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八章 천기수사(天氣修士) (2)
“응?”
호발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뭐가 이상해?”
홀리가 물었다.
“기척이 감지가 안 돼. 갑자기 사라졌어.”
호발귀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럴 수도 있나? 네게 생기를 잡히면 죽는 순간에나 풀려나는데…… 그러면 죽었다는 소리야?”
“글쎄.”
호발귀가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호발귀의 혈권과 사권은 매우 넓고 정확해서 웬만한 생명체는 전부 걸려든다.
살아서 숨 쉬는 생명체라면 절대로 사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그가 분명히 어떤 한 사람을 잡아냈다.
네 번째 우각을 소지한 사람.
혈천방주의 사마를 일거에 자살 공격시킨 사람.
한데, 그의 종족을 금방 놓쳐버렸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호발귀가 누군가를 탐지해내면 호발귀 스스로 그를 놓아주지 않는 한 도주하지 못한다.
호발귀가 쫓고자 마음먹었다면, 그는 어디로도 도주하지 못한다. 지옥 속으로 숨어들어도 아주 손쉽게 쫓아간다.
혈기에 걸렸던 생기는 결코 도주하지 못한다.
방법은 딱 하나, 호발귀보다 훨씬 빠르면 빠져나갈 수 있다.
호발귀가 쫓아가는 속도보다 도주하는 속도가 월등히 빠르다면 이거야 어떻게 할 수 있나.
눈 뜨고 놓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만 아니라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전제한 근거도 사실 무의미하다.
호발귀는 생기를 사용해서 신법을 펼친다. 자연의 기운을 두 발로 떠받든다.
진기와 우주의 기운이 합쳐져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달리게 해준다.
호발귀는 아마 중원에서 제일 빠를 것이다.
그런 그를 따돌리고 생기를 감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상대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도주하다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갑자기 뚝 끊어졌다.
“재밌는데? 이자는 살아있는 사마 같아.”
호발귀가 중얼거렸다.
“사마? 살아있는?”
“응. 생기를 자유자재로 죽였다가 살렸다 할 수 있는…… 아! 지금 또 생기가 드러났어. 쫓아가야겠다.”
“그래? 그럼 쫓아가.”
홀리가 일어서려고 했다.
그녀는 호발귀가 말한 기척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
호발귀는 미미하게 끈이라도 잡고 있지만, 그녀는 처음부터 기척을 탐지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나 혼자 쫓아갈게.”
“혼자 가게?”
“응. 그 대신에 혈천방주를 잡아.”
“혈천방주?”
“아직 혈천방주와 해결할 문제가 있으니까, 죽이지 말고 생포해줘. 여기 없다면 몰라도 제 발로 와줬는데, 대접해야지.”
홀리가 씩 웃었다.
“농담도 하고. 이젠 여유가 있네?”
“언제는 없었나?”
“가. 혈천방주는 잡아놓을게.”
홀리가 호발귀를 떠밀었다.
홀리는 혈천방주의 생기를 잡아챘다.
싸움 현장에 도착할 때부터 잡아채서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
호발귀도 이런 식으로 우각 가진 자를 잡아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놓쳤다니? 이제 다시 꼬리를 잡기는 했지만, 일시간이라도 호발귀가 종적을 놓쳤다는 점이 찜찜하다.
‘생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고? 그럴 수 있나?’
암약혼기나 무령환살공 같은 무공을 수련했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무공이라면 호발귀의 혈기에 걸려든다. 생기가 숨겨져 있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호발귀는 감춰진 생기도 잡아낸다.
어쨌든 호발귀가 놓칠 정도로 생기를 완벽히 숨길 수 있는 자라면 보통이 아니다.
“자! 저쪽은 호발귀가 쫓아갔으니까 신경 끊고…… 그럼 난 방주를 잡아볼까?”
스읏! 슷!
홀리는 혈기 두 가닥을 방출했다.
한 가닥은 혈천방주에 붙여놓았다. 그가 어디로 움직이든 자신의 감각도 따라붙는다.
방주가 그녀의 사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혈기 추격은 유지된다.
다른 한 가닥은 등여산에게 보냈다.
혈천방주는 사령청공을 수련했다. 혈마로 변하기 전에 그와 싸워본 경험도 있다.
물론 혈마가 된 이후에는 사령청공에 당했다. 그러니 묵은 빚이 있다.
홀리와 혈천방주의 싸움은 일 대 영, 홀리가 한 판 졌다.
지금은 자신 있다. 혈기도 그때보다 훨씬 짙어졌다.
혈기 투사로 혈기를 씻어낸 상태라서 이제는 마음 놓고 혈기를 사용해도 된다. 혈마가 될 것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호발귀의 부탁이기 때문에 확실히 잡으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 잡고 싶지만…… 놓치는 것보다는 연수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잠시 후,
스스스슷! 스스슷!
