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때릴 맛이 있겠는데?
계속되는 하북지회.
수많은 하북지회의 참가자들 중에서 이제 남은 이는 넷.
하북팽가의 팽중호와 팽주철, 그리고 진월문(眞月門)의 선혜린과 패력황가(覇力黃家)의 황호창.
넷 모두 아주 쟁쟁한 실력을 보이며 올라왔는데, 그중 가장 특출 난 이를 뽑는다면 당연 팽중호였다.
여기까지 올라오면서 모든 무인들을 제대로 된 무공도 쓰지 않고, 그저 힘으로 때려눕히고 올라왔다.
압도적인 실력의 강함.
때문에 지금 하북지회를 구경 온 모든 이들의 관심은 팽중호에게로 몰려 있었다.
“하북팽가의 팽중호대 패력황가의 황호창! 비무대로 나오시오!”
이제 마지막까지 두 걸음이 남은 비무회.
그 첫 번째의 순서는 팽중호와 황호창의 비무로 시작되었다.
뚜둑-
가볍게 몸을 풀며 비무대로 향하는 팽중호.
팽중호가 움직일 때마다 모든 시선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팽중호의 입지를 아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모습이었다.
쿠웅-
팽중호가 천천히 비무대로 올라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갑자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니, 보통 성인 둘을 합친 듯 거대한 신형의 소유자가 비무대 위에 나타나 있었다.
그가 바로 패력황가의 황호창이었다.
하북팽가 이상의 기골을 지닌 패력황가의 2공자로, 이미 하북칠성을 넘어섰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의 기재.
이번 하북지회에서 강렬한 힘으로 상대들을 때려눕히고 올라왔는데, 어찌 보면 팽중호와 유사한 점이 많은 인물이었다.
“안녕하시오. 만나서 반갑소이다. 크하하!”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황호창의 목소리.
아주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모습이었다.
황호창은 팽중호의 비무를 보았지만, 자신이 그를 쉽게 이길 것임을 십 할 장담했다.
그의 힘은 자신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 반갑네.”
팽중호는 대충 인사를 하면서 황호창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음…… 때릴 맛이 있겠는데?’
팽중호가 보기에 황호창은 외공을 아주 제대로 익힌 듯 보였다.
저 정도 외공 수련이라면, 웬만한 공격으로는 아마 상처도 내지 못할 터.
절정 이상의 수련을 쌓아야 하나 어느 정도 상처를 낼 수 있을 터였다.
그 말인즉슨 몸이 아주 단단하다는 것.
팽중호는 간만에 아주 제대로 몸을 풀어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씨익-
흡족한 미소를 짓는 팽중호.
그 모습을 본 황호창은 갑자기 몸에 한기가 드는 듯한 느낌에 몸을 흠칫 떨었다.
“비무를 시작하시오!”
비무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팽중호가 먼저 움직였다.
타탓-
아주 가볍고 경쾌한 발놀림으로 황호창의 코앞에 다가온 팽중호.
그리고 그와 동시에 두 손과 발이 쏟아져 나왔다
퍼버버버벅- 퍼퍽- 퍽- 퍽-
황호창은 멀쩡히 서서 팽중호의 공격을 모조리 받아 내고 있었는데, 표정을 보니 꽤 여유로운 듯싶었다.
“크하하! 이것밖에 안 되시오?”
“아니. 이거보다 더 되지.”
파지지직-
팽중호의 양손에 뇌기가 머물기 시작했다.
혼원벽력신공을 지금 두 손으로 펼치는 것이었다.
“와 보시오! 어떤 공격이든 이 몸에겐 통하지 않소이다!”
“외공을 익힌 놈들은 자기의 몸을 과신한단 말이지? 금강불괴(金剛不壞)에 도달하지도 못했으면서 말이야.”
툭-
말과 함께 뇌기를 머금은 팽중호의 손이 황호창의 몸에 닿았다.
조금 전보다 위력이 약한 듯 미약한 타격음.
이것으로는 황호창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할 듯싶었다.
“응……? 커어억!!”
쿠우웅-
황호창은 이게 무슨 헛짓거리냐는 표정을 지었다가, 갑자기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을 쏟아 내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거대한 거구가 단 일수에 바닥으로 쓰러진 것이다.
“이렇게 속을 박살 내 놓으면, 외공이 지켜 주지 못하거든.”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보통은 소림사의 무승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었다.
피부를 격해서 상대의 내장을 뒤흔들어 놓는 수법.
이 내가중수법은 특히나 외공을 익힌 이들에게 아주 효과가 좋았는데, 그들은 겉 피부의 단단함을 맹신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황호창의 외공 수준이면 분명 지금 후기지수들의 수준으로는 어찌 상대하기 힘들 터였다.
이정도 위력의 내가중수법을 쓰려면 그래도 최소한 절정의 경지는 넘어야 가능한 것이니 말이다.
“팽중호 승!”
“와아!”
“하북팽가가 이번 지회의 승자가 되겠어!”
팽중호의 승리로 결승의 한 자리는 이미 하북팽가가 차지했다.
그리고 다른 한 자리도 팽주철이 올라올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렇다면 이번 하북지회의 실질적인 승자는 하북팽가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잠깐! 나는 저놈의 승리를 인정할 수가 없다!”
그때.
누군가 큰 외침과 함께 비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아주 표홀한 움직임으로 나타난 중년인.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저마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적검문주야.”
