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루주를 오라고 해.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양팔과 양다리에 채워지는 족쇄.
팽중호는 몸을 짓누르는 묵직한 무게에 만족했다.
거기에 더해서 옷으로 가려지니 옷 안에 채우고 생활하는 것도 큰 무리가 없을 듯싶었다.
“이 정도는 돼야 수련하는 느낌이 나지.”
보통 사람이라면 팔을 움직이지도,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무게.
아마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힘들 터였다.
스윽-
“다시 움직여 볼까?”
팽중호는 족쇄와 함께 다시금 혼원벽력도를 펼쳤다.
확실히 무게 탓에 움직임이 매끄럽지 않았고, 체력은 물론 내공도 금방 바닥을 드러내었다.
이것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듯싶었다.
“계속해 보자.”
그렇게 팽중호의 수련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었다.
하루…… 이틀…… 일주…… 한 달…….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팽중호의 모습은 몰라보게 변했다.
비대했던 몸뚱이는 사라지고, 그 안에 탄탄한 몸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제는 돈치공자라고는 부를 수 없는 모습.
아니, 누가 보아도 미공자라고 불러야 할 모습이었다.
하북팽가의 직계다운 탄탄한 체격은 물론이고, 살이 빠져 턱선이 드러난 얼굴은 그야말로 홍안의 미청년이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볼까.”
팽중호는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기 위해 연공실 밖으로 향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무공 수련을 하는 도수의 모습이 딱 보였다.
휙- 휘익- 휙-
‘호오? 이것 봐라?’
팽중호는 다가오는 도수를 보고는 조금 놀랐다.
도수가 자신에게 무공을 받고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노호진산도를 그럴듯하게 펼치고 있었다.
익히기 어려운 무공은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아주 쉬운 무공도 아닌데 말이다.
“주군! 나오셨습니까!”
타탓-
팽중호를 발견한 도수는 도를 멈추고 곧바로 달려왔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도수.
도법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모든 실력이 향상된 것이다.
“그래. 이제 조금 그럴듯해진 것 같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뭐, 그건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하지.”
“공자님 나오셨……!!”
팽중호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리나케 달려온 명종은 인사를 하다가 그대로 멈칫했다.
오랜만에 본 팽중호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으니 말이다.
예전의 그 뚱뚱한 팽중호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마침 잘 왔다. 오늘은 밖으로 나가서 한 잔씩하고 오자.”
“아아. 예. 바로 모시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땀을 흘린 채로 바로 갈 수는 없으니, 팽중호와 도수는 각자 빠르게 목욕을 마치고 다시금 나타났다.
멀끔하게 차려입고 하북팽가 밖으로 나서는 셋.
팽중호는 새롭게 태어나고는 처음 하북팽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죽고 시간이 좀 흘러서 그런지, 많이도 바뀌었군.’
팽중호가 기억하던 주변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객잔도, 주루도, 상점도 모두 달라져 있었다.
마치 새로운 곳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
아무리 꿈에서 팽중호의 예전 기억을 보았다지만, 그것만으로는 알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었고, 모두 다 기억하지도 못하였으니 말이다.
“항상 가시던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팽중호는 일단 명종의 안내에 맡기기로 했다.
아직 이 주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명종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
그곳은 이 주변에서 가장 큰 건물 앞이었다.
“비호주루라…….”
비호주루(飛虎酒樓).
하북팽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주루들 중 단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
술맛은 물론이고, 음식의 맛까지 하북에서도 손꼽히는 주루였다.
때문에 그 가격이 상당했고, 보통 사람들은 감히 들어갈 생각도 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예전 팽중호는 이곳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팽가의 돈을 축내는 일등 공신이었다.
분명 이곳은 꿈에서 꽤 자주 본 곳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중호 공자님.”
팽중호가 주루 안으로 들어가자 곧바로 주루의 점소이가 알아보고 인사를 해 왔다.
“항상 가시던 곳으로 부탁하네.”
“예. 알겠습니다.”
명종이 항상 가던 곳으로라고 부탁하자, 점소이가 능숙하게 바로 걸음을 옮겼다.
하도 많이 다녀서 전용석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점소이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비호주루에서도 가장 전망이 좋은 자리.
언제 준비를 하였는지, 벌써 음식들이 내어져 오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 술도 내왔습니다.”
그리고 팽중호가 자리에 앉자마자 내어져 나오는 술 한 병.
아주 고급스러운 병에 담긴 술이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값이 꽤 나갈 듯이 보였다.
