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팔 하나랑 다리 하나씩도 괜찮습니다.
캉- 카캉- 카앙-!
쉴 새 없이 검을 내지르는 곽무조.
검이 뱀처럼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팽중호의 급소를 노리며 쇄도했다.
과연 적사검객이라고 불릴 만한 모습이었는데, 문제는 팽중호가 그런 곽무조의 공격을 너무나도 여유롭게 쳐 낸다는 것이었다.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와 놀아 주듯 말이다.
“이 정도 실력으로 지금 사술이고 어쩌고 하신 겁니까? 하.”
팽중호는 적당히 곽무조의 실력을 가늠해 보는 중이었는데, 생각 이하로 허접한 실력에 실망함과 동시에 어이도 없어졌다.
겨우 이런 실력을 가지고서 하북팽가에서 이리 당당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놈! 건방이 심하다!”
사아아아아-
곽무조의 검에 붉은 검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후기지수를 상대로 이렇게 검기까지 써야 할 줄은 몰랐지만, 지금 여기서 제대로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가는 아주 큰 낭패를 볼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다만, 검기까지 꺼내든 이상 곱게 끝날 수는 없을 터였다.
“네 입을 원망해라!”
순식간에 팽중호의 사방을 점하며 찔러 들어오는 곽무조의 검기.
- 추사검법(追蛇劍法). 사사낙조(四蛇落鳥).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초식으로, 쾌속하게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공격이었다.
살기가 짙게 담긴 명백한 살수.
“허어! 어찌!”
“멈추시게!”
아직까지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던 하북팽가의 사람들이 곽무조의 공격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하북팽가의 사람들이 나서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곽무조가 무림의 법도를 운운했어도 적당히 벌을 주는 선에서 끝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곽무조가 펼친 공격은 상대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듯 보였으니, 다급하게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라면 팽중호가 그대로 곽무조의 검에 꿰뚫릴 듯이 보였으니 말이다.
“쯧쯧. 이렇게 공격에 힘이 없어서야.”
파지지지지직- 휙- 콰카캉-!!
뇌기를 머금은 도를 한번 스윽 휘두르는 것으로 곽무조의 공격을 모조리 쳐 내 버린 팽중호.
곽무조는 자신의 손에 전해져 오는 강렬한 힘에 놀랐고, 사람들은 단 일수로 곽무조의 공격을 모조리 쳐낸 팽중호의 무위에 놀랐다.
“살수까지 쓰는 걸 보면, 목숨은 걸으신 것 같으니…… 진짜로 가겠습니다.”
파지지지지지직-
이번에는 뇌기를 머금은 도를 들고 먼저 쇄도하는 팽중호.
뇌기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힘은 보고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그것을 마주한 곽무조는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쾅- 쾅- 쾅-
곽무조가 팽중호의 도를 막을 때마다 무슨 화탄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휘청이니 곽무조의 몸.
지금 팽중호의 힘을 감당치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자. 좀 더 버텨 보십쇼.”
“크윽…… 큽!”
곽무조는 지금 간신히 검을 쥐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할 듯싶었다.
이미 손아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내상까지 입어 입가에는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팽중호가 무언가 초식을 쓰지도 않고, 그저 도를 휘두르는 것뿐인데도 이런 처참한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이이익……! 노오옴!!!”
사아아아아아-!
이대로 막기만 해서는 큰 낭패를 당할 것임이 분명하기에, 곽무조는 살짝 거리를 벌린 뒤 내공을 모조리 끌어 올려 반격에 나섰다.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거대해진 곽무조의 붉은 검기.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깜짝 놀랄 만큼의 강렬함이 곽무조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역시 적사검객이라고 생각하며, 그 맞은편에 있는 팽중호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아무리 팽중호가 대단한 모습을 보여 주었어도, 곽무조가 모든 힘을 다 쓴다면 버티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으니 말이다.
괜히 곽무조의 심기를 건드려서 스스로 큰 화를 자초한 꼴이라고 생각했다.
- 추사검법. 추멸사아(追滅蛇牙).
곽무조의 거대한 검기가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팽중호에게 쏟아졌다.
마치 거대한 뱀이 아가리를 벌리고 먹이를 삼키려는 듯한 형태의 검기.
이대로라면 팽중호가 그대로 뱀의 먹이가 될 것 같은 모습!
“두고두고 오늘을 후회하거라!”
곽무조는 이 공격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내공을 담은 일격이다.
팽중호의 실력이 아무리 범상치 않아도, 가진 내공의 양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터.
내공의 힘 싸움에서는 자신이 질 리가 없었다.
“거참. 후회를 제가 왜 합니까? 후회할 짓을 해야 후회도 하는 거 아닙니까?”
절체절명의 위기를 앞두고도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팽중호의 목소리.
그러더니 곽무조의 검기를 향해 몸을 날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자살하러 가는 꼴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
- 혼원벽력도. 낙뢰단봉(落雷斷峰).
그때 팽중호의 도가 앞으로 뻗어 나왔고, 그대로 그 길을 따라 뇌기가 움직였다.
파지지지지직- 쾅-!
팽중호의 뇌기가 일직선으로 곧장 날아가며 곽무조의 검기와 부딪쳤다.
주변을 떨어 울리는 굉음과 함께 곽무조의 검기가 그대로 반으로 갈라지며 소멸해 버렸다.
하지만 팽중호의 뇌기는 아직까지도 힘을 유지한 채로 그대로 곽무조까지 반으로 갈라 버리기 위해 뻗어 나가고 있었다.
“흐아아아앗!”
곽무조가 팽중호의 뇌기를 막기 위해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검에 내공을 가득 주입하였다.
