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문제가 아주 심각하네.
팽도경이 도를 뽑았음에도 뒷짐까지 지고 여유로운 팽중호.
팽도경은 그 모습에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지금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감히 팽중호 따위가 저런 모습을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 마라!”
탓-
도를 들고는 빠르게 쇄도해 오는 팽도경.
그의 도에는 희미하지만, 도기까지 둘려 있었다.
맨손인 팽중호에게는 너무나도 위험한 상황.
이대로라면 피를 볼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휘익- 휙- 휘이익-
팽도경이 팽중호에게 붙어서 열심히 도를 휘둘렀는데, 어떠한 공격도 팽중호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비대한 몸으로도 너무나 유려하게 공격을 흘려 내는 팽중호.
“이것도 도법이라고 펼치는 겁니까?”
“이 몸의 혼원벽력도를 무시하지 마라!”
“엥?”
혼원벽력도?
하북팽가의 혼원벽력도가 온전치 않다는 것은 이미 보았기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딴 몸부림을 혼원벽력도라고 하는 건 정말 아니었다.
도대체 얼마나 혼원벽력도가 소실되었기에 이 지경이란 말인가?
전생이라면 지나가는 하인도 이것보다는 더 그럴듯하게 혼원벽력도를 펼칠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이거, 아주 문제가 심각하네.”
“허억- 허억-.”
실컷 도를 휘두르던 팽도경이 이내 거친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도기를 두르고 조금 도를 휘둘렀다고 지친 것이다.
“진짜 심각해…… 하아…… 쓰벌 이걸 어찌한다?”
팽중호는 헉헉대는 팽도경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하북팽가의 핏줄이란 놈이 같잖은 혼원벽력도를 조금 휘둘렀다고 헉헉대는 꼴이라니?
전생에 하북팽가에서 제일 모지리 같던 핏줄도 혼원벽력도를 하루는 너끈히 휘두를 수 있었는데 말이다.
이건 정말 문제가 심각했다.
설마 다 이런 건 아니겠지 라는 희망은 품어 봤지만, 어차피 거기서 거기일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싹 다 물갈이를 하는 게 나을지도…….’
“허억- 약삭빠르게 피하지만 말고…… 컥!…….”
팽중호는 입만 살아서 나불대는 팽도경의 뒤 목을 그대로 내리쳐 기절시켜 버렸다.
지금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나불대는 소리까지 들을 정신은 없었다.
“후우…… 일단은 후에 생각하자. 싹 다 한 번 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겠지.”
한숨을 내쉬고는 그대로 발걸음을 옮겨서 돌아가는 팽중호.
팽중호가 몸을 돌리자 팽도경과 함께 있던 이들이 우르르 달려와 팽도경을 부축해 사라졌다.
그들의 눈은 지금 혼란으로 가득했는데, 당연히 그럴 만했다.
지금 그 개망나니 4공자가 갑자기 사람이 싹 바뀐 듯이 나타나서 3공자를 가볍게 이겨 버렸으니 말이다.
이건 분명 하북팽가가 떠들썩해질 만한 소식이었다.
* * *
“공자님 어딜 다녀오십니까?”
팽중호가 처소로 돌아오자, 명종이 옷과 도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 산책 다녀왔다. 그보다 그거 내거냐?”
“예. 그런데 이것보다 먼저 다녀오실 곳이 생기셨습니다.”
“어딘데?”
“가주님께서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나를? 왜?”
“그, 그건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팽중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가주를 만나 봐야 일장 연설이나 늘어놓지 않겠는가?
“그래. 가자.”
하지만 어쩌겠는가?
가주가 부르면 가야지.
팽중호는 명종을 대동하고 곧바로 가주전으로 몸을 옮겼다.
‘그래도 가주전 하나는 지키고 있네.’
눈에 보이는 가주전의 모습은 분명 전생과 비교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가주전만 그렇다는 것이지만 말이다.
“가주님. 4공자님이 오셨습니다.”
팽중호가 가주전으로 향하자, 가주전을 지키는 무인이 곧바로 기별을 넣었다.
“들어오라고 해라.”
그리고 가주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어딘가 힘이 없고, 축 처지는 목소리였다.
하북팽가를 이끄는 가주의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덜컥- 끼이익-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간 팽중호.
그런 팽중호의 눈에 피곤함에 절어 있는 한 중년인이 보였다.
“어서 오거라.”
“예. 아버지.”
이 중년인이 바로 현 하북팽가의 가주인 호협도(豪俠刀) 팽자성이었다.
하북팽가의 부흥을 위해 힘 있는 세력과 혼인을 통해 부흥을 꾀하려다, 오히려 그들의 손아귀에 지금 하북팽가를 던져 준 꼴이 되도록 만든 장본인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하북팽가에서 팽자성의 힘은 미미하다고 봐도 무방했고, 그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최근에 쓰러졌다고 들었다. 몸은 괜찮으냐?”
“예. 보다시피 아주 멀쩡합니다.”
