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럼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네.
하북팽가가 아무리 예전만 못하다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서만큼은 아직 호랑이였다.
그런 하북팽가의 권역 내에서 감히 다른 이들이 하북팽가의 공자님에게 술수를 쓸 수 있을 리 없다.
거기에다 그들이 설사 손을 쓴다고 하여도, 개망나니 4공자에게 손을 쓸 이유가 조금도 없었다.
회석 독은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값이 싼 독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팽중호에게 그런 독을 들여서 외부 세력이 얻을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하북팽가 내부에 있을 가능성이 아주 컸는데, 팽중호가 본 꿈에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할 놈들은 3공자와 5공자 밖에 없었다.
1공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고, 2공자는 팽중호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자들이니 말이다.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목에 도가 얹혀 있어도 침착하게 대답하는 천동성.
역시 여간내기는 아니었다.
스윽- 주르륵-
하지만 팽중호도 여간내기는 결코 아니었다.
그대로 조금씩 천동성의 목을 파고드는 팽중호의 도.
천동성의 목에서 핏줄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래? 너는 모르는 일이라 이거지? 그럼 일단 널 죽여 놓으면 뭐라도 튀어나오겠지.”
사아악-
팽중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농도 짙은 살기.
천동성은 이 살기에 숨이 막히고, 몸이 떨려 오기 시작했다.
‘정말 죽는다!’
천동성의 머리를 관통한 생각이었다.
팽중호는 지금 정말로 자신을 죽일 생각인 것이었다.
“저, 저를 죽이신다면, 아무리 공자님이라도 큰일을 당하실 겁니다.”
“엉? 상관없어. 어차피 나 개망나니잖아? 이미 인생 나락인데, 뭐 더 안 좋아진다고 달라지겠어?”
입가에 비릿한 미소까지 지으며 말을 하는 팽중호.
천동성은 그 모습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최대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했다.
“제가 죽으면 공자님은 절대로 배후를 찾지 못하실 겁니다.”
“그래. 이제야 말을 하네. 배후가 있기는 있었구나?”
“헛…….”
지금까지 발뺌하던 천동성이 스스로 자백해 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점점 더 평정심을 잃어 가는 천동성.
“그래. 너를 죽이면, 배후를 찾는데 꽤 귀찮아지겠지.”
“마, 맞습니다.”
“그럼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네.”
“예?”
팽중호가 가볍게 천동성의 혈 자리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 툭- 툭-
“컥……! 읍! 읍!”
너무나 가볍게 건드리는 것인데, 천동성은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입 밖으로 고통에 찬 소리를 내뱉고 싶어도, 이미 아혈마저 제압된 상태이기에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는데, 상상도 못 할 고통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있는 상황.
천동성은 지금 완전히 미쳐서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자. 말할 생각이 조금 들어?”
“읍! 읍! 으읍!”
눈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천동성.
팽중호는 그 모습에 만족하며, 다시금 혈 자리들을 눌러서 원래대로 돌려주었다.
“커허억…… 커허헉…… 컥.”
입에서 침까지 흘리며 고통을 진정시키는 천동성.
그는 지금 잠시 지옥에 다녀온 기분이었다.
“자, 빨리 대답해. 대가리 굴릴 생각은 하지 말고.”
천동성은 고통에서 해방되고 잠깐 호위들을 부를까 고민했지만, 이내 그 생각은 그만두었다.
자신을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오게 해 준 육감이 지금 눈앞의 팽중호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5공자님입니다…… 5공자님이 이 술을 공자님께 드리라고 전해 주었습니다.”
“좋아. 잘 대답했어.”
팽중호는 천동성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하지도 않았다.
3공자가 벌인 일인데 거짓을 고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팽중호는 천동성이 말을 할 때 눈이 떨리지 않은 것을 보고 진실임을 판단했다.
그리고 어차피 팽중호도 5공자가 범인일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전에 보았던 3공자는 이런 머리를 굴릴 놈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5공자인가 그놈이 위험해 보였지.’
팽중호가 꿈에 보았던 기억에서 확실히 5공자가 위험한 놈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1공자와 2공자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으니 뭐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본 놈들 중에서는 제일 위험했다.
“넌 이제 나가고, 술은 새로 가져와.”
“예…… 그럼…….”
팽중호의 말에 간신히 몸을 일으켜 사라지는 천동성.
그리고 금방 점소이가 나타나 새로운 술을 놓고는 사라졌다.
“고, 공자님. 세가에 알릴까요?”
명종은 지금 이 사실을 팽가에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같은 공자님들끼리 독을 먹이다니?
이건 분명 팽가에서 중대히 다룰 문제였다.
“아니, 어차피 제대로 된 증거가 없으니까 소용없을 거다.”
지금이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자백을 한 천동성이지만, 아마 팽가에서 조사를 나오면 다른 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5공자도 지금부터 모든 흔적들을 지워 나갈 테고 말이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것은 여기 있는 이들의 증언뿐인데, 아마 팽가에서 아무도 믿어 주지 않을 터였다.
