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18화 (18/200)

18화 도망치는 건 빨라서 좋네.

팽중호는 회의장에 오기 전 장춘오에게 반 시진 뒤에 다른 공자들을 모두 회의장으로 부르라고 말해 두고 왔다.

장춘오는 그 명령에 따라서 정확히 반 시진이 될 때 1, 2, 3공자를 회의장으로 향하게끔 하였고, 딱 팽중호가 원하던 때에 세 공자들이 회의장에 도착하였다.

“자자. 고민 덜어 주려고 저렇게 저놈들까지 불렀으니까 빨리 결정해. 안 그러면 다음은 다리니까.”

팽중호는 장로들이 독단적으로 결정을 하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고, 그래서 이렇게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자들까지 부른 것이었다.

물론 그냥 말 만해서는 공자들이 개소리라 생각할 테니, 일이 일어난 후에 부른 것이고 말이다.

“이게 무슨 짓이냐! 도를 넘었다는 것을 모르느냐!”

“도를 넘어? 너네가 하북팽가를 말아먹으려던 게 도를 넘은 거지 새꺄.”

“새, 새꺄?”

“그래. 새꺄. 그보다 너도 팔 한 짝 잃기 싫으면 빨리 가서 얘기해 봐.”

팽중호를 향해 소리치던 1공자는 눈알을 굴리더니, 재빨리 1장로에게로 달려갔다.

“장로님 이게 어떻게…….”

“크윽…… 아무래도 서문세가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예?”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1장로는 그래도 완전히 멍청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지금 무슨 몸부림을 쳐도 팽중호에게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나 어이가 없고 분하지만, 팽중호는 그들보다 훨씬 고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물러나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했다.

“팽가에서 우리가 나가겠다.”

1장로와 잠시간 이야기를 나누던 1공자가 팽가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지금 나간다고 하지만 후에 다시금 되찾으러 오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지금 이렇게 당했으니 명분이 생긴 것이고, 서문세가의 힘을 빌려 하북팽가를 힘으로 집어삼키면 될 터였다.

자신들이 나간 뒤의 하북팽가는 속 빈 강정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말이다.

“좋아. 잘 선택했어. 너희는 어쩔래?”

이런 1공자 측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팽중호는 남은 두 공자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3공자 측은 꽤 결정이 힘들어 보였지만, 결국 그들도 하북팽가에서 나가기로 결정했고, 남은 것은 2공자 측뿐이었다.

“하하하! 다들 그렇게 팽가를 먹으려고 하더니,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기 바쁘군 그래! 좋아. 어차피 나는 팽가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나도 나가지. 너는 나중에 꼭 다시 보고 싶군!”

호탕하게 웃으며 하북팽가를 떠나겠다고 말하는 2공자.

확실히 장춘오가 말했던 것처럼 미친놈인 것 같아 보였다.

물론 덕분에 일이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그럼 이번에도 3일 줄게. 가져갈 거 싹 다 가지고 가. 짐이든 사람이든. 알겠지?”

“오늘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1장로를 부축해서 나가던 1공자가 팽중호에게 지금의 상황을 만든 것을 후회할 것이라 말했다.

“거참 다들 나보고 후회할 거라고 하네. 후회는 이미 저세상에 묻어 두고 왔으니까, 너희는 내 걱정 말고 빨리 꺼지기나 하쇼.”

팽중호의 말을 끝으로 회의장에 있던 이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모두 빠져나갔다.

아수라장이 되어있는 회의장의 모습이 조금 전 일을 설명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빠져나간 회의장에 남은 사람은 팽중호와 팽자성 둘뿐.

“얼마나 팽가에 애착이 없으면, 팔 좀 잘렸다고 미련 없이 도망들을 갑니다. 참.”

“괜찮겠느냐?”

“에헤이. 괜찮을 겁니다. 아니, 괜찮게 만들 겁니다. 그러니 가주님께서는 연공실에서 이것부터 익히십쇼.”

말과 함께 팽중호는 품에서 서책 두 권을 꺼내서 팽자성에게 건네었다.

“이건……?”

“혼원벽력신공이랑 혼원벽력도입니다. 완전한.”

“……?!”

