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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98화 (498/500)

第百章 혈마잠천(血魔潛天) (3)

투심문 십대보고 중 네 곳을 찾았다.

취운산 보고는 텅 비었지만 다른 세 곳은 아직도 보물이 건재했다.

정말 많은 금은보화가 질서정연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무가지보로 여겨지는 보물도 다수 존재했다.

등여산은 천기수사가 빼내 가지 못하게끔 투심문이 만든 기관에 기진을 덧붙였다.

구유화음진(九幽華陰陣)!

마공관에 존재한 마진 중에서 가장 악독한 마진이다.

구유화음진에 빠지면 끝없는 지저로 함몰되는 듯한 환각을 느낀다.

지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다가 공포심과 갈증과 기아에 지쳐서 죽는다.

죽은 사람의 몰골이 뼈만 남은 해골 같다고 해서 구유화음진이라고 한다.

매우 사악한 기진이다.

등여산은 그런 진을 거침없이 썼다.

천기수사는 반드시 잡아야 한다.

대의를 위해서 사부를 찾는 것보다 사마 제련을 못 하게 막아야 한다.

사부를 찾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겠지만, 최후에는 천기수사만이라도 잡아야 한다.

일행은 이제 다섯 번째 보고를 향해 가는 중이다.

언제나 길을 뚫는 것은 귀무살 몫이다.

호발귀는 귀무살을 같은 동료로 대하려고 했지만, 귀무살은 한사코 수하이기를 자처했다.

“귀검님이 검을 놓지 않는 이상은 저희도……”

귀검이 검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지옥유부검, 혈마자심(血魔刺心)을 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언제든 호발귀가 혈마가 되면, 그리고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혈마를 베어야 한다.

벨 수 있는지는 나중 문제다. 그것이 귀검에게 얹힌 임무다.

그때까지 귀검은 수하로써 묵묵히 뒤따른다.

호발귀가 있고, 귀검이 수하로 있는 한 귀무살의 선택지는 없다.

그들은 본의든 타의든 혈마 일원 중 제일 하급 무인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

혈마는 인적 없는 산길만 더듬어간다.

그러니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귀무살 네 명이 번갈아 가면서 그 일을 담당한다.

물론 언제 어디를 가든 이인 일조로 움직인다.

혈마가 혈마를 감시한다. 혈기를 일어나는 것을 감시하고, 자제시키고, 필요할 때는 구혼음소를 토한다.

“여기 좋네. 오늘은 여기 어때?”

길성이 제법 큼직한 동굴을 찾아냈다.

동굴 앞으로는 개울도 흐른다. 오랜만에 목욕도 좀 하고 옷도 빨아 입을 수 있을 것 같다.

“음! 안쪽에 격타하기도 좋고. 여기로 하자.”

착심이 말했다.

길성과 착심은 곧 동굴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잘한 돌을 치워서 열두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가능하면 풀도 뜯어다 놓는다.

푹신한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모두 푹신하게 잘 수는 없지만, 여인들 만큼은 편히 자게 한다.

툭툭! 와르르!

두 사람이 동굴 안에 있는 돌을 치워내고 편편한 자리를 만들 무렵, 호발귀를 비롯한 일행이 찾아왔다.

혈마가 좋은 점은 굳이 보고하러 되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혈마는 혈기를 읽는다. 취운산 사건 이후, 모든 혈마가 혈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하루 묶을 장소를 찾아내서 자리를 정돈하다 보면 어김없이 일행들이 찾아온다.

“야! 여기 좋은데!”

해자수가 만족한 듯 히죽 웃었다.

“언제 시작할 거야?”

홀리가 대뜸 호발귀에게 물었다.

“이따가 저녁 먹고. 왜?”

“오늘은 여자부터 해줘. 지금.”

“왜?”

“여기 너무 좋아. 먼저 끝내고 여자들끼리 목욕 좀 하게. 우리끼리 즐기게 좀 해줘.”

“그럼 지금 시작하자고?”

“응.”

“그래, 그럼.”

호발귀가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잖아. 가!”

등여산이 홀리의 등을 떠밀었다.

“아! 싫은데. 말은 했어도 내가 가장 늦게 하려고 했는데.”

홀리가 싫은 표정을 짓고는 호발귀를 따라서 동굴 안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하하! 오늘은 조금 오래 버텨봐요. 아씨, 할 수 있다!”

해자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응원했다.

호발귀는 하루에 한 번씩 혈마들의 생기도를 끊었다.

