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八章 천기수사(天氣修士) (1)
호발귀는 등여산의 서신을 읽었다.
서신에는 호발귀가 해야 할 일과 반드시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한 가지 당부가 적혀 있었다.
앞서서 떠난 혈마의 안위를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 당부다.
혈기가 충천하건 말건, 혈마가 되건 말건 일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이다.
설혹 등여산 자신이 혈마가 되어서 중원을 피로 물들이고 다녀도 두 눈 질끔 감고 할 일만 하라는 거다.
할 일은 무엇인가?
- 사마 근원 제거.
등여산은 이미 도천패와 당홍에게 사마의 추격을 부탁했다.
도주하는 사마는 그들이 추격할 것이다. 그들에게 부탁한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쫓는다.
미약하게 피어나는 생기를 보며 쫓아가는 것이니 쉽지는 않겠지만, 두 사람에게는 크게 어렵지 않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혈천방주는 여우 굴을 아홉 개나 파놓는 간특한 위인이다.
다른 혈마가 사마를 추격할 것이라는 생각은 누구라도 쉽게 한다. 그러니 대비책을 세워 놓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 것이 없다면 사마를 물리지 않았을 것이다.
혈천방주도 근원지가 파괴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발귀와 홀리가 진짜 추격을 해야 한다.
오직 호발귀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감각을 동원해서 쫓아가라고 당부한다.
호발귀가 생기를 탐지하는 능력은 다른 혈마보다도 월등하다.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기운을 혼자서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생각하면……
- 흩어진 사마를 잘 살펴봐라.
개중에는 방향성 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마가 있을 수 있고 또는 특정 방향을 인지하고 한쪽으로만 움직이는 사마가 있을 것이다.
이 후자가 바로 철수하는 사마다
전자는 혈마를 유인하기 위한 도구다.
언제든 혈천방주의 부름을 쫓아서 다시 혈마를 공격할 수 있게끔 준비되었다. 방향성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
방향성을 가지고 도주하는 사마를 추격해 달라.
“이걸 어떻게 찾아내지? 할 수 있겠어?”
홀리가 말했다.
“믿고 맡겼는데 어떻게든 해봐야지.”
호발귀도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마는 생기를 죽인 자들이다. 그들이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나?
눈앞에 사마가 있다.
등여산이 전장에 도착해서 우각을 불 즈음, 호발귀와 홀리도 근처에 있었다.
꾸우우욱!
우각 소리가 들린다.
만일을 위해서 우각을 만들던 등여산의 모습이 생각나면서 소리와 매치된다.
등여산, 그녀가 지척에 있다.
“가서 잠깐이라도 만나볼래?”
홀리가 물었다.
“아니. 지금 급한 것은 사마의 뿌리를 끊는 거니까. 혈마가 두 번 다시 이런 곤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혈천방의 뿌리를 확실하게 끊어야 해.”
“그러면 사마에 집중하자.”
홀리가 호발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츠츠츳! 츠츠츠츳!
두 사람은 도주하는 사마를 유심히 쳐다봤다.
모든 사마가 똑같이 행동한다. 어떤 것이 방향성이 있고 어떤 것이 없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츠으읏!
모였던 사마가 다시 분산된다.
사마는 몇 명씩 무리를 지었고, 각 무리마다 인솔자가 있다.
혈천방인 듯싶은데, 개개인의 무공이 귀무살에 비해서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하나같이 강하네.”
홀리가 중얼거렸다.
그들이 작은 우각을 불어대면서 자신만의 사마를 인솔했다.
사마를 움직이는 우각은 두 종류다.
혈천방주가 부는 큰 우각이 있다. 공격과 후퇴 등 목숨과 연관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또 인솔자들이 불어대는 작은 우각이 있다.
공격과 방어는 불가능하고, 단순히 이동하는데 사용되는 우각인 듯 싶다.
사마들은 이 소리를 구분한다.
등여산이 가진 우각은 큰 우각이다.
멀리서 들린 우각 소리를 듣고, 비스듬한 소리가 울리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클 수밖에 없다.
사실, 작은 우각도 있다는 사실은 이번에야 알았다.
“사마들이 흩어질 모양인데, 우린 어느 쪽을 쫓지?”
홀리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
주의 깊게 살펴봤지만, 등여산이 말한 방향성을 가진 사마는 찾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인솔자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마를 쫓는 게 더 어려워졌다.
인솔자는 인간이다. 방향성이 있고, 없고를 분간하지 못한다.
