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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97화 (497/500)

第百章 혈마잠천(血魔潛天) (2)

꾸르르릉!

석문이 열렸다.

횃불을 밝히자 텅 빈 석실이 보였다. 사방 이십 장 넓이의 꽤 큰 공간인데, 텅텅 비었다.

“말끔히 쓸어갔군.”

도천패가 툴툴 웃었다.

“예상했던 일인데 뭘 새삼스럽게.”

호발귀가 석실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석실 안에는 온갖 금은보화가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중원 각지에서 훔쳐 온 보물들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어야 한다. 한데 깨끗하게 사라졌다.

천기수사가 투심문 보물을 이용해서 사마를 만들었고, 그 사마를 혈마가 제거했다.

어떻게 보면 상당한 모순이다.

“여기가 끝이야. 더는 뒤져볼 데가 없어.”

도천패가 툴툴 웃으면서 말했다.

취운산 전역을 뒤졌다. 하지만 사부는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새로 만든 무덤까지 살폈다. 천기수사가 사부를 죽여서 봉분 없이 묻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었다.

사부가 없다.

사부는 아직도 천기수사의 손아귀에 있는 것 같다.

“지금이라도 천기수사를 쫓을 방법은 없나?”

“내가 신인가? 이미 사라진 사람을 어떻게 찾아?”

호발귀가 피식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네. 주먹구구식으로 일일이 뒤져야지 뭐.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음!”

호발귀는 침음했다.

긴 여행이 시작될 것 같다.

사부를 찾기 위해서는 중원에 흩어져 있는 투심문 십대보고를 모두 뒤져야 한다.

열 곳 중 한 군데는 이미 개방되었으니 나머지 아홉 곳을 뒤져야 한다.

그곳 중 어느 곳엔가는 사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천기수사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십대보고가 전부 없어지기 전까지는 사부의 안위도 보장될 것이다.

맞다. 사부…… 아직은 살아계신다.

“가자고. 우리 안사람이 뭔가 좀 알아냈을지도 모르니까.”

“안사람? 언제부터 호칭이 당매에서 안사람으로 바뀐 거야?”

“흐흐! 왜? 어색해?”

“아니. 너무 입에 찰싹 달라붙어서. 보위. 혹시 전에 결혼했던 거 아냐?”

“넌! 넌 어떻게 좀 문주 대접을 해주려고 해도! 에이!”

도천패가 혀를 끌끌 찼다.

당홍은 환혼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살폈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하얀 절벽 위로 올라가서 풀이 자라는 것을 살펴본 것이다.

풀은 육식초, 점교망초가 맞았다.

“상당 부분 뜯겨 나갔네. 이미 채취해서 단약 형태로 제조했을 거야. 이 정도 양이면…… 사마를 백 명도 넘게 만들어. 점교망초는 이미 충분해.”

새삼 천기수사가 대단해 보이는 순간이다.

천기수사는 점교망초 때문에 취운산으로 되돌아온 것이 아니다. 보물을 취하려는 생각도 아니다.

이미 모두 빼내고 없다. 오직 하나, 혈마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왔다.

처음부터 혈마를 몇 명 더 잡을 생각이었다.

“그럼 약재로는 천기수사를 찾지 못하겠네요?”

등여산이 물었다.

“아니, 찾을 방법이 있긴 해. 환혼몽 약재 중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홍주를 먹고 죽은 반섬이야. 이 반섬을 달리 거반흑섬(巨斑黑蟾)이라고도 부르는데…… 검은 두꺼비가 사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아.”

“그것도 이미 준비하지 않았을까?”

홀리가 말했다.

“아니. 준비하지 못해. 거반흑섬은 반드시 생물로 써야 해. 죽으면 홍주의 독이 치밀어올라서 즉시 썩어버려. 그러니 홍주를 먹고 죽는 즉시 써야 해.”

“그러면 반섬이 사는 곳만 뒤지면 되겠네.”

“그게……”

당홍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반섬이 사는 곳은 중원에서 딱 네 곳뿐이다.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사천성(四川省) 아미산(蛾眉山), 섬서성(陝西省) 육반산(六盘山), 복건성(福建省) 수석산(水石山),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기수사가 머물렀던 강서성 취운산.

