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492화 (492/500)

第九十九章 해구부우(解救俘友) (2)

쉬잇! 쉬잇! 쉬위익!

호발귀 일행이 빠르게 질주해 왔다.

선두에 선 사람은 도천패다. 그는 취운산에 들어서기 무섭게 길을 잘 아는 사람처럼 일행을 인도했다.

쉬이잇!

거침없이 절곡 사이를 헤치고 날아올랐다. 계곡을 건너뛰고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타다닥! 타탁!

다른 사람도 도천패의 뒤를 바로 쫓았다.

그들 모두 험한 산길을 평지처럼 내달릴 수 있는 신법을 지녔다.

그 누구도 힘들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사실, 혈마들에게는 산과 평지의 개념이 사라졌다.

쉬이잇!

도천패가 크게 도약했다가 널찍한 바위 위로 내려섰다.

터다탁! 타탁!

모두 도천패의 등 뒤로 내려섰다.

“저기가 제구비동(第九秘洞)이야.”

도천패가 손가락을 들어서 커다란 암동을 가리켰다.

“음! 정말 은밀한 곳에 있네.”

당홍이 말했다.

제구비동은 은밀한 곳에 있다고 할 수 없다.

하얀 절벽 바위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도천패가 내려선 곳까지 오기만 하면 누구든 쉽게 발견할 수가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단박에 알아볼 정도로 구멍도 크다.

물론 이곳까지 찾아오기는 무척 힘들다.

취운산에 들어온 후에도 거의 십 리 가까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산굽이를 일곱 번인가 여덟 번인가 휘돌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척 험하고 깊은 곳이다.

그런 사실을 말해주기라도 하듯이 주위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생기는 다수 잡히고 있지만, 사람의 생기는 없다. 맹수들만 득실거리는 험곡이다.

“제구비동 입구가 환히 열린 걸 보면 이미 털린 거죠?”

홀리가 말했다.

“그럴 겁니다. 원래는 절벽 바위와 똑같은 색으로 가려져 있는데, 저렇게 열려있는 걸 보면…… 후후! 아마 동전 한 닢 남아 있지 않을 겁니다.”

도천패가 말했다.

투심문 비밀 보고는 모두 열 개다. 그중 한 개만 털어도 천하의 반을 살 수 있다는 말이 나돈다.

그만큼 많은 재화를 은밀히 숨겨 놓았다.

그중 하나가 공개되었다.

물론 제구비동을 공개한 사람은 투심문 문주다. 호발귀 사부.

혈천방에 끌려와서 결국 제구비동 보고까지 열어주었다. 웬만한 고문쯤은 눈도 깜짝하지 안 하고 이겨낼 사람인데……

하기는 고문에 장사가 따로 있나. 그 많은 세월이 지났으니 입을 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언니, 근처에 독초 자생지가 될만한 곳은 보여요?”

등여산이 물었다.

“흠!”

당홍이 미간을 찡그리며 주변을 살폈다.

독의가 만든 환혼몽에는 무려 칠백 가지 이상의 약재가 배합된다.

그중에서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약재가 네 개인데 양귀비 진액, 적각사(赤角蛇)의 독액, 독거미인 홍주(鴻蛛)를 먹고 죽은 두꺼비 반섬(斑蟾), 그리고 마지막으로 육식초(肉食草)인 점교망초(粘膠芒草)가 있어야 한다.

이 중에 가장 구하기 힘든 것이 점교망초다.

양귀비는 재배할 수 있고, 적각사는 광동(廣東)에서 다수 발견된다.

홍주와 반섬도 구하기 쉬운 재료는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등장하기는 한다.

점교망초는 중원 식물이 아니다. 남만을 지나고 천축을 지나서 더 아래로 내려가서 뒤져야 하는 독초다.

크기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발견하기도 쉽지 않다.

당홍의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도 취운산에 점교망초 재배지가 있을 것이다.

바닷가라서 습도가 높고, 태양 빛이 내리쬐는 곳이니 딱 어울린다.

정말로 이곳에 점교망초 재배지가 있다면 천기수사는 반드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두 가지가 있다.

점교망초를 다수 수확해서 단약 형태로 제련해 놓았다면 미련 없이 떠난다. 혈마가 들이닥칠 것이 너무 뻔한 곳이니 한 걸음도 옮기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더는 점교망초가 필요치 않을 때다.

사마 제련에 관한 모든 부분을 포기했거나, 혈마를 상대할 필요가 없을 때도 돌아오지 않는다.

“흠! 주변 지형으로만 보면 저기가 딱 좋아. 저곳보다 더 좋은 재배지는 없을 것 같아.”

당홍이 손을 들어서 절벽 바위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곳에 풀 몇 포기가 보였다. 눈에 보이는 풀이 점교망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절벽 틈에 풀이 자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뜨거운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점교망초가 맞는 것 같은데? 풀잎 색깔이 보랏빛이야. 은빛도 보이고.”

호발귀가 거들었다.

