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百章 혈마잠천(血魔潛天) (1)
“이럴 줄 알았어!”
주치균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호발귀는 천기수사를 쫓아서 계속 동굴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뒤쫓는 사람이 없다고 확신한 상태이니, 쫓아가는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확실히 기회가 주어진다.
묵묵히 호발귀를 쫓다 보니 이런 어부지리도 챙길 수 있지 않나.
여괴와 판수, 두 사람이 뜻밖에도 자신의 손에 굴러떨어졌다. 마치 동굴 입구에서 잡아가 달라는 듯이 널브러져 있다.
‘하늘이 날 도와주는군.’
주치균은 두 사람 중에서 비교적 몸무게가 가벼운 여괴를 택해 어깨에 둘러업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굴 밖으로 신형을 쏘아냈다.
판수까지 업어가고 싶지만…… 무리다. 한 명만 데려가는 것도 위험부담이 크다.
쒜에에엑!
이제 취운산을 벗어난다.
취운산에는 다른 혈마도 있다. 그들이 쫓아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주치균은 그들이 머물러 있을 만한 곳을 안다.
그러니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천기수사는 욕심을 너무 부렸어. 혈마는 한 놈만 있으면 돼. 진짜 한 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 물론 혈마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호발귀 손에서 이놈들을 빼내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나? 후후후! 다 된 밥에 코 빠트리기는.’
쒜에에엑!
주치균은 최선을 다해서 치달렸다.
호발귀는 천기수사를 쫓지 않았다. 계속해서 쫓아갈 수는 있다.
쫓아가면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천기수사를 쫓는 일보다 지인들의 안위가 더 소중했다.
천기수사는 그냥 도주하지 않았다. 누워있는 두 사람에게 환혼몽을 뿌렸다.
해자수와 궁충은 환혼몽을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일차로 환혼몽에 중독된 상태에서 다시 한번 가격당한 셈이다.
더군다나 두 사람은 마혈이 제압되어 있다.
원래 환혼몽 자체가 육체를 마비시키는 독인데, 거기에 마혈까지 제압되어 있으니 완벽하게 틀어막힌 셈이다.
전혀 독에 대해서 저항하지 못하고 온전히 노출되었다.
천기수사를 쫓아갈 수는 있지만 돌아올 때까지 두 사람이 무사할 것이라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
호발귀는 즉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두 사람의 경혈을 짚었다.
마혈을 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혈기로 두 사람의 혈기를 격타하기 시작했다.
타타탁! 타탁!
두 사람의 혈기가 터졌다.
호발귀가 직접 혈기로 혈기를 격타하자, 두 사람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혈기가 격렬하게 치솟았다.
두 사람의 혈기는 호발귀의 혈기에 비해서 결코 얕거나 낮지 않다. 우주의 기운은 모두 똑같은 것이다.
이 사람 몸에 흘러 들어간 기운이나 저 사람 흘러 몸에 흘러 들어간 기운이나 모두 똑같다.
호발귀가 혈기를 조금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뿐이지 모든 사람의 몸에 깃든 혈기를 크기나 강도가 똑같다.
근본적으로 혈마는 몸에 깃든 혈기만 쓰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진기의 개념이다.
생기의 개념으로 들어서면 몸 밖에 있는 기운도 자유자재로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발귀는 그런 작용에서 조금 더 능숙할 뿐이다.
타타탕! 탕탕탕!
서서히 피어나는 혈기에 또다시 혈기격타를 시전했다. 그러자,
“크크크큭!”
“킥킥! 킥!”
해자수와 궁충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두 눈은 혈광으로 반뜩였다. 아니, 두 사람 몸에서 소름 끼치는 악기(惡氣)가 피어났다. 세상을 말살시켜버리겠다는 강렬한 살기인데, 살기가 너무 지나다 보니 악기로 변한다.
“후우!”
호발귀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두 사람의 혈기가 너무 강렬하다 보니 자신의 혈기까지 격동을 일으켰다.
심등이 꺼질 듯이 흔들거렸다. 조견을 유지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이 두 사람 죽이고 싶다!
어디 건방지게 자신의 앞에서 독기를 드러내는가.
자신에게는 이들을 때려죽일 힘이 있다. 죽이자! 죽여도 된다. 이따위 푸른 빛은 짓눌러 버리자.