“잡아서 보관할 수는 없나?”

해자수가 물었다.

“반섬은 태어난 곳에서 십 장을 벗어나지 않아요. 십 장 이상 벗어나면 불안감 때문에 죽어요. 성질이 무척 급해서 피부색이 붉게 물들었다 싶으면 바로 죽죠.”

당홍이 말했다.

“홍주는? 붉은 거미도 그런가?”

“아뇨. 그러니 홍주를 잡아서 반섬에게 먹일 수 있는 거죠.”

“그럼 이 세 곳을 뒤지면 천기수사를 찾을 수 있다는 거잖아. 그런데…… 하아! 이거 어떻게 천지 사방에 쫙 흩어져 있냐? 세 곳뿐이라고는 하지만 이 세 곳을 뒤지려면 중원을 한 바퀴 뺑 돌아야 하잖아? 이것도 큰일이네.”

해자수가 혀를 끌끌 찼다.

천기수사가 갈만한 곳은 두 군데다. 반섬이 출몰하는 산과 투심문 보고가 있는 곳이다.

그곳들도 이미 천기수사가 다녀갔다면 찾을 수 없다.

취운산은 묘하게도 투심문 보고와 반섬 서식지가 같은 산에 있었지만, 다른 곳은 다르다.

아미산, 육반산, 수석산에는 투심문 보고가 없다.

또 취운산에서 당한 경험이 있어서 사마를 다시 제련한다고 해도 투심문 보고에서는 하지 않는다.

보고 특성상 비밀을 완벽히 보장할 수 있지만, 혈마가 찾아올 위험이 있다.

이제는 보물만 빼내고, 다른 곳에서 제련할 것이다.

“천기수사가 혈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냈는지가 관건이네.”

등여산이 말했다.

“혈마 끄트머리는 잡았다고 했어.”

홀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지금보다 훨씬 강한 사마가 탄생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상당한 위협이 될 거야.”

“‘그럼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야겠네.”

사부가 아니더라도 천기수사를 찾아야 할 이유는 또 생겼다.

“일단 투심문 보고부터 찾자. 흩어져서 찾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아직은 안 돼. 누가 언제 혈마가 될지 모르니 한동안은 다 같이 움직이자고.”

등여산이 앞으로 할 일을 말했다.

호발귀가 혈기를 말끔히 씻어주어서 당분간은 안전할 것 같다.

하지만 아미산과 육반산의 거리는 이만리 이상이 된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으면 혈마가 되었을 때 즉각 조처를 할 수 없다.

결국, 많은 사상자를 낸 후에야 호발귀가 도착할 것이다.

혈마는 언제든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등여산은 ‘당분간’이라는 말을 붙였다.

호발귀처럼 심등을 밝힐 수 있다면 흩어져도 무방하다. 그리고 모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발귀가 해냈다면 다른 혈마도 해낼 수 있다.

“투심문 보고부터 뒤지고 보물이 없어진 곳이 있으면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반섬 서식지를 찾아야지.”

“천상 그 수밖에 없겠네.”

당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괜히 저희가 잡히는 바람에……”

궁충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천기수사를 쫓지 않았다는 말은 사부의 안위를 뒤로 미뤘다는 뜻도 된다.

궁충과 해자수를 구하기 위해서 사부를 찾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찾으면 되잖아. 사부님은 살아계실 거야.”

호발귀가 웃으면서 말했다.

* * *

“책사님께서 밀마를 보내오셨습니다.”

밀운이 보고하며 작은 대롱을 내밀었다.

“책사가?”

천살단주 주당염은 반가운 표정으로 대롱을 건네받아서 안에 든 밀서를 꺼냈다.

“천기수사를 놓친 모양이네.”

“……”

밀운은 묵묵히 서 있기만 했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천기수사의 행방을 찾아달라는데…… 하아!”

천살단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천살단 비보전은 와해 직전이다.

십육비자 중 태반이 죽었고, 하늘에서 감시할 수 있는 참응도 한 마리만 남았다.

무엇보다도 비보전주가 은퇴 의사를 밝히고 낙향했다.

타격을 받은 곳은 비보전뿐만이 아니다. 음자를 관리하는 재각도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세작전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간자들의 숫자가 삼만 명을 넘겼는데, 지금은 채 만 명도 남지 않았다는 보고다.