해자수와 궁충의 독상을 치료하면서 불현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혈기를 계속 일으키는 거다. 혈기를 일으키면서 본인 스스로 혈기가 일어나는 것을 감지하게 만든다.

혈마를 제압할 때 쓰는 생기도라는 점혈술도 혈마를 양생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생기도를 완전히 쳐내는 것이 아니고 약간 느슨하게 펼친다.

뇌와 몸에 단절을 일으키지 않고, 본인 스스로 혈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끼게 한다.

육신이 혈기에 휘둘리기 전까지 최대한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심등을 밝혀보려고 애쓴다.

이런 일을 매일 모든 사람에게 행하고 있다.

한 사람의 혈기를 움직였다고 정상으로 만드는 데 일다경 정도 소요된다. 혈마 열 명에게 행하는 데는 거의 두 시진 정도가 걸린다.

꼬박 반나절이다.

저녁 먹고 혈기격타를 시작하면 자정이 다 되어서야 끝난다.

호발귀는 매일매일 두시진 이상 혈기를 극렬하게 쏘아내고 있다.

이러다 보면 호발귀에 혈기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그래서 혈기격타를 할 때는 귀검이 호발귀의 등 뒤에 서서 참격(斬擊) 준비를 한다.

손을 검에 얹고, 언제든 혈마자심을 펼칠 수 있도록 대비한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면 감당하지 못한다.

그때는 모든 혈마가 합심해서 공격해야 하는데, 그 승부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즉사를 선택했다.

이것은 호발귀가 내린 결정이다.

모두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이 부분만큼은 호발귀가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모두 언제 혈마가 될지 모를 불안감을 안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조견, 심등을 밝혀야 한다. 본인 스스로 혈기가 일어나는 것을 지켜볼 줄 알아야 한다.

혈기가 온몸을 물들였을 때도 정신 한 줄기만 꽉 잡고 있으면 살겁으로 치닫지 않는다.

혈기는 통제할 수 있다!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왜 하지 않는가!

물론 조견을 밝힌다는 것은 하루 십이시진 내내 혈기 속에 잠겨 있는 것을 뜻한다.

그래도 그것이 언제 미치광이 혈마가 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일행 중에서 자유롭게 혼자서 산이고 들이고 쏘다닐 수 있는 사람은 호발귀밖에 없다.

다른 사람은 혼자서는 산도 오르지 못한다.

산길을 더듬어 올라가다가 늑대 무리라도 만나면 어쩌나?

검을 휘두르게 될 것이고, 혈기가 치솟는다. 늑대 대여섯 마리를 죽인 후에는 혈마가 될지도 모른다.

언제 어떻게 혈마가 될지 누가 아나.

혈기의 세계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에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래서 호발귀가 강력하게 우겼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혈기격타를 해야겠어. 지금은 이 방법이 최선이야.”

키키! 키키키!

동굴 안에서 괴소가 터져 나왔다.

“에이! 오늘도 틀렸네.”

해자수가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그러게요. 정말 안 되네요. 어떻게 될 듯하면서도 정신을 깜빡 놓아버린단 말이에요. 하! 그거 어떻게 좀 안되나?”

궁충도 아쉬운 듯 말했다.

“젊은 놈이 퍼뜩퍼뜩 움직여야지. 빨리 이뤄내서 방법 좀 알려줘. 뭔가 수가 있을 거 아냐.”

“어휴! 그건 해자수님이 저흴 가르쳐 주셔야죠.”

“아냐, 아냐. 이런 건 머리 좋은 책사가 먼저 이루어야 해. 나는 머리가 나빠서 안 돼.”

해자수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호호호! 혈기를 제어하는 데도 상수가 있고 하수가 있나요?”

등여산이 웃으며 말했다.

“있지. 가만히 봐봐. 우리 대빵은 호발귀잖아. 누가 호발귀를 이겨. 그리도 부대빵은 책사고.”

“저요?”

“말들 하지 않아서 그렇지 부대빵을 이길 사람이 누가 있어. 모두 한수 밀린다고 생각하잖아. 안 그래?”

해자수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 번째 대빵은 우리 아씨인데…… 어휴! 아씨가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있으니.”

“그런데 왜 홀리에게 아씨라고 부르세요?”

“아씨니까.”

“호호! 오늘도 안 가르쳐주시네.”

등여산이 웃었다.

킥킥킥! 킥킥! 끄으으으! 키킥!

홀리의 괴소가 짙어졌다.

이제 생기도를 칠 차례다. 혈마로 변하면 그 후에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 즉시 원상태로 되돌리는 게 낫다.

