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닥치고 마음 바뀌기 전에 꺼지십쇼.
하북팽가는 팽중호에 대한 처분을 위해 세가 회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시일은 바로 내일.
팽중호가 말한 3일 중 딱 3일째 되는 날이었다.
덕분에 하북팽가는 하북지회가 끝이 나고도 더없이 바빴고, 하북팽가에 있는 이들은 이 회의가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서로 떠들어 대기 바빴다.
“내일은 당장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장춘오는 뒤쪽 마당에 태평하게 누워서 바람을 쐬고 있는 팽중호에게 다가와 물었다.
당장 내일은 세가 회의가 있는 날이다.
팽중호가 어떻게 처신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 분명 많은 것이 결정되는 날일 터.
장춘오는 미리 팽중호에게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풀어 나갈지 길을 정할 생각이었다.
“말했잖아. 나한테 하북팽가를 맡기면 적당히 손만 봐 주고, 아니면 싹 다 뒈지는 거라고.”
“정말 죽이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엉? 아니. 썩은 가지면 전부 잘라 낼 거야.”
“그렇다고 다 죽이면 하북팽가가 유지가 안 됩니다.”
“처음부터 다시 세우면 돼.”
“하…… 그럼 일이 너무 많아지지 않습니까.”
“크크크. 그거야 뭐 너랑 나랑 저기 도수랑 해결해야지.”
“……도망쳐도 됩니까?”
“아니. 그럼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을 거야.”
“악덕 주인이군요.”
“순리대로 하는 것일 뿐이지.”
그렇게 만담을 주고받던 팽중호와 장춘오는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명종 때문에 이야기를 멈추었다.
“공자님!”
“왜?”
“1공자님께서 오, 오셨습니다.”
“1공자? 왜 왔데?”
“그, 그건 저도 잘…….”
“알았다. 금방 나간다고 그래.”
“예!”
다시금 명종이 빠른 발걸음으로 나갔고, 팽중호는 대충 몸을 한번 툭툭 털고는 앞쪽 마당으로 향했다.
앞마당으로 향하자 보이는 일단의 무리.
그리고 그 무리의 가장 앞에는 단단한 체격에 선이 굵은 얼굴을 하고 있는 청년이 서 있었는데, 그가 바로 하북팽가의 1공자인 팽조강이었다.
‘그나마 낫네, 이놈은.’
팽조성은 팽중호가 지금껏 보았던 하북팽가의 인간들 중 그나마 가장 나은 기도를 가지고 있었다.
“호오? 중호야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팽중호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신기한 것을 봤다는 투로 말을 하는 팽조강.
그도 그럴 것이 팽조성이 마지막으로 팽중호를 보았을 때는 팽중호가 아주 뚱뚱한 돼지 새끼였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주 멀쩡한 모습을 보니 신기할 수밖에.
‘어딜 기분 드럽게 훑어보고 지랄이지?’
물론 팽중호는 자신을 평가하듯 훑어보는 팽조강의 모습에 꽤 기분이 좋지 않아졌다.
아마 보는 눈이 없었으면, 이 자리에서 그냥 두 눈알을 확 뽑아 버렸을 터였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네가 꽤 재미있는 일을 벌였다는 소식을 들어서 말이다.”
팽조강은 하북지회에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모두 전해 듣고는 곧바로 팽중호를 찾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너무 주제넘게 나선 것 같더구나. 감히 세가를 향해 망발을 한 것은 물론이고, 준비도 되지 않은 놈이 세가를 넘보려 한 것을 보면 말이다.”
팽조강이 오늘 팽중호를 찾은 이유는 일종의 경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감히 1공자인 자신이 없을 때 하북팽가를 넘보려 한 팽중호에게 하는 경고 말이다.
“후우…… 진짜 조금 낫다고 생각했더니, 별 같잖은 게 다 열받게 하네.”
팽중호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순간 팽중호의 말을 이해 못 했던 팽조강은 말을 이해하고는 바로 얼굴을 와락 구겼다.
“그 말 설마 나에게 하는 말이더냐?”
“여기에 이 말을 들을 사람이 그쪽 말고 누가 더 계십니까?”
“그쪽? 하! 사람들이 네가 힘 좀 강해졌다고 뵈는 게 없는 듯이 행동한다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조금 강해졌다고요? 다들 눈깔들이 썩었나?”