“그래. 잘되었다. 그보다 오늘 너를 부른 건, 전해 줄 말이 있어서다.”
“뭡니까?”
“세가 회의에서 이번 하북지회에서 네가 단 1승도 하지 못한다면, 너를 내쫓기로 결론을 내렸다.”
세가 회의는 하북팽가의 중대사를 논하는 회의였는데, 그 회의에서 이번에 팽중호의 거취 문제를 논하였다.
하북팽가의 직계이지만 세가의 얼굴에 먹칠하는 팽중호를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래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하북성의 무림 세력들이 모여 서로 실력을 겨루는 ‘하북지회’에서 팽중호가 단 1승조차 하지 못한다면, 그를 세가에서 내쫓자는 결론이 나와 버렸다.
당연히 팽자성은 반대를 하였지만, 그의 힘은 미미했기에 이 안건은 빠르게 통과되어 버렸다.
“아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
팽자성은 이 이야기에 팽중호가 날뛰리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럼 하북지횐지 뭔지에서 제가 1승을 하면 문제없는 거 아닙니까?”
“중호야 하북지회까지 겨우 석 달 남았다. 네가 지금부터 밤낮으로 노력해도 1승을 하기에는 요원한 시간이다.”
“저는 걱정 마시고, 아버지나 몸조리 잘 하십쇼.”
이야기가 끝났다고 생각해 바로 몸을 돌려 가주전을 나가려는 팽중호.
팽자성은 그런 팽중호를 보며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말투는 그대로이지만, 행동과 눈빛이 바뀌었다.
‘알 수가 없구나.’
분명 달라진 것은 좋았지만, 때가 너무 늦은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너를 망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이미 떠나 버린 팽중호의 뒤를 향해 내뱉는 팽자성의 말.
팽자성은 팽중호가 망나니가 되어 버린 것이 모두 자신 탓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힘이 있었다면, 저렇게 되도록 놔두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 * *
“나를 내쫓겠다? 재밌네 이거.”
가주전을 나온 팽중호는 처소로 다시금 돌아가는 길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하북지회에서 단 1승이라는 간단한 조건을 건 듯싶지만, 그들은 아마 자신이 1승도 하지 못할 것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이전의 팽중호는 삼류 무사조차 이기지 못할 만큼의 실력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다르다.
하북지회까지 남은 석 달이면 실력을 끌어올리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명종아. 앞으로 석 달 동안 연공실에 박혀 있을 거니까, 큰일 아니면 부르지 마라.”
“연공실에 석 달이나 계신다구요?”
“그래. 몇 번씩 말하게 하지 좀 마라.”
“예, 옙.”
명종은 팽중호가 쓰러졌다가 깨어난 후에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에 영 적응이 안 되었다.
보통이라면 팽중호는 지금 주루에 가서 질펀하게 술을 마실 시간이었다.
그런데 근처에 가지도 않던 연공실에 간다고 하는 것도 놀랄 노 자인데, 무려 석 달이나 그곳에 있겠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인 듯싶었다.
“밥은 연공실 앞에 두면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까, 그냥 두고 가라.”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팽중호는 곧바로 연공실로 들어갔다.
지하에 만들어 둔 개인 연공실.
그런데 연공실로 들어선 팽중호의 몸이 갑자기 땅에 묶인 듯이 딱 멈추었다.
“그런가…… 이것도 인연인가…….”
지금 팽중호가 들어선 연공실은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었다.
전생에 팽사혁 자신이 쓰던 연공실이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겠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었는데 말이다.
“익숙하니 더 좋군 그래.”
팽중호는 마치 정말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에,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자, 그럼. 일단 기혈들부터 싹 바로 잡아 볼까.”
팽중호는 연공실의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자리를 잡았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뒤틀린 기혈을 바로 잡는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내공을 쌓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다.
‘이거 뭔 짓을 했길래 이렇게 꼬였지?’
온몸의 기혈들이 뒤틀린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다.
이 정도면 그냥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게 나을 듯싶을 정도.
‘기혈이 아니라 단전도 문제네. 이거 아주 잘못 환생한 거 같네.’
단전도 아주 가관이었다.
마치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변해 있었으니 말이다.
‘아마 회석 독(蛔石毒)인가?’
기생충 같은 것들이 단전에 머물며 단전을 돌처럼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는 독.
그런데 이건 장복해야만 효과가 있는 독.
이 정도로 단전이 굳어 버린 것이면 아주 오랫동안 회석 독을 복용한 것일 터였다.
‘쯧. 이것도 나중에 잡아내야지 뭐.’
일단 범인을 잡는 것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지금은 단전을 살리고, 기혈을 바로잡는 것이 먼저였다.
“후우.”
팽중호는 숨을 한 번 내쉬고 내공 심법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혼원벽력신공(混元霹靂神功).
지금의 하북팽가에는 전해지지 못한, 절세의 신공이 지금 팽중호를 통해서 다시금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