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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89화 (489/500)

第九十八章 천기수사(天氣修士) (4)

생기가 흐르다가 끊어지고,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진다.

‘이걸 인위적으로 할 수 있다면 확실히 사마보다는 발전된 단계라는 건데……’

호발귀는 계속해서 생기를 쫓아갔다.

쉬이잇! 쉬잇!

불규칙한 생기를 가진 자는 한적한 곳에 이르자 신형조차 숨기지 않고 내달렸다.

호발귀는 묵묵히 쫓아갔다.

어쩌면 이번 밀행으로 사마와의 싸움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등여산의 생각처럼 저자가 사마를 만들어냈다면, 오늘로써 모든 사마는 종식한다.

상대가 은거지로 안내할 때까지 조용히 뒤따른다.

하지만 앞선 자를 쫓던 호발귀는 곧 무엇인가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기가 불규칙한 것은 좋은데, 너무 미약했다.

사라질 때는 사마, 드러날 때는 인간이어야 하는데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마치 독에 짓눌려서 잔뜩 찌들어버린 혈맥처럼 보였다.

혈마가 느끼는 생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단순한 기운이 아니다.

엄청난 기운을 느낀다.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거대한 기운으로 감지된다.

그런데 자신이 쫓아가는 생기는 너무 미약하다.

‘혹시 사마?’

쫓는 자가 사마는 아니리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로 사마를 쫓고 있는 것이라면? 자살 공격에서 떨어져나온 사마라면?

계속 따라붙을까, 아니면 길을 막고 확인해볼까.

‘아무래도 생기가 너무 미약해. 사마가 흘리는 생기가 딱 이 정도였어.’

호발귀는 사마인지 아닌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쉬이이이잇!

생각이 미치자 곧바로 행동이 뒤따랐다. 단숨에 쫓는 자를 앞질러서 길을 막았다.

쒜에에엑!

상대방도 즉시 반응했다. 호발귀가 길을 막자 급히 몸을 틀어서 옆으로 도주하려고 했다.

그 순간, 호발귀는 상대를 뚝뚝이 봤다.

약물에 절여져서 검게 변색한 피부, 갈색으로 물든 눈, 검은 손톱…… 사마다!

“하아!”

호발귀는 탄식을 쏟아냈다.

자신은 분명히 우각 부는 자를 찾아냈다. 그를 혈기로 묶었고, 지금까지 쫓아왔다.

그런데 우각 불던 자가 느닷없이 사마로 뒤바뀌어 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뭔가에 당한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당했는지 모르겠다.

‘사마 조정자를 쫓았는데…… 언제 바꿨지? 혈기로 엮어놓은 생기를 바꿔치기해?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좋지는 않아. 아주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어.’

스릉!

호발귀는 검을 뽑았다.

상대가 사마로 확인된 이상, 벤다. 사마는 생존해서는 안 된다. 약으로 제련되어서 인성이 사라지고 흉성만 남았다.

가가가각!

검이 사마를 훑고 지나갔다.

“끼욱!”

사마는 괴소를 내지르며 쓰러졌다.

호발귀는 검에 묻은 피를 허공에 떨쳐버리고 곧장 뒤돌아섰다.

홀리에게 혈천방주를 잡으라고 말했는데, 거기서 탈이 생겼을까?

아니면 사마 무리가 자살 공격을 해왔는데, 거기서 탈이 생겼을까. 어느 쪽에서든 탈은 생겼다.

쒜에에에엑!

호발귀는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서 되돌아갔다.

“해자수님과 궁충이?”

호발귀는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환혼몽은 호발귀도 안다. 독의에게 직접 전수받아서 제련할 줄도 안다. 물론 해독도 가능하다.

당홍처럼 독섬칠공을 운용하면 쉽게 해독한다.

지금 호발귀 몸에는 독섬칠공이 완전히 녹아있다.

역천금령공을 사용하듯이 독섬칠공도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자신만 이곳에 있었어도 두 사람이 납치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반대로 말하면 두 사람을 납치하기 위해서 자신을 유인했다고 볼 수도 있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혈천방주에게 걸어갔다.

“방주. 우리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호발귀는 매우 침착하게 말했다.

일단 혈천방주는 네 번째 우각을 분 자가 누군지 말해야 한다. 모른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그자의 우각을 들은 후, 바로 자신의 우각을 버렸으니까.