“적사검객 곽무조?”
“그래. 맞네.”
비무대 위에 나타난 중년인은 바로 팽중호가 이를 모조리 박살 내 버린 괴사검 곽종구의 아버지이자, 적검문의 무주인 적사검객 곽무조였다.
눈에 살기와 분노가 가득한 것이, 아무래도 팽중호에게 곽종구의 일을 묻고 싶은 듯싶었다.
팽중호는 그런 곽무조를 보고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곽종구를 박살 낸 후에 이런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다.
“뭘 인정 못 한단 말입니까?”
“간악하고 잔인한 손속은 물론, 용납할 수 없는 사술을 써서 승리하는 네 놈을 인정하지 못한단 말이다!”
“히야…… 쯧쯧쯧.”
팽중호는 곽무조를 보고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어떻게 저렇게 예전에 자신이 숱하게 보았었던 이들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소리를 지껄이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자신들이 지껄인 말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잔인한 손속이라 하며, 실력은 사술이라고 폄하를 한다.
참으로 뻔뻔하기 그지없지 않은가?
“그래서 뭐, 한판 하시려고요?”
“내가 여기서 네 놈을 무림의 법도로 심판하겠다!”
무림의 법도.
사실 말만 그럴듯하지 그냥 대놓고 복수를 하겠다는 소리와 같았다.
일 대 일로 정당히 승부를 가려, 이긴 쪽이 모든 명분을 가지는 싸움.
보통이라면 하북팽가가 나서서 곽무조를 말렸겠지만, 상대가 무림의 법도까지 운운하면서 나섰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목숨은 걸고 말씀하시는 거겠죠?”
“뭐라?!”
“무림의 법도를 말씀하셨으니…… 당연히 목숨은 거셨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사아악-
일순간 주변을 장악하는 팽중호의 거대한 기운.
주변에 있던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고, 깜짝 놀랄 만한 거대한 기운이었다.
이건 후기지수의 몸에서 나올 수 있는 기운이 아니었다.
“건방진 놈!!”
곽무조는 이 팽중호의 기운을 떨치기 위해 소리를 질렀고, 팽중호는 그 모습에 작게 미소지었다.
팽중호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약한 모습으로 수그리면, 지네가 잘난 줄 알고 더 지랄을 한단 말이지.’
여기서 만약 자신이 사과를 하고 수그리고 들어간다면, 곽무조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별의별 요구와 발광을 해 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이럴 때는 오히려 맞서서 강하게 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목숨을 걸 각오는 하셨습니까?”
* * *
적사검객 곽무조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자, 적사문의 자랑인 곽종구가 처참하게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적사문에 남아 있다가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렇게 단숨에 도착한 하북팽가에서 본 아들은, 이가 몽땅 박살 나서 밥을 씹지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서 죽만 간신히 먹고 있는 처지가 되어 있었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이 아끼고 아끼던 적혈검까지 반 토막이 나 버린 상태.
“감히!!!”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곽무조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박차고 나와서 곧장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팽중호를 찾아 나섰다.
비무대에서 지금 비무를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곧장 그곳으로 향한 곽무조.
그리고는 하북팽가가 나서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무림의 법도를 들먹이며 팽중호의 앞에 선 것이었다.
곽무조는 아직 젊디젊은 후기지수일 뿐인 팽중호가 알아서 자신에게 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아주 건방지게 자신에게 무림의 법도와 목숨을 운운하는 것을 보고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팽중호가 생각보다 꽤 대단한 기세를 뿜기는 하였지만, 곽무조는 어차피 그것 또한 무언가 사술일 터라 생각했다.
고작 후기지수가 그런 실력을 가졌을 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목숨을 걸었다고 하였느냐? 물론이다. 그러는 네 놈도 목숨을 걸어야 할 터다.”
“물론입니다.”
곽무조는 이번에 아주 제대로 자신에 아들의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팽중호의 이를 몽땅 부수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도를 잡지 못하게 팔도 하나 가져가리라 마음먹었다.
하북팽가의 후환이 있을까 싶었지만, 상대는 어차피 하북팽가에서도 내놓은 4공자.
그리고 여기서 놈이 사술을 썼다는 것을 밝히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였다.
‘게다가 5공자도 있고 말이지.’
하북팽가의 5공자인 팽주철은 자신과 아주 밀접한 사이였다.
행여 무슨 일이 터져도, 그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잘 처리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럼. 각오하신 걸로 알고 시작하겠습니다.”
파지지지지직-
엄청난 뇌기가 팽중호의 도에서 튀어 오르기 시작했고, 곽무조는 무언가 일이 잘못 돌아간다는 느낌을 순간 받았다.
‘저건 사술이다. 저건 사술이다…….’
속으로 팽중호의 뇌기를 사술이라 되뇌었지만, 자신에게 느껴지는 저 뇌기는 결코 사술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온몸에서 울려 대는 무인으로서의 경고.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를 울려 대고 있었다.
‘하북팽가의 후기지수가 나보다 강할 리가 없다!’
곽무조는 몸의 경고를 무시하고는 그대로 팽중호에게로 쇄도했고, 팽중호의 앞까지 당도했을 때에 그는 보고 말았다.
잔인할 정도로 짙게 머금은 팽중호의 미소를 말이다.
“이제야 몸 좀 풀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