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八章 천기수사(天氣修士) (3)
세상 사람들은 혈천방이 이백 년 전부터 혈마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이백 년 전, 혈마가 훌훌 떠난 후부터 오늘날까지 한시도 혈마에 관한 생각을 놓지 않았다.
전 방주, 전전 방주…… 모든 방주가 혈마 연구에 매달려 왔다.
혈마 연구는 생기 탐구의 과정이다.
생기를 더듬어내는 것이 시작이다. 또 끝이다.
생기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만 하면 곧바로 호발귀 같은 혈마가 탄생한다.
혈마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혈기는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그런 문제들은 생기를 알아낸 후에 밝혀가야 한다.
혈마조차 만들지 못하면서 통제부터 생각할 수는 없다.
바로 그것…… 생기 탐구가 이백 년 동안 진척되지 않았다.
혈천방이나 천살단 양쪽 모두 생기를 손에 넣지 못했다.
생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살아있는 기운이 바로 생기다.
이것을 단전에 운집해서 공력을 키운다. 경략으로 보내서 무공을 구사한다.
진기 구사는 모두 능숙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생기에서 한 차원 높은 생기가 있다.
그것을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현시대에 혈천방은 세 명의 인재가 탄생했다.
지략이 뛰어난 천기수사, 야욕이 크고 방 내 신망이 두터운 혈천방주, 그리고 검의 귀재 귀검.
이들 세 명이 혈천방을 굳게 틀어쥐었다.
천기수사는 책사로, 혈천방주는 총관으로, 귀검은 귀무살로 활동하자 천살단 무림 기반은 단번에 삼 할이나 축소되었다.
이 중 제일 먼저 사라진 사람이 천기수사다.
세상에서 제일 머리 좋은 사람, 천기수사.
그는 전임방주가 죽으면서 방주 자리를 물려줄 정도로 무공과 경륜이 깊었다.
혈천방 내에 신망도 두터워서 방주 취임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천기수사는 방주를 사양하고 방주 업무 중 혈마 부분만 도려내어서 은거에 들어갔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혈천방주는 반대할 이유가 없었고, 귀검은 방주 자리에 연연하지 않았다.
혈마와 관련된 부분도 천기수사가 맡아주면 오히려 비약적인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은거 이년 후, 천기수사는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직접 사마 제련에 돌입했다.
이것이 사마의 역사다.
혈천방 사마는 역사가 매우 짧다. 이백 년 동안 이어온 곳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사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심한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끊으면서 또다시 생명을 보존시키는 두 가지 작업을 해야만 한다.
이것을 천기수사가 해낸 것이다.
물론 사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제련 방법은 공개하지 않았다. 완성된 사마만 내주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쩌겠나. 자신의 운명을 탓할 수밖에.”
천기수사가 중얼거렸다.
혈천방주는 오래전부터 가치를 잃었다.
어느 누가 혈천방주의 자리에 앉았어도 지금 정도의 일은 해냈을 것이다. 방주에게는 정말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런 자는 진작 도태되었어야 한다.
혈천방주는 이번 사마 종말을 마지막으로 아주 큰 일을 해주었다.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등여산과 홀리의 이목을 따돌렸으니 아주 큰 일을 해준 것이다.
혈마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을 아나?
천기수사는 혈마들을 지켜보면서 이들에게도 강약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혈마 중에 최강자는 단연 호발귀다.
두 번째 강자는 등여산이고, 그 밑으로 홀리와 도천패, 해자수, 당홍 등이 어깨를 나란히 한다.
혈마는 얼마나 혈기 속에 깊이 침잠해 들어갔느냐로 강약이 정해진다.
가장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서 완전히 미쳐봤던 자가 가장 강한 혈마가 되는 구조다.
호발귀가 유인되어 떠나는 것을 봤고, 홀리와 등여산이 방주와 싸우는 것을 봤다.
이로써 두 여인의 이목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솔직히 혈천방주 같은 거물을 생포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흥분이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변화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혈천방주에겐 딱 이 정도만 기대했다.
탁!
천기수사는 생기를 터트렸다.
사마는 독물로 제련되었다. 피부에 독액을 씌워서 생기의 흐름을 끊게 했다. 더불어서 내면도 죽은 자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지극히 적은 생기만 돌출된다.
사마를 만들고, 난관을 헤치는 과정에서 목숨이 있는 듯 없는 듯 사는 법을 알아냈다.
독단으로 단전에 한 겹 막을 씌운다. 기해혈, 풍부혈…… 모든 경맥에 두꺼운 막을 씌운다.