팽중호는 능숙하게 그 술병을 집어 들었다.
“좋아. 한 잔씩 하자고.”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겠습니까!”
도수는 지금 난생처음으로 이런 고급 주루에 왔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음식들에다가 생전 본 적 없는 고급술.
자신이 이런 것을 누려도 되나 싶었다.
“얼마든지 받아도 되지.”
“그럼 제가 먼저 드리겠습니다!”
“그래.”
쪼르르륵-
팽중호의 술잔에 따라지는 술.
그 향부터 벌써 보통 술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술을 입에 털어 넣은 팽중호의 손이 딱 멈추었다.
‘허? 이것 봐라?’
술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느껴지는 독 기운.
이 독 기운이 그대로 단전으로 향하더니 자리를 잡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회석 독이 여기서 중독된 거군 그래.’
팽중호의 단전을 굳게 만들었던 회석 독의 출처가 바로 이곳 비호주루의 술인 모양이었다.
팽중호는 천천히 잔을 내려놓고 술병을 들었다.
“이 술 다시 가져가고, 루주를 오라 그래.”
“예?”
팽중호의 말에 한쪽에서 시중을 들기 위해 기다리던 점소이가 반문을 하였다.
루주를 오라고 하라니?
“너는 가서 루주보고, 지금 좋은 말로 할 때 오라고 해.”
“예, 예…… 알겠습니다.”
왜 갑자기 술을 한 잔 마시고 루주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점소이는 일단 루주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는 개망나니로 소문난 팽중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신이 흉을 당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점소이가 사라지고 일순 정적이 찾아왔다.
“공자님 왜 갑자기……?”
“이 술에 독이 들었거든.”
“예에?!”
“예?!”
술에 독이 들었다는 팽중호의 말에 명종과 도수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비호객잔이 감히 하북팽가의 공자님인 팽중호에게 독을 탄단 말인가?
그랬다가는 주루의 문을 닫는 정도가 아니라, 목숨까지 뿌리 뽑힐 수 있는데 말이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한 명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날개 달린 호랑이가 자수로 새겨진 비단옷을 입은 중년인은 한눈에 보아도 이곳 비호주루에서 높은 직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끔 해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비호주루의 루주인 천동성이라 합니다.”
이 중년인이 바로 비호주루의 루주인 천동성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비호주루를 하북에서 손꼽히는 곳으로 키워 낸 인물.
확실히 하북팽가의 공자님의 앞에서도 기가 죽지 않는 모습을 보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루주는 처음 보는 것 같네.”
“하하. 예. 맞습니다. 제가 워낙 공사가 다망한지라, 공자님은 처음 뵙습니다.”
“그래…… 처음 보는데 미안한데 말이야. 이 술 누가 준 건지 알 수 있을까?”
팽중호의 질문에 천동성의 눈빛이 아주 찰나 동안 변했다가 다시금 돌아왔다.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팽중호는 정확히 보았다.
확실히 뭔가 구린 게 있었다.
“그 술은 저희 비호주루에서…….”
“여기에 독이 들었거든? 그럼 이 독을 너희가 넣은 거라는 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독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독이 들어 있다는 팽중호의 말에 바로 부정을 하는 천동성.
그의 목소리에는 확고한 자신감 같은 것이 들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싶었다.
“회석 독은 말이야…… 보통의 방법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지. 그런데 한 가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어.”
“……!”
팽중호가 회석 독이라 말하자 루주의 안색이 아주 살짝 변했다.
“바로 이렇게 내공을 주입하고 있으면, 하얗게 변해 버리거든.”
팽중호가 술잔에 술을 따르고 내공을 불어넣자, 술의 색이 금방 하얗게 변해 버렸다.
내공과 반응하는 회석 독의 특성을 이용한 회석 독 색출 방법이었다.
“아무래도 누군가 공자님을 해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책임을 지고 범인을…….”
“아니지. 범인이 여기 있는데, 찾을 필요가 있나?”
“하하. 저를 의심하시는 마음은 잘 알지만, 제가 감히 어떻게 하북팽가의 공자님에게 독을 드리는 짓을 하겠습니까?”
분명 천동성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천동성이 이런 일을 할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천동성의 단독 범행일 때의 이야기였다.
탓- 스윽-
“귀찮게 손쓰게 하지 말고, 어떤 새끼인지 말해. 다섯째야? 아니면 셋째야?”
팽중호는 순식간에 천동성의 앞으로 이동해 그의 목에 도를 올려놓고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