개망나니 4공자의 음해라고만 생각할 테니 말이다.
“내가 알아서 천천히 처리할 거니까, 너희는 이만 잊고 오늘은 맛있게 먹고 마시다가 가면 돼.”
“예!”
“알겠습니다.”
* * *
하북팽가 5공자 소호도(笑虎刀) 팽주철.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별호가 바로 소호도였다.
그는 하북에서 풍류와 멋을 아는 협객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때문에 하북팽가 내에서도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꽤 있었고, 1공자, 2공자와 함께 가장 유력한 가주 후보이기도 하였다.
“비호 루주가 팽중호에게 모두 불었다고?”
“예. 그가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하였다 합니다.”
“하, 완전히 머저리 등신으로 만들어 놓은 줄 알았는데…….”
팽주철은 부하의 보고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분명 회석 독을 먹여서 완전히 쓸모없는 머저리 등신으로 바꾸어 놓은 팽중호였다.
그런데 최근 팽중호가 3공자를 일방적으로 팼다는 소리가 들리지를 않나, 살이 빠지고 멀쩡해졌다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말도 안 되는데, 거기에 더해서 이번에는 비호주루에 찾아가 비호 루주를 협박까지 해서 자신이 회석 독을 먹였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었다고 한다.
회석 독에 완전히 중독되어서 단전은 물론 기혈까지 망가졌을 것인데,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럼 누군가가 팽중호를 돕고 있는 건가?”
팽주철의 의심은 분명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분명 지금까지의 팽중호를 보면, 팽중호는 절대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자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뒤에서 그를 조종하거나 돕는 이가 있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해서 그들이 얻는 게 없을 텐데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하의 말도 맞는 말이었다.
지금 팽중호를 다시금 끌어 올려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전혀 없다.
팽중호가 가진 건 정말 쥐뿔도 없으니 말이다.
그가 지금 부활해서 누군가를 돕는다고 해도, 그것은 정말 아주 미미한 도움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역효과까지 불러올 수 있는 도움이다.
지금까지의 팽중호의 행적을 보면 말이다.
“뭐. 회석 독을 날린 건 아쉽지만, 어차피 팽중호가 아무리 숨겨 둔 수가 있다고 해도 하북지회까지 시간은 이제 두 달 남짓 남았으니, 쫓겨나는 것은 기정사실이겠지.”
팽주철이 시간을 들여서 팽중호에게 회석 독을 먹인 것은 어차피 하북지회 때를 위해서였다.
그때 그가 무공의 무자도 익히지 못한 완전히 무능한 머저리라는 것을 인증하고 그를 세가에서 쫓아낸 후에 자신이 4공자의 자리에 오를 생각이었다.
물론 미리 병신이 되어서 하북지회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어차피 지금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하북지회까지는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절세 고수가 그의 몸에 빙의한 것이 아닌 한, 절대로 두 달 안에 하북지회에서 1승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하나씩 올라가다 보면, 내가 가주가 되어 있겠지.’
팽주철은 뭐든지 밑에서부터 차근히 밟아 올라가야, 후에 뒤탈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아무리 개망나니라 불리는 팽중호라도, 확실하게 밟아 놓고 올라가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 놓는 것이었다.
이렇게 팽중호가 쫓겨나면 그다음은 3공자, 2공자, 1공자…… 이렇게 차례대로 무너뜨려 밟을 생각이었다.
“너는 혹시 모르니까, 증거들을 모조리 없애도록 해.”
“예. 공자님.”
팽주철은 혹시나 모를 상황을 생각해 비호 루주와 관련된 모든 증거들을 없애도록 지시했다.
혹시나 이번 일이 세가에 들통이라도 나면, 꽤 곤란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부하가 떠나가고, 홀로 남은 팽주철은 자신의 도를 들고는 개인 연공실로 향했다.
이번 하북지회에서 자신의 힘을 만천하에 보여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를 위한 무공 수련에 아주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두 달 안에 절정의 경지를 넘어 내 실력을 보여 주겠어.’
절정의 경지.
현재 하북에 있는 수많은 후기지수들 중에서 이 경지를 이룬 자가 많지는 않았다.
하북팽가에서도 1공자만이 절정의 경지를 넘었을 뿐, 2공자조차 아직 절정에는 발을 들여 넣고 있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만약 자신이 이 절정의 경지에 발을 들여 넣는다면, 많은 것을 손에 쥘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3공자쯤은 금방 짓밟을 수 있을 터였고, 2공자와의 거리도 많이 좁힐 수 있을 터.
‘이것만 있다면 곧 1공자도 뛰어넘겠지.’
팽주철이 개인 연공실에 와서 집어 든 하나의 서책.
그것은 바로 혼원벽력도의 소실된 부분 중 일부가 쓰인 서책이었다.
아주 어렵게 구한 것으로, 아직 세가에는 알리지도 않은 물건이었다.
이 혼원벽력도만 있으면, 세가에서 가장 공고한 1공자를 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내가 이 하북팽가의 가주가 되고 말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