숨통을 열어주면 생기가 쏟아져 나가고, 경맥을 닫으면 생기가 차단된다.
천기수사가 알아낸 방법은 사마와 시마에 사용된 것이 아니다. 지옥유부공이나 사령청공, 암약혼기와도 다르다.
실제 독액을 사용하느니 만치 효과도 뛰어나다.
탁! 탁!
경맥을 열고 생기를 노출했다.
“응? 이건 또 뭐야?”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해자수와 궁충은 한 조다. 두 사람은 늘 같이 붙어 다니면서 구혼음소를 말해주도록 짝맞췄다.
이번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등을 봐주고 있다.
사마의 기습에 해자수가 앞으로 달려나가 공격하자 궁충도 곧바로 뒤따라와서 합류한 상태다.
“뭐 이상한 점 못 느꼈어?”
해자수가 말했다.
스읏!
궁충은 활에 화살을 걸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직접 행동으로 이상한 징조가 있다는 점을 확인해 주었다.
“분명히 느꼈지?”
“네.”
“근데 또 없어졌잖아?”
“사령청공이 아닐까요?”
“말도 안 돼. 그럼 혈천방주 같은 사람이 또 있다고? 사령청공 그거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냐.”
“음!”
궁충이 침음했다.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생기가 뚝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혈기에 잡혔는데, 하늘로 사라진 듯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츠읏! 츳!
두 사람은 자세를 낮추고 사방을 주시했다.
“궁금해서 묻는 말인데, 만약 혈천방주가 사라지면 혈천방은 어떻게 되지? 공중분해 되나?”
“차기 방주에게 넘어가겠죠.”
“차기 방주가 내정되어 있어?”
“그런 건 아닙니다. 혈천방은 워낙 크고 넓어서…… 어디에 어떤 재목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고…… 지금처럼 혈천방주가 잡히면 눈치 빠른 자가 치고 올라가겠죠.”
“그렇게 되는 거야?”
“네.”
“쯧!”
해자수가 혀를 찼다.
혈천방은 강자존의 세계다. 강한 자가 방주 직도 차지한다. 그러면 방주가 후임자를 내정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자신보다 약하면 당장 짓밟아 버린다. 순간,
팟!
또 생기가 감지되었다.
철퍽! 철퍽!
해자수는 사방에서 철벽이 세워지는 것을 감지했다.
‘대단한 고수!’
생기는 하나뿐인데 철벽이 수십 개가 세워진다.
궁충이 손가락을 들어서 앞쪽을 가리켰다. 그쪽에서 생기가 흘러나온다는 소리다.
“재밌는 자가 나타난 모양이네, 살펴볼까?”
“제가 앞서겠습니다.”
궁충이 앞장서고 해자수가 바로 뒤따랐다.
스스! 스스스!
두 사람은 허리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갔다.
앞으로 다가갈수록 생기는 더욱 짙어졌다.
특이한 점이 없어서 사람이 숨어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생기가 가끔 사라진다.
마치 사마를 보는 느낌이다.
우르르 밀려들었을 때 사마와 생기를 완전히 죽이고 뒤로 빠져나갔을 때 사마.
“도주한 사마는 아니겠지?”
“사마치고는 생기가 너무 뚜렷해요. 또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생기가 뚝뚝 끊어지고. 사마는 아닐 것 같습니다.”
궁충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때 풀숲을 헤쳐가던 해자수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풀숲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아니, 누워 있다.
처음에는 혼절한 줄 알았는데, 다시 살펴보니 아주 편하게 드러누워서 잠을 청하는 중이다.
“어? 뭐야?”
해자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노인을 쳐다봤다.
노인은 비렁뱅이처럼 더럽다. 옷도 지저분하고 머리도 마구 헝클어졌다.
하지만 용모는 상당히 청수하다. 깨끗이 씻고 좋은 옷만 입히면 당당한 위용을 뽐낼 것 같다.
심상치 않은 자다.
“누구냐?”
궁충이 싸늘하게 물었다. 하지만 궁충은 대답을 듣지 못했다.
“흑!”
노인을 캐묻던 궁충이 갑자기 가슴을 움켜잡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툭 고개를 떨궜다.
“웃!”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물러서지 못했다.
가슴이 빡빡하게 당겨진다. 심장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오는 것 같은 충격이 일어난다. 큰 숨 몇 번…… 그리고는 아득한 어둠이 찾아들었다.
