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七章 개시반공(開始反攻) (2)
사마를 움직이는 데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통제는 혈천방주가 직접 한다고 해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펴줘야 할 일이 무척 많다.
각성하지 않았을 때의 사마는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사마도 살아있는 생명이다. 당연히 먹고, 자고, 숨을 쉬어야 한다.
한데 혈천방주가 사마를 깨워서 싸움에 투입하기 전까지는 죽은 시신이나 다름없다.
자기 의지로 생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말하지도, 보지도 못한다.
그러니 어린아이를 보살피듯 정성스럽게 돌봐주어야 한다.
그러면 침묵 상태에 있는 사마는 어린아이라도 죽일 수 있을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한다면 단숨에 달려들어서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평상시의 사마는 대단히 무기력하지만 실제로 아무나 다가가서 쉽게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마의 생존 본능은 기가 막힐 정도로 강렬하다.
혈마를 본떠서 만들다가 실패한 작품이 사마다. 그런 만큼 사마 역시 생존 본능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기, 생존 본능에 뿌리를 든 창조 인간이다.
누군가가 죽이려는 기색을 보이면 사마는 즉시 각성한다.
혈천방주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즉각 깨어나서 반격한다. 이때, 사마는 혈마를 잡을 때 보여주었던 쾌속함, 강력함, 패도함을 온전히 드러낸다.
실제로 혈천방도가 장난삼아서 작대기로 사마를 건드렸다가 어육이 되어서 죽은 사건이 있었다.
작대기로 후려치는 동작까지도 살의가 담겼다고 판단한다.
살의만 보이지 않으면, 사마는 다루기가 아주 편하다.
가라면 가고, 앉으라면 앉고, 잠자라고 하면 잠이 든다.
어떤 말이든 거역하지 않는다.
물론 자살 명령은 거부한다. 살의를 띄지 않은 명령일지라도 육신에 해가 될 것 같으면 즉시 거부한다.
벼랑에 세워 놓고 뛰어내리라는 명령, 물속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는 명령……
위험을 느끼는 명령은 철저히 거부한다.
명령을 구분하는 취사 선택이 매우 분명하다.
하지만 혈천방주가 우각으로 자살 명령을 내리면 그때는 기꺼이 따른다. 어떤 명령이 됐든 간에 즉각 이행한다.
죽음이 분명한 일일지라도 망설임 없이 뛰어든다.
혈마에게 덤비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다.
싸우면 질 것이 분명한데도 혈마와 싸운다. 죽음을 감지하면서도 달려든다.
혈천방주가 가지고 있는 우각은 혈마로 치면 구혼음소와 같은 성질을 띤다.
“스물일곱. 뭔 사마가 이렇게 많아?”
판수가 말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스물둘이었는데 다섯 명이 늘었네. 흩어져 있다가 모이는 모양인데…… 그럼 모두 몇 명이나 될지 전혀 알 수 없잖아. 하아!”
길성이 판수의 말을 받았다.
“어쨌든 모두 모이고 있으니까 이쪽만 따라가면 되겠지.”
“보고는?”
“드려야지.”
“쳇! 나보고 가라는 소리잖아. 내가 보고 여부를 물었을 때는 너보고 가라는 소리였어, 멍청아.”
“그래? 하하! 어쨌든 이번에는 네 차례. 다녀와.”
판수가 길성의 어깨를 탁 쳤다.
“사마가 어디로 가는지 짐작되는 곳이라도 있으세요?”
궁충이 귀검에게 물었다.
“없다.”
귀검이 주위를 훑어보며 말했다.
“제 기억으로도 이쪽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가 뭘 만들어놨기에.”
궁충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사마는 한성(漢城)을 지나 칠운산(七雲山)으로 향하고 있다. 동북쪽 황해(黃海)로 간다.
중원을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중원 무림이 신경을 쓰지 않는 외진 곳이다.
혈천방도 황해 가까운 곳에는 분단이나 분파, 혹은 지단을 만들지 않았다.
“목적지를 모르니 짐작할 만한 게 전혀 없잖아요.”
여괴가 말했다.
귀무살은 황해 쪽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지금까지 많은 임무를 맡았지만, 황해에 근접해 보기는 처음이다.
황해가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지만, 중원인들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곳인 것도 맞다.
“확실히 이곳에는 혈천방 분타가 없어. 어디로 가는 건지 모르겠네. 하기는 이걸 알았으면 사마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예전에 알았겠지.”