사마에 대한 통제권을 단숨에 넘겨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사이다.

“후후후! 놀라운 일이야. 혈마도 납치되나? 하하! 난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혈천방주가 사뭇 즐거운 듯 활짝 웃었다.

비록 마혈이 제압되어 있지만, 돌아가는 사정은 한 눈에 읽을 수 있지 않나.

혈마가 단숨에 두 명이나 납치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천기수사…… 후후! 역시 당신다워.’

혈천방주는 누가 두 사람을 데려갔는지 안다. 어디로 데려갔는지도 짐작한다. 하지만 입을 열어서 말해줄 생각은 없다. 어차피 자신의 운명은 끝났으니까.

“난 고문을 할 거야.”

호발귀가 차분히 말했다.

“내 사람을 데려갔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해. 그래서 지금부터 철저히 짓이기려고. 당신이라는 사람. 혈기로 진기를 칠 건데, 고통이 상상 이상일 거야. 장담해.”

스읏!

호발귀가 손을 들어 올렸다.

“기대되는군. 어떤 수법일지 모르겠지만 내 입을 열게 한다면 대단한 거지. 해봐.”

혈천방주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때, 귀검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주군, 방주를 제게 넘겨주시지요.”

호발귀가 귀검을 쳐다봤다.

“저희 귀무살에게는 죽은 자도 입을 열게 하는 독수(毒手)가 있습니다. 아마 방주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독형칠수(毒刑七手)라고 하는데.”

귀무살이 말을 끝맺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후후후!”

혈천방주는 독형칠수라는 말에 가는 웃음을 흘렸다.

귀검이 말했다.

“대신 주군,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혈천방주, 목숨을 살려주시기 바랍니다.”

“빚이 있나?”

“아무리 그래도 귀무살이 모시던 주인, 목숨 한 번은 살려줘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부탁드립니다.”

귀검이 웃었다.

“좋아요. 두 마디만 하면 풀어주죠.”

호발귀 대신 등여산이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주모.”

귀검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번이 아니면 절대 들을 수 없는 말이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보내지 못해요. 첫째, 해자수님과 궁충을 납치한 사람이 누구며 어디에 사는가. 두 사람을 찾을 방도는 무엇인가? 둘째, 강하에서 납치한 호발귀 사부는 어디 있나? 이 대답만 내놓으면 혈천방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낼게요.”

등여산이 약조했다.

독형칠수는 매우 잔혹하다.

일단 고문이 시작되면 악밖에 남지 않는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쪽과 더욱 잔혹하게 고문을 가해서 입을 열려는 쪽만 남는다. 중간은 없다.

웬만한 고문은 중간에 타협도 하고 구스르기도 한다. 하지만 독형칠수는 끝장을 보고야 만다.

고문을 가하는 쪽도 당하는 쪽도 중간에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독형칠수가 너무 잔인하다. 양쪽 모두 선을 넘었다.

당연히 독형칠수가 끝나고 나면 당한 사람은 폐인이 된다.

혈천방주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멀쩡하지만, 곧 단전이 망가지고 경맥이 뒤틀린 폐인이 된다.

척! 척! 처억!

귀검이 날이 매우 얇은 면도를 늘어놓았다.

독형칠수 중 첫 번째 적피설화(赤皮雪花)를 준비하는 중이다.

적피설화는 살갗을 아주 얇게 저며낸 후, 그 위에 가는 소금을 뿌리는 것이다.

그러면 소금과 피부에 배어 나온 핏물이 섞여서 눈꽃을 만들어 낸다.

말은 쉽지만 정작 고문을 당하면 용암 속에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이 일어난다.

귀검이 혈천방주를 쳐다봤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묻고 대답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다.

“방주, 그 사람…… 천기수사입니까?”

귀검이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후후후! 천기수사는 이미 삼십 년 전에 죽었잖아. 새삼스럽게 천기수사는 왜?”

“방주, 내가 독형칠수를 먼저 펼치겠다고 한 것은…… 방주를 위해서입니다.”

“나도 독형칠수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건 버티겠지만 주군이 하시겠다는 혈기격타는 견디지 못합니다. 정신이 망가지죠. 안에 든 말을 모두 토해낸 후, 정신이상자가 되어서 버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이것을 들고나온 것인데, 말하지 않겠다면 굳이 사용할 생각은 없어요.”