“어떻게 알았는지는 물으셔도 대답은 못 해 드리고, 그저 꿈속에서 봤다고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팽자성은 두 권을 들고 나서 한참을 팽중호만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에 아들이 맞지만, 또 자신에 아들이 아닌 것 같았다.

“너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 같구나.”

“걱정 마시고, 실력부터 올리십쇼. 조금 지나면 무림에 소리치러 나가야 하니까요. 하북팽가가 돌아왔다고.”

“하하. 그래. 알겠다.”

* * *

회의장에서의 모든 상황이 일단락되었다.

팽중호가 말한 3일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바로 다음 날 곧바로 다른 공자들의 세력들이 모조리 떠나기 시작했다.

물론 걔 중에는 남는 이들도 있었고, 일부러 남겨 둔 이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건 하북팽가의 거의 대부분이 빠져나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의 인원이 떠났다.

이 상황에 대한 소문이 하북팽가를 중심으로 하북에 쫙 퍼졌고, 팽중호는 단숨에 하북 무림의 최고 관심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팽중호에게 별호까지 생겼다.

‘파수도(破手刀)’ 팽중호.

하북팽가를 떠난 이들이 모두 팔 하나씩이 병신이 된 것을 보고 붙여진 별호였다.

“파수도라…… 나쁘지 않은데?”

“뭐, 딱 어울리시기는 합니다.”

팽중호는 장춘오에게 자신의 별호를 전해 듣고는 꽤 만족해했다.

전생에 붙여졌던 광도제라는 별호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들었으니 말이다.

“이제 거의 다 빠져나갔지?”

“예. 내일이면 나갈 놈들은 다 나갈 겁니다.”

“도망치는 건 빨라서 좋네.”

“한동안은 자기들끼리 견제하느라 괜찮을지 몰라도, 그 힘 싸움이 끝나면 득달같이 달려들 겁니다.”

팽중호가 장로들과 공자들을 죽이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일단 하북팽가가 그래도 나름 정도 세력인데, 싹 다 죽여 버리면 세간에 좋지 않게 비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무림공적으로 낙인이 찍혀 버릴 수도 있었기에 자중한 것이었다.

상처를 입힌 것과 죽이는 것은 분명 엄청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히려 살려 보냄으로 그들에게 하북팽가를 다시금 먹을 수 있다는 기회를 던져 준 것이었다.

각 공자 측은 아직 기회가 남아 있으니 다시금 하북팽가를 집어삼키려 할 것인데, 그래서 그들끼리 서로가 하북팽가를 집어삼키지 못하게끔 견제할 것이 뻔했다.

그럼 그동안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 시간이면 하북팽가의 힘을 조금 회복시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안에 안 먹히게 만들면 되잖아?”

“예 뭐, 그럼 만사형통이긴 합니다.”

“잠깐만 고생 좀 하자고.”

“잠깐이 아닐 것 같습니다만…….”

“크크크.”

“아, 그리고 가주님께서 공자님을 소가주로 임명하신다는 공문을 세가 전체에 보냈습니다.”

“그럼 나도 슬슬 움직여 봐야겠네.”

소가주(小家主)의 임명.

이것은 팽중호를 다음 가주로 인정한다는 소리였고,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하북팽가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라는 증표였다.

이제 팽중호의 말은 곧 가주의 말과도 같은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하북팽가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이었다.

“주군! 밖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잠깐 외출했던 도수가 처소로 돌아오면서 누군가가 팽중호를 찾아왔다는 것을 알려왔다.

“누군데?”

“적검문이라고 합니다!”

“아아. 현물을 가져왔나 보네. 들어오라 그래.”

팽중호는 적검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검문주 곽무조가 약속했던 현물이 도착했음을 알았다.

곧바로 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서는 마차 한 대.

팽중호는 과연 곽무조가 얼마나 많은 현물을 보내왔을지 지켜보기로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찾아가서 파수도라는 별호에 걸맞게 팔을 한 짝 부서트릴 생각이었다.

끼이익-

마차가 멈추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웬 사람이 하나 내렸는데, 굉장히 의외의 모습을 한 사람이 내렸다.

조금 큰 키에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 그리고 새하얀 피부와 알맞게 올라간 눈초리.