착심이 나직이 말했다.
귀검, 귀무령은 혈천방 핵심 인물이다. 방주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귀무령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우지 못한다.
그런 귀무령조차도 사마가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사마의 탄생지를 알 리 없다.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지?”
“모르지 뭐. 많이 남은 것 같긴 해.”
여괴와 착심이 귀검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나직나직하게 말했다.
사마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열둘에서 열여덟 명으로, 그리고 스물두 명으로, 이제는 스물일곱 명이 되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늘어날지 모른다.
솔직히 사마의 숫자가 이토록 많다는데 놀랐다.
더욱이 기도 차지 않는 일은, 이들 사마 모두가 혈마를 급습하기 위해 준비되었다는 사실이다.
하마터면 이들 전부와 싸울 뻔했다.
혈천방주가 철수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들과 자신 중 어느 한쪽은 끝장났을 것이다.
물론 사마에게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마가 이렇게나 많다면 혈마가 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이길 수는 있지만, 호발귀 손에 닿지 않는 곳에서 미친 혈마가 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밀마는?”
궁충이 물었다.
“확실하게 남겨놨습니다.”
길성이 즉시 대답했다.
귀무살은 해자수의 밀마를 남겼다.
귀무살도 밀마를 쓰지만, 혈천방이 아는 밀마를 남길 수는 없다. 그래서 해자수가 알고 있는 것을 급히 배웠다.
다른 사람의 밀마를 쓰자니 당연히 어색하고 서툴다.
도형을 그려놓는 방식인데, 제대로 남겼는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혹여 잘못 그렸다면 길이 많이 어긋난다.
이런 불안감은 해자수나 호발귀를 만나기 전까지 계속될 것이다.
“너희들, 혈기는 어때?”
침묵하던 귀검이 문득 물어왔다.
“아직 괜찮습니다.”
궁충이 대답했다.
“괜찮아?”
“네. 사실 그렇게 뭐 생기를 많이 쓰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
귀검이 슬쩍 웃었다.
“왜 웃으시는지……?”
궁충이 혹여 말실수했나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희…… 이제 생기를 조절할 수 있구나.”
“네?”
아휴! 무슨 말씀을. 아직 어림도 없어요. 생기를 쓰기만 하면 어찌나 살심이 치솟는지, 생기를 느끼는 순간에 확 뭔가 불이 솟는데…… 난 착심도 죽이고 싶더라니까요.
궁충이 반문했고, 뒤이어서 여괴가 착심을 쳐다보며 말했다.
“생기를 쓰면 그렇겠지.”
“그렇죠. 생기를 쓰면 당연히…… 어? 아!”
궁충이 말하다 말고 당장 무엇을 깨달은 듯 탄성을 토해냈다.
생기를 쓰면 살기가 일어난다. 생기를 쓰지 않으면 당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가?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생기를 쓰고 쓰지 않고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 사람은 생기를 쓴다. 그동안 다른 사람은 생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생기를 일으키는 것과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을 조절할 수가 있다.
생기 조절에 대해서 지극히 작은 부분일지라도 일단 ‘조절’이라는 말 속에 포함할 수 있다.
“아! 맞네. 조절…… 킥킥킥!”
여괴가 기쁜 듯이 키득거렸다.
혈기가 차오를 때마다 호발귀가 혈기를 제거해 주었다. 그러는 가운데…… 살심이 차오르고 제거하는 과정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제어하는 방법을 습득한 것 같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거면 됐습니다. 주군이 오실 때까지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궁충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야지. 다행이다. 그거라도 할 수 있으니.”
귀검이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혈천방도는 사마를 데리고 이동하느라 초저녁만 되면 잠잘 곳을 마련한다.
사실 그들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혈천방은 매우 거대한 방파다. 전 중원의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된다.
그만한 조직이 사마를 위해서 움직인다.
예정된 길로 가면 어찌 된 일인지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도 없다.
사전에 혈천방도가 정리를 해놓았기 때문이다.
약속 장소에 이르면 하룻밤 쉬어갈 만한 준비가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서 편히 쉬고, 먹고, 자면 된다.
다음 날도 준비할 것이 없다. 그저 사마를 이끌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은 혈천방도가 치운다. 언제 누가 뭐 흘렸냐는 듯이 말끔하게 치운다.
