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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90화 (490/500)

第九十八章 천기수사(天氣修士) (5)

휘이잉!

찬 바람이 분다.

혈천방주는 혈마들이 떠나고 난 빈자리에 서서 텅 빈 하늘을 쳐다보았다.

주위에는 사마들이 죽어있다.

살았을 때는 괴물이었는데 죽으니 인간이 되었다.

죽어있는 사마 모습을 보고 생전의 괴물을 떠올릴 사람은 없다. 누가 봐도 웬 무인들이 죽어있구나 하고 생각할 것이다.

혈천방주의 눈에는 사마의 모습이 너무 멀쩡해 보였다.

혈마도 마찬가지다. 살아서는 말로 설명하지 못할 괴물이지만 죽으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그렇다. 혈마는 확실히 괴물 중에서도 상 괴물이다.

세상에! 자신이 여인 두 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다니.

“그것참! 사람 외롭게 됐네.”

혈천방주는 피식피식 웃었다.

귀검이 자신을 살려주었지만…… 살아났다고 해봤자 막상 갈 곳이 없다.

물론 혈천방으로는 돌아갈 수 있다.

혈천방에는 아직도 수많은 수하가 있다. 귀문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눈 꼭 감고 일 년만 기다리면 귀무살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들을 데리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얼핏 보면 전혀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다. 엄청난 변화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앞으로는 천기수사가 자신에게 사마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 정작 혈마가 나타났을 때 대응할 방도가 없게 된다.

천기수사는 사마를 내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혈마에 대한 단초도 잡았다.

혈마 두 명도 납치해갔다.

사마 수십 명을 데리고도 혈마를 납치하지 못했는데, 아주 간단히 끌고 갔다.

이미 혈마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

그리고는 사라졌다. 완전한 잠수다. 천기수사가 숨기로 작정하면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호발귀가 취운산으로 찾아갔지만 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호발귀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찾으니 찾을 수 있으려나?

어쨌든 천기수사는 해자수와 궁충을 연구할 터이고, 앞으로 일 년이나 이년쯤 지나면 혈마 군단을 이끌고 나타날 것이다.

천기수사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그때 제일 먼저 공격당할 곳이 혈천방이다.

아니, 혈천방주라고 해야 하나? 귀무살이 혈마 앞을 막는다고? 어림도 없다.

귀무살은 혈마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한다.

혈천방 본방이 찢기는 것을 봤지 않나. 호발귀 한 명에게 팔백 명이 죽어 나갔다.

순식간에. 누구도 혈마 앞에서 무용을 자랑할 수 없다.

그런 혈마가 군단이 되어서 날뛴다면 무슨 수로 당하나.

혈천방으로 돌아간다 한들 기껏해야 일이 년 정도 영화만 누리다가 끝난다. 처참하게.

혈천방주가 바라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혈마를 손에 쥐고 불로불사를 연구하는 거였다.

무적군림의 기틀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한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나.

혈천방주는 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은 김에 좀 쉬었다가 갈 셈이다. 급한 것도 없지 않나. 그때였다.

저벅! 저벅!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혈천방주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천살단주? 후후!’

혈천방주는 웃었다.

천살단주가 매우 여유롭게 걸어오고 있다.

“참 때도 잘 맞추네. 어떻게 이런 기회는 놓치질 않네. 후후! 누가 귀신 아니랄까 봐.”

혈천방주가 중얼거렸다.

원래 천살단주와 혈천방주는 숙적지간이다. 양쪽 모두 기회만 있으면 상대방을 베려고 이를 갈았다.

거대 집단의 두 수장이니 만나서 다담 정도는 나눠도 되지 않냐고? 웃기는 소리!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할 거리가 뭐가 있나.

천살단주가 때맞춰서 걸어온다.

호의를 가지고 나타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니, 천살단주가 이 자리에 나타난 것부터가 좋지 않다. 이것은 그가 혈마를 주시해 왔다는 뜻이다.

혈마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자신이 사마 부리는 법을 보고, 그리고 기회가 닿았다 싶으니 즉각 찾아왔다.

츠읏!

혈천방주는 진기를 끌어 봤다.

역시 아직은 진기가 운집되지 않는다. 귀검이 봉혈을 풀어주었지만, 등여산과 홀리의 점혈술이 워낙 고절했다.

더욱이 양쪽 문파의 점혈을 동시에 당했다.

경맥은 풀렸지만, 진기가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적어도 네다섯 시간은 필요하다.