“그럼 일단 여기가 점교망초 재배지라고 하고…… 천기수사가 저 동굴에서 사마를 제련한 거네요. 흠! 동굴 입구를 환히 개방해 놓은 것을 보면 여기 왔다고 해도 오래 있을 생각은 없는 것 같고…… 이미 떠났을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여괴, 판수님.”

등여산이 여괴와 판수를 불렀다.

“넷! 주모님.”

두 사람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

“두 분은 내려가서 해자수님과 궁충님을 찾아요. 환혼몽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조심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쉬잇! 쉬이잇!

두 사람은 대답과 즉시, 계곡을 향해 신형을 쏘아냈다.

“오면서 무슨 얘기를 한 거야?”

당홍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두 분에게 미끼가 되어달라고 했어요. 자, 이젠 가가 차례. 잘못하면 저 두 분까지 납치되니까 충분히 조심해.”

등여산이 호발귀를 보며 말했다.

“두 가지?”

“응. 두 가지.”

“알았어. 내 있는 힘껏 조심할게.”

쉬이잇!

호발귀가 두 사람을 쫓아서 바로 신형을 띄웠다.

“조심해야 할 것 두 가지? 그게 뭔데?”

당홍이 물었다.

“하나는 천기수사에게는 혈마를 알아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뭔지는 모르겠는데. 그 눈에 걸리지 않아야 하고요. 두 번째는 환혼몽이에요. 환혼몽은 인간에게는 무조건 작용해요. 혈기가 있든 없든. 그러니 미끼로 나선 여괴님과 판수님을 잡으려고 하겠죠? 혈마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니까. 하지만 사마를 보내서 호발귀를 유인한 걸 보면…… 천기수사도 호발귀는 꽤 의식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미끼를 공격하기 전에 한 번쯤 찔러볼 거라는 거죠.”

“그 수에 넘어가지 말아야겠네?”

“네.”

“거참, 우리도 미끼 노릇할 수 있는데.”

길성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길성과 착심은 같은 귀무살이면서도 등여산에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미끼는 두 명이면 돼요. 많으면 오히려 안 올 가능성이 있어요. 한 명이라면 의심할 거고. 우리가 두 명씩 짝 맞춰서 움직인 것을 봤으니까. 그래서 두 분한테만 말한 거예요.”

“그럼 우린 여기 앉아서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귀검이 바위에 털썩 앉았다.

당홍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독초 재배지를 자세히 살폈다.

자생지인지, 재배지인지 모르겠지만…… 절벽 한가운데 점교망초가 있는 것 같기는 하다.

당홍에게는 생기로 약초를 선별하는 눈이 있다.

혈마가 되고, 혈기를 알게 된 덕분에 약초와 독초를 판별하는 능력도 한결 뛰어나게 발달했다.

다른 사람들은 길들이지 않는 능력이지만 당홍은 특히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썼다.

식물의 생기를 오감으로 읽어낼 수 있다.

츠으읏!

바람을 타고 약초 냄새들이 풍겨왔다.

점교망초는 동물을 유인하기 위해서 진액을 뿜어낸다. 동물들이 좋아하는 냄새를 풍기는 거다.

이 냄새는 향이 무척 강해서 바람만 살짝 불어도 코를 아리게 한다.

당홍은 그 향기를 맡아봤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을 수도 있다. 이미 취운산에는 점교망초가 한 뿌리도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천기수사가 모든 독초를 다 캐내서 제련했다면 없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당홍은 아직 있다고 확신한다.

자신이 독인이라면 독초 자생지를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 자생지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마찬가지다.

뿌리를 캐내지 않는 한 독초는 계속 번식한다. 가장 자라기 적합한 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씨앗을 거둬서 주변에 뿌려주면 군락을 이룰 수가 있다. 점교망초를 마음껏 쓸 수 있다.

천기수사는 틀림없이 후자를 택했을 거라고 본다.

끙! 끙끙! 끙!

당홍은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점교망초 냄새를 맡았다.

코를 아리는 듯한 냄새가 풍겨오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인 것 같기도 하다.

‘맞아! 이건 점교망초 냄새야!’

당홍은 미미하게 풍기는 냄새를 맡은 후, 십분 확신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기가 사마 제련 장소야.”

* * *

쉬이이잇!

주치균은 빠르게 협곡 안으로 질주했다.

“궁충님! 궁충님!”

“해자수님!”

여기저기서 사람 부르는 소리가 울렸다.

호발귀를 비롯한 모든 혈마가 두전곡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재빨리 달려왔는데, 어느새 혈마가 먼저 와서 궁충과 해자수를 찾고 있다.

쉬이이잇!

주치균은 절곡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혈천방주가 천살단주에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두전곡으로 잠입할 수 있는 비밀 길과 천기수사가 기거하는 장소에 대해서 소상하게 들었다.

물론 천기수사가 취운산 두전곡으로 돌아왔다는 전제하에서 한 말이다.

주치균이 계속 신형을 쏘아내어 계곡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갑자기 옆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탁! 하고 울렸다.

“웃!”

주치균은 깜짝 놀라서 반대쪽으로 신형을 튕겨냈다. 그리고 즉시 반격 태세를 갖췄다. 그때,

스읏!