사람이 머물렀던 흔적은 물론이고 체취까지 지워버린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들을 쫓는 사람이 바로 귀무살이다.
혈천방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이 튀어나올지 안다.
밤이 깊었다.
“사마도 자겠지?”
판수가 말했다.
“모두 잠들었으니까. 저들 속에 방주가 있는지 알면 좋은데. 어떻게 아는 방도가 없나?”
길성이 중얼거렸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마. 어쨌든 저들만 쫓아가면 근거지에 도착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아무 연락이 없지. 내가 밀마를 잘못 남겼나?”
“네가 하늬나 잘못 남겼겠다. 괜한 걱정하지 말고 좀 쉬어. 사정이 있어서 늦으시겠지.”
판수가 길성을 다독였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한 사람이 사립문을 밀치고 폐가 안으로 들어섰다.
“해자수님!”
길성이 제일 먼저 튀어나오면 해자수를 반겼다.
혹여 밀마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속앓이를 했는데, 이제야 마음이 탁 풀어졌다.
사실, 길성은 십 장 앞에서부터 해자수의 등장을 눈치챘다.
길성의 촉각에 해자수의 생기가 잡혔다. 그런데 생기가 묘했다. 생기를 느끼자마자 당장 혈기가 곤두선다.
매우 위험한 맹수를 만났을 때처럼 긴장감이 일어난다.
‘혈마!’
길성이 혈마를 자각했을 때, 해자수가 이미 사립문을 밀치고 들어선 후였다.
혈마에게는 십 장이라는 거리가 지척에 불과하다.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궁충이 해자수를 맞이했다.
“몇 명이나 돼”
“오늘은 스물일곱입니다. 어제보다 다섯 명이 늘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왜 날이 갈수록 늘어? 귀검은?”
“지켜보고 계시죠. 안쪽에 바싹 붙어서.”
궁충이 웃으면서 말했다.
밤이 깊어지면 귀검은 귀신처럼 움직인다. 혈천방도가 자는 곳으로 스며들어서 동정을 파악한다.
사마 숫자도 다시 한번 헤아린다. 물론 사마를 급습하지는 않는다.
조용히 살의를 숨긴 채 조용히 숫자만 헤아린다.
이미 귀무살이 파악한 것을 자신이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어휴! 그 사람도 참…… 이럴 때는 자네들한테 좀 믿고 맡겨도 되는데. 꼭 하나부터 열까지 자기 손으로 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니.”
“믿고 맡기실 때는 믿고 맡기십니다.”
궁충이 웃으면서 말했다.
“감시까지 자기가 직접 하는 게 믿고 맡기는 거야? 지금도 여괴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건만. 차라리 여괴 보고 쉬라고 하던가. 왜 둘이 같은 일을 해?”
해자수가 못마땅한 듯 혀를 찼다.
궁충이 말했다.
“귀무령님께서 말씀 주신 게 있거든요.”
“무슨 말?”
“이번 사마 추격은 혈마에게는 대전환점이 될 거다. 혈마가 이백 년 전 혈마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세계를 열지. 이 모든 것이 사마 추격에 달려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께서 직접 챙기셔야 한다고.”
“어휴! 사람이 어찌 대죽처럼 살아. 난 귀검을 보면 숨을 못 쉬겠던데, 자네들은 참 용하게 버텨.”
“하하! 이것 좀 드십시오.”
궁충이 닭죽을 내왔다.
“추격하느라 고생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먹을 건 잘 먹고 다니네?”
해자수가 반가운 듯 허겁지겁 닭죽을 받아서 먹었다.
“추격도 다 힘이 있어야 하는 거죠. 배고프면 추격도 안 돼요.”
“그건 맞아. 배고프면 아무것도 안 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안 그래?”
해자수가 맞장구를 쳤다.
“주모님…… 홀리님은?”
“무사히 해결됐어. 음문촌장하고도 잘 갈라섰고. 책사하고 합류했다고 하던데. 곧 올 거야. 난 모두 불안해할 것 같아서 조금 빨리 달려왔고.”
“아, 네.”
궁충이 반가운 듯 활짝 웃었다.
언제부터인지 호발귀가 옆에 있으면 안심이 되고, 없으면 불안해진다.
“잠 좀 자둬. 귀검이 지키고 있으면 뭐 괜찮겠지.”
해자수가 빈 그릇을 옆에 넣고 덜렁 드러누웠다.