어느 인솔자나 모두 방향성을 가진다. 후퇴할 때, 그들이 어디로 이동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동할 때는 혈천방주가 빠질 모양이네. 이건 생각하지 못했는데. 음!”
호발귀도 고민했다. 그때,
꾸우우욱! 꾸욱!
어디선가 네 번째 우각 소리가 들려왔다.
혈천방주가 부는 것이 아니다. 인솔하는 자들이 부는 소리도 아니다. 등여산이 불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들린 우각과는 전혀 다른…… 매우 날카로운 소리다.
그러자 몇 명씩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던 사마가 일제히 흠칫하더니 곧 뒤돌아섰다. 그리고 곧바로 혈마를 향해서 쾌속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엇!”
“아니!”
인솔자들이 당황한 듯 급히 손을 들어서 달려나가려는 사마를 잡아챘다.
물론 사마는 그들 손에 잡히지 않았다.
사마가 전력을 다하면 능히 혈천방주나 천살단주와 버금간다.
목숨을 전혀 고려치 않고 공격하기 때문에 손속이 더욱 빠르고 강하게 느껴진다.
사마는 왜 혈마에게 달려가나?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은 옥쇄밖에 되지 않는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다.
그런데도 새로운 우각은 사마를 죽음 속에 몰아넣고 있다.
쉐에에엑! 쒜에에엑!
사마가 신형조차 숨기지 않은 채 거침없이 치달렸다.
더욱이 날이 이미 밝아오고 있다. 사마가 은밀히 움직여도 이제는 맨눈으로 판별할 수 있다.
눈에 보이는 자들을 놓칠 정도로 나약한 혈마가 아닌데…… 누가 봐도 승산 없는 싸움인데, 거침없이 달려든다.
무슨 속셈인가? 정말 옥쇄라도 할 생각인가?
까깡! 깡! 꽈지지직!
혈마와 사마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사마는 거의 쉰 명에 가깝다. 저쪽에서는 해자수, 궁충, 귀무살을 비롯해서 귀검까지 총동원되었다. 모두가 나와서 직접 혈마와 격돌한다.
퍼억! 퍼어억!
곧 승부가 결착 났다. 사마들이 펑펑 나가떨어진다.
팽팽하게 유지되던 밤의 긴장은 사라졌다.
더욱이 이번 사마는 후퇴하지도 않는다.
숨지도 않고…… 정면으로 승부를 건다. 그리고 죽어간다.
“뭐 하는 거지?”
홀리가 중얼거렸다.
“이건 마치 버리는 것 같은데? 그렇게 보이지 않아?”
호발귀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누군가가 사마를 전부 버리기로 작정했다면 등여산의 계획은 무위에 그친다.
도천패와 당홍은 쫓을 사마가 없게 된다. 호발귀와 홀리도 마찬가지다.
쒸이이익! 꽈지직!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도천패와 당홍이 튀어나오면서 일학을 펼쳐냈다.
도천패가 땅을 받치고, 당홍이 허공을 장악하며 사마를 공격한다.
이미 추격할 사마가 없으니 싸움에 가담한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떻게든 사마를 생포할 생각인 듯싶다.
생포해봤자 알아낼 것이 전혀 없는데도.
“우린 어떻게……?”
홀리가 호발귀를 쳐다봤다.
“네 번째 호각 주인을 쫓아야지.”
“어디 있는지 알아? 난 못 찾겠는데.”
“느낌이 와. 아직 움직이지는 않았어. 움직이면 바로 따라붙어야지. 뭐 하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호발귀가 씩 웃었다.
* * *
“음!”
혈천방주는 침음했다.
사마의 원주인이 사마를 죽음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 세상에 드러난 사마는 다시 돌아올 수 없어. 명심하게. 그래도 전부 다 가져갈 건가?
- 이것들이 다 있어야 혈마를 상대하지. 혈마가 열 명이 넘는다고. 후후! 호발귀가 쭉쭉 불려놨어. 그놈, 자기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잡아먹은 모양이야.
- 달라니까 주지 약속이니까. 하지만 이것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 혈마의 탄생은 생기 오염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것들이 어떤 식으로 오염됐는지 알 수 없으니까.
노인…… 노인이 사마의 주인이다.
노인이 말한 것처럼 일단 세상에 드러난 사마는 두 번 다시 본거지로 돌아가지 못한다.
노인의 손에서 벗어난 순간부터 혈천방 무인이 되어서 살아야 한다.
