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저보고 그냥 팽가에서 꺼지라는 소립니까?
두 달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하북지회까지 남은 날은 이제 겨우 보름.
이번 하북지회가 개최되는 곳은 하북팽가였기에, 하북팽가는 지금 손님맞이 준비에 아주 바쁜 상황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북팽가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 홀로 느긋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팽중호가 머무는 곳이었다.
“거, 사람들 좀 온다고 호들갑들은.”
팽중호는 바쁜 사람들은 뒤로하고, 느긋하게 앉아서 술을 한 병 마시고 있었다.
석 달간의 준비가 끝났으니 누리는 여유였다.
“공자님 이 옷은 어떠십니까?”
그때 명종이 옷을 하나 들고 왔는데, 아주 화려하기 그지없는 옷들이었다.
“그냥 하북팽가 무복으로 가져와.”
“예? 하지만 하북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시는 건데, 어떻게…….”
명종은 팽중호가 처음으로 하북지회에 나서서 얼굴을 알리는 것이니 최대한 화려하고 멋진 옷을 입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모습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아마 이번에 같이 하북지회에 처음 참가하는 5공자도 분명 화려한 옷을 입고 나타날 터다.
그런데 그냥 하북팽가의 무복이라니?
그건 간소하다 못해, 너무나도 무성의하고 평범하지 않은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예에…… 무복으로 가져오겠습니다.”
하지만 팽중호의 말에 명종은 어쩔 수 없이 무복으로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주인이 무복을 입겠다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명종이 옷을 다시금 바꾸러 사라졌고, 이번에는 도수가 팽중호를 찾아왔다.
“주군! 제가 드디어 노호진산도의 끝부분까지 모두 익혔습니다!”
기쁨으로 가득한 도수의 목소리.
지금 도수는 팽중호가 전해 준 노호진산도의 마지막 초식까지 익힌 것이다.
마지막 초식까지 익히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석 달.
중간중간 팽중호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도수는 아주 훌륭한 무재였다.
과거의 하북팽가에도 도수처럼 빠른 성장세를 보여 주는 이는 많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 한번 볼까?”
“예!”
연무장에서 마주 선 팽중호와 도수.
팽중호는 제대로 실력을 볼 생각이기에, 도까지 꺼내 들었다.
“전력으로 덤벼.”
“예! 갑니다!”
망설임 없이 먼저 움직이는 도수.
타탓- 탓-
움직임 자체가 빠르고 호쾌한 것이, 제대로 노호진산도를 수련한 듯싶었다.
사아아악-
거기에 더해서 아주 희미하지만, 묵색(墨色)의 도기까지 검에 둘려 있었다.
묵색의 도기가 나온다는 것은 철혈갑공이 수준에 올라, 일류의 언저리에 다다랐다는 것.
삼류 무사였던 도수가 단 석 달 만에 일류 근처에 왔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팽중호의 도움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하압!”
휘이익- 카앙-!
움직임만큼 거침없고 호쾌하게 팽중호를 공격해 들어오는 도수.
팽중호는 도수의 공격을 막을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한 힘에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기골도 좋아서 그런지, 힘이 넘치는군.’
타고난 기골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도수는 하북팽가의 핏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기골이 튼튼해서 그런지 확실히 도에 힘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노호도산(怒虎跳山)!”
성난 호랑이가 산을 뛰듯 거침없이 베어 오는 도수의 도.
그 안에 담긴 힘은 여간내기들이 받아 내었다가는 그대로 뼈가 부러질 정도.
“좋은데?”
물론 그건 여간내기들의 이야기고, 팽중호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스으윽- 카가가강-
팽중호는 가볍게 도수의 공격을 도를 이용해서 틀어 내었다.
그대로 허공을 갈라 버리는 도수의 도.
“노호도산을 쓸 때는 말이지, 뒷일도 잘 생각하고 써야 해.”
퍽-
“컥.”
팽중호는 공격이 실패하면서 훤히 열려 버린 도수의 몸에 그대로 발차기를 먹였다.
노호도산의 초식은 위력이 강한 만큼 이렇게 공격에 실패했을 경우 몸이 크게 열려 버린다.
그래서 언제나 노호도산을 쓰기 전에는 혹여 실패했을 경우를 생각해 두어야만 했다.
팽중호는 가벼운(?) 발차기로 도수에게 그 가르침을 준 것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강해져야겠다는 생각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까지만 해.”
“예!”
어느새 회복하고 일어나서 힘차게 대답하는 도수.
그런 도수를 보며 팽중호는 씨익 웃었다.
확실히 지켜보는 맛이 있는 놈이었다.
“조금 더 해 볼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계속되는 팽중호와 도수의 수련.
팽중호는 도수가 실수할 때마다 한 대씩 사랑 어린(?) 발차기를 먹여 주었는데, 도수는 그래도 다시금 벌떡 일어나서 팽중호에게 달라붙었다.
팽중호가 아주 강하게 때리는 것은 아니었어도, 그래도 맞았을 때 꽤 아플 터인데도 그걸 참아 내는 것을 보면, 정신력도 아주 뛰어난 듯싶었다.