카카카카캉-! 촤아아아아악-
물론 그럼에도 엄청난 힘에 연신 뒤로 밀려났고, 곽무조의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콰앙-!
결국 공격을 옆으로 쳐 내는 것으로 막아 내기는 하였지만, 이미 곽무조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검은 이가 모조리 나가고 금이 가서 부서지기 일보 직전에, 옷은 걸레짝이 되었고, 머리는 태풍이라도 맞은 듯 완전히 산발이 되어 있었다.
그에 반면 팽중호는 처음과 같은 상태 그대로 멀쩡히 서 있었고 말이다.
“크크. 그럼 계속해 볼까요?”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미소를 머금고 도를 들고는 휘적휘적 곽무조를 향해 다가가는 팽중호.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곽무조의 눈에는 팽중호가 마치 흉신악살(凶神惡殺)처럼 보였다.
어찌 후기지수인데도 이런 무지막지한 실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것도 가세가 기울어진 하북팽가의 직계가 말이다.
“내가 졌다.”
“아니죠. 무림의 법도까지 들먹이셨으면서, 그냥 졌다는 말로 끝내시려고 그럽니까?”
“그럼 어쩌길 바라느냐?”
“엄한 사람을 몰아세운 값에다가, 그쪽 목숨값까지 계산해서 현물로 내놓으십쇼.”
“뭐, 뭣이라?!”
“싫으시면…… 팔 하나랑 다리 하나씩도 괜찮습니다.”
스윽- 파지지지지직-
명백한 협박용으로 도에 뇌기를 불어넣는 팽중호.
곽무조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는 이가 없었다.
구경꾼들은 그저 흥미진진한 눈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고, 하북팽가의 사람들은 아예 못 본 척을 하고 있었다.
‘5공자는……? 어디에…….’
자신의 편이 되어 줘야 하는 5공자 측의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자신을 손절하고 떠나 버린 것이다.
‘이, 이 빌어먹을! 이래서 애초에 장사치 놈들과는…….’
결국 곽무조는 스스로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만 하였다.
“여기서 나를 더 자극한다면, 이건 적검문과 팽가의 일로 커질 것이다.”
그때 곽무조는 머릿속에 문뜩 떠오른 생각에, 오히려 강하게 윽박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팽중호와 곽무조의 문제가 아니라, 하북팽가와 적검문의 문제로 만들어서 하북팽가를 압박한다면, 충분히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언제부터 하북팽가가 하북에서 무서워하는 문파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북팽가가 예전의 하북팽가인 줄 아느냐?!”
“아닌 건 아는데, 이제 바뀔 거라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오만방자하구나.”
“자신감이 넘친다고 하시죠.”
곽무조는 팽중호를 노려보았는데, 팽중호의 두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지금의 말이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현물로 주지.”
“좋습니다. 뭐 적검문의 문주님이 말씀하신 것이니, 따로 문서로 작성은 안 하겠습니다.”
“그래. 다만, 이 일은 분명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다.”
“마음대로 하십쇼.”
이렇게 팽중호와 곽무조의 싸움은 끝이 났고,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비무대회에서 조금 멀어져 버렸다.
고수들 간의 싸움을 보았으니, 후기지수들의 비무가 재미가 있을 리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팽중호와 곽무조의 싸움에 대해 떠들어 대었고, 하북팽가에서 갑자기 신성처럼 나타난 팽중호에 대해 의논하기 바빴다.
개망나니 짓을 한 것이 팽가의 새로운 수련법이었다는 둥, 팽가의 전대 고수가 인피면구를 쓰고 나타난 것이라는 둥 아주 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그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팽중호의 이야기 중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가 하북에 있는 후기지수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 * *
쾅-
팽주철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탁자를 거칠게 내리쳤다.
이번 하북지회의 주인공은 자신이 되어야만 하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완전히 묻혀 버리고, 개망나니 4공자가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적검문의 머저리들이 하나같이 날 방해하는군.”
“……적검문과의 거래를 끊으라 할까요?”
“아니. 그래도 지금까지 들인 돈이 있으니, 일단은 놔두라 해. 어딘가 쓸 데는 있을 테니까.”
“예.”
팽주철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는 부하.
팽주철은 그런 부하를 일단 내보낸 뒤에 혼자 가만히 앉아서 고민을 시작했다.
“팽중호 그놈이 그런 실력을 숨겼단 말이지…….”
사술이라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사술은 아닌 듯싶었다.
사술이라면 곽무조가 그렇게 당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실력이라는 것인데,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실력이었다.
반평생을 개망나니로 살고, 회석 독까지 중독되었던 머저리가 어떻게 이렇게 금방 실력을 쌓는단 말인가?
“뭘까…… 분명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텐데…….”
팽주철은 자신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을 고민한 팽주철이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결국 직접 붙어 봐야 하는 건가.”
어차피 하북지회의 결승에서 팽중호와 싸울 수밖에 없을 터.
그때에 붙어 본다면, 무언가 실마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릉-
자신의 도를 빼서 손에 쥔 팽주철.
파직- 파지직- 파팟-
팽주철의 도에 뇌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마치 혼원벽력신공을 운용한 것처럼 보이는 모습.
“결국 이번 결승에서 두 가지를 모두 꺼내야 하겠어.”
팽주철은 생각했던 것과 일이 틀어졌기에, 이번에 계획을 전부 조금 앞당길 생각이었다.
혼원벽력도와는 다르게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지만, 자신이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을 듯싶었다.
“우리 상단에 하북팽가까지 더해진다면, 하북이 아니라 무림을 상대로도 놀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