“귀신 같은 늙은이. 말한 것으로 부족해서 지켜보기까지 했다는 거군, 후후!”
혈천방주는 웃었다.
노인의 무공은 자신보다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실례로 노인이 근처에 있는데도 자신은 그의 기척조차 탐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각을 불었는데도 위치를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각에 회성음(回聲音)을 실어서다.
노인이 싸움을 지켜보다가 사마의 쓰임새가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과감하게 버리고 있다.
하나같이 보물이나 다름없는 사마를 쓰레기처럼 버린다.
혈천방주는 노인의 횡행을 막을 수 없다.
원주인이 찾아온 이상 자신은 사마를 부리지 못한다.
우각은 구혼음소와 똑같다.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 자신이나 인솔하는 놈들이 들고 있는 우악은 가짜다. 진짜는 원주인, 노인만 가지고 있다.
“할 수 없지. 자기가 만든 사마, 제가 죽이겠다는데.”
혈천방주는 손에 들고 있던 우각을 던져버렸다.
쒜에엑!
부드러운 미풍이 분다 싶더니, 혈천방주 앞에 노인이 나타났다.
“꼭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을 텐데.”
혈천방주가 노인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신중하게 데려가라고 하지 않았나? 어디가 어떻게 오염되었는지 모르는 사마는 거둬들일 수 없어. 순수 원형이 아닌 이상 방해만 돼.”
“그럼 이제는 어쩌려고? 우리 관계도 끝인가? 하긴 뭐 이제는 사마가 더 있는 것도 아니고.”
“방주, 다음부터는 사마를 데려갈 때 신중하시게. 후후!”
“다음? 그럼 사마가 또 있다는 말이야?”
“이제부터 다시 만들어야지. 더 강한 사마로. 하하하!”
노인의 말에 혈천방주가 미간을 찡그렸다.
사마를 만들면 뭐하나. 혈마가 있는데. 사마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혈마를 잡아서 생기가 일어나는 원천지를 알아내는 것이 급선무인데…… 무공만이라면 지금도 충분하다.
암약혼기만으로도 혈마를 상대할 수 있다.
“실망한 표정인데? 후후! 그럼 이건 어떤가? 혈마의 실마리를 잡았다면?”
“뭐, 뭣!”
혈천방주가 깜짝 놀라서 노인을 쳐다봤다.
“하하하! 굳이 혈마가 없어도 혈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아니, 혈마를 만들 필요가 없지. 내가 혈마가 되면 되니까. 내 눈에는 생기의 실마리가 보여.”
“저, 정말인가?”
혈천방주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혈마를 직접 보니까 답이 나오네. 왜 진작 혈마를 보지 않았는지. 이럴 줄 알았으면 즉시 나왔을 텐데. 방주, 자네도 당분간 모든 일에서 손 떼고 잠적하는 게 좋을 거야. 알아서 하겠지만. 성패 여부는 한 달이면 될 것 같네. 한 달 후에 찾아오시게. 하하!”
쉬잇!
노인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혈마를 만들 수 있다? 혈마가 될 수 있다? 그렇게만 되면 오죽 좋을까.
노인은 자신이 직접 혈마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절대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안전한 길만 골라서 가는 사람이 그런 모험을 할 리 없다.
만약 진정 그렇게 생각했다면 혈천방과 관계를 유지할 리 없다. 한 달 후에 찾아오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만나서 이런 말도 주고받지 않는다.
아직도 노인에게는 뭔가 필요한 게 있다. 혈천방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혈천방주나 노인이 만들고자 하는 혈마는 통제되는 혈마다.
호발귀나 다른 놈들처럼 자유의사가 있거나, 혈마가 된 다음에는 부모 형제조차 몰라보는 무지막지한 혈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한 혈마 상태에서 병기처럼 손에 착착 달라붙는 그런 혈마를 원한다.
노인은 자신이 혈마가 되기 전에 우선 그런 혈마부터 만들 것이다.
혈마를 만드는 것은 사마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생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노인은 지금 생기를 쓸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냈다는 말이 된다.
이제 불로불사는 시간문제다.
무적군림도 코앞이다.
음문촌도 잃고 사마도 전부 잃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천기수사의 말은 십분 믿을 수 있다.
‘천기수사(天氣修士). 내 싸움은 호발귀를 어떻게 꺾느냐에 달린 것 같았는데…… 결국은 당신을 어떻게 잡아먹느냐로 끝나네. 처음 만날 때부터 이런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후후!’
혈천방주는 천기수사가 떠난 자리를 보며 빙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