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북팽가의 개망나니-9화 (9/200)

9화 이제 뭐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지랄을 하는구나.

하북지회.

하북성에 있는 수많은 정도 문파와 세가들이 참여하는 비무 대회.

명목은 서로 간의 친목과 결속을 다지는 대회라고 떠들어 대지만, 실상은 서로 간의 힘겨루기를 하는 각축장이었다.

하북지회에서 힘을 보여 준 문파는 그만큼 이 하북성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번 하북지회는 오랜만에 과거 하북성 제일이라 불렸던 하북팽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람들의 관심도가 꽤 높았다.

과연 하북팽가가 하북성에서 다시금 날아오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때문에 지금 하북팽가와 주변은 이 하북지회를 지켜보기 위해 온 사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하북지회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볼거리가 없을 만큼 아주 재밌는 축제였으니 말이다.

“하아암…… 그래서 비무가 언제부터라고?”

“삼 일 후부터 시작될 겁니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비무 시작일을 묻는 팽중호.

오늘부터 하북지회가 시작되어 억지로 자리에 참석해 있는 팽중호였는데, 실상 그에게 이런 자리는 썩 달갑지 않았다.

온갖 허례와 허식이 가득한 자리였으니 말이다.

차라리 이 시간에 술을 한 잔 더 하거나, 잠을 조금 더 자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팽중호였다.

“너 여기에 온 쟤네들 다 안다고 했나?”

팽중호는 이 하북지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다른 문파와 세가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명종에게 물었다.

자신이 알던 때와 많이 바뀌었으니, 누구 하나 아는 사람이나, 아는 곳이 없었으니 말이다.

“예에? 몇몇은 알아도, 다는 모릅니다.”

“그래? 역시 똘똘한 놈이 하나 필요하긴 하겠네.”

명종은 이 하북팽가 밖으로 나가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 하북지회에 참여한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전부 알지는 못했다.

도수 또한 마구간에서만 일을 했기에 아는 정보가 많지는 않은 상황.

팽중호는 옆에 똘똘한 놈을 하나 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상황에서 자신 대신에 머리를 굴려 줄 놈을 말이다.

“그럼. 지금부터 하북지회의 시작을 알리겠습니다!”

“와아아!!”

“와아아아!”

하북지회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 흥분, 즐거움 등 다양한 감정이 담겨 있었는데, 팽중호도 그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세상에 남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이 많지는 않으니 말이다.

“공자님 일단 인사하러 가시죠.”

“엉? 왜? 이제 끝났으니까, 집으로 가자.”

“예에?! 그래도 인사는 하시는 것이…….”

“인사는 개뿔. 뭐 좋은 마음으로 들어왔다고, 인사를 하냐?”

다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향해 날 선 검을 세우고 있을 터였다.

같은 정파라고 하지만 어차피 이 하북성을 나눠 먹는 경쟁자들일 뿐이다.

이들이 힘을 합심할 때는 자신들의 이권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이 나타날 때나 잠깐 힘을 합심할 뿐이다.

“가자.”

“예!”

“예.”

팽중호는 도수와 명종을 데리고, 그대로 몸을 돌려서 자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팽중호를 불러 세웠다.

“이봐. 네가 팽중호라던데 맞나?”

팽중호는 고개만 살짝 돌려서 자신을 부른 놈을 바라보았다.

금박으로 장식되어 화려하기 그지없는 붉은색 옷을 입은 아주 얍삽하게 생긴 얼굴을 가진 사내.

팽중호는 눈으로 명종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옷을 보니, 적검문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적검문(赤劍門).

현재 하북성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신흥 문파로, 절정고수인 적사검객(赤蛇劍客) 곽무조가 문주로 있는 곳이었다.

붉은색의 검과 금박 장식된 무복이 적검문의 특징으로, 적검문의 무공인 추사검법(追蛇劍法)은 무림에서도 꽤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공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아, 내가 누군지 말을 안 했지. 나는 적검문의 곽종구라고 한다.”

“괴사검!”

곽종구라는 이름을 듣고 명종이 놀라며 소리를 쳤다.

괴사검(怪蛇劍) 곽종구.

현재 하북성에서 활동하는 일곱 명의 유명한 후기지수들을 하북칠성(河北七星)이라 불렀는데, 괴사검 곽종구는 그중 한 명이었다.

당연히 하북성에서는 유명했기에 명종도 이름을 숱하게 들어 본 자였다.

“그래 내가 괴사검이다. 크크크.”

“그런데 난 왜 불렀냐?”

상대의 입에서 반말이 나왔으니, 당연히 팽중호도 반말로 물었다.

팽중호에게는 지금 상대가 하북칠성이건 뭐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귀찮게 길 가던 사람을 붙잡았냐가 중요할 뿐.