주치균 앞으로 천살단주가 나타났다.

“찾아왔구나.”

천살단주는 올 줄 알았다는 듯 놀라지도 않았다.

“단주님.”

“잘 왔다. 보니 암약혼기는 제대로 수련했구나.”

“아직 미미합니다. 혈천방주를 처단했는데, 제 무공을 보고는 칠성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주치균도 태연히 말했다.

이 사람은 혈천방주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한다.

“후후! 이상하냐?”

“뭐가 말입니까?”

“너는 십 성 수련했는데, 남이 칠성이라고 하니 이상하냐는 말이다.”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꼭 뭣에 기만당한 느낌도 들고.”

“후후! 말에 뼈가 있군.”

천살단주가 품에서 비급 한 권과 신패 하나를 꺼내 주치균에게 건네주었다.

“받아라.”

“이건……?”

주치균은 무심결에 비급과 신패를 받았다.

비급에는 혈천삼무(血天三武)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엇! 이건!”

주치균은 비급 제목을 본 후,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흘렸다.

혈천삼무는 혈천방 방주가 수련해야 하는 세 가지 무공이 기록되어 있다. 혈검혈우(血劍血雨)라는 검초, 혈심공(血心功)이라는 마공, 그리고 사령청공이다.

“신패는 혈천패(血天牌)라고 한다. 혈천방주의 신물이야.”

“이걸 왜 제게?”

“잘 들어. 사마든 혈마든 뭔가를 연구하려면 세상을 뒤집을 만한 돈이 필요해. 한두 푼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걸 할 수 있는 곳이 딱 세 군데 있지. 혈천방, 투심문, 황궁. 이 세 곳만 그만한 돈을 지불할 수 있어.”

“저희 천살단 재력도……”

“천살단 돈을 사마 연구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니? 후후! 천살단 재력은 강하지만 비밀자금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어. 그리고…… 사실, 천살단은 충분한 재원도 없다. 천기수사도 혈천방 지원을 받았지만, 투심문 비고를 연 후에야 사마를 비약적으로 제련해냈지.”

“그렇습니까?”

“혈천방도 밑도 끝도 없는 연구에 계속 자금을 투입할 수는 없으니까. 후후!”

“그런데 그런 말을 왜 제게……?”

“여기서 살아나가면 혈천방주가 되어라.”

“네?”

“암약혼기에 대해서 회의가 일어날 거다. 방금 뼈있는 말을 했는데, 혈천삼무를 읽어보면 나머지 삼성을 어떻게 키울지 너 스스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맞다. 암약혼기에는 마공이 깃들여야 제대로 된 무공이 된다. 너는 그 부분이 빠진 것이고.”

“그러면 단주님도?”

“후후! 나? 나는 암약혼기에 천음마공(天陰魔功)을 섞었다. 그렇게 십 성을 이뤘어. 어쨌든…… 혈천방주가 죽었듯이 나 역시 이 싸움에서 죽을 것이다.”

꿀꺽!

주치균은 마른 침을 삼켰다.

지금 단주가 하는 말은 한 점의 가식도 없다.

진실만 말하고 있다. 그러면 이게 뭔가? 도대체 단주는 무슨 생각인가?

“혈천방주와 내 시대는 이제 끝난 거지. 천살단은 천원주에게 맡겼으니 잘 꾸려나갈 것이다. 너는 돌아가서 비어있는 혈천방을 접수해. 혈천방의 자금과 황궁의 자금 가능하다면 투심문의 자금까지 끌어써라. 그러면 혈마를 연구할 수 있을 거야.”

“후후! 저는 그런 연구에는 소질이 없습니다. 그리고 혈마를 연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주치균이 웃었다.

“내가 여기를 왜 왔을까? 혈마를 빼돌리기 위해서 왔다. 천기수사는 혈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괴, 판수를 공격할 거야. 천기수사가 움직일 때 나도 움직인다. 해자수나 궁충, 두 명 중 하나를 낚아채서 넘겨줄 테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주해라. 혈마에게 잡히면 너 역시 죽어.”

천살단주가 주치균의 어깨를 툭툭 쳤다.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불로불사, 무적군림. 가능하다고 본다. 이건 내 신념이야. 혈천방주의 신념이기도 했다. 우리 생명은 끊어져도 신념만은 끊어지지 않을 거야. 호발귀나 책사, 도천패 같은 자들이 혈마의 비밀을 알려줄 것 같으냐? 절대 알려주지 않아. 그들의 육신을 헤집어서 직접 알아내야만 한다. 캐내라. 반드시 캐내서 불로불사를 이루고 혈마를 수하로 부리면서 천하를 질타해봐. 가자!”

쉬이이잇!

천살단주가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주치균은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이게 뭐지? 천살단주와 싸우게 될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혈마를 줄 테니 연구하라니. 혈천방주가 되라니. 천살단 살단주가 혈천방주?

저들이 가만히 있기나 하나?

하지만 지금은 천살단주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앗! 저놈!”

“천기수사! 궁충님을 내놔!”

혈마와 천기수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쉐에에엑!

주치균은 천살단주를 바로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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