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九章 해구부우(解救俘友) (4)
쒜에에엑! 쒜에엑!
호발귀는 신형을 날렸다.
‘생기를 너무 믿으면 당한다.’
호발귀는 분명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의 몸은 혈기로 뒤덮여 있다. 잠시라도 심등을 놓아버리면 한순간에 미치광이 혈마로 둔갑한다.
호발귀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어서 늘 조심한다. 마음을 탁 풀어놓고 지낸 적이 한시도 없다.
옆에서 보기에는 무척 편안한 듯이 보이겠지만, 호발귀 자신은 매 순간순간이 지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긴장을 푼 대가가 어떻게 돌아올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등여산이나 홀리를 공격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정신이 어떻게 된 인간이기에 도천패나 당홍을 공격하나.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을 벌였다.
혈기에 미치면 이성이 통하지 않는다.
늘 한편으로는 자신을 돌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외부에서 일어난 상황을 살핀다.
그래서 모든 감각을 읽어드림에 있어서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고 자부했다.
한데, 빈틈이 있었다.
생기를 잡아채고 쫓아갔다. 그가 천기수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천기수사가 아니었다. 쫓아가사 잡아채고 보니 엉뚱하게도 사마였다.
분명히 천기수사의 생기를 낚아챘는데 왜 사마와 뒤바뀌었을까?
천기수사의 생기가 사마의 생기로 이어지는 연결점…… 그 사이에 한순간에 틈이 있다.
자신은 그 틈을 놓쳤다.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천기수사의 생기를 확신하고 쫓아가지만, 그것이 언제 어느 때 사마의 생기로 바뀔지 알지 못한다.
천기수사에서 사마로 바뀌는 틈을 놓치면 틀림없이 예전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번에도 틈을 놓치면 여괴와 판수를 잃는다.’
호발귀는 자신에게 다그쳤다.
지금은 해자수와 궁충을 찾을 기회가 있다. 하지만 이번에 여괴와 판수를 잃으면 그들 네 명을 되찾을 기회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쒜에에엑! 쒜에엑!
호발귀는 빠르게 신형을 쏘아냈다.
‘여괴와 판수를 잃으면 안 돼. 틈! 틈! 틈이 반드시 있을 거야. 그 틈을 놓치면 안 돼.’
틈! 틈! 틈! 틈!
취운산으로 달려오면서 천기수사가 만들어 놓을 틈을 잊은 적이 한 시도 없다.
천기수사가 어떤 식으로 틈을 만드는지 알아내려고 부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틈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러면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해자수님과 궁층님을 어디로 빼돌린 거야?”
여괴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발귀는 몸을 납작 엎드렸다.
생기 세 가닥이 잡힌다. 두 가닥은 여괴와 판수일 것이고, 한 가닥은 천기수사로 짐작된다.
천기수사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두 사람을 만나고 있다.
서로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음성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경계심이 장난 아닌데……’
천기수사는 혈마를 두려워한다. 가까이 다가올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여괴와 판수가 신형을 움직일 생각만 해도 당장 도망갈 것처럼 보인다. 전력을 다해서.
두 사람이 생기를 끌어 쓰지 않으면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도주할 것이다.
원래 본신 무공은 천기수사가 두 사람보다 강하다.
여괴와 판수가 합공을 취해도 천기수사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니 그를 뒤쫓자면 혈마가 되어야 한다.
혈마가 되어서 생기를 끌어쓴다면 그때는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혈기를 일으키면 천기수사는 당장 환혼몽을 꺼내 든다.
천기수사는 선택의 폭이 굉장히 넓다.
“너희들만 온 건 아닐 텐데? 다른 사람은 왜 안 오지? 이놈의 혈마는 감지가 되지 않아서. 혹시 이 주변에 있나?”
천기수사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하하하! 너 하나 잡는데 다른 사람들의 힘까지 필요할까. 우리 둘이면 충분하다.”
“천기수사, 우리도 잡아보지 그래.”
여괴와 판수가 동시에 말했다.
“그러려고. 그러려고 여기 이렇게 나타났잖아. 내가 미쳤다고 아무 일도 없는 데 괜히 나타날 것 같아? 그리고 너희…… 귀무살 아니야? 귀무살이면 방내 어른한테 인사부터 올려야지?”
“후후! 방규를 등진 지 이미 오래되었다.”
“혈천방과 드잡이질을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방규는.”