옆에서 미미한 기척이 일었다.
홀리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나타난 사람이 등여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언제 왔어?”
등여산이 물었다.
“아까. 호발귀는 우각 부는 놈을 쫓아갔고, 나보고는 혈천방주를 잡아달라고 하더라고.”
“같이 잡게?”
“응. 네게도 기회를 주는 거야. 호호!”
“납치된 사부가 아직 혈천방에 있어. 전에 본진을 쳐들어갔을 때도 찾지 못했는데…… 그것 때문에 잡으라고 했을 거야. 절대 죽이면 안 돼.”
“계집애가 보자마자 잔소리네. 알았어. 가자!”
두 사람은 혈천방을 향해 쏘아갔다.
혈마와 사마의 싸움은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건 너무 싱겁군. 후후!”
노인이 중얼거렸다.
사마와 혈마의 무공 차이는 현격히 벌어졌다.
확실히 정면 승부는 자살 공격에 불과하다. 도천패와 당홍이 전장에 뛰어들자 사마들이 펑펑 나가떨어졌다.
궁충의 활도 시원하게 말을 했다. 다른 귀무살도 본격적으로 혈기를 쳐내면서, 쓰러지는 사마가 훨씬 많아졌다.
밝은 대낮에 싸우니 역시 사마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
‘용도가 끝난 것들은 과감하게 버릴 줄 알아야지. 사람들이 버리는 법을 몰라.’
노인은 웃음을 머금었다.
먼저, 호발귀가 사마를 쫓아가는 걸 확인했다.
전장에서 가장 위험한 자, 호발귀부터 떼어놓는다.
두 번째로 위험한 자는 홀리와 등여산이다. 그녀들을 떼어놓기 위해서 혈천방주를 남겼다.
혈천방주는 자신이 미끼가 된 것도 모르겠지만…… 사마를 자살 공격에 투입하면, 혈천방주는 최소한 종말이라도 지켜보게 되어 있다.
그게 미끼가 되는 순간이다.
물건을 버릴 때도 뭔가 이득을 취하면서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사마도 버리고, 혈천방주도 미끼로 쓰고.
혈천방주가 벌어주는 시간은 대략 일다경.
혈마와 일대일의 승부라면 한 시진도 버틸 수 있지만, 두 명과 싸운다면 일다경이 한계다.
일다경 안에 목적을 성취한다.
스스스스슷!
노인이 은밀히 움직였다.
“뭐야? 내가 걸린 건가?”
혈천방주가 걸음을 멈췄다.
앞에 책사가 길을 막고 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내려서는 기척을 감지했다.
옅은 분내음이 풍기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홀리일 것이다.
이들은 진기를 쫓아오지 않는다. 두 눈으로 사람을 보고 쫓지도 않는다. 생기를 꽉 틀어주고 끈끈이 따라온다.
그러니 일단 촉수에 걸려들면 여간해서는 벗어나지 못한다.
“후후! 내가 실수했네. 사마가 사라진 순간, 즉시 위험을 눈치채야 했는데.”
혈천방주가 실소를 흘렸다.
“생포할 거야. 무슨 짓을 해도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마음껏 저항해보라고 해주는 말이야.”
등 뒤에서 홀리 음성이 들렸다.
“예전에는 내 상대가 되지 못했는데. 지금은 상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아니. 상대 안 돼. 네가 이겨.”
홀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말로는 무슨 말인들 못 할까. 네가 이긴가, 내가 이긴다고 아옹다옹해서 뭣하나.
검을 들면 바로 승부가 결착되는데. 모든 싸움은 검으로 말해야 하는데.
“이 대 일이라. 나도 혈마 두 명은 벅찬데. 좋아! 한번 해보지.”
스릉!
혈천방주가 검을 뽑았다.
꽈르르르르!
혈천방주는 진기를 끌어냈다.
단전에서 진기를 끌어 올리자마자 전신이 암흑 같은 기운으로 뒤덮였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뭔가 기분 나쁜 기류가 피어나 몸 주위를 감싼다.
사락! 사라라락! 사라라라락!
바람 소리도 일어난다. 기분 나쁜 소리다. 지옥 끝에서 악마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다.
물론 어떤 소리인지 알 수는 없다. 무조건 귀를 막고 싶은 소리다.
죽은 혼을 달래는 소리, 사혼진령음이다.
두 여인은 어떻게 싸울 것인가? 두 여인은 혈마가 되기 전까지는 평상시에 자기 무공을 사용한다.
물론 자기 무공에 생기가 보태져서 더 강한 힘을 끌어낸다.
분명한 것은 혈기가 충만해져서 혈마가 되기 전까지는 어떤 수를 쓰든지 버텨내야 한다는 거다.
