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밥도 제대로 못 씹어 먹게 만들어 주려고.
팽중호의 하북팽가를 접수하자는 발언에 그제야 장춘오의 몸이 일으켜 세워졌다.
“하암…… 개소리하실 거면 전 이만 다른 데로 가겠습니다.”
장춘오가 아는 팽중호는 가진 것이라고는 개뿔도 없는 자다.
그런데 하북팽가를 접수하자니?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개소리? 분명 많이 듣기는 했는데, 난 그 개소리들을 줄곧 잘 지켜 왔거든.”
“도수에게 들어서 좀 달라지셨다는 건 알겠는데, 어차피 지금 나서 봐야 하북팽가는 못 먹습니다……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인데, 그냥 가 주시면 안 됩니까?”
장춘오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누가 하북팽가의 주인이 될지가 대충 그려져 있었다.
지금 팽중호가 그 틈바구니에 낀다고 해 봐야 아무런 영향이 없을 터였다.
하북팽가의 주인을 둔 싸움은 비단 하북팽가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역시 머리가 좋네. 너는 꼭 데리고 가야겠다.”
팽중호는 점점 더 장춘오가 마음에 들었다.
약간 정상이 아닌 듯한 태도마저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후우…… 포기는 안 하실 거 같고…… 제가 거절해도 계속 귀찮게 하실 거죠?”
“그래.”
“그럼 깔끔하게 내기로 결정하는 건 어떠십니까?”
“내기라…… 좋지.”
“공자님께서 이번 하북지회에서 우승을 하신다면, 제가 공자님 밑으로 가겠습니다.”
“좋아. 아주 쉬운 일이지.”
“대신, 우승을 못 하신다면, 저를 영원히 내버려 둬 주십시오.”
“나중에 딴소리 말도록.”
팽중호는 그렇게 장춘오와 내기를 성사한 뒤에 미련 없이 호품각에서 나갔다.
그런 팽중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팽소섭과 졸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장춘오.
“춘오야. 하마터면 경을 칠지도 몰랐다. 그래도 내기라고 잘 구슬려서 다행이다.”
“……며칠 안 남은 것 같으니까, 싹 한번 봐 드릴게요…….”
“엉?”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하는 팽소섭을 뒤로하고 장춘오는 지금까지 호품관에서 일했던 중에 제일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그럼 지금부터 비무회를 시작하소이다!”
“우오오오!!!”
하북지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비무회가 시작된다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비무회이니 이 정도 함성은 당연했다.
“그럼, 처음으로 나설 무인은…… 비조문(飛鳥門)의 장홍수 대 소룡검문(小龍劍門)의 제소준! 비무대로 나오시오!”
하북에서 그래도 나름 이름 좀 날린다는 비조문과 소룡검문의 후기지수들의 비무로 시작을 알렸다.
서로 나름 치열하게 싸우던 두 사람의 대결은 소룡검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렇게 계속해서 치열하게 진행되는 비무회.
이긴 자들은 한없이 밝은 표정을 하였고, 진 자들은 와락 표정이 구겨지며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하였다.
이 비무회의 성적이 다음 하북지회까지 미칠 영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나설 무인은…… 하북팽가의 팽중호 대 적검문의 곽종구! 비무대로 나오시오!”
“오오. 괴사검!”
“드디어 하북칠성의 차례구나!”
하북칠성의 일인인 괴사검 곽종구의 이름이 불리자, 사람들이 저마다 기대를 하며 한마디씩을 내뱉었다.
그만큼 하북칠성에 대한 관심도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들은 지금 하북성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무인들이었으니 말이다.
휘이익- 타탓-
가볍게 비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곽종구.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즐기듯 곽종구는 한껏 멋있는 자세를 취하며, 반대편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팽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한다고 초장에 힘을 빼냐?”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오른 팽중호.
팽중호가 나타나자 사람들이 시선이 팽중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는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알기로 팽중호는 뚱뚱한 돼지와 같은 모습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헌데, 지금 팽중호의 모습은 돼지와는 아주 거리가 먼, 훤칠한 미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의아하다는 표정을 할 수밖에.
“네 놈의 팔다리를 분질러 주지. 크크크.”
팽중호를 향해 비릿한 웃음과 함께 선전포고를 하는 곽종구.
그는 며칠 전에 팽중호에게 당했던 수모를 잊지 않고 있었다.
“야. 내가 들으니까, 죽이는 거랑 팔다리를 잘라서 병신 만드는 거 아니면 괜찮다더라?”
“그래. 그래서 내가 네 놈의 팔다리를 분질러만 놓으려는 것이다. 아니었으면 네 놈의 팔을…….”
“그래서 내가 너는 앞으로 밥도 제대로 못 씹어 먹게 만들어 주려고.”
“하핫!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곽종구는 팽중호가 자신을 또다시 도발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가 치밀어 올라도 최대한 억누르며, 눈앞의 팽중호를 부숴 버리는 것에 집중했다.
이번 비무를 결코 쉽게 끝내 주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살려 달라고 빌게 만들어 주마.’
곽종구는 받은 수모는 열 배, 백배로 갚아 줘야만 속이 시원했으니 말이다.