여괴와 판수는 천기수사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두 사람은 시간을 끌고 있다. 등여산에게 천기수사를 잡을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등여산은 그들에게 미끼가 되라고 했다. 하지만 누가 미끼를 사용할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호발귀를 사용할 것 같기는 한데, 혈마 전원이 달려들 수도 있다.
주변에서 어떤 일이든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주고자 천기수사의 실없는 말장난에 장단을 맞춰준다.
스릉!
여괴가 검을 뽑았다.
“곱게 말하지 않으면 실력으로 잡을 수밖에 없어. 네가 환혼몽을 사용하는 건 알아. 그래서 내가 환혼몽에 당해주려고. 그사이에 너는 죽어.”
여괴가 말했다. 그 순간,
스읏!
판수가 활을 들어 올렸다.
궁충이 사용하던 활과 화살이다.
판수는 능숙하게 강궁을 잡아당겼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널 죽일 수도 있다. 아무리 너라도 혈마가 쏜 화살은 감당하지 못해. 하지만 두 사람의 생사가 걸려 있어서 일단은 봐주려고. 두 사람이 어디 있는지 지금 토설하면 목숨 보장은 확실하게 한다.”
“정말로 날 살려줄 거야?”
천기수사가 장난처럼 말했다.
“네가 왜 우리 앞에 나타났는지 안다만, 네 목적은 이루지 못해. 방금 말했듯이 네놈에게 환혼몽이 있다는 걸 아니까. 아는 독에는 쓰러지지 않아.”
“그런가? 그런데 네 놈 말이야. 내가 왜 천기수사라고 불리는지 알아?”
“……”
여기와 판수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건 내가 천기를 잡을 수 있어서야. 흔히 말해서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하지? 백만 번에 한 번, 천만 번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할 기회를 나는 잡을 수 있어. 그 기회가 지금인 것 같은데. 너희 두 놈은 나한테 잡힌다. 안 믿기지? 후후후!”
“망발이 꽤 치나 친데?”
“크큿! 망발? 그러면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지?”
천기수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괴의 몸이 갑자기 흔들흔들 흔들렸다.
“큭!”
급기야 여괴는 비명을 흘리며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거봐. 너희 나한테 잡힌다고 했잖아. 너도 그 활을 쏘려면 빨리 쏴. 시간 끌면 쏠 힘도 사라져.”
천기수사가 놀리듯이 말했다.
판수는 급히 활을 쏘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크으!”
판수마저 신음을 흘리며 무너졌다.
그가 들고 있던 활에서 화살이 쏘아져 날아갔다. 하지만 천기수사를 향하지는 않았다. 엉뚱하게도 삼 장 앞 땅을 향해서 꼬꾸라지듯 처박혔다.
판수의 두 손이 이미 축 늘어져 버린 것이다.
쒜에엑!
천기수사가 빠르게 다가왔다.
“자! 이제 물건을 수거하러 갈까. 아! 내 정신 좀 봐. 수거하기 전에 할 일이 하나 더 있지. 호발귀! 여기 있지? 알아. 느끼지는 못하지만 있는 건 알겠거든. 그러니 잘 들어. 내가 아주 짧게 몇 마디만 할게.”
천기수사가 주위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놈들 환혼몽에 중독되었거든. 너도 알다시피 환혼몽에 안다고 걸려들지 않는 독이 아니잖아? 알아도 꼼짝없이 당하는 독인데, 더욱이 이놈들은 독을 잘 몰라.”
천기수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다. 판수와 여괴는 독을 잘 알지 못했다.
천기수사는 바람을 등지고 섰다. 두 사람은 바람을 마주 보며 섰다.
천기수사가 손끝만 약간 움직여도 독기가 바람을 타고 앞으로 흘러나간다.
아예 독을 투여하라고 전신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이놈들, 내가 해약을 먹이지 않으면 반 시진 후에는 죽어. 그건 내가 장담해. 그러니까 나라면 누군가가 해약을 먹인 다음에 나타나겠어. 명심하라고.”
천기수사가 말했다.
“아! 노부를 잡으면 될 것 같다고? 그것도 안 되지. 네가 꿈지럭거리기만 해도 노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테니까. 혈마 네 명하고 목숨을 바꾼다면 그것도 뭐 억울하지는 않아.”
말을 마친 천기수사는 거침없이 두 사람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천기수사가 두 사람 앞에 섰다. 물론 그동안 호발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음!”
호발귀는 눈살을 찌푸렸다.
