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바로 잘라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세가 회의가 시작되었다.
하북팽가의 수뇌급들이 참석한 이번 회의.
그만큼 수많은 이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팽중호를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놈을 가만히 두었다가는 세가의 존엄이 땅에 박힐 것이오!”
“앞으로 하북팽가를 위해서라도 크게 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평소에는 조금도 단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이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주 완벽한 단합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가주인 팽자성은 발언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기에, 침통한 표정으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팽중호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4공자를 불러오라 하였으니 이제 곧 올 겁니다. 그때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1장로가 사람들을 일단 진정시켰고, 언성을 높이던 이들도 1장로가 말하자 조용해졌다.
지금 하북팽가에서 가장 힘이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다들 1장로를 꼽을 것이다.
팽자성의 형이자, 하북팽가 제일의 고수였으니 말이다.
그는 1공자를 지지하는 인물이었는데, 그 덕분에 현 하북팽가에서 1공자가 가장 가주 후보로 유력하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쿵-!
그때 회의실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팽중호가 들어왔다.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듯싶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너무나 여유만만하게 인사를 하는 팽중호를 보며 회의장에 있는 대부분이 인상을 썼다.
그들 눈에는 지금 팽중호가 너무나 고깝게 보였으니 말이다.
어디라고 감히 저런 태도를 보인단 말인가?
“태도를 바르게 하라!”
“아아. 개망나니가 언제 태도를 바르게 합디까? 그건 됐고, 결정들은 하셨습니까?”
팽중호의 물음에 회의장에 침묵이 일순 깔렸다.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1장로가 대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에게 하북팽가를 맡길지, 아니면 죽음을 택할지 말이냐?”
“예. 맞습니다.”
“당연히 둘 다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결정이 났다. 너의 처분만 남은 상황이지.”
“그러니까 저한테 하북팽가도 맡기지 않고, 뒤지기도 싫다…… 이거죠?”
“……그렇다.”
“그럼 다 뒤지겠다고 정한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팽중호의 말에 회의장에 있는 이들의 얼굴이 와락 구겨지며,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팽중호의 오만방자함이 도를 넘었으니 말이다.
“자중이란 것을 모르는가!”
“자중? 그런 건 안 배웠습니다만?”
3장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팽중호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팽중호는 그런 3장로를 향해 한껏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받아쳤다.
당장이라도 서로 도를 뽑아 들 것만 같은 상황.
“일단 다들 진정하고, 4공자에 대한 처분을 논하도록 하지요.”
1장로가 나서서 일단은 상황을 진정시키며 회의를 진행시키려 하였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게 되어 버렸다.
“나에 대한 처분이 아니라, 당신들에 대한 처분을 논해야지.”
“이놈!!”
결국 3장로가 참지 못하고 손을 내뻗었다.
내공에 살기까지 실린 일격.
팽중호는 이 공격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먼저 선빵을 치면 가릴 거 없지.”
휘익- 탑.
팽중호가 그대로 3장로의 팔을 낚아챘다.
힘 있게 뻗어 나가던 팔이 별안간 잡히자, 눈에 띄게 당황하는 3장로.
많은 내공을 실은 공격이었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드득- 우득- 툭-!
“크아아악!”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팽중호의 손에 잡힌 3장로의 팔이 그대로 박살 났다.
고통에 찬 비명을 있는 힘껏 내지르는 3장로.
팽중호는 그런 3장로를 한 번 쓱 바라보고는 다시금 회의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회의장에 있는 모든 이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 있었다.
“말했지. 맡길 건지 뒤질 건지 선택하라고. 3일이나 시간을 줬는데 뒤지는 걸 선택했으면 뒤져야지, 안 그래?”
사아아아아아-
이제는 말도 짧아진 팽중호.
하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도 못했다.
팽중호의 몸에서 나오는 아주 농도 짙은 살기 때문이었다.
몸이 따끔거릴 정도의 엄청난 살기.
“자. 나한테 하북팽가를 맡길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시고, 아닌 사람은 여기 남아.”
“…….”
모두 서로 눈치만 보는 회의장의 사람들.
그때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4공자를 지지하겠소.”
바로 2장로였다.
아무 공자도 지지하지 않던 그였는데, 이번 기회에 팽중호에게 팽가를 맡겨 볼 생각이었다.
하북지회부터 지금까지 보여 준 그의 모습은 분명 지금 하북팽가에 필요한 모습이라 판단했으니 말이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렇게 2장로가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그를 따라 팽중호를 봤었던 호품각의 각주와 2장로를 따르던 각주 두 사람이 자리에 일어나 나갔고, 그들 외에 더 이상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그럼 뒤질 준비들은 됐지?”
“너무나도 방자하고 오만해서 할 말이 없구나!”
“아! 가주님께서는 지켜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나가셔서 잠시 기다리시겠습니까?”
“지켜보마.”
“알겠습니다.”
스릉-
팽중호가 도를 꺼내어 들었다.
일순간 회의실 내부에 팽팽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설마 팽중호가 도를 휘두를까 싶었지만, 그럼에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다들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일단 전부 다 팔 한 짝으로 시작할 거야. 더 개기면 그다음은 다리, 이빨, 단전 하나씩 모조리 박살 내 줄게. 마지막은 말 안 해도 알지?”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나오니, 우리도 힘으로 너를 벌해야겠다.”
스릉- 스릉- 스릉-……
장로들이 눈짓을 하자 회의실에 있던 1, 2, 3, 5공자 측의 각주들이 일제히 도를 꺼내어 들었다.