‘이런! 이게 뭐길래……’
해자수는 생각도 끝까지 잊지 못했다.
그도 궁충처럼 무너졌다.
“후후! 둘이면 됐지.”
노인은 궁충과 해자수를 양쪽 옆구리에 끼었다.
노인이 사내 두 명을 옆구리에 끼었는데도 전혀 무거워 보이지 않았다.
쉬이잇!
노인은 가볍게 신형을 떨쳐서 사라졌다.
혈마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혈마가 필요하다. 혈마가 없어도 된다는 말은 혈천방주를 속이기 위한 말일 뿐 진실이 아니다.
혈천방주에게 이목을 돌리고 자신은 혈마를 잡을 생각이었다.
사마가 모두 죽었으니 이제는 혈마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모두 이렇게 생각할 때, 사마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낚아챈다. 단숨에 포획한다.
‘너희 둘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헤쳐보면…… 뭔가 나오겠지. 후후!’
노인은 빠르게 질주했다.
“앗!”
당홍이 깜짝 놀라서 경악성을 내질렀다.
“왜?”
하늘에 떠 있는 그녀를 등으로 받아서 내려 앉힌 후, 무슨 일인지 물었다.
당홍이 너무 놀라지 않는가.
“이 냄새!”
당홍이 허공에 흐르는 냄새를 맡았다.
“왜? 무슨 일인데 그래?”
“환혼몽. 환혼몽 냄새 같아.”
당홍이 인상을 깊게 찡그리며 말했다.
“환혼몽이라면 그건…… 그게 왜 여기?”
도천패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당홍을 쳐다봤다.
환혼몽은 독의가 만든 전설적인 독이다. 인체에 손상을 주지는 않지만, 매우 강력한 혼수상태에 빠트린다.
쓰러지는 순간, 극심한 황홀경을 느낀다고 해서 환혼몽이라고 불렀다.
“맞아. 환혼몽 냄새야. 이 냄새는 너무 독특해서 단번에 알 수가 있거든. 누가 할머니 독을 풀었나 봐. 저쪽! 저쪽으로 가!”
당홍이 급하게 오른쪽으로 손으로 가리켰다.
쒜에엑! 쒜엑!
독이라는 말에 판수와 여괴도 달려와서 주변을 수색했다.
사마는 모두 죽고 남은 자는 이제 두세 명에 불과하다. 길성과 착심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여기! 여기야!”
수색하던 판수가 외쳤다.
모두 판수의 음성을 쫓아서 달려갔다.
그때 판수가 털썩 무릎을 꿇더니 혼절해 버리는 게 아닌가.
“아! 독이야! 가까이 가지 마!”
당홍이 재빨리 도천패의 등 뒤에서 내려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독섬칠공 중 전연기로 독기를 빨아들인다. 주변에 남아 있는 환혼몽을 말끔히 씻어낸다.
그 사이, 도천패는 판수의 오지(五指)를 칼로 저며냈다. 그리고 진기를 밀어 넣었다.
츠으으읏!
진기를 넣고자 했는데, 생기가 밀려들어 간다. 호발귀의 혈기도 같이 들어간다. 하지만 혈마가 될 걱정은 하지 않는다. 분명히 혈기가 충천하겠지만, 호발귀가 곧 올 것이다.
“후우!”
판수가 숨을 토해내며 일어섰다.
“음! 해자수님과 궁충이 납치된 거 같아.”
당홍이 땅에서 활을 주워들었다.
궁충이 사용하던 애병이다. 사람은 없고, 병기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환혼몽이 이렇게 강력한가? 혈마도 눕힐 정도로?”
“도대체 누가……?”
모두 인상만 찡그리고 있을 때, 혈천방주를 낚아챈 등여산이 벼락처럼 날아왔다.
“모두 최대한 거리를 벌려요. 지금 당장 혈기를 최상으로.”
무슨 말인지는 당장 알아들었다.
혈마는 그동안의 경험상 혈마와 혈마의 간격은 사십 장은 벌어져야 서로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사십 장씩 뚝뚝 떨어져서 앉았다.
그 상태에서 혈기를 일으켜 생기를 찾는다.
파파파파! 파아아앗!
혈기가 넓게 넓게 두루 퍼졌다. 하지만 두 사람의 생기는 물론이고, 어떤 생기도 탐지되지 않았다.
“음!”
혈마들은 망연자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신음만 흘렸다.
해자수와 궁충이 납치되었는데, 전혀 손 쓸 수가 없다니. 아니, 이렇게 납치될 수도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