분명 이런 현물을 가져다 나르는 짐꾼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예쁜 여인이었다.

“안녕하세요? 전 곽채령이라고 해요.”

“……?”

팽중호는 뭔가 일이 조금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현물을 보내는데 왜 여인이 내렸으며, 저렇게 해맑게 자신을 향해 인사를 한단 말인가?

“팽중호라고 합니다.”

“와. 확실히 미남으로 변하셨다더니, 미남 맞으시네요?”

“하하…… 예. 감사합니다. 그보다 저에게 주실 것이 있지 않으십니까?”

“아 참! 헤헤. 잠시만요.”

곽채령은 곧바로 마차로 다시 들어가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서 가져왔다.

“이거에요. 아버지가 이 현물을 가져다드리라고 했어요.”

“예. 감사합니다.”

팽중호는 상자를 받아들고 곧바로 열어 보았다.

화아악-

상자를 열자 안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확 퍼져 나왔는데, 안을 보니 웬 산삼 뿌리 같은 것이 세 개 들어있었다.

“천년삼?”

천년삼(千年蔘).

꽤 비싼 영초로 만년삼보다는 못하다지만, 그럼에도 없어서 못 구하는 아주 귀한 것이었다.

적검문이 아무리 최근 하북에서 잘 나간다지만, 천년삼 세 뿌리는 분명 그들에게도 아주 큰 지출일 터였다.

‘이 정도면 팔은 놔둬도 되겠네.’

팽중호는 만족하며 상자를 다시금 덮고, 도수에게 안쪽에다 가져다 놓으라고 하였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팽중호는 얼른 곽채령을 보내기 위해 작별을 고했다.

뭔가 그의 예감이 좋지 않음을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예감이 아주 정통으로 맞고야 말았다.

“저도 현물에 포함인데요?”

“예?”

* * *

적검문의 문주실.

그곳에서는 곽무조가 무언가 만족스러운 듯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채령이가 잘 도착했나 모르겠군.”

곽무조는 팽중호의 힘과 가능성을 하북지회에서 알아보았다.

자신에 아들인 곽종구에게 지나친 손속을 보여서 화가 났었지만, 그와 싸워 보고 생각을 바꿔 먹었다.

‘팽중호에게 줄을 댄다면, 필히 득이 될 것이다.’

자신의 아들은 이미 명의에게 부탁해 이를 모두 원래대로 돌려놓은 상태이니 더 이상 그에게 원한을 가질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팽중호와의 줄을 이어 놓고 싶은 열망을 불태울 수 있었다.

팽중호와 어떻게든 줄을 이어 놓으면 그것은 분명 후에 적검문에게 아주 큰 득이 될 테니 말이다.

“천년삼 세 뿌리와 채령이면…… 값은 다 한 것이지.”

팽중호와의 줄을 잇기 위해 보낸 것이 바로 천년삼 세 뿌리와 자신의 딸인 곽채령이었다.

천년삼 세 뿌리는 솔직히 곽무조 입장에서도 꽤 부담되는 것이었지만, 팽중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감수한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아끼는 딸인 곽채령은 팽중호를 사로잡기 위해 보낸 것이었다.

“아직 혼사가 없다고 했었지?”

정보통에 의해 알아본 바로는 팽중호는 아예 혼사 이야기가 오간 적이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는 것은 먼저 잡는 쪽이 임자라는 소리 아니겠는가?

팽중호라면 필시 금방 무림에 이름을 날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엄청난 경쟁자들이 몰려들 터였다.

하지만 먼저 자리를 선점한다면, 그런 치열한 경쟁은 하지 않아도 된다.

“뭐, 우리 채령이 정도면 경쟁자들이 있어도 낙승이겠지만.”

곽무조는 객관적으로 곽채령이 무림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미색이 출중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해서 성격도 쾌활하고, 무공 실력도 준수했다.

다만……

“가끔 해맑게 비수를 꽂는 말을 하거나, 너무 무공광이라는 것이 조금 흠이지만…… 그 정도는 귀여우니 괜찮지. 암.”

곽무조는 이런 정도는 흠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차를 한 모금 입에 넣으며,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상상하며 사색에 잠겨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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