네다섯 시진……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라면 춤 몇 번 보면 지나갈 시간이지만…… 지금은 목숨이 지옥에 들락거려도 수백 번은 들락거릴 시간이다.

다른 때는 짧은 시간이 오늘을 왜 이토록 길게 느껴지는지.

‘오늘 내 운명은 참으로 모질구나. 후후!’

혈천방주는 속으로 웃었다.

“움직이기가 곤란한가 보지?”

천살단주가 다가오며 말했다.

“다 알면서 내숭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나보다도 단주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혈천방주는 전혀 내색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만났으니…… 어떻게? 싸워보기는 해야지? 사령청공 대 암약혼기. 한 판 붙을 수 있는 무공들인데.”

“훗!”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백중지세다. 지금 상태에서 싸우면 틀림없이 질 것이다.

질 게 뻔한 싸움을 뭐 하려 하나.

“엄한 소리 하지 마.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 놀리는 건 못된 버릇이야. 용건이나 말하지. 뭐 때문에?”

혈천방주가 천살단주를 쳐다봤다.

“호발귀에게 했던 얘기, 나한테도 들려줬으면 좋겠는데.”

“무슨 얘기? 서로 한 얘기가 너무 많아서.”

“방주, 우리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이제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지. 나도 이 일에 천기수사가 개입됐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있어. 난 자네가 주고, 천기수사가 부인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 자네가 부였군. 천기수사가 주였다면 이건 정말 곤란한데.”

“단주도 곤란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줄 아는군.”

“천기수사를 막을 방법이 없잖아.”

“말은 똑바로 하지. 막는 건가, 제압할 생각인가?”

“제압. 그런데…… 내가 천기수사를 제압한다면 자네한테도 기회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러니 협조하지. 호발귀보다 앞서서 가장 빨리 천기수사에게 도착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게.”

혈천방주가 피식 웃었다.

“앉지. 천기수사에 관한 얘기는 길어.”

혈천방주가 앞자리를 툭툭 쳤다.

천살단은 어차피 천기수사에 관한 얘기를 듣지 않으면 돌아서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하지만 천살단에도 혈천방 못지않은 고문 수법이 있다.

마공관에 소장된 고문 수법들은 잔혹 무비 하다.

귀검의 고문은 육체에 한한다. 그러니 이를 악물면 버틸 수 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견뎌낸다.

호발귀나 천살단주가 행하는 고문은 정신을 짓이긴다. 혈기에 의한 고문, 약물에 의한 고문……

두 고문은 다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열게 만든다.

이런 고문은 누구도 버티지 못한다.

고문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횡설수설 여러 가지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런 말을 쏟아내다 보면 알고 있는 사실들이 무절제하게 튀어 나간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적정선에서 말해주는 게 낫다.

혈천방주는 천기수사에 대한 부분을 말해주었다.

천살단주는 천기수사를 알고 있다. 오래전, 천기수사가 혈천방 책사로 활동할 무렵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그가 사라진 내막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다.

아니, 천살단주는 천기수사가 죽었다고 공표했을 때, 비웃음을 흘린 사람 중에 하나다

“취운산 두전곡으로 가보게. 내가 거기서 사마를 데리고 왔는데 다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어. 단주 같아도 안 가지? 하지만 잠깐이라도 들린다면 바로 그곳이야.”

“두전곡. 흠! 호발귀보다 먼저 갈 수 있을까?”

“호발귀는 두전곡은 알지 못해. 취운산만 알지. 후후! 얼마나 자신 있는지 곡은 묻지도 않더군.”

“그렇군.”

천살단주가 일어섰다.

“어쨌든 이제 혈천방은 이 싸움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고…… 충고 한마디 할까?”

천살단주가 혈천방주를 쳐다봤다.

“일어서지? 나랑 같이 좀 걷자고. 이게 내 충고야.”

“후후!”

혈천방주가 웃었다.

“내 비록 이빨 빠진 호랑이지만 등을 노리는 칼까지 모를까. 그런데 이 친구 빨리도 나왔네. 마공관 수련이 최소한 십 년 이상 걸릴 줄 알았는데.”

“그만한 기재 아닌가.”

“기재일지 배운 게 없는지. 후후!”

혈천방주가 묘한 소리를 했다.

“아무래도 내 충고가 잘못된 것 같군.”

천살단주가 차게 웃었다.

“가보시게.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것 같으니까. 미련도 없어. 이 정도면 잘 놀다 가는 거지.”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잘 가시게.”