예측대로 동굴 안에서는 더 이상의 괴소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홀리의 오늘 수련은 끝났다.

계속 혈기를 억누르며 살 수도 있다. 그러면 이런 고통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나중에…… 가정을 이룬 후에…… 자식들을 낳고 잘 살다가 갑자기 혈마로 변하면 어떻게 되나? 내 자식을 내 손으로 죽이지 말란 법이 있나.

그런 위험은 피해야 한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 홀리가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난 실패. 다음은 계집아, 너야. 들어가!”

홀리가 등여산을 떠밀었다.

그러잖아도 등여산은 이미 들어갈 준비를 끝낸 후였다.

“어디서 무너졌어?”

“두 순배쯤.”

“두 순배? 어휴! 많이 버텼네.”

“놀려? 넌 세 순배를 버티잖아!”

홀리가 눈꼬리를 치켜떴다.

혈기가 전신을 지배하면 살기가 치민다.

극심한 살기를 괴소로 표현된다. 일단 괴소가 뱉어지면 육신이 혈기로 물든 상태다. 멀쩡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데 홀리는 그런 상태에서도 진기를 두 순배 돌릴 시간만큼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

혈기가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잃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나아졌다. 아니, 장족의 발전이다.

암약혼기 등에 대비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도록 수련시킬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아진 것이다.

지금 같아서는 혈기에 완전히 휘말린 후에도 정상적인 방식으로 싸울 수 있다. 혈마라면 적어도 일이십 초 정도는 쏟아낼 수 있는 시간이다.

두 순배는 그만큼 긴 시간이다.

“다녀올게.”

저벅! 저벅!

등여산이 힘있게 걸어 들어갔다.

호발귀는 캄캄한 산길을 걸었다.

혈마가 좋은 점은 빛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어두운 산길도 대낮처럼 환히 볼 수 있다.

또 독충들의 위협도 방비할 수 있다.

호발귀는 어떤 생물체든 혈권 안에 접근하면 즉시 혈기로 튕겨낸다. 그러면 멀쩡하게 걸어오던 짐승들이 즉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 깜짝 놀라서 도주한다.

호발귀는 접근하는 생기 자체를 밀어내 버린다.

“무슨 생각해?”

등여산이 옆으로 다가왔다.

“응. 생각할 게 좀 있어서.”

“무슨 생각?”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내일부터는 혈기를 더 강하게 일으킬까 생각 중이었어.”

“지금 하는 게 맞다고? 왜?”

“심등이 더 강해졌어.”

“강해졌다는 말이 무슨 뜻이야?”

“글쎄…… 예전에는 허공에 등불을 걸어 놓은 상태라면 지금은 밝게 빛나는 금강석을 벽에 콱 박아놓은 듯한 상태? 어떤 일이 있어도 빛이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그런 느낌이 들어?”

“응.”

“그럼 이제 가가는 완전히 벗어난 거야?”

“아니. 혈기는 아직도…… 다만 심등이 더 공고해졌어. 매일 혈기격타를 한 것이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된 거야. 모두를 도와주려고 했는데, 내가 도움을 받았네?”

“잘 됐다! 그럼 우리도 더욱 분발해야겠다.”

등여산이 손을 뻗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나 오늘 네 순배 참았어.”

“알아.”

“알아?”

“알지. 혈기가 언제 일어났는지, 혈기가 어느 정도나 충만 하는지, 얼마나 참는지…… 다 느끼지.”

“그런데 왜 칭찬 안 해줘? 일 순배 늘었잖아.”

“앗! 미안!”

호발귀가 멋쩍게 웃었다.

“호호! 어제만 해도 세 순배 밖에 못 참았는데 오늘은 네 순배나 참았어. 가가에 비하면 아직도 까마득하지만 그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서 좋아.”

네 순배면 거의 일다경에 해당한다.

등여산은 혈마가 되고도 능히 삼사십 초 이상을 쳐낼 수 있다.

혈마의 공격 삼사십 초면 어떤 강적도 무너뜨린다. 비록 싸움 끝에는 혈마가 되지만, 이제 사마에게 당하지는 않는다.

“축하해. 일 순배 늘은 것.”

“말로만?”

“말로…… 음! 뭐 줄 게 없는데……”

“있잖아. 있으면서 되게 아끼더라.”

“뭐…… 가?”

등여산은 펄쩍 뛰어서 호발귀에게 안겼다. 그리고 입술을 포갰다. 따뜻하고,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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