팽조강은 당장이라도 도를 뽑아서 팽중호에게 벌을 내리고 싶었지만, 1공자라는 체면이 있으니 일단은 참아 주기로 했다.
“내일 분명 너는 아주 큰 벌을 받을 것이다. 알고 있느냐?”
“제가 벌을 받는 입장입니까? 저는 제가 벌을 주는 입장인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사리 분별을 할 수 없을 만큼 개망나니가 된 것이냐? 내가 오늘 조금이지만,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겠구나. 어른들도 이해하실 테니까.”
스릉-
자신의 도를 꺼내어 드는 팽조강.
팽중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런 팽조강을 바라보았다.
“어서 도를 꺼내 거라.”
“그쪽 정도는 도를 꺼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하하…… 오늘 내가 너에게 아주 따끔한 가르침을 줘야겠구나.”
사아아아아-
팽조강의 몸에서 묵직한 기운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확실히 팽중호가 지금까지 본 중에는 제일 괜찮은 기운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본 중일 뿐이지만 말이다.
“정말 도를 뽑지 않을 것이냐?”
“거, 싫다는 사람한테 자꾸 그러는 것도 예의가 아닙니다.”
“하핫! 그래. 네 방자함을 뼈저리게 후회하거라!”
탓-
도를 들고 아주 가볍게 쇄도하는 팽조강.
확실히 움직임도 가볍고, 그 안에 나름 힘도 느껴졌다.
휘이익-
팽조강은 가볍게 팔정도에 상처를 줄 생각으로 도를 휘둘렀다.
팽중호가 하북지회에서 놀라운 실력을 보였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기지수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5장로가 당한 것은 아무런 방비도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그래서 팽조강은 자신의 이 일도가 팽중호에게 먹혀들 것이라고 십 할 장담했다.
텁-
하지만 그런 팽조강의 생각을 시원하게 비웃으며, 팽조강의 도를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아내는 팽중호.
손이나 주먹으로 쳐 낸 것도 아니고, 두 손가락으로 팽조강의 도를 잡아 버린 것이다.
주변에 지켜보던 이들 중 장춘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광경에 입을 벌렸다.
압도적인 실력 차가 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좀 더 도에 힘을 실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으윽…… 흡!”
팽중호의 손가락에서 도를 빼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팽조강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꼼짝도 하지 않는 도였다.
그렇게 잠시간을 씨름하다가 팽중호가 손가락을 펴 주었을 때 간신히 도를 다시금 회수할 수 있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는 상태로 팽중호를 노려보는 팽조강.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캬. 그냥 뭐만 하면 사술이라 그러네. 팽가에서 요즘은 그렇게 말하라고 가르치나 봅니다?”
“사술이 아니고서 네가 나를 이길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아, 그러고 보면 하북지회에서 이긴 것도 전부 사술 덕일 수 있겠구나.”
“하아…… 춘오야.”
“예.”
팽조강의 이야기를 듣던 팽중호가 장춘오를 불렀다.
무언가 근심이 가득한 목소리.
“하북팽가에 전부 저런 놈만 남은 거냐? 3공자도 저래, 5공자도 저래. 2공자도 저러냐 설마?”
“2공자는 다른 공자들과는 좀 달라서 괜찮을 수도 있습니다. 좀 다른 의미로 미친놈이긴 한데…… 그래도 나쁜 쪽은 아니니까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싹 다 저랬으면 정말 마음 아플 뻔했는데.”
“뭣들 하는 것이냐!”
팽조강은 자신을 앞에 두고 저들끼리 떠드는 팽중호와 장춘오를 어이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소리쳤다.
지금 하북팽가의 1공자인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말을 하다니?
이건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하북팽가가 아직까지 안 망한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 좀 나눴을 뿐입니다.”
“네가 그런 말을 하고도 하북팽가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느냐?”
“하북팽가의 직계니까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콰아아아아아-
순간 팽중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
주변에 지켜보던 이들의 털이 삐쭉 서고, 피부가 저려 올 정도의 강렬한 기운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팽조강은 팔다리를 부들거리며 서 있는 것이 고작인 상태.