천살단주가 돌아섰다.

슛!

검이 날아온다.

‘이런 미숙한!’

혈천방주는 진기를 끌어내어 반격하고픈 마음이 생겼다.

검이 굉장히 미숙하다. 적어도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면 천살단주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파공음이 흐트러진다. 진기가 정순하지 않다.

혈천방주는 끌어올리려던 진기를 다시 탁! 풀어버렸다.

슛! 퍽!

검이 등을 뚫고 들어와 심장을 깼다.

“큭!”

혈천방주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눈은 허공에 두었다.

이미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단지 검이 너무 무디다는 느낌만 들뿐.

‘차라리 귀검의 검이 나을 뻔했어.’

“후후! 암약혼기를 성취했군. 한데…… 어쩐지 출관이 빠르더라. 이제 겨우 칠성인 공부로 뭘 어쩌겠다고. 후후! 나중에 천살단주와 싸울 순간이 오거든 절대로 싸우지 마라.”

혈천방주가 말했다.

“그렇지? 그런데 그런 건 당신만 알고 있는 게 아니야.”

검을 찌른 자, 주치균이 말했다.

“그런가?”

혈천방주가 여전히 눈을 허공에 둔 채 말했다.

“후후! 세상은 무공으로 사는 게 아니지. 방주의 무공이 나보다 나은들 어때? 정작 죽는 사람은 방주잖아.”

“그렇군. 후후! 모양도 없고, 재미도 없어. 역시 죽음은 귀검이 제일 맛깔나게 일으켜. 후후!”

혈천방주는 쓴웃음을 마지막으로 고개를 툭 떨궜다.

슈웃!

주치균은 검을 뽑았다.

‘이게 칠성이라고?’

현재, 자신은 문어처럼 흐느적거린다. 뼈가 모두 녹아서 없어져 버렸다.

죽음의 마학, 반보를 내딛기 위해서는 비명을 수천 번은 내질러야 하는 고문을 견뎌냈다.

그렇다. 그것은 무공 수련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고문이었다.

고문을 한 자들은 전문적인 고문술사다.

천살단주가 거뒀고, 지금까지 숱한 사람을 고문하면서 인체 변형 기술을 탐구해온 자들이다.

단주를 원망할 것은 없다. 단주도 그들로부터 암약혼기를 얻어냈다.

그러니 고문만 당하고 주저앉는다면 그것은 자신의 재질이 부족한 탓이다.

물론 주치균은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이를 악물며 뼈의 변형을 지켜봤다.

부서진 뼈로 투입되는 약물들…… 그리고 약한 듯하면서도 강하게 형성되는 뼈를 지켜봤다.

마공관에 남겨진 마공은 남김없이 배웠다.

‘더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서 출관했다.

천살단주는 오 년 정도 더 있으라고 했다.

강호에서 벌어지는 일은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버티라고만 했다. 이게 다 널 위한 것이라고.

천원주를 믿는다. 그녀가 성심으로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으로는 이미 암약혼기가 십 성 혹은 십이 성에 이르렀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부족하다면…… 공부에 흠결이 있는 것이다.

이런 흠결은 오 년 혹은 십 년 이상 수련한다고 해서 성취되지 않는다.

천살단주, 그리고 마공관에서 수련을 빙자해 고문하던 자들…… 모두가 숨긴 게 있다.

천원주는 암약혼기에 대해서 소상히 알지 못한다. 그러니 그녀가 숨긴 것은 아니다.

이런 판단이 들자, 마공관에 있던 자들을 모두 베었다.

암약혼기는 이제 대가 끊겼다.

그렇게 수련한 암약혼기…… 지금 이 자리에서 혈천방주가 정확한 정도를 말해주었다.

칠 성! 겨우 칠 성!

혈천방주가 한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단주가 숨긴 게 많네. 역시 너구리라니까. 다 주는 척하면서 다 빼돌려. 후후!”

주치균은 웃었다.

그렇다면 이쪽도 대처방법이 있다.

혈천방주의 말이 맞다면 자신은 단주의 상대가 안 된다. 그러면 당분간 고개를 숙이면 된다.

별로 어렵지 않다. 결국은 단주도 방주처럼 자신의 손에 죽을 거다.

주치균은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천살단에 있을 때, 자신이 검벽주일 때 천살단주는 친할아버지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고 죽이는 사이로밖에 안 보인다.

전혀 정이 남아 있지 않다.

쉬잇!

주치균은 취운산 두전곡으로 신형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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