불마촌 낭견대를 관리했던 호음각은 사라졌다.

호음각주는 낭견대가 펼친 마공에 책임을 지고 천살단을 떠났다.

형옥도 무너졌다. 형옥에서 시마 제련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상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살단이란 곳이 온통 마공, 사공 투성이다.

마공관, 호음각, 형옥, 살단…… 마공을 수련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이 사람들이 모두 떠났으니……

물건을 잃으면 다시 만들면 되지만, 사람을 잃으면 그 피해는 십 년 이상을 간다.

천살단이 공들여 노력해도 옛 성세를 되찾으려면 십 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지금 우리 조직으로는 천기수사를 찾을 수 없겠지?”

“……”

“밀운, 이런 건 대답해도 돼.”

“한두 마디를 대답하게 되면, 곧 모든 물음에 답변을 드려야 합니다. 양해를.”

“후우! 다른 사람 부탁도 아니고 책사 부탁인데…… 들어줘야지. 일비자를 불러줘.”

“저……”

“이거 말고 다른 일도 있어?”

“밀서에 천기수사를 찾아달라는 말 외에는 없는지……?”

“없는데? 왜?”

“책사님 성격에 그럴 것 같아서 말씀드립니다. 이번 취운산에서 살단주가 귀무살 여괴를 납치하려고 했던 모양입니다. 혈마 연구에 손을 대신 것 같은데…… 호발귀가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않고 놓아주었답니다.”

“그런 일이 있었어?”

“네.”

“그런 말을 왜 안 했어?”

“책사님이 직접 말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미뤄뒀습니다.”

밀운은 천살단주 천수신검이 취운산에서 죽었다는 보고를 했다.

혈마에게 죽은 것이 아니라 환혼몽에 당해서 죽었다고…… 소상하게 보고했다.

그런 말을 하면서도 주치균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었다.

“그 아이가…… 그런 말을 할 아이가 아니지. 아이? 호호! 혈마후에게 아이라니. 나도 말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단주님은 책사님을 아이라고 부르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호호호!”

천살단주가 활짝 웃었다.

“살단주 소식은? 뭐 들은 거 없어?”

“아직 없습니다. 취운산에서 사라지신 후에는 완전히 종적을 감추셨습니다.”

“황궁으로 돌아간 건 아니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흐음! 시간 나는 대로 살단주도 수소문 해봐. 여괴를 납치하려고 했었다면…… 살단주가 이번 일로 타격이 컸을 거야. 천살단을 이끌 사람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찾아.”

“네.”

밀운이 대답했다.

“천기수사를 찾을 수 있겠어?”

“……”

일비자는 밀운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비보전 상황이 어때?”

“조직망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자금이 워낙 많이 들어가서. 혈마 사건 이전에 비하면 한쪽 눈을 감고 나머지 눈도 반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일비자가 차분히 대답했다.

두 눈을 빤히 뜨고 지켜보아도 정확히 볼 수 없는 게 중원이다.

하물며 한쪽 눈을 가리고 나머지 눈조차 반개한 상태라면 비보전 기능은 아예 사라진 것이나 진배없다.

“일비자, 오늘 날짜로 비보전주로 취임해.”

“아닙니다. 아직 전주님이 계십니다. 제가 설득해서 반드시 모셔오겠습니다.”

“상황이 급한데.”

“비보전을 다시 옛날처럼 일으키시려면 전주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주님 외에는 이렇게까지 키울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셔오겠습니다.”

“그래? 휴우!”

천살단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옛날 같으면 천기수사를 찾는 일쯤은 누워서 떡 먹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일을 장담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그만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혈천방은 움직임은 어때?”

“조용합니다. 그쪽도 방주를 잃은 후라서.”

“차기 방주는?”

“귀무살 몇 명이 무리를 만들어서 치열하게 싸운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눈을 떼지 마. 그리고 비보전주, 데려와.”

비보전이 문제가 아니다. 천살단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아직도 혈천방이 건재한 이상, 반드시 그들의 야욕을 분쇄할 조직이 있어야 한다.

천살단주는 눈쌀을 찌푸렸다.

자신은 임시 단주라고 생각했는데…… 임시직을 꽤 오래 맡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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