시답지 않은 일이면 다리몽둥이를 부셔 놓을까 생각 중이었다.

“내가 너의 첫 번째 비무 상대라고 들어서 말이야.”

아직 비무의 대진이 공표된 것은 아니지만, 알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곽종구가 접수한 정보에 의하면, 첫 번째 상대는 하북팽가의 4공자이자 돈치공자라고 불리는 팽중호였다.

솔직히 곽종구는 이 정보를 듣자마자 공짜 승이라 생각했다.

팽중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비무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한껏 약을 올려놓기 위해 팽중호를 찾은 것이었다.

다만, 팽중호가 소문과는 다르게 뚱뚱하지 않아서 찾는 데 조금 애를 먹었을 뿐.

“짓밟을 상대의 얼굴을 미리 봐 두는 게 내 취미거든, 그래서 네 얼굴을 좀 보러 온 거다. 크크크.”

누가 들어도 확실히 도발하는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당장 싸움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이다.

곽종구가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여기서 싸움을 일으켜, 미리 상대에게 힘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비무대 위에서 공포감에 떠는 상대의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 말이다.

“하. 이제 뭐 별 거지 같은 것들이 다 지랄을 하는구나.”

팽중호는 곽종구를 보며 어이없다는 말투를 하였다.

예전에는 하북팽가에 이런 망발을 할 수 있는 곳은 무림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북팽가의 직계에 이렇게 도발을 했다가는 그대로 멸문지화를 당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곽종구가 저렇게 혀를 놀리는 것을 보니, 하북팽가의 위상이 얼마나 땅바닥에 처박혔는지 알 수 있었다.

“뭐, 뭐?!”

“됐다. 넌 그냥 비무할 때 조져 줄 테니까. 주둥이 그만 놀리고 가라.”

“이, 이이……!!”

곽종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금 팽중호에게 도발을 하다가 역으로 당해 버린 것이다.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듯한 곽종구.

하지만 이내 금방 화를 가라앉히고는 몸을 휑하니 돌려 사라졌다.

여기서 화를 내면 자신이 말린다는 것을 잘 안 것이다.

“근성 없기는…… 쯧. 가자.”

팽중호는 사라지는 곽종구의 뒤를 보며 혀를 차고 다시금 집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소요로 주변의 시선이 팽중호 쪽으로 많이 모여 있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장내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거, 이번 하북지회는 아주 재미있을 것 같은데?”

구경꾼들 중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소리가 흘러나왔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동의하였다.

물론 개망나니라 불리는 팽중호가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조금 전의 기 싸움만으로도 이번 하북지회가 평범치는 않을 것이란 냄새를 진하게 풍겼다.

* * *

처소로 돌아온 팽중호는 도를 들고 곧바로 개인 연공실로 향했다.

이번 하북지회에서 적당히 할 생각이었는데, 조금 전 곽종구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냥 이번에 한 번 보여 줘 놔야겠네.”

후에 하북팽가가 다시금 하북성의 패자가 되기 전에 이번 하북지회에서 미리 맛보기를 한 번 보여 줄 생각이었다.

감히 하북팽가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말이다.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줘야겠지? 그게 하북팽가니까.”

혼원벽력도와 혼원벽력신공.

이 두 가지를 가진 하북팽가는 그야말로 패도(覇道) 그 자체였다.

팽중호는 이번 하북지회에서 이 패도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 주리라 마음먹었다.

파지지지지직-

예전에 미약하게 튀기던 뇌기와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뇌기가 팽중호의 도에 머물렀다.

뇌기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거대함.

콰쾅-!! 쾅-!!

팽중호의 도가 움직일 때마다 연공실의 벽과 바닥이 터져 나가고, 땅이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려 왔다.

이대로 조금 더했다가는 개인 연공실이 무너져 버릴까 싶을 정도.

그렇게 실컷 혼원벽력도를 펼치던 팽중호는 땀을 한껏 흘려 낸 후에 그대로 연공실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방에 성한 곳이 없는 연공실에서 갑자기 운기조식을 취하는 팽중호.

‘오늘 그냥 임독양맥까지 한 방에 뚫어 버린다.’

임독양맥의 타통.

일명 생사경이라고 불리는 임독양맥은, 함부로 뚫으려고 했다가 그대로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보통 초절정의 경지에서 화경의 경지로 넘어가는 무인들만이 이 임독양맥을 안정적으로 타통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팽중호는 아직 화경의 경지에 다다를 만큼의 내공을 쌓지는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팽중호는 이미 임독양맥의 타통을 전생에 이루어 보았기 때문에 길과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상 실제로 해 보지는 않은 도박수를 던지는 것이지만, 팽중호는 실패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 그럼 뚫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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