“음!”

혈천방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도 귀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호발귀가 혈기로 머리를 때리면 정신이상자가 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말은 맞을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도 낱낱이 토할 것이고.

등여산은 귀검을 봐서 사정을 봐준 것이다.

“천기수사…… 후후! 사람 명줄이 꽤 길지. 웬만해서는 끊기지 않아. 맞아. 천기수사.”

혈천방주가 말했다.

“취운산이 지척인데, 혹시?”

“맞아. 취운산에 있어. 하하! 귀검, 취운산이 호발귀의 투심문 십 대 보고 중 하나라는 것은 아나? 사마를 만든 자금이 바로 투심문에서 나왔다고. 하하하!”

혈천방주가 웃었다.

두 사람은 다담이라도 나누듯 나직이 말을 주고받았다.

호발귀의 사부를 천기수사가 끌고 갔는데, 아마도 죽었을 것이라는 점도 말했다.

천기수사가 혈마를 만들 수 있는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

혈천방주는 허심탄회하게 모든 말을 했다.

등여산에게 잡히는 순간, 혈천방주는 이미 방주직에서 퇴위 된 것이나 진배없다.

이대로 혈천방으로 돌아가더라도 돌아오는 것은 역도(逆刀)다.

“천기수사가 취운산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모르지. 사마를 데리러 갈 때 두어 번 가봤나? 그때마다 장소를 바꿨어. 취운산 사마도 이제는 씨가 말랐으니 거기로 간다는 보장도 없고.”

귀검은 혈천방주의 말을 믿었다.

귀검도 천기수사와 한 시대를 살았다. 천기수사가 어떤 사람이라는 걸 안다.

“솔직히 취운산을 뒤진다고 해도 해자수나 궁충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고…… 어쨌든 그 노인네……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으니, 후후! 조만간 혈마가 나타날 거야.”

천기수사는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같은 마도인에게 위해를 당해서 시신조차 보존하지 못하고 죽었다.

하지만 무림은 죽었던 사람이 흔하게 되살아난다. 시신을 화장까지 했는데도 멀쩡한 몸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죽었다는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다.

귀검도 천기수사가 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만, 모종의 알력 때문에 유배되지 않았나 싶었다.

탁! 탁탁!

귀검은 혈천방주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등여산과 홀리가 독문수법으로 점혈했지만, 방주를 그에게 넘겨줄 때 이미 파해법까지 넘겨주었다.

“신의는 있군.”

“혈천방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겁니다. 이미 사로잡힌 사실이 알려졌을 테니까.”

“후후! 흠집 나는 순간 끝장이라는 거군. 씁쓸해.”

혈천방주에게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자들을 힘으로 찍어 누르면 된다.

어쨌든 혈천방에도 피바람이 몰아칠 것이다.

“방주, 우리 두 번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만나봤자 서로 좋을 게 없어.”

“후후! 그래서야 쓰나. 한 번 더 만나야지. 이번에는 내가 대접을 받았으니까 다음에는 이자까지 쳐서 푸짐하게 대접함세. 기대해도 좋아.”

“마음대로.”

귀검이 일어섰다.

호발귀는 혈천방주를 아무 미련 없이 놓아 주었다.

그에게 들은 것은 다 들었다. 사부가 방주의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금 당장 취운산으로 갑니다.”

호발귀는 당장이라도 움직이려고 했다.

“그것보다는…… 주모, 천살단을 움직일 수 없겠습니까? 아무래도 무림을 들여다봐야 할 것 같은데. 취운산으로 가도 천기수사의 행적을 발견하기는 힘들 겁니다.”

귀검이 침중하게 말했다.

혈천방은 완전히 떨어져 나갔다. 일절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면 천살단이라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 천기수사의 행적을 좇을 수 있는 눈과 귀가 필요하다.

그때, 당홍이 말했다.

“일단 취운산으로 가. 확인할 게 있어.”

“환혼몽?”

“그래. 환혼몽. 환혼몽은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야. 취운산에 뭐가 자라는지 봐야겠어. 그러면 차후에 어디로 이동할지도 짐작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빨리 가죠. 주모님은 천살단에 연통 좀 넣어주시고. 불편하지 않으시면.”

여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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