 않고 그대로 때려 버린 팽중호였다.

“아악!”

곽채령이 고통에 순간 뒤로 물러났는데, 팽중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따악- 탁- 탁- 타악- 타아악-!

곽채령의 머리부터 양팔과 양다리를 때리는 팽중호.

“꺄아아악! 꺄악! 꺅!”

곽채령은 온몸을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에 절로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무사들은 속으로 곽채령의 안녕을 빌었다.

그들은 저 고통을 당해 봤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너한테 내공 심법도 알려 줘야겠다. 혼원벽력장이랑 네 청화심공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북팽가의 모든 무공들은 패도를 바탕으로 한다.

혼원벽력장도 당연히 그중에서도 가장 패도적인 무공이었고, 그에 걸맞은 패도적인 내공 심법을 바탕으로 펼쳐져야 했다.

지금 곽채령이 익히고 있는 내공 심법인 청화심공은 유와 부드러움을 바탕으로 한 것이니, 확실히 혼원벽력신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근골도 뛰어나니 혼원벽력신공도 문제없겠지.’

곽채령은 근골 또한 타고나, 확실히 어떤 무공을 익혀도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혼원벽력신공을 다 줄 수는 없고.’

곽채령은 하북팽가의 직계가 아니니, 혼원벽력신공까지 전수해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 바꾼 것을 전해 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팽중호는 근래 미리 준비해 놓은 내공 심법이 있었다.

딱 지금 곽채령에 어울리는 심법이 말이다.

“자. 너를 위해서 준비한 심법이다.”

“끄으응…… 네에?”

고통 속에서도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서책을 건네는 팽중호를 바라보는 곽채령.

이건 무슨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실컷 때려 놓고 심법을 주는 건 뭐란 말인가?

“벽력공(霹靂功)이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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