화악-
다시금 모든 기운이 사라졌고, 그제야 다들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직 1일 남았으니까, 오늘은 그냥들 가십쇼.”
“지금 일을 아주 후회할 거다. 세가 회의에서 너를…….”
“닥치고 마음 바뀌기 전에 꺼지십쇼. 뒤지기 싫으면 생각들도 좀 다시 잘해 보시고.”
“돌아간다!”
팽조강은 자신이 끌고 왔던 무리와 함께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사라졌다.
가볍게 자신의 힘을 한 번 보여 주고 팽중호를 자신의 밑으로 들이려고 했다가, 개망신만 당하고 만 것이다.
“저놈 뒷배가 어디라고 했지?”
“서문세가입니다.”
“걔네가 지금 무림오대세가라고 했지?”
“예.”
“예전에도 그렇게 호시탐탐 노리더니. 아예 하북팽가까지 먹어 치우려고 하네.”
정마대전 이후로 무림오대세가(武林五大世家)가 새롭게 개편되었다.
아니 뭐 크게 개편이랄 것도 없었다.
남궁세가, 제갈세가, 사천당가, 모용세가, 하북팽가 중에서 하북팽가가 빠지고, 서문세가가 들어간 것뿐이니 말이다.
하북과 가까운 산서에 위치한 서문세가는 팽중호의 전생에서도 호시탐탐 오대세가의 자리를 노리던 곳이었는데, 아무래도 하북팽가가 정마대전 이후로 몰락한 틈을 이용해 오대세가에 들어간 듯싶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팽조강을 이용해서 아예 하북팽가를 자신들이 집어삼키려고까지 하는 듯한 모습.
“하북팽가 정리가 끝나면, 발을 걸치고 있는 곳들부터 조져야겠어.”
“미리 준비해 놓겠습니다.”
장춘오는 팽중호의 장단에 맞추어 지금부터 계획들을 수립해 나갈 생각이었다.
워낙에 팽중호가 빠르게 일을 진행하니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자칫 계획이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근데 내가 준 책이랑 무공서는 다 봤어?”
“예. 다 봤습니다.”
팽중호는 장춘오에게 여러 가지 서책은 물론, 그가 익힐 무공서까지 전해 주었다.
서책들은 장춘오가 더 공부가 필요하다면서 요구한 것들이었고, 무공서는 제 한 몸 스스로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도수와 다르게 근골 자체가 평범한 장춘오이기에 그에게 맞는 무공을 팽중호가 직접 적어서 건네주었다.
“비호조랑 은호공은 아주 잘 어울리는 거니까, 잘 익히면 너도 금방 강해질 거다. 너는 똑똑하니까 더 빠르겠지.”
비호조(飛虎爪)는 하북팽가에서 거의 유일한 조법(爪法)이라고 봐도 무방한 것이었다.
하북팽가에 있는 수많은 무인들이 모두 근골을 타고나거나 하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그들을 위한 무공이 필요했고, 비호조는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 탄생한 무공이었다.
하늘을 나는 호랑이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쾌속한 무공.
그리고 그 비호조에 맞춰서 탄생한 내공 심법이 바로 은호공(隱虎功)이었다.
숨어 있는 호랑이처럼 아주 은밀하지만,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가 된 폭발적인 내공 심법.
비호조와 은호공이 하나로 합쳐지면, 분명 혼원벽력도와 혼원벽력신공의 합처럼 대단한 상승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일단 어떤 수인지는 알겠는데, 아무래도 직접 움직여 봐야 더 확실히 깨달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내가 한번 봐 줄까?”
“……거절하겠습니다. 도수에게 들은 것이 있어서요.”
“걱정 마. 너는 도수랑 다르게 아주 조심히 다뤄 줄 테니까.”
“그래도 거절입니다.”
“크크크. 그럼 거절치 못하게 해 줘야지.”
휙-
팽중호의 손이 별안간에 튀어나왔고, 장춘오는 간신히 그 손을 피해 내었다.
그리고 시작된 일방적인 팽중호의 공격.
장춘오의 얼굴은 귀찮아죽겠다는 표정으로 굳어 갔고, 팽중호의 얼굴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밝아져 갔다.
“제가 알아서 한다지 않았습니까.”
“어허. 내가 알아서 조심히 다뤄 준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