그들은 적당히 힘을 써서 팽중호를 제압한 뒤, 그 후에 처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쯧쯧. 이렇게 상대의 역량도 모르니 팽가가 이 꼴이 나지.”
스슥-
퍽- 우득-
“크악!”
팽중호는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바로 앞에 있던 각주의 팔을 그대로 도의 등으로 내려쳤다.
내공이 담긴 일격에 각주의 팔이 그대로 부러졌다.
“제압해!”
잠시간 얼이 빠져 있던 각주들이 동시에 팽중호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름 실력이 있는 무인들이기에 재빠르게 팽중호를 포위하며 도를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나름 실력이 있는 것이었고, 팽중호가 보기에는 아직 부족하기 그지없는 실력들이었다.
‘예전이었으면 각주는커녕 부각주 근처에도 못 갔을 실력인데…… 하아.’
전생이었으면 상급 무사 정도일 실력으로, 지금 다들 각주라는 자리를 꿰차고 있다.
정말 속으로 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파지지지지직-
팽중호는 한 번에 모두 정리하기 위해 혼원벽력신공을 운용했다.
그리고 움직이는 팽중호의 도.
파캉-! 콰득-
슥- 카캉-! 우득-
뇌기를 머금은 팽중호의 도와 부딪치자 달려들던 각주들의 도가 그대로 동강이 나 버렸고, 그 기세 그대로 그들의 팔도 박살이 났다.
가볍게 제자리에 서서 보법을 밟으며 각주들의 공격은 모조리 흘려 버리고, 일격에 한 명씩 팔을 박살 내는 팽중호.
압도적인 실력 차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자…… 그럼 다음은 당신들인가?”
각주들은 모조리 박살 난 팔을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고, 이제 남은 이들은 장로들이었다.
장로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나서 각자 도를 꺼내 들고 있었는데, 그들은 긴장한 기색이 아주 역력했다.
팽중호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제대로 느꼈으니 말이다.
사아아아아악-
장로들의 도에 도기가 넘실거리며 일렁이기 시작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당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뒤지기로 작정했으면 그 정도는 보여 줘야지.”
파지지지지지직-
팽중호의 도에 서린 뇌기가 더욱 강해졌다.
“당신들은 부수는 게 아니라, 바로 잘라 버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
“노오옴!”
“하앗!”
“하아아압!”
장로들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소리치며 팽중호에게 동시에 달려들었다.
1대1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암묵적으로 합의를 하며 합격을 한 것이다.
도기를 두르고 세 방향에서 달려드는 장로들의 모습은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팽중호는 가만히 서서 그들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공격이 코앞까지 도착했을 때.
“가주님 잘 보십시오. 이게 진짜 혼원벽력도입니다.”
팽중호는 팽자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팽중호의 도가 움직였다.
- 혼원벽력도. 뇌륜참철(雷輪斬鐵).
혼원벽력도의 소실된 부분의 초식인 뇌륜참철.
팽중호의 도가 휘둘러지며 뇌기가 바퀴의 형태를 이루었고, 그대로 달려들던 장로들에게 향해 퍼져 나갔다.
카카카캉-! 캉-! 콰창-! 창-!
“헛!”
순식간에 자신들을 향해 날아온 뇌기를 도로 급하게 막았지만,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그들의 도가 박살이 나 버렸다.
그리고 그 틈에 팽중호의 도가 벼락같이 움직였다.
서걱- 서걱- 서걱-
아주 빠르고 간결하게 들리는 세 번의 소리.
그리고 결과는 아주 처참했다.
촤아악- 촤악- 촤아아악-
세 장로의 팔이 동시에 잘려 나간 것이다.
피가 솟구쳐 오르고, 잘려 나간 팔이 바닥을 굴렀다.
“크아악!”
“이, 이노옴!”
“크아악! 이 악독한!”
팽중호는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세 장로를 아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개망나니라 하나씩 천천히 알아가면서 하는 건 못하거든. 그래서 3일 동안 기회를 준 거고 말이지. 그런데 너네들은 그 기회를 차 버린 거잖아? 그러니까 날 탓하지 말라고.”
물론 팽중호가 정말 개망나니라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하북팽가는 너무나도 깊게 썩어 있었기에 일일이 찾아내서 도려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쇄신하려면 짧고 강하게 해야 성공하는 법.
팽중호는 이 방법이 분명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기에 실행한 것이었다.
“우, 우리를 이렇게 만들면, 우리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아느냐?”
1장로가 팔을 지혈하며 소리를 쳐 대었다.
팽중호는 그런 1장로에게 아주 싸늘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우리 세력? 아주 그쪽에 딱 붙으셨군 그래. 어차피 그놈들까지 싹 다 족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네놈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가능할 성싶으냐!”
“그러니까 네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보다 어쩔래? 더 할래?”
스윽- 스윽-
팽중호가 도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들을 겨누었다.
“내가 지금 제안 하나 할게. 팽가에서 꺼지면 여기서 그만둘게. 아니면…… 아까 말한 대로 하나씩 다 부숴 주고 말이야. 어쩔래?”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 준 후에 하는 팽중호의 제안.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당연히 개소리라 외칠 제안이지만, 지금은 개소리라고 치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세 장로들이 미친 듯이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무슨 일……?!!!”
“허어?”
“이, 이게……?!”
이번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1, 2, 3공자가 동시에 회의실에 나타났다.
그들은 회의실에서 급하게 그들을 찾는다는 소리에 달려온 길이었는데, 눈앞에 벌어진 참상에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아. 딱 맞춰서 왔네. 역시 춘오가 일을 잘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