뛰어난 근골과 정신력.
이 두 가지만 있어도 고수는 이미 따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자님.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왜?”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 귀찮네.”
그때 무복을 손에 들고 나타난 명종이 팽중호에게 가주님이 찾는다고 알렸다.
팽중호는 도수와 수련하던 지금 그대로 가주전으로 향했다.
명종이 씻고 가라고 하였지만, 팽중호는 듣지도 않고 곧바로 걸어갔다.
“가주님. 4공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라.”
그렇게 가주전 안으로 들어선 팽중호.
그런데 안에는 가주인 팽자성말고도 다섯 사람이 더 있었는데, 바로 하북팽가의 장로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장로님들.”
팽중호는 그들이 장로들이라는 것은 알았기에 인사는 하였다.
물론 한 세가의 장로에게 하는 인사치고는 아주 예의 없는 인사였지만 말이다.
“살은 빠진 것 같지만, 개망나니인 것은 그대로군.”
“쯧.”
팽중호의 인사에 대번에 불쾌감을 표하는 장로들.
가주인 팽자성이 앞에 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들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너에게 우리가 제안을 하나 하려고 불렀다.”
팽중호가 팽자성에게 질문을 하였는데, 장로들 중 5장로가 그 질문을 가로채어 대답했다.
본래라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장로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한들, 한 세가의 가주보다 높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는 것은, 지금 하북팽가가 얼마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 팽자성이 얼마나 힘이 없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저는 가주님에게 여쭤보았습니다만?”
“하! 건방진 놈! 그동안 개망나니 짓을 하여도 참고 넘어가 주었건만!”
“그때 참지 말지 그러셨습니까?”
“이놈이!”
쐐액-
갑자기 5장로의 손이 팽중호에게로 뻗어 나갔다.
오만방자한 팽중호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금방 수정해야 했다.
“어디 벌레라도 날아다녔습니까?”
가볍게 목을 트는 것으로 5장로의 손을 피해 버린 팽중호.
그러고는 살짝 비웃는 듯한 말투로 5장로를 향해 말을 하였다.
자신의 일수를 팽중호가 피할 것이라고 예상치 못한 5장로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그만들 하십시오. 중호. 너도 그만하거라.”
그때 팽자성이 중재에 나섰다.
아무리 허수아비더라도 가주는 가주.
일단은 가주전 내의 분위기가 다시금 가라앉았다.
“오늘 널 부른 이유는 여기 5장로님이 설명해 주실 거다.”
“네.”
아직 화가 가라앉지 않은 5장로였지만, 일단은 최대한 화를 누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 하북지회에 나서서 꼴사납게 팽가의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조용히 세가를 나가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불렀다.”
“그럼 저보고 그냥 팽가에서 꺼지라는 소립니까?”
“살 만한 집과 돈을 넉넉히 챙겨 줄 테니, 하북팽가에서 네 발로 나가라.”
하북지회는 단순히 무공을 겨루는 것이 끝이 아니라, 하북에서의 힘 싸움이기도 하였다.
여기서 힘을 보인 문파가 하북에서 조금 더 유세를 떨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장로들은 팽중호가 이 하북지회에 나서서 꼴사납게 지느니, 그냥 적당히 돈을 주고 하북팽가에서 쫓아내는 것이 득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다.
세가 회의에서 1승을 하면 쫓아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였지만, 어차피 팽중호에게 그건 요원한 이야기일 테니 팽중호가 분명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이 서로에게 최선에 방법이었으니 말이다.
“이 중에 이 이야기에 동의하신 분이 몇 명이십니까?”
“나와 1장로님, 그리고 3장로님이다.”
“그럼 여기에 쓰레기가 세 개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까?”
“뭐, 뭐라?!”
팽중호의 말에 대번에 세 장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들을 향해 쓰레기라고 한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감히! ……헛!”
파지지지지직- 쾅-!
5장로가 다시금 움직이려고 할 때, 팽중호의 도가 먼저 움직였다.
엄청난 뇌기를 내뿜으며, 그대로 5장로의 바로 앞을 때려 버리는 팽중호의 도.
그 모습에 가주전 내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일단 이 하북지횐지 뭔지가 끝나면 다들 면담할 테니까, 그때까지 다들 잘 생각하고 있으십쇼. 방금 들은 이야기는 없던 이야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팽중호는 팽자성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가주전을 빠져나갔다.
가주전에 남게 된 팽자성과 다섯 장로들.
그들은 지금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앉아서, 방금 팽중호가 내려친 곳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방금 팽중호가 보여 준 그 뇌기는 혼원벽력신공이 분명했다.
지금의 하북팽가에는 전해지고 있지 않은, 하북팽가의 비전 신공.
“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지금 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 개망나니 4공자가 어떻게 혼원벽력신공을 알고 있으며, 또 언제 저렇게까지 수양을 쌓았단 말인가?
팽중호를 쫓아내기 위해 모인 그들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아주 많은 생각을 수정해야 할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