당홍에게는 환혼몽 해약이 없다. 당홍도 환혼몽은 말만 들었지 실제로 본 적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여괴와 판수의 생기가 급격히 미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독에 중독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저런 독기라면 혈기를 극성으로 일으키는 순간 단박에 태울 수 있다.
문제는 환혼몽이 마비 독이라서 당한 자가 스스로 혈기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거다.
누군가가 혈기를 일으킨 후, 다시 거둬내면…… 살릴 수 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살릴 수 없지만, 혈기에 물든 혈마라면 살릴 방도가 있다.
‘치료 방법은 있어.’
호발귀는 천기수사를 내버려 두었다.
그에게 여괴와 판수를 양도한다. 그리고 해자수와 궁충에게 돌아가도록 길을 열어준다.
물론 뒤는 쫓는다.
천기수사는 호발귀를 떼어놓으려고 할 것이고, 여기서 결정적인 싸움을 벌여야 한다.
치고받는 싸움이 아니라 놓치느냐, 쫓느냐 하는 싸움이다.
저벅! 저벅!
천기수사가 두 사람 앞에 섰다. 그때,
스읏!
호발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러 나타나 주었다.
천기수사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재빨리 두 사람을 낚아챈 후, 신형을 쏘아냈다.
천기수사가 도주한다.
천기수사는 혈천방 상승 고수다. 혈천방주와 비견할 수 있다.
당연히 신법도 매우 빠르다. 하지만 지금은 혈마 두 명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
더군다나 쫓아오는 자는 호발귀다. 생기 아니 혈기를 사용한 신법을 펼친다.
슈우웃!
호발귀가 금방 등 뒤까지 들이닥쳤다.
한순간, 천기수사가 풀숲으로 몸을 감췄다.
‘어림없는 수작!’
호발귀는 생기를 놓치지 않았다. 풀숲으로 몸을 감춘다는 것은 육신을 감춘다는 뜻이다. 숨었다.
하지만 혈마 앞에서는 숨지 못한다. 혈마가 생기 감지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나?
생기를 흘리는 한, 혈마의 촉각은 벗어나지 못한다.
스슷! 스스슷!
호발귀는 여전히 천기수사의 생기를 잡아챘다. 일순,
파앗!
생기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호발귀는 움직이지 않았다.
틈!
천기수사에서 사마로 이어지는…… 두 가닥의 생기가 겹쳐지는 틈, 그 틈을 찾아냈다.
그 틈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져서 호발귀조차도 깜빡 속을 뻔했다.
천기수사의 생기가 사라지고 사마의 생기가 피어났다.
사령청공이다!
천기수사는 사령청공을 펼칠 줄 안다. 한순간에 생기를 감출 줄 안다.
동시에 여괴와 판수의 생기도 눌러버린다. 세 사람의 생기가 사라지고 하나의 생기가 피어났다.
더욱이 그 생기는 매우 강렬해서 단번에 주의를 잡아끈다.
단숨에 호발귀의 시선을 빼앗을 만하다.
호발귀는 이런 수법에 넘어갔던 것이다.
이 수에 걸려서 천기수사를 놓아버리고 사마를 쫓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기수사도 아주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
호발귀가 여괴와 판수의 생기에 익숙하다는 사실을 깜빡 놓쳐버린 것이다.
혈마는 모든 사람의 생기를 읽을 수 있지만, 생기와 혈기가 혼합된 사람의 생기는 더욱 진하게 느낀다. 적의가 담긴 생기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맞다.
혈마는 주변에 다른 혈마가 나타나면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자신도 모르게 혈기가 끌어 오르기 때문이다. 단순한 생기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혈기까지 느낀다.
호랑이가 토끼를 만나면 놓아줄 수 있다. 하지만 같은 호랑이를 만나면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당장 긴장감을 느낀다.
여괴와 판수의 생기는 분명히 사라졌다. 하지만 혈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 혈기를 느끼지 못했다면 이번에도 당할 뻔했다.
쒜에에엑!
생기가 빠르게 멀어진다.
이 순간, 호발귀는 생기를 전부 놓아버렸다. 그리고 두 사람이 뿜어내는 혈기만 쫓았다.
혈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여전히 제 자리에 머물러 있다.
‘후후! 이런 수에 당했다니.’
그 당시, 천기수사는 해자수와 궁충을 잡지 않은 상태였다. 만약 지금처럼 두 사람은 잡은 상태였다면…… 그때도 생기를 쫓아갔을까? 아니, 쫓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혈기를 감지했을 테니까.
‘천기수사, 잡았어.’
호발귀는 슬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는 동료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