‘빡세겠는데.’
혈천방주는 히죽 웃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길 보다는 흉이 많은 것 같다. 노인, 천기수사가 나타났을 때부터 재수 옴 붙었다.
‘너무 생생해. 혈기를 다스린 게 분명하고…… 그러면 혈마가 될 때까지 버티기 힘들다는 것…… 그러면 남은 방법은 하나, 초반에 몰아친다.’
그와 마주 선 등여산과 홀리는 예전의 두 여인이 아니다.
등여산은 몸이 쇠털처럼 가벼워 보인다. 홀리는 두 발을 땅에 꾹 딛고 있다.
그 모습이 태산처럼 굳건해 보인다. 여인의 몸이 태산으로 보이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보인다.
이들은 벌써 조화순청(造化純靑)을 넘어섰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사혼진령음을 전달받고도 지극히 태연하다.
지옥에서 울부짖는 듯한 울음소리건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면 사령청공은 힘들어진다.
쒜에에엑!
혈천방주는 먼저 선공을 취했다.
상대는 홀리, 전에 한 번 이긴 적이 있고 그녀가 사용하는 혈맥참도 잘 안다.
타앗!
홀리가 마치 용수철로 쏘아진 듯 튕겨 올랐다.
‘좋아!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으니……’
혈천방주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몸을 빙글 돌렸다.
검 끝이 빙글 돌았다. 몸이 회전하는 검을 쫓아서 빙글 돌았다. 검이 빨리 돌고, 몸도 따라서 휘돈다.
빙글빙글……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휘돈다.
파앙!
혈천방주의 몸은 회전하는 창이 되어서 쏘아졌다.
용풍충파(龍風衝破)!
혈천방주의 몸은 매우 강렬하게 휘돌았다. 회선충(回旋衝)이 제대로 펼쳐졌다.
꽈지직!
칼끝이 홀리를 뚫고 지나갔다.
홀리는 거대한 바위가 되어서 덮쳐왔지만, 혈천방주가 단숨에 뚫어버렸다.
꽉! 꽈자자작!
홀리가 산산이 조각났다. 오장육부가 흩어졌다.
살점과 뼛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하지만 일격에 성공했다는 만족감보다는 불안감이 더 강하게 든다.
‘응? 너무 쉬워!’
혈마가 이토록 쉽게 당할 리 없다. 적어도 용풍충파 정도는 막아냈어야 한다.
혈천방주는 즉시 뒤돌아섰다.
제일 먼저 너무도 멀쩡한 홀리 모습이 보였다.
역시 홀리의 벽은 깨지지 않았다. 산산이 조각나서 깨진 듯했지만, 여전히 굳건했다.
“후후! 어쩐지 너무 쉽더라 했지. 그럼 방금 것은 뭔가? 환각인가? 난 쉽게 끝나는 줄 알고 좋아했잖아.”
촤락!
혈천방주는 검에 사혼진령음을 담았다.
사각! 사라락! 사각!
귀신이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잔잔하게 퍼져 나왔다. 더불어서 혈천방주의 몸에도 귀기가 휘감겼다.
사령청공만이 혈마를 상대할 수 있다. 다른 여타 무공은 단번에 깨진다.
그나마 사령청공은 생기를 죽여주기 때문에 저들의 급습을 피할 수 있다.
“그럼 나도 시작.”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여산이 날아왔다.
혈천방주는 즉시 진기를 두 배로 끌어냈다. 이제는 이 대 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순간, 그의 몸이 어둠과 하나가 되었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꽈앙!
느닷없이 등 뒤에서 거센 일격이 터졌다.
“크윽!”
사령청공이 일시에 흩어졌다. 그만큼 타격은 강했다.
“검등이야. 꽤 아플걸?”
혈천방주는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단 일격에…… 어떤 공격을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령청공이 일순간에 깨진 것은 확실하다. 분명히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는데, 단번에 잡아챘다.
‘그놈의 생기…… 생기로 추격하는 것이군…… 후후!’
혈천방주는 곧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상대가 진기를 쫓아왔다면 사령청공이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생기를 쫓아왔다. 몸을 안개 속에 숨겨도 또렷이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타닥! 탁탁탁!
홀리가 등을 점혈했다.
타닥! 탁탁탁탁!
앞으로 다가온 등여산도 함께 손을 썼다.
홀리는 독맥을, 등여산은 임맥을 점혈했다. 앞뒤로 각기 다른 두 문파의 점혈 수법에 찍혔다.
음문촌의 점혈법은 아는 것이지만, 천살단의 점혈은 낯설다.
두 점혈이 합쳐지자 그 누구도 빼낼 수 없는 단단한 결박이 되었다.
“역시 혈마들은 감당이 안 돼. 후후!”
혈천방주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