“비무를 시작하시오!”
드디어 비무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곽종구는 검집에서 검을 뽑아 손에 쥐었다.
붉디붉은 검신의 검.
적검문의 신병이라고 할 수 있는 적혈검(赤血劍)이었다.
이번 하북지회를 위해 특별히 하사를 받은 것이었다.
“네 놈을……??”
적혈검을 들고 팽중호를 향해 말을 하던 곽종구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분명히 눈앞에 있던 팽중호의 신형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스슥-
“싸울 때 주둥이부터 놀리려면, 실력을 더 쌓아라. 알겠냐?”
“으헛?!”
갑자기 곽종구의 코앞에서 불쑥 나타나는 팽중호.
곽종구는 갑작스러운 팽중호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적혈검을 휘둘렀다.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방어 기제가 발동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가늠해서 덤비고 말이야.”
파지지지직- 카앙-!!
챙강-!
혼원벽력신공의 내공을 머금은 도가 그대로 적혈검을 강타했다.
그리고는 곽종구의 두 눈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안 돼에에에!”
적검문의 신병인 적혈검이 그대로 두 동강이 나 버렸다.
너무나도 깔끔하게 동강이 나 버린 적혈검.
곽종구의 두 눈이 흐릿해졌는데, 팽중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싸우는 중에 검 좀 부러졌다고, 징징대지 마라.”
퍼어억-! 콰득-
후두두둑-
팽중호의 발이 그대로 곽종구의 입을 강타했고,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새하얀 이들이 곽종구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허헉- 흐어엉-”
입안에 있는 이가 몽땅 뽑혀서 그럴까?
곽종구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을 쏟으며 뭐라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더 싸우자고? 그럼 더 해 주고.”
“안이-! 안이-! 사려저…….”
팽중호가 도를 들고 천천히 다가오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외치는 곽종구.
팽중호는 그 모습에 씩 미소 짓고는 도를 집어넣었다.
비무가 끝난 것이다.
“패, 팽중호 승!”
너무나도 압도적이고, 너무나도 의외의 결과에 다들 눈만 끔뻑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북칠성의 일인인 괴사검 곽종구가 무공 한 번 펼치지도 못하고 처참하게 졌으니 말이다.
적혈검은 두 동강이 나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고, 곽종구는 이가 모조리 뽑혀 나간 채로 들것에 실려서 나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상황을 예상이나 했겠는가?
하북팽가의 개망나니 4공자에게 하북칠성이 질 것이라고 말이다.
“이, 이럴 수가!”
“그 돈치공자가…….”
“팽가가 비장의 수를 숨겨 두었구만 그래.”
조금 여운이 가시고 나서야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무언가 후다닥 끝나 버려 제대로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팽중호가 소문과는 다르게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비무였다.
물론 아직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자들도 있었다.
이건 그저 곽종구가 너무나 방심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가서 술이나 한잔 때려야겠다.”
물론 이런 엄청난 일을 벌여 놓은 당사자인 팽중호는, 미련 없이 비무대를 내려와서는 본인의 처소로 휘적휘적 사라져 버렸다.
* * *
팽중호의 활약에 가장 놀란 사람 중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5공자인 소호도 팽주철이었다.
‘저놈이 혼원벽력신공을?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아주 잠깐이지만 팽중호가 보여 주었던 뇌기.
그것은 분명 혼원벽력신공을 익혔을 때 나타난다는 뇌기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미 절전되고 사라진 혼원벽력신공.
그것을 팽중호가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다.
‘장로님도 무언가 사술일 것이라 하셨으니…… 아마, 그 말씀이 맞을 것이다.’
5장로가 가주전에서 팽중호가 뇌기를 쏟아 내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그러면서 아무래도 혼원벽력신공처럼 보이게끔 무언가 사술을 부린 것 같다고도 하였다.
확실히 혼원벽력신공은 완전히 소실 된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소식조차 들어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혼원벽력도의 일부분을 구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거늘…….’
혼원벽력신공 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많이 남아 있는 혼원벽력도의 소실된 일부분을 구하는 것에도 엄청난 노력과 자금이 들어갔다.
이와 함께 혼원벽력신공에 대해서도 거금을 들여서 정보를 구했지만, 아주 조금의 단서조차 얻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아무것도 없는 팽중호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 하북지회에서 뭔가를 하려는 것 같은데…… 내가 철저히 그 계획을 망가뜨려 주지.’
이번 하북지회의 주인공은 무조건 자신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계획들이 차근히 이루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하북팽가의 팽주철 대 대검문의 양후선! 비무대로 나오시오!”
팽주철은 자신을 호명하는 목소리에 도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팽중호가 어떤 술수를 부려서 혼원벽력신공을 익힌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괴사검 곽종구를 이겼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자신이 이번에 그 이상이라는 것을 보여 주면 되니 말이다.
괴사검은 하북칠성 중에서도 가장 떨어지는 자.
그 정도는 자신도 충분히 가볍게 이길 수 있었다.
‘괴사검이 당한 건 머저리처럼 방심한 탓일 터. 내 우승은 이미 확정이다.’
그렇게 팽주철은 당당한 걸음으로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