마음속에서 거친 혈기가 솟구쳤다.
심등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후우!”
호발귀는 다시 한번 큰 숨을 쉬었다. 그리고 심등을 굳건히, 환하게 밝혔다.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내면의 혈기를 지켜본다.
혈기가 마음껏 일어나도록 한다. 방해하지 않는다. 다만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자 혈기가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지켜보는 힘, 조견은 이만큼 위대하다.
조견은 부처에게 깨달음을 안겨준 궁극의 선물이다.
호발귀의 조견이 부처의 조견과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와 같은 힘을 발휘한다.
투웅! 퉁퉁! 투우우웅!
해자수와 궁충의 몸에서 환혼몽이 떨어져 나갔다.
호발귀는 그 사실을 확연히 알았다. 계속해서 혈기격타로 두 사람의 혈기를 어루만져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혈기가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감지한다.
‘됐어! 이제 혈기를 밀어내면 돼!’
탕!
먼저 아문혈과 염천혈을 잇는 생기의 길, 생기도를 끊었다.
두 사람은 몸과 뇌가 단절되면서 힘없이 쓰러졌다.
생기도를 끊는 것은 혈마를 제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다.
다만 생기도 역시 생기로만 끊을 수 있으니…… 오직 혈마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통통! 팟팟팟!
호발귀는 그 상태에서 혈기를 쳐냈다.
혈기로 혈기를 쳐낸다. 두 사람의 몸에서 혈기가 밀려 나간다.
아니, 혈기가 밀려 나가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호발귀가 느끼기에 밀려 나간다고 느낄 뿐이다.
두 사람의 몸에서는 생기가 순환하고 있다.
주위에 존재하는 맑은 생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고, 몸 안에 있던 변질한 생기가 스르르 사라진다.
그것이 마치 혈기가 밀려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차 시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집중 시전을 한다. 혈기의 뿌리까지 밀어내서 원초적인 상태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시전한다.
먼저 해자수의 혈기를 밀어냈다.
“후우!”
호발귀는 긴 한숨과 함께 해자수의 생기도를 풀었다.
해자수가 가늘고 긴 숨을 쉰다. 더는 괴소를 흘리지 않는다. 두 눈은 꼭 감고 있지만 평온하다. 안색도 제대로 돌아왔다.
생각이 맞았다. 혈기를 일으켰다가 다시 밀어내면 환혼몽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별한 단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독기에서 벗어난다. 혈마는 만독불침이다.
‘이제는 궁충.’
호발귀는 계속해서 궁충을 격타하기 시작했다.
스슷! 스스슷!
세 사람이 동굴 입구에 내려섰다.
“응? 여괴는?”
궁충이 의아한 듯 중얼거렸다.
동굴 입구에는 여괴와 판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판수밖에 보이지 않는다.
“천기수사! 이 자가!”
해자수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리고 재빨리 생기를 끌어내서 주위를 살폈다.
호발귀가 혈기를 다 밀어낸 후이다. 안심하고 생기를 사용해도 된다. 그러니 최대한 혈권과 사권을 넓힌다.
최대한 광범위하게 탐색해나간다.
생기는 찾아지지 않았다.
“벌써 도주를……”
“아니, 아직 도주하지 못했네요.”
호발귀가 해자수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어?”
해자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호발귀를 쳐다봤다.
“일단 여괴를 데려와야겠어요. 여기서 판수를 살펴보세요. 환혼몽은 만지면 중독됩니다. 만지지 마시고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만약 발작을 일으키면 움직이지 못하도록 짓눌러 두기만 하세요.”
쒜에에엑!
호발귀가 신형을 쏘아냈다.
“하! 혈마라고 똑같은 혈마가 아니네.”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넌 뭐 좀 감지했냐?”
해자수가 궁충을 보며 물었다.
궁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궁충도 해자수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혈권과 사권을 최대한 넓혔다. 하지만 어떤 생기도 감지해내지 못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적어도 궁충의 영향권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한데 호발귀는 누군가 있다고 한다. 도대체 호발귀의 혈권과 사권은 얼마나 넓은 것인가.
주치균은 천기수사가 저질렀던 실수와 똑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암약혼기를 펼쳤다. 여괴에게는 무령환살공을 시전해서 생기의 흐름을 차단했다.
두 사람의 생기를 완전히 소멸시킨 채 이동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운은 여전히 뿜어져 나왔다. 주치균은 암약혼기의 잔기(殘氣)를 흘렸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내뿜는 생기, 그것은 억누르거나 감춘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혈마는 속일 수 있어도 호발귀는 속이지 못했다.
호발귀는 사령천공을 쫓아가면서 잔기를 쫓는 수련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여괴는 혈기까지 흘렸다.
혈기는 주치균도 감지하지 못하는 미지의 기운이다.
혈기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면 혈마를 벗어날 방법도 생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호발귀조차도 혈기가 무엇인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한 혈기가 여괴에게서 풍긴다.
쒜에에엑! 쒜에엑!
호발귀는 유유히 혈기를 쫓아갔다.
주치균은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자신과 여괴의 생기를 죽인 만큼 누군가에게 추격당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 주치균은 평소 같으면 저지르지 않을 실수를 저질렀다.
그는 너무도 확실한 사실 하나를 간과했다.
호발귀는 분명히 사령청공을 펼친 천기수사를 쫓아갔다.
주치균이 보기에도 천기수사는 전혀 기척을 흘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확하게 쫓아갔다.
주치균은 천기수사가 사령청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것으로 생각했다.
사실 주치균은 천기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거리가 워낙 멀었다.
천기수사 뒤에 호발귀가 있고, 호발귀 뒤에 자신이 있었다.
호발귀를 중간에 둔 먼 거리에서 천기수사가 흘리는 기운을 정확히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호발귀가 천기수사를 거침없이 뒤쫓아갔다는 사실만은 기억했어야 한다.
다른 때 같으면 이런 일을 놓칠 그가 아니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하지 못했다.
‘생기는 죽였고, 기척만 들키지 않으면 돼.’
그는 나무뿌리, 풀뿌리조차 조심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누군가 쫓아온다는 기미는 없다. 완벽하게 탈취에 성공했다. 그런데,
스슷! 스스슷!
주치균 앞에 호발귀가 나타났다.
“어?”
주치균은 잠시 눈앞에서 일어난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두 눈만 끔뻑거렸다.
확실히 호발귀다. 어느새 쫓아와서 눈앞에 서 있다.
“어떻게……?”
주치균의 입에서 신음처럼 탄식이 새어 나왔다
“놓고 가라. 보내주겠다.”
호발귀가 차분하게 말했다.
주치균은 저항하지 못했다.
호발귀를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들부들 떨려 나왔다.
호발귀는 이미 자신이 상대할 수 없는 거인이 되어 있었다.
암약혼기나 사령청공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호발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혈기가 필요하다.
이백 년 전 중원인들에게 혈마의 모습은 이랬을 것이다.
지금 중원은 그때보다 한층 더 발전했다. 사령청공도 만들어냈고, 암약혼기라는 절정 무공도 창안해 냈다. 하지만 역시 혈마 앞에서는 어린애에 불과하다.
쓱!
여괴를 발 앞에 놓았다.
여차하면 발로 밟아 죽일 생각이다.
호발귀가 말했다.
“책사가 천살단주와 만났다. 그때 단주께서 네 목숨을 살려달라고 부탁했다더군. 그 부탁 들어주겠다. 가라.”
주치균은 호발귀의 말을 믿었다.
호발귀는 자신을 속일 이유가 없다.
사실 그가 자신을 치려고 마음먹었다면, 자신이 발을 들어서 여괴를 짓밟기도 전에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 정도의 무공이 있다는 것을 안다.
혈마무공, 이것은 인간이 감당할 수 무공이 아니다.
주치균은 이제야 비로소 전임 천살단주, 천수신검이 왜 그토록 혈마에 집착했는지 그 이유를 알았다.
생기를 알게 되면 무공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지난 이백 년 동안 연구했던 모든 성과를 단시간에 앞지른다.
겨우 한두 달 만에 절정 무인이 된다면 믿을 수 있나?
한데 그렇게 된다. 귀무살 같은 자들이 단숨에 천살단주나 혈천방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수가 된다.
“혈마!”
주치균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천천히 호발귀를 향해 걸었다. 호발귀도 그를 향해 걸어왔다. 아니, 여괴를 향해 걸어왔다.
두 사람의 어깨가 스쳐 지나갔다.
주치균은 호발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왜 